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돈의 역사 [김학은]
말과 돈
구약 창세기에 바벨탑의 이야기가 나온다. 원래 모든 사람들의 말은 하나였는데, 사람들이 바벨탑을 쌓아 하늘의 권위에 도전하는 교만함을 보이자 하늘은 사람들이 말을 여러 개로 나누어 그들 사이의 의사소통을 어렵게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여러 나라 말로 둘러싸인 채 불편하게 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나라 말은 이해하지만 다른 나라의 문자에 대해서는 까막눈이다. 세계가 하나가 되어 가면서 국제어가 된 영어에 대한 이해의 필요성이 커져 가며 그 어느 때보다도 여러 나라에서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 세계는 다시 하나가 되어 가고 있다.
발견되지 않은 어느 책에 의하면, 원래 돈은 하나였는데 사람들이 그 편리함 때문에 빠르게 부를 축적하여 하늘의 권위에 도전하는 교만을 저지르자 하늘은 여러 개의 돈으로 나누고, 돈과 돈 사이의 소통을 어렵게 만들어 세계가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돈과 돈 사이의 소통을 위해 애를 쓰고, 그 다음에는 하나의 돈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애를 쓰고, 그 다음에는 하나의 돈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애쓰고 있다. 현재 유럽에서의 화폐통합의 움직임이 바로 이것이다.
돈은 언어와 같은 것이다. 내가 당신의 말을 이해한다는 것은 나에게 뿐만 아니고 당신에게도 도움이 된다. 내 집의 푸른 잔디가 당신에게 좋은 기분을 가져다 주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돈도 이와 같다. 내가 당신 돈을 받아 주기 때문에 거래가 단순화되어 당신에게도 도움이 된다.
하나님이 하나이듯이, 말이 하나이고 돈도 하나다. 하나님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했듯이, 돈 앞에 다른 것은 빛을 잃는다. 이런 면에서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말은 사실은 '황금 보기를 돈같이 하라'는 말이 아니면 '돌보기를 황금 보듯이 하라'는 말로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질투가 심하시다고 했는데 돈도 질투가 심하다. 그래서 돈은 귀신도 부린다고 하지 않았던가. 하나님은 저승을 다스리시고, 돈은 이승을 다스린다. 그런데 홍콩 사람들은 저승에도 돈이 필요하다고 죽은 사람의 관에 저승의 돈을 넣어 준다. 이름하여 명부화폐, 명통은행이 발행한다.
그러나 한편 말이 하나가 되어 가는 때에 돈이 하나가 되어간다는 것은 다시하늘의 노여움을 사는 일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구의 자원이 빨리 고갈되어 가고 있는 것을 심상치 않게 보는 사람들의 걱정이다. 우리는 현대판 바벨탑을 쌓아 가는지도 모른다. 그 수단으로서 우리는 각종의 금융제도를 발달시켜가고 있으며, 대형 금융사고는 국가경제를 무너뜨릴 만큼 위력이 있다. 복잡한 언어가 바벨탑을 무너뜨리듯이.
돈의 어제와 오늘
금융이 발달된 현대의 입장에서 보면 옛날 사람들의 돈의 개념은 단순하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 원리는 똑같다. 말이 발달되었다고 해도 그 이치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말의 이치나 돈의 원리가 옛날이나 지금이나 하나였으므로 새삼스럽게 하늘의 노여움을 다시 사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원시적인 돈의 원리를 살펴보면 이 생각은 확실히 옳다.
