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재는
예부터 경상도의 중심 도시 중 하나였던 상주 사람들이 서울로 가기 위해서 반드시 넘던 고개였다. 인근의 우뚝 솟아오른 새재 보다 날카롭지 않고, 추풍령이나 김천의 궤방령처럼 치우치지도 않아 편하게 서울로 걸어가던 길. 늘티(재)라는 이름에는 낮고 평평하여 편하다는 뜻이 담겨있다고 한다
정국기원단(靖國祈願壇)은
인근 한농복구회공동체 청화산농원 조삼수 회장이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조성해놓았다고 한다. 비의 뒷면은 텅 비어 있다. 누가 언제 왜 만들었는지에 대한 수식이 없다. 다만 어지러운 나라를 태평하게 한다는 좋은 뜻만 담겼을 뿐이란다.
조선시대의 훌륭한 인문지리 학자였던 이중환(李重煥)이 그의 저서 '택리지'에서 '금강산 남쪽에서는 으뜸가는 산수'라고 말했다고 하니 청화산과 이 일대의 아름다움을 짐작할 수 있다. 청화산은 빼어난 경관 뿐 아니라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복된 땅(福地)을 품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전란(戰亂), 질병(疾病), 기근(飢饉) 등의 삼재(三災)가 들지 않는 땅이다. 이른 바 십승지(十勝地) 가운데 하나인 땅이다. 바로 청화산 아래 마을인 상주시 화북면 용유리가 그곳이다. 실제 그 마을은 소의 배속(牛腹洞)처럼 안온한 형상을 하고 있다. 시루봉, 청화산, 문장대, 천왕봉, 형제봉, 갈령, 도장산으로 이어지는 둥근 산줄기 안의 분지에서 바깥세상으로 트인 곳은 시루봉과 도장산 사이 용유리의 병천 뿐이다. 참으로 우복동의 형세라 아니할 수 없다.
청화산(靑華山)
충청북도 괴산군의 청천면 삼송리와 경북 상주시 화북면, 문경시 농암면의 경계가 되는 산이다(고도:988m). 동북쪽으로 조항산과 이어져 있다. 화양구곡으로 유명한 화양천이 이곳에서 발원한다. 이중환의 『택리지』에서 청화산에 대해 "뒤에 내외의 선유동을 두고 앞에는 용유동에 임해 있다. 앞뒷면의 경치가 지극히 좋음은 속리산보다 낫다."고 평가했다. 『구한말지형도』에는 이 산의 지명이 표기되어 있지 않지만, 『조선지형도』에서는 청화산 지명이 표기되어 있다. 괴산군에서 꼽은 괴산 명산 35에 속한다. 이 청화산과 북쪽의 조항산 사이에 갓바위재라고 불리는 가파른 재가 있는데, 청천면 삼송리에서 문경시 농암면 궁기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조항산(鳥項山)
정상에 오르면 남쪽으로 속리산 일대와 청화산, 북쪽으로 둔덕산, 희양산, 대야산이 보인다.
충청북도 괴산군의 청천면 삼송리와 문경시 농암면 궁기리의 경계가 되는 산이다(고도:951m). 소백산맥 줄기에 속하는 산으로 북으로 대야산과 남으로 청화산과 이어져 있다. 이 조항산과 청화산 사이에 난 남쪽의 가파른 고개가 갓바위재로서, 청천면 삼송리에서 문경시 농암면 궁기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괴산의 명산 35곳 중의 하나이다. 조항산(鳥項山)이란 이름은, 봉우리가 새의 목처럼 생겨서 붙여졌다고 한다. 『구한말지형도』에는 이 산의 지명이 표기되어 있지 않지만, 『조선지형도』에서는 현재와 같은 지명으로 표기되어 있다.
대야산은
백두대간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대간능선이 꿈틀이고 지나며
아름다운 보석들을 흩뿌려 놓은 문경의 산들 중에서도 그 명성을 높이 사고 있는 명산이다.
경북 문경시(聞慶市) 가은읍(加恩邑) 완장리(完章里)에 속한 대야산은
대간 마루금을 경계로 충북 괴산군(槐山郡) 청천면(靑川面) 삼송리(三松里)와 접하고 있다.
내/외선유동을 거느리고 있는 대야산은 2002년 세계 산의 해를 맞아
문경의 주흘산, 황장산, 희양산과 함께 산림청에서 선정한 한국 100대 명산에 올라서 있다.
예로부터 명산으로 받들어 온 대야산은 여러 기록들에 ‘大耶山’으로 적고 있으며
특히 철 종 조의 대동지지[(大東地志(1861년 이후 추정)]에는
「大耶山 曦陽山南支上峯曰毘盧爲仙遊 洞主山西距淸州華陽洞三十里
(희양산남지상봉왈비로위선유동주산서거청주화양동삼십리:
대야산은 희양산의 남쪽 갈래로 제일 높은 봉우리가 비로봉이고, 선유동의 주산이다.
