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가 넘어서 잠들었지만 여행 첫날답게 일찍 일어나 움직이기 시작했다.
첫날부터 무리하지 않기 위해서 오늘은 시내에 있는 운남민족촌과 서산을 구경하는 쉬운(?) 일정이다. 일단 아침을 먹기 위해서 숙소주변을 돌아다니다 보니 국수집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숙소 주인이 하는 카페에서 보았을 것 같은 낯익은 간판에 미러미씨엔이라 적혀있었고 처음 먹어본 중국음식은 "맛있었다".
밥을 먹은 후에 근처 전화기 파는 곳에서 심카드를 사서 새로 사가지고 간 아이폰5에 끼웠는데 애초 걱정했던 "자르기"는 문제가 없었지만 열악한 중국의 모바일 수준 탓에 돈만 많이 들고 쓸모는 별로 없었다. 최대회사인 중국이통은 아직도 2g 중심이고, 3g를 서비스한다는 연통도 3g가 안 터지는 곳이 많고 터져도 엄청 느렸으며 요금제도 월 300메가짜리밖에 없었다. 몇천원 요금으로 한 달 동안 3g를 넉넉하게사용했던 베트남과는 확연히 달랐다. 한 달 동안 총 320위안을 투자했지만 요긴하게 쓴 것은 리장에서 여행사 문자 받은 것뿐. 대통령선거날 와이파이 안 되는 숙소(이것도 베트남과 비교해서 납득이 안 된다. 많은 숙박업소 운영자들이 와이파이가 뭔지도 모른다. 1년 전에도 베트남 오지 게스트하우스에는 와이파이가 터졌었는데.)에서 요금 상관없이 인터넷 접속을 해보려 했지만 너무 느려서 아무 페이지도 안 열리고 간신히 카톡 문자만 그것도 한 번에 몇분씩 걸려가며 주고받을 수 있었다. 물론 세월이 가면 나아질 문제지만 다른 부문에 비해 너무 늦다는, 혹은 대도시에 비해서 변방 지역이 너무 낙후한 것일까.
버스를 한 번 갈아타고 민족촌으로. 이곳 시내버스 시스템은 훌륭하다. 요금도 저렴하고(근데 버스마다 요금이 다르다. 1원, 1.5원, 2원) 정류장도 버스 안 안내시스템도 다 좋다.우리나라 버스 시스템보다 못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시외버스는 아직도 주먹구구식 운행이 많고, 관광지의 택시는 미터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가끔 요긴하게 타고 다니기는 했지만 빵차(빠오처 包車 빵 모양을 닮은 차라는 뜻이며 그냥 빵이라는 뜻의 미엔빠오로 불리기도 한다)라는 독특한 시스템이 있는데 자가용 불법영업을 묵인하는 형태로 보인다. 시외버스 표에는 보험표를 붙여서 팔면서 그 많은 빵차들은 마구잡이로 돌아다니게 놔두는 부조화.
갈아탈 정류장을 놓치지 않으려고 아이폰을 열고 지도를 봐가며 잔뜩 긴장한 채 앉아있으니 옆에 서 있는 젊은 아줌마가 살짝 관심을 보이는 듯하다. 이때다 하고 내리는 역의 위치를 물어보니 (나의 짧은 중국말은 대부분 잘 통했다.다만 듣는 게 어렵다 보니 중국사람은 글자로 쓰고 나는 말로 하는 형태의 필담이 가끔 이루어지기도 했다. 팅부동,칸더동) 뭐라고 대답을 하는데 알아듣질 못하겠다. 아줌마가 아이폰을 꺼내더니 글자를 적어서 보여준다. 다음에 내리라는 내용을 확인하는 순간 이미 버스는 정류장에 도착했고 씨에씨에 부리나케 내렸다. 이 때 이후로 중국에서 아이폰 정말 많이 봤다. 혼자서 다니거나 커플로 다니는 젊은 여행자들은 열에 여덟 정도는 아이폰이다. 어쩌다 정말 어쩌다 삼성 제품이 보이고 서민들은 아직 2g 혹은 3g 전화기가 대세다.