마이크로네시아에 있는 캐롤라인 군도에는 돌 화폐의 섬이라는 것이 있다. 이 섬에는 금속이 없기 때문에 돌을 깎아서 돈으로 사용하였다. 과연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말이 맞는 나라이다. 그런데 이 돌돈은 무겁기 때문에 유통되지 않는다는데 그 이상한 특징이 있다. 거래가 일어나서 물건이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건너가도 그 돌돈은 원래 있는 자리에 그대로 있고, 새 주인은자신이 것이라고 아무 표시도 해 놓지 않는다. 단지 사람들이 그 돌돈의 소유가 새 주인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그만이다. 여러분은 이 같은 돈의 개념에 익숙치않으므로 매우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똑같은 원리가 현대에도 통용되고 있다고 들으면 더욱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미국 연방준비은행의 지하실에는 여러 나라의 소유 금이 보관되어 있는데, 국제수지의 차이에 따라 프랑스가 미국에 대금을 지불할 필요가 있을 때 프랑스의 소유 금이 프랑스 서랍에서 미국 서랍으로 이동할 뿐 그 지하실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단지 모든 나라가 인정하기만 하면 족하다.
개인 간의 거래에도 이 원리는 그대로 적용된다. 내가 당신에게서 물건은 받고 대금을 지불할 때 대금이 은행의 나의 계정에서 당신의 계정으로 옮겨지면 그만이다. 돈은 그대로 은행에 있을 뿐이다. 원리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원리가 똑같기로는 옛날 메소포타미아의 은행의 원리와 현대의 은행원리가 동일하다. 또한 중세에 발견된 신용창조의 원리는 현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돈의 원리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돈이란 무엇인가
원리뿐만 아니고 돈의 개념도 옛날이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현대의 우리는 무엇을 돈이라고 하는가. 어떤 사람들은 현금통화만을 돈으로 생각할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어음이나 수표로서 지불이 되는 당좌예금도 돈으로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현금통화에 당좌예금을 합친 것을 돈이라 생각하고, 이 돈을 통화라고 부르며 M1으로 표기한다. 일반적으로 돈은 다음의 세 가지 기능을 가지면 돈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 거래하는데 매개가 되는 지불수단의 기능을 가지면 된다. 가령 점심을 먹고 만원 짜리로 그 대금을 지불할 수 있다.
둘째, 돈이라고 불리우는 그 속에 항상 가치가 저장되어 있는 가치저장수단의 기능을 갖고 있으면 된다. 만원 짜리는 항상 만원의 가치가 그 속에 들어 있다. 셋째, 가치척도의 기능을 갖고 있다. 우리는 돈의 가격을 1로 정하고, 나머지 다른 모든 물건의 가치를 상대적으로 평가한다.
이 같은 기준으로 볼 때 현금통화만이 돈이라고 할 수 있는가, 또는 현금통화와 당좌예금을 합친 것을 돈이라고 할 수 있는가.
얼핏 보아 현금은 세 가지 기능을 모두 수행하니 돈임에는 틀림없고, 당좌예금은 그렇지 않은 것 같으나 사실은 무엇이 돈인가 하는 질문은 간단하면서 어려운 질문이다.
가령 현금이라도 5억원 짜리 집을 사는데 있어서 1,000원 짜리 현찰 50만장으로 지불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가능하다 하여도 그러면 이번에는 10원 짜리 동전 5천만개로 지불할 수 있겠는가. 누구든지 1,000원권 지폐나 10원권 주화는 돈이라고 믿고 있으나 상대방이 받지 않으면 지불수단으로서 기능이 정지되고, 돈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므로 돈이라고 부를 수 없다는 이상한 논리가 된다. 이 이상한 논리가 현실로서 나타난 적이 있다. 미국에서 연전에 어느 사람의 집에 전기회사로부터 전기요금이 생각보다 과다하게 청구되었다. 가령 30불이라고 생각했는데 300불이 나왔다고 하자. 이 사람은 여러 번 항의했는데도 뜻이 관철되지 않고 우여곡적 끝에 300불을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지불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이 사람은 화가 나서 전기회사를 골탕먹일 심사로 이 300불을 1센트 짜리 주화 30,000개로 지불하려고 하자 전기회사는 이 같은 소액 주화로 지불받는 것을 거절하였다. 결국 소송까지 번졌으나 이 사람이 패소하였다. 그 이유는 너무 낮은 소액 주화로 고액을 지불하지 못한다는 이상한 법규 때문이었다. 하여튼 법에 의해 법정주화가 된 1센트 짜리가 또 다른 법에 의해 지불수단의 기능이 정지 당해 돈이 되지 못한 예이다.
