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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래 : 단편소설, 분단소설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배경 :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는 전방의 어느 야영지. ▶주제 : 분단 현실의 실상과 그 극복. ▶표현상 특징 -현재 상황과 어머니에 대한 회상이 중첩되어 현재와 과거를 이어감 -까마귀, 철사줄, 흰눈 등 표현의 상징성이 두드러짐
▶나 - 주인공. 홀어머니와 살고 있는 군인. 공산주의자로 월북한 아버지로 인해 죄의식을 지님. 야영지에서 이름 모를 시신의 발굴을 통해 지난 날 아버지와 같은 사람들에게 가해졌던 폭력의 흔적을 확인하고 갈등함.
임철우의 {아버지의 땅}은 그의 첫 소설집의 제명(題名)이 된 작품으로서, 임철우 소설 세계를 들여다 보고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작품이다. 흔히 그는 우리 시대의 현실이 안고 있는 핵심적인 문제를 리얼리스틱 수법으로 파헤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것은 이 {아버지의 땅}에 드러난 작가 의식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소설적 관심은 체제와 이데올로기적 폭력, 그리고 그것들에 의해 동요되는 개인의 모습들에 있다. 그래서 그는 분단 체제의 현실과 광주 항쟁 등 일련의 시국 사건들에 직접, 간접으로 관계된 인물들을 다루고 있으며, 이러한 현실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인물들이 현실의 다양한 폭력 앞에서 어떻게 파멸되어 가는지를 꾸준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또, 그의 소설에서 다루어지는 폭력들은 서로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과거, 개인과 사회, 실존적 고뇌와 공동체적 실천 사이의 문제에 대해 언제나 통찰하고 탐구하는 대상이 된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우리 시대의 폭력적 현실과 과거의 폭력, 개인의 파멸과 사회의 부도덕함 사이의 관계를 진지하게 다룸으로써 분단 체제와 광주 항쟁 같은 비극적 현실을 원죄(原罪)를 극복하고자 하는 데서 확인할 수 있다. <추가> 한국 전쟁을 제재로 한 작품은, 전쟁을 직접 치렀던 세대에 의해서 작품화되거나, 어릴 때 그것을 목격한 세대들의 어른이 된 후 어린 목격자의 눈으로 재해석하는 작품이 한국 전쟁 소설의 주종을 이루었다. 한국 전쟁 이후의 미체험 세대에 의한 작품이 쓰여졌다는 점이다. 따라서 전쟁을 해석하는 눈은 조금 달라질 가능성을 애초부터 가지고 있다. <아버지의 땅>은 전후 세대가 유산처럼 안게 된 부담과 불행에서 그 날에의 이해로 거리를 축소해 가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소설은 참호를 파다 밭고랑에서 발견된 유해(遺骸) 한 구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유해는 오랜 세월 땅 밑에 묻혀 있다 눈앞에 모습을 보이는 순간 과거의 일은 현재성을 지니고 목전에 다가온다. 그렇기 때문에 시체의 발견 자체가 문제성을 안고 이 시점에 부각되는 것이다. 이 시체를 둘러싼 인물들, 소대원과 마을 노인의 위상은 상당한 차이를 가진다. 소대원들은 이 시체와 화자의 거리는 상당히 떨어져 있다. 그러나 노인의 경우는 그 거리가 가깝다. 그는 전쟁의 참상을 직접 경험하였고, 또 그의 형이 그 피해의 당사자란 점에서 동병상련의 아픔을 안고 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이 시체와 노인의 관계는 밀접한 것은 아니다. 그의 형의 시체라고 단정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노인도 그렇게 믿지 않는다. 그런데도 노인이 시체를 바라보는 시각은 대단히 따뜻하다. 그것은 죽은 자에 대한 애도의 표현이면서, 노인의 가슴에 내재된 한의 표현이기도 하다. 노인은 전후 세대인 소대원과 달리 과거 역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존재이다. 노인에게 역사는 지속되고 있지만, 소대원은 한국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실과 단절돼 있다. 이 연결과 단절의 차이가 결국 시체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를 가져 오는 것이다. 작가는 바로 이 점을 주제 의식으로 삼는다. 한국 전쟁은 과연 사라진 역사적 사실일까. 현재에도 끈질기게 남아 우리를 제약하고 있는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인 것이다. 노인이 한으로 끈덕지게 얽매여 있듯이 그 날의 비극은 민족사의 앙금으로 남아 여전히 현실을 아프게 한다는 메시지를 형상화하고 있다. 과거와의 철저한 만남, 그것은 바로 '나'에 의해 구체화된다. 시체와 무관했던 '나'가 혈육과 같은 끈끈함으로 맺어지는 것을 통해 그 점은 구체화된다. 술이 가득 차 오른 반합 뚜껑을 나는 두 손으로 받쳐 들었다. 저것 봐래이. 날짐승도 때가 되면 돌아올 줄 아는 법이다. 어머니가 말했다. 