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어매거진/넬/피아/디아블로 초기 인디씬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할 만한 강한 인상을 남겼던 밴드들이다.
최근 서태지 컴퍼니가 인디밴드의 발굴/육성을 모토로 런칭한 레이블 괴수인디진에서 활동 재개를 시작,준비하고 있는 위의 네 밴드들이 한자리에 모인 03 괴수인디진 레이블 파티 -The Judgement day-는 이들의 새로운 음악과, 그에 상응하는 팬들의 열기가 뜨겁게 어우러진, 작은 축제라는 표현을 써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강한 여운을 남긴 공연이었다.
첫번째 등장한 밴드는 코어매거진, 지난번 rize내한공연에 게스트로 등장, 오랜만에 모습을 선보였던 코어매거진은 이번 공연에서 지난번과 크게 다르지 않은 무대를 선보였다. 이미 헤비한 리프로 정평이 나있으며 서태지 밴드에서 베이스를 맡고 있는 상욱의 기타와 여성드러머라는 점에서 음악외적으로도 많은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는 Tay의 드러밍은 공연 초반 분위기를 한껏 달아오르게 했다.
아직 앨범 작업 중 이라는 코어매거진의 신곡들은 여전히 헤비한 기타리프와 간결한 보컬 스타일을 유지한 가운데 군데군데 대중성을 염두에 둔 듯 보이는 훅들이 코어매거진의 음악스타일이 다소 변화 할 것임을 암시하는 듯 보였다. <넌 pig>, ,, <에너지> , 등을 연주했으며, 특히 괴수인디진 웹사이트에서 프로모션 스팟을 통해 일정 부분 들어볼 수 있는 은 빠른 템포의 구성이 라이브에서 더욱 힘을 발휘 하는 듯 했다. 음향과 조명이 전체적으로 다소 어수선했던 공연의 첫 무대를 코어매거진은 훌륭하게 열어 주었다.
두번째 밴드 넬은 괴수인디진을 통해 가장 먼저 데뷔한 밴드인 만큼, 상당히