이번엔 반대로 고액권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미국의 최고의 고액권은10,000불 짜리이다. 5불어치 점심을 먹고 만불 짜리로 지불하려고 하는 경우를 상상해 보라. 거스름 돈이 없다거나 하여 거절당할 수 있다. 지불수단으로서 기능이 정지되는 순간이다. 분명히 중앙은행이 발행한 법정지폐임에도 불구하고 이 순간 돈이 아니다. 이 만불 짜리로 점심을 먹으려면 가까운 시중은행에 가서 적당한 소액으로 바꾸면 된다.
마찬가지 논리가 저축성 예금통장에도 적용된다. 우리는 누구나 저축성예금통장은 돈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 속에 가치가 들어 있지만 점심 먹고 대금을 지불할 수 있는 지불수단이 못되므로 이것은 당연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만불 짜리 저축성 예금통장이나 만불 짜리 법정지폐나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저축성 예금통장으로 점심을 먹으려면 가까운 시중은행에 가서 적당한 소액권으로 바꾸면 된다는 점에서 만불 짜리와 같다. 만불 짜리가 돈이라면 만불 짜리 저축성 예금통장도 돈이다. 저축성 예금은 당좌예금과 마찬가지로 예금통화이다. 이 같은 논리하에서 현금통화와 당좌예금뿐만 아니고 저축성 예금까지 포함한 돈의 개념이 있다. 이 돈을 총통화라 부르고, 통화 M1과 구별하여 M2라 표기한다. 많은 나라들이 M2를 돈으로 정하고 있다. 이 같은 돈들은 모두 옛날의 돈과 그 기능에 있어서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돈이 돌고 돌아서 돈인 것처럼, 돈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 원리나 개념이 돌고 돌아서 별로 달라진 게 없다.
돈의 모습
돈은 귀신도 부린다고 하고, 죽은 사람도 살린다고 한다. 번쩍이는 금은 창녀를 귀부인으로 만들기도 하고, 노파를 젊은 여자로 바뀌게 할 수 있다고 말한 사람은 세익스피어이다. 돈 주고 살 수 없는 것도 있다고 반박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돈만큼 많은 것을 살 수 있는 것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돈의 사용의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 주는 나라로서 미국을 빼놓을 수 없다. 미국은 자유와 독립이 일찍부터 존중되어 온 국가이다. 이 나라의 화폐 역사는 이 두 가지 개념 하에 철저한 자유 시장경쟁으로 이루어져 왔다. 화폐가 지배하는 사회의 대명사가 된 이 나라는 화폐의 역사 자체도 흥미롭지만, 화폐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행위 또한 흥미롭다. 19세기에 등장한 부자들의 행위는 그야말로 화폐의 과시 사용으로 특징지어진다. 이름하여 '현시 소비'이다.
19세기는 황금의 시대라고 불리울 정도로 당시의 과시소비는 악명 높았고, 유례를 찾을 길 없다. 승마에 초대된 손님이 마상에 앉은 채 250불(요즘가치로 10,000불) 짜리 점심을 대접받을 때 식사 메뉴판이 순은판인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겠지만, 파티에 초대된 모든 손님들이 주인으로부터 백불짜리 현찰로 말은 담배를 받아 피운 것은 과시소비의 시작에 불과하다.
모나코나 리비에라의 도박장은 순전히 이들의 돈을 과시하는 좋은 무대를 제공하였는데, 도박 테이블은 돈을 따는 현장이 아니라 돈을 잃을 만큼 부자의 몸이라는 것을 보여 주는 장소였다. 잃고 와야만 부자의 대열에 속한다.