저만치 웬 사내가 서 있었다. 가슴과 팔목에 철사줄을 동여맨 채 사내는 이쪽을 응시하며 구부정하게 서 있었다. 퀭하니 열려 있는 그 사내의 눈은 잔뜩 겁에 질려 있는 채로였다. 애앵. 총성이 울렸고 그는 허물어지듯 앞으로 고꾸라지고 있었다. 불현듯 시야가 부옇게 흐려 왔다. 아아, 아버지는 지금 어디에 쓰러져 누워 계실 것인가. 해마다 머리맡에 무성한 쑥부쟁이와 엉겅퀴꽃을 지천으로 피워 내며 이제 아버지는 어느 버려진 밭고랑, 어느 응달진 산기슭에 무덤도 묘비에 없이 홀로 잠들어 있을 것인가. 반합 뚜껑에서 술이 쭐쭐 흘러 떨어지고 있었다. 화자는 드디어 이 무연고 시신 앞에서 아버지를 발견하고, 잊고 싶었던 과거와 처절하게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저주와 공포로 얼룩졌던 아버지의 기억이 다시금 다사로운 눈물과 애정으로 화하는 승화된 만남이 되는 것이다. 한국 전쟁은 이렇게 잊혀지지 않고 새로운 의미로 해석되어 전후 세대에 이어지고 있음을 이 작품은 보여 준다. 지금도 어머니처럼 철새를 망연히 바라보고 있는 세대가 여전히 살아 있고, 자신처럼 비록 무관한 것으로, 때로는 무거운 짐으로 남아, 버려야 할 악귀와 같이 냉담하게 인식하던 것에 대해 다시 새로운 시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전후 세대는 그 아픔의 역사를 고스란히 유산으로 받았기 때문에 결코 거기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그것의 부정성에 매몰되지 않고 따뜻한 애정으로 수용하게 된다면 잃었던 아버지도 마음에 살게 되며, 용서와 화해의 새로운 지평이 열릴 것이다. 노인이 던진 말, "이렇게 죽어 누운 다음에까지 이쪽이니 저쪽이니 하고 그런 걸 굳이 따져서 무얼 하자는 말이오."에 그 해답이 담겨 있다. 이 작품은 이런 주제를 형상화하기 위해 구조와 표현의 면에서 세심한 배려를 한 흔적이 뚜렷하다. 시체를 두고 벌어지는 현재 상황과 어머니의 이야기가 중첩되게 하여 현재와 과거를 이어가고 있으며, 세대 간의 갈등과 화해의 메시지를 이러 이중 구조를 통해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그러나 이 작품을 더없이 아름답게 하고, 감동을 주는 요소는 그 상징적 표현에 있을 것이다. 서사 구조도 탄탄하지만 그 구조를 떠받드는 표현의 상징성은 주제를 더욱 선명히 하면서 문학적 감명을 암시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어느 틈에 날아왔는지 길 옆 밭고랑마다 수많은 까마귀들이 구물거리고 있었다. 온 세상 가득히 내려 쌓이는 풍성한 눈발 속에 저희들끼리만 모여서 새까맣게 구물거리며 놈들은 그 음산함과 불길함을 역병처럼 퍼뜨리고 있는 것이었다. 지금도 틈만 나면 이데올로기를 들추며 사랑과 화해를 방해하는 세력들을 까마귀로 암시하는 것이다. 이것은 작가가 현실을 바라보는 눈이 어떠한가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살도 녹이고 뼈까지도 녹슬게 만든 그 오랜 시간과 땅 밑의 어둠을 끝끝내 견뎌 내고 그렇게 시퍼렇게 되살아나는 그것의 놀라운 끈질김과 냉혹성이 언뜻 소름 끼치도록 무서움증을 느끼게 했다. 시체를 감싸고 있는 철사줄은 여전히 우리를 구속하고 있는 이념의 잔인성을 상징한다. 노인이 그 철사를 풀어 푸른 하늘에 버리는 행위에서 이제는 이념의 굴레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얻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철사줄을 통해 보여 준다. 어머니가 늘상 해 오던, 새 바라보기도 그러하다. 어머니는 철이 되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새 떼를 보며 아버지를 끊임없이 기다린다. 그것은 지울 수 없는 한이다.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 기다림에 매달리지 않고서는 한 순간도 지탱할 수 없는 것이다. 어머니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이념과 무관한, 그저 자상한 모습의 남편일 뿐이다. 어머니는 기다림이라는 행위를 통해 아버지의 원래 모습을 가슴에 영원히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굵고 탐스러운 눈송이들은 세상을 가득 채워 버리려는 듯이 밭고랑을 지우고, 밭둑을 지우고, 그 위에 선 내 발목을 지우고, 구물거리는 검은 새 떼를 지우고, 이윽고는 들판과 또 마주 바라뵈는 거대한 산의 몸뚱이마저도 하얗게 지워 가고 있었다. 그것은 어머니가 새벽마다 샘물을 길어 와 소반 위에 떠서 올려 놓곤 하던, 바로 그 사기대접의 눈부시도록 하얀 빛깔이었다. 눈은 까마귀와 대조되어 있다. 까마귀가 불길함을 상징한다면, 눈은 그것을 지우는 것으로 표상된다. 시체가 묻혔던 밭고랑도 지우고, 이념도 갈등으로 충돌했던 그 참혹의 현장이었던 산도 지우고, 그 동안 내가 지녔던 편견과 몰이해를 지우고, 아직도 큰 힘으로 음모를 획책하는 세력들을 지워, 모든 하얀 색깔 하나로 어우러진 세상을 염원하는 주제가 이 눈 오는 광경의 묘사를 통해 상징화되고 있는 것이다. 순백의 눈으로 원래의 순수를 되찾아 과거의 아픔을 치유하고, 여전히 남아 있는 증오의 마음을 사랑으로 바꾸어 나갈 때 전쟁의 아픔은 더 가슴에 의해 아늑히 품어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