운남민족촌은 입장료가 90위안이고 내부 관람차 요금은 별도. 우리는 천천히 걸어다니면서 체계없이 아무데나 구경했다. 그 많은 소수민족들을 하나하나 구별하고 기억하기도 힘든데 뭐, 눈에 띄는 것 구경하고 사진이나 가끔 찍고...
서산으로 가기 위해 남문으로 가니 제복을 입은 늘씬한 아가씨가 뭐라뭐라 묻는다. "날리"라는 말을 얼핏 알아듣고 "한국"이라 대답하니 웃는다. "쓰더" 그걸 물어본 게 아니라는 분위기. "니먼 야오취 시샨마?" 이번엔 정확히 알아들었다. 서산 갈 거냐고? 그랬군 어디 가냐고 물었던 거야. 그런데 한국간다고? ㅋㅋㅋ 비어있는 버스에 우리 둘만 태우고는 바로 출발해서 서산행 케이블카 타는 곳까지 데려다 준다. 요건 무료.
민족촌에서 서산으로 (물론 반대방향으로도 마찬가지) 이동하는 케이블카 요금이 20위안인데 이동수단일 뿐 아니라 공중에서 디엔츠 호수를 내려다보는 관광상품이기도 하다. 한 달 동안 이곳저곳 엄청난 입장료를 내면서 구경하다 보니 자연환경을 이용한 돈벌이 기술이 대단하다. 우리도 배워야 하는 걸까, 그들이 지나친 걸까.
서산 올라가는 케이블카 요금과 입장료 포함하여 65위안. 정상에서 내리니 뭐라뭐라 떠들며 잡아끈다. 가보니 잘 찍지도 못한 사진을 찾으라며 20위안을 달란다. 이왕이면 잘좀 찍지.
용문(시샨 롱먼)은 절벽 근처로 마치 용이 빠져나간 것 같은 굴이 있다 하여 붙은 이름인 모양인데, 굴 자체는 그저 그런 수준. 대단한 감동을 받을 정도는 아니다. 그렇다고 구경가지 말라는 건 아니고... 구경 하면서 내려오다 보니 차량 운행하는 지점이 나오는데 차량이 두어 대 보이는데도 시간이 다 되었다고 표를 팔지 않는다. 입구에서 표를 살걸 그랬나? 시내로 연결되는 곳이 까오야오라는 걸 알고 있었으므로 주변에 보이는 사람들에게 까오야오를 어떻게 가냐고 물었더니 한 아저씨가 친절하게 가르쳐준다. 그렇지만 잘 알아듣지를 못하고 그냥 길따라 20분 그 다음에 어쩌구 정도. 어쨌든 고맙단 인사를 하고 씩씩하게 출발하는데 젊은이들 몇몇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다가 샛길로 빠진다. 따라갈까 망설이는데 뒤에서 뭐라뭐라 소리가 들린다. 뒤돌아보니 길 알려준 그 아저씨가 그들을 따라가지 말라고 손짓을 한다. 계속 지켜보았나 보다. 15분 정도 걸어가니 입장권 팔던 데가 나오고 거기서 잠시 헤매다가 또 다른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까오야오로 나오는 마지막 셔틀(1인당 15원)을 탔다. 앞으로도 계속 나오겠지만 우리가 만난 중국 사람들은 대체로 겉보기엔 무뚝뚝했지만 부딪쳐 보면 기대 이상으로 친절한 마음을 보여줬다.
까오야오에선 빵차 기사가 강력하게 대시했고 우린 피곤했고 날은 어두워졌고 그래서 무려 50원이나 주고 숙소 근처로 돌아왔다. 아침에 보아두었던 식당에 들어가서 볶음밥을 시켜 맛있게 먹고 첫날 일정을 마쳤다. 이날은 볶음밥에 국물이 따라나왔는데 그것은 엄청난 예외인 듯, 한 달 내내 국물 주는 볶음밥은 구경도 못했다. 다꽝이나 양파도 물론 없고 달랑 밥 한 접시만 주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