어느 부자는 멀쩡한 이를 모두 뚫어 다이아몬드를 박아 넣었고, 어떤 부자는 개에게 15,000불의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걸어 주었다. 시카고의 호텔왕 팔머는 부인에게 너무 많은 보석을 걸치게 해서 그 부인은 보석 무게 때문에 비틀거릴 지경이었다. 팔머는 "마누라가 백만불을 지고 다닌다"고 자랑스럽게 말하곤 하였다.
조지 굴드 부인은 다섯 줄의 진주 목걸이를 갖고 있었는데, 하나가 백만불이 넘었다. 이 부인은 외출할 때 한꺼번에 세개를 착용한다. 헌팅톤 부인은 쇼핑에서 350만불 어치의 목걸이가 든 손가방을 잃어 버렸다. 그녀는 그 날 8백만불 어치의 가구를 사려던 참이었다.
짐 브래디는 2백만불 이상의 보석을 지녔는데, 2천 637개의 다이아몬드와21개의 루비로 된 저녁 파티용 보석도 있었다. 한 때 그는 금으로 도금된 자전거를 친구에게 주었는데, 그중 럿셀에게 준 자전거의 손잡이는 진주로, 바퀴살은 다이아몬드, 에메랄드, 루비, 사파이어로 장식되어 있었다. 그가 한번은 파티를 열었는데 초대된 남자 손님은 모두 다이아몬드 시계를, 여자는 다이아몬드브로치를 선물로 받았다.
브래디는 한 번에 12벌의 옷을 주문하는데, 이것은 베리 월에게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월은 500벌의 정장을 갖고 있었으며, 하루에 최소 여섯 번은 갈아 입는다. 어느 날인가 사라토가 스프링에서 하루에 40번 옷을 갈아 입어 '멋쟁이 왕'의 칭호를 얻었다.
왕년에 뉴 포트에서 부자 가족은 20대 내지 30대의 마차를 갖고 있었다. 윌리암 위트니의 2백만불짜리 마굿간에는 68필의 말이 있었다. 자동차가 보편화되면서 풍속도는 달라진다. 윌리암 반더빌트는 100대의 차고를 짓고 20명의 운전사와 정비사를 두었다. 해밀튼 톰불리 부인은 그녀의 롤스로이스에 금과 에메랄드 장식으로 10,000불을 지불하였다. 텍사스 석유왕 웨스트는 40대의 캐디락을 소유하였고, 출판왕 란돌프 허스트는 35대의 자동차를 소유하였다.
증권왕 해티 그린은 자녀들에게 유산을 빨리 쓰도록 성화를 부렸다. 그 중 아들 네드 그린은 재빨리 세계에서 제일 큰 요트를 주문하였는데, 배의 길이가 90미터이고 욕실이 딸린 방이 9개가 있으며, 선실에는 벽난로가 있으며, 승무원은 선장까지 포함하여 71명이나 되었다. 1930년에서 1936년까지 네드는 천만불 이상의 돈을 보석 구입에 썼다. 그의 차에는 유리 지붕과 변소까지 딸렸다. 그는 연 평균 3백만 불씩 썼다. 해티의 딸 실비아는 이자도 없는요구불 예금에 3천만 불 이상을 예치하고 있었는데, 체이스 은행은 그녀가 언제 하루 아침에 나타나서 그 돈을 모두 현금으로 인출할까 봐 전전긍긍하였다.
스테토스 부인은 회비 500,000불의 아프리카 사파리 클럽을 조직하였는데, 그 목적은 그녀의 모든 가구를 악어가죽으로 장식하기 위함이었다. 이보다는 인도적이겠으나 코리칸 매킨리 철강회사 설립자의 딸 로라는 클리브랜드 동물원에 기증한다는 목적만으로 아프리카 동물들을 잡는 원정대를 조직하였다. 사진사, 신문기자, 두 하녀, 두 비서, 주치의, 간호원, 두 요리사, 세 웨이타, 미용사, 손톱청소인, 의상인을 대동하는 그녀의 원정대를 수송하기 위해 비행기 세 대가 동원되었다.