서쪽의 청주 화양동이 30리다)라고 기록하고 있어 대야산 정상을‘비로봉(毘盧峯)’으로 부르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선유동계곡을 안팎으로 품은 산은 백두대간 중에 대야산뿐으로 내선유동과 외선유동이 있는데 문경가은의 용추 쪽이 더 알려져 사랑을 받는 연유는 무었일까
<기암괴석과 선유동 계곡의 조화>
백화산과 희양산을 지나 속리산 사이에 솟은 대야산은 속리산국립공원내에 포함되며,
백두대간 상의 산으로 경북과 충북 양쪽에 내외 선유동을 두고 있을 정도로 계곡이 특히 유명하다.
대야산 자락에서 흘러내린 물은 용추계곡을 형성, 문경 8경의 하나가 된다.
용추골은 대야산과 이웃한 둔덕산에서 흘러내린 물과 합류하여 넓은 암반이 아름다운 선유동 계곡을 빚어 놓았다.
특히 깎아지른 암봉과 기암괴석이 산세를 더욱 아름답게 한다.
문경 8경중의 하나인 용추의 모습은 대야산 제일의 명소로 친다.
거대한 화강암반을 뚫고 쏟아지는 폭포 아래에 하트형으로 패인 소(沼)가 매끈한 암반을 타고 흘러내리면서 여러개의 소를 만들어 놨다.
또한 달 뜨는 밤이면, 바위와 계곡에 달빛이 비친다 해서
월영대(月影臺), 숙종 때의 학자인 이재를 기리기 위해 1906년에 세운 선유동 계곡의 정자인 학천정 등이 대야산을 더욱 기기묘묘한 아름다움으로 가득차게 한다.
세속에 흔들리지 않는 큰 아버지의산 대야산에는 산 아래 푸른 학이 둥지를 품었다는 학소암
신선이 금단을 만들어 먹고 장수했다는 연단로 바둑 두는 신선을 구경하는 사이 도끼자루가 썩어 없어 졌다는 난가대 달그림자 물위에 드리워지는 월영대 용을 두 마리나 낳은 어머니의 자궁 닮은 용추폭포 이다
불란치재는
촛대봉과 곰넘이봉 사이에 있는 고개로 버리미기재를 넘는 922번 2차선 포장도로가 개설되기 전까지는 행정적으로 충북 괴산군 청천면 관평리와 경북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를 동서 방향으로 연결하고 있다.
지리적으로는 남쪽 대야산(930m)과 장성산(916m)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상주 화북의 늘재를 넘어 청천과 괴산으로 이어지는 길이 남북방향이라면, 문경 가은에서 불란치재를 넘어 청천과 청주로 이어지는 길은 동서로 난 방향이다. 그러나 교통이 발달하면서 늘재가 992번 지방도로로 포장되어 여전히 쓰임새를 갖춘 반면, 불란치재는 버리미기재에 922번 포장도로를 넘겨주고 지금은 쓰이지 않는 옛길이 되고 말았다. 불란치재는 지금도 뚜렷한 옛길의 흔적이 남아 있으나 통행은 거의 없다. 불란치재와 버리미기재는 사람들이 걸어다니던 시대에서 문명의 시대로 넘어가는 고갯길의 변천과정을 보여주는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변천과정을 잘 나타내 보여주는 곳이 바로 문경지방의 고갯길이다. 그 중 계립령은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새재(조령)는 조선시대에, 이화령은 일제시대 이후에 각각 그 역할을 담당해 온 고개들로 한 곳에서 역사의 흐름도 함께 느껴볼 수 있는 곳이라 하겠다.
버리미기재는
충북 괴산의 선유동과 경북 문경의 가은을 잇는 작은 고개인데"보리나 지어먹던 궁벽한 곳"이란 뜻이란다.
백두대간 분수령이 이 곳 버리미기재에서 부터 이화령 - 새재 - 하늘재 까지 거대한 능구렁이가 "갈 지(之)"자로 심하게 요동을 치는 구간이다.
첫댓글
2등입니다요~ㅎㅎ
산맥산악회 백두대간 제15차 참석하실분~~^^
1-10 강순구.이재학.권오철.권창혁.권준대.김상기.김상준.김용원2.김정진.박상현.
11-20 신종희.오상봉.이규락.입병구.이승현.장재호.엄기원.정광수.조춘섭.채영근.
21-30 강영숙.김경숙.김명숙.김순남.김승현.김영아.김영희.박성희.박태임.서윤경.
31-40 이미숙.최경희.임성근.
산맥백두대간 제15차 산행비입금입니다~~^^
1~10
권준대. 권창혁. 김상기. 김정진. 박상현.
엄기원. 오상봉. 이규락. 이병구. 이재학.
11~20
장재호. 정광수. 조춘섭. 채영근. 황학모.
김경숙. 김명숙. 김영희. 박성희. 박태임.
21~30
최경희. 서윤경. 박형규. 김상준. 손경애.
이승현. 김승현. 강순구. 이미숙.
임성근님(김상기형님 지인분) 산행 신청 합니다.^^
귀한 회원이네요..ㅎ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