로드 아일랜드주의 반에 해당하는 크기의 땅에 들어 앉은 허스트의 대저택에는 비행장, 동물원, 식물원, 말목장이 딸려 있었고, 만 마리의 소가 있었다.
허스트가 그의 정부를 위해 지은 집에는 110개의 방, 55개의 욕실, 32명의하인이 있었다. 그는 예술품에만 매년 백만불을 썼는데, 개인 용돈으로 매년 1천 5백만 불을 썼다.
이밖에도 현시 소비의 전형은 얼마든지 있다. 제이 굴드로부터 도날드 트럼프까지, 뉴 포트에서 팜 스프링스까지, 자가용 기차에서 자가용 비행기까지, 롤스로이스에서 포쉐까지, 악덕 자본가에서 산업가까지, 산업가에서 다국적기업의 회장에 이르기까지 전형은 바뀌었지만 동일한 내용이 되풀이된다. 비판가가 욕하든지 말든지 현시소비는 돈이 있는 곳에서는 결코 그치지 않는다. 미국에 있어서 돈의 역사는 현시의 역사이다. 동일한 내용이 되풀이된다는 사실은 역사를 더 거슬러 올라가도 마찬가지이다. 형태만 달리할 뿐이지 부유층이 돈을 가지고 뽐내는 것과 야만사회에서 전사가 약탈품을 가지고 뽐내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인간에게는 언제 어디에서나 형식만 달리했을 뿐 자신의 우월성을 드러내고 그에 따른 찬사와 존경을 받고 싶어 하는 속성이 있는데, 이 점에서 반더빌트나 휘트니는 파푸아족 추장이나 안나마스족 우장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반더빌트가나 휘트니가의 매우 복잡한 의식이나 그 부인들이 온몸을 고통스럽게 졸라 매는 콜셋은 야만인들이 성잔치에 엄청난 낭비를 하거나 몸치장을 위해자상행위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심지어 부유층의 젊은이가 지팡이를 손에 들고 다니는 것과 야만족의 추장이 손에 지팡이를 든 것은 모두 그들이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과시하는 점에서 같다고 말한 사람은 베블렌이다.
그러나 돈의 에피소드는 이것이 모두가 아니다. 이 같은 에피소드는 차라리 파한적인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돈의 속성은 생산적인 것이 아니고 파괴적인 것이다. 야만인에게서 볼 수 있는 포트라취(potlach) 의식과도 같다.
외국원수가 우리나라를 방문할 때 21발의 예포를 쏘는 행위나 야만인의나라에서 초대된 이웃 추장을 즐겁게 하느라고 야만사회에서 값이 비싼 도자기를 쌓아 놓고 깨뜨리는 파괴행위는 똑같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포트라취 행위는 현대국가에서도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그러나 그 정도는 줄어 가고 있으며, 경제가 발전한 정도에 따라서 그 정도는 더 줄어 가는 것을 본다.
돈의 관리
이 같은 역사적인 과정을 거쳐서 현대국가는 돈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에 지혜를 모은다. 생산적인 곳에 돈을 적절히 배분하는 방법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관리통화제도 하에서 이와 같은 지식은 매우 소중한 것이다. 옛날에는 이 같은 방면에 지식이 전혀 없어서 국가가 망하기도 하였다. 저 위대한 로마제국도 화폐를 관리할 줄 아는 현자가 없어서 망한 것이다. 구약시대에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 열 명이 없어서 하느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한 것과 무엇이 다르랴. 현대국가는 의인 열 명이 필요하고, 또 화폐를 관리할 줄 아는 현인 열 명이 필요하다.
화폐의 역사를 볼 때 화폐는 가치척도와 교환수단으로서는 그 역할을 비교적 잘 수행해 왔다. 그러나 가치저장 수단으로서는 때에 따라 그 역할이 실패하였다. 물가가 불안정할 때 화폐의 구매력은 동요한다. 근년에 가격은 오르기만 하고 화폐의 구매력은 사간과 함께 떨어진다. 돈의 가치는 늘어나지 않고 줄어들기만 한다. 가치의 저장수단으로서 화폐의 자격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정도는 다르지만 세계 도처에서 성행하고 있다. 사람들은 물가 상승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화폐를 더 이상 가치의 저장수단으로 보지 않는다. 대신 그 들은주식, 보험, 증권 등에 투자한다. 이 행위는 교환수단으로서 화폐의 역할에심각한 영향을 준다.
화폐가 가치저장수단으로서 실패하면 적게는 한 소비자의 저축에 영향을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크게는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다. 역사는 그 같은 운명을 가르친다. 멀리는 로마, 가까이는 1차 대전 후 바이마르 공화국과 2차 대전 후 중국 국민당이 패망한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는 화폐가 가치저장수단으로서 그 기능을 상실하였기 때문이다. 칠레의 아옌데 정권이 붕괴된 것도 화폐가치가 너무 떨어졌기 때문이다. 화폐가 가치저장수단으로서 그 기능이 정지되면 교환수단으로서도 그 소임을 다 하지 못하는 것을 역사에서 본다. 로마가 망한 후의 중세 유럽과 바이마르공화국 후의 독일이 다시 물물교환경제부터 시작하였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화폐의 역사는 화폐량이 너무 적으면 경제가 침체하고, 너무 많으면 인플레이션으로 인하여 극단적으로는 위기까지 초래한다는 것을 수없이 되풀이 강조하고 있다.
이 같은 경험을 통하여 사람들은 16세기부터 화폐와 물가 사이의 관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 관계에 대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은 거의 모두가 20세기에 알려진 것이다. 긴 화폐의 역사를 통하여 인간을 자주 괴롭혔던 문제와 이 문제에 대한 지적 도전은 하나의 체계 있는 이론으로 발전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화폐금융이론이다.
화폐금융론의 초기 내용은 화폐와 물가 사이의 관계였다. 이 내용은 시간이 지나면서 화폐와 이자율, 화폐와 소득의 관계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화폐금융이론은 본질적으로 화폐와 물가의 관계를 주제로 하는 가격론에 속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이들 관계에 대해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견해 차이는 근본적으로 경제현상을 바라보는 시야의 차이에서 비롯한다. 어떤 경제학자는 경제의 기본 속성은 불안정한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 우리는 화폐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특히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인의 화폐관은 확실한 것이었다. 화폐제도가 안정적이면 경제도 안정적이다. 자유방임주의 철학은 그 바탕을 화폐제도의 안정성에 두고 있다. 이 화폐제도는 신뢰에 기초를 둔다.
돈과 자유
그런데 경제의 기본속성이 불안정하다고 보는 사람들은 신뢰를 당연한 것으로 보지 않으며, 신뢰가 얼마나 연약한 식물인가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 연약한 식물이 계속 생명을 유지하도록 인위적인 간섭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신뢰의 연약성은 어디에서 유래하는가.
화폐는 노동의 전문화에서 생겼고, 거꾸로 노동의 전문화를 심화시켰다. 화폐가 없는 상태에서 노동의 전문화는 한 개인의 경제생활을 다른 개인에게 의존하도록 만들었다. 고대에 각 개인이 특별한 기술에 숙달되면서 자신이필요한 물건보다는 자신의 전문화된 물건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모든 시간을 하나의 기술에 바치면서 개인은 독립성을 잃었다. 도공이 도기를 자신이 필요한 수량 이상으로 만들면 그는 자신과 가족들에게 필요한 다른 물건을 만들지 못한다. 그는 자신이 필요한 다른 물건을 얻기 위하여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여야 한다. 이 의존은 많은 경우에 평등하지 못하여 자유를 잃게 되었다.
가발을 만드는 사람은 쌀을 생산하는 사람과 대등하지 못할 것이다. 흉년에 그가 굶어죽지 않으려면 평소에 농민에게 허리를 굽혀야 한다. 농민이 물을 관리하는 사람에게 평등함을 주장하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화폐의 유통이 없었던 장원경제에서도 영주와 기사는 방어의 일을 맡았고, 무기소지를 금지 당한 평민은 일상업에 종사하였다. 이들은 더 이상 독립적이 아니고 그만큼 자유를 잃었다.
화폐의 사용은 노동의 전문화를 심화시키면서 개인의 자유를 회복시켜 주었다. 개인은 여전히 다른 사람에게 전보다 더 의존하여야 하지만 그 의존은 화폐로 인하여 평등한 것이 되어 자유를 잃지 않아도 되었다. 오히려 많은 경우에 화폐는 개인의 자유를 신장시킨다. 섬머세트 모옴은, 노벨상은 타지 못하였으나 돈은 많이 벌어 자유롭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돈이 자유를 신장시킬 수 있는 것은 화폐가 모든 상품과 대등한 보편상품(universal commodity)이기 때문이다. 화폐의 올바른 관리가 중요한 더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화폐가 개인의 자유를 신장하는 최대의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모든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제도는 장점과 단점을 아울러 갖고 있다. 화폐제도라고 예외는 아니다. 화폐제도는 개인의 자유를 회복시키고 보장하지만 때에 따라 위협도 하였다. 지금은 화폐질서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현대국가는 화폐량을 조절하고 규제하고 다스리는 정돈된 제도를 갖고 있다. 사람들은 각종의 화폐 객체인 화폐, 주식, 채권 등에 대하여 익숙하다.
그러나 화폐의 역사를 보면 새로운 화폐 객체와 새로운 경제제도는 언제나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최초의 금화와 은화의 출현, 최초의 지폐의 등장, 최초의 환어음의 소개는 그것이 정착할 때까지 오랫동안 사람들에게서 의혹의 눈총을 받았다. 새로운 화폐제도의 출현은 새로운 파탄과 퇴보의 씨를 잉태하지 않을까 염려스러웠다. 나아가 화폐제도의 성쇠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닌가 불안하기도 하였다. 이 모든 의혹, 염려, 불안은 불신이다. 이 불신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화폐질서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역사적 교훈에서 나온다. 역사의 여러 시점에서 수많은 사회는 화폐경제가 지닌 단점을 인식하는데 실패하였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의 항구 피라우스가 지중해 세계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것은 주로 화폐제도의 혜택을 입었기 때문이다. 아테네인들은 그들의 긴 역사를 통하여 화폐단위와 무게를 변경시키지 않았다. 이 같은 화폐제도는 역사상 보편적인 현상이라기보다는 예외에 속한다.
현대인들은 삼백년 전 그들의 조상들과는 달리 지폐나 환어음의 사용에 대하여 의혹을 갖지 않는다. 그러나 현대인들도 화폐적 현상에 대하여는 역시 불안해한다. 그 현상으로 해를 입을까, 손실을 볼까 염려스럽다. 나아가 그 현상으로 자신의 경제적 자유가 제한될까 걱정스럽다. 화폐는 신뢰의 상징이다. 신뢰는 더 이상의 정확한 정보가 결핍되었을 때 뛰어넘어야 할 차원이다. 신뢰냐, 불신이냐는 개인, 단체, 정부의 특성에 대한 개인의 평가에 따른다. 이 평가는 그가 얼마나 자유스러우냐에 달려 있다. 신뢰의 연약함은 개인의 자유의 연약함에서 비롯한다. 20세기 초 유럽이 화폐가 와해되었던 경험은 케인즈(J.M.Keynes)와 동시대의 빅토리아인들에게는 충격이었다. 케인즈는 화폐정책의 제일 목표가 화폐적 불신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케인즈에 의하면, 화폐가치의 변화는 사회의 모든 단체와 계층에 불평등한 영향을 남긴다. 케인즈는 화폐가치의 하락이 가져오는 정신적 긴장과 증오를 우려하였다. 화폐가치의 하락의 결과 기업가가 혜택을 받는다면 그것은 치욕이다. 이것은 소비자에게는 결과로 보이지 않고 원인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기업가에 대한 신뢰는 손상된다. 또한 한 계층의 혜택은 다른 계층의 희생이 될 수 있다. 이것은 사회의 정신적 긴장을 촉발시킬 수 있다. 케인즈는 이와 같은 일을 내버려 두어서는 안된다고 믿었다. 그는 정부의 간섭을 옹호하였다. 그러나 정부는 누구인가. 그리고 간섭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부는 화폐현상의 처방에 대하여 정확한 지식을 갖고 있는가.
사이먼스(H.C.Simons)를 비롯한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이 같은 물음에 대하여 회의적이다. 그들은 정부의 화폐정책에 그 능력 이상으로 역할이 부여되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하고 있다. 사실 사이먼스가 케인즈의 위대한 저서 "일반이론"을 읽고 맹렬히 비판한 내용을 보면 화폐질서에 대한 정부 간섭이 개인의 자유를얼마나 위협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는 자유 화폐질서를 옹호한다. 자유화폐질서는 정부나 정치적 이해단체에 의한 인위적이고 자의적인 간섭이 배제된 법질서이다. 이들의 정부관에 의하면, 정부는 "좋은 의도로 시작하여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어서(the road to the hell is paved with a good will)" 개인의 자유를 구속할 수 있고, 나쁜 의도라면 말할 것도 없이 개인의 자유를 구속한다. 화폐로 인하여 신장된 자유가 정부의 간섭으로 억압될 때 이 같은 화폐제도는 신뢰 이전의 문제가 된다. 그렇다고 아무도 법에 호소하는 사람은 없다.
여러분은 길에서 자동차 접촉사고를 경험했을 것이다. 경미한 사고를 놓고 소액의 금전적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길에서 다투고 법에 호소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다투는 그 순간에도 정부의 화폐량 증가조치로 여러분의 은행예금의 실질가치가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금 규모가 클수록 떨어지는 금액도 크다. 접촉사고의 손해배상액과 비교도 안 되는 금액이다. 그러나 아무도 정부를 상대로 법에 호소한 사람은 없다. 이 어찌 아이러니가 아닌가.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화폐경제의 기본속성이 안정적이라고 믿는다. 경제란 인위적인 간섭이 없을 때 가장 안정적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아담 스미스 이래 자유방임주의의 기본 철학이다. 지난 2세기 동안 경제학자들을 감탄하게 하였던 단일주제는 상품거래에 있어서 수많은 사람들의 개별적인 결정들이 전체적으로 놀랍게 통일된다는 것이었다. 이 감탄은 경제란 스스로 안정을 추구하는 힘이 있다는 믿음으로 바뀌었고, 이에 근거하여 인위적인 간섭을 배제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에 의하면 과거의 화폐제도의 부침은 그것이 본질적으로 불안정해서라기보다는 정부의 관리 실패 때문이라고 보고한다. 신뢰는 연약한 식물이지만, 그 자신 안정적인 생명력을 갖고 있다. 이 식물에 대한 인위적이고 자의적인 보호는 오히려 악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 연약한 자유는 정부의 권력남용 하에서 가장 위협받는다. 자유가 유약하기 때문에 정부의 권력을 분산하듯이, 신뢰가 연약하다는 사실 때문에 정부의 간섭을 배제한다.
모든 경험, 이론, 논쟁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견해 차이는 아직 좁혀지지 않고 있고, 화폐현상에 대한 처방도 통일되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상태에서 어떤 사람은 좌절을 느낄지 모르지만 이것이야말로 경제현실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 아닌가. 아직도 우리는 열 명의 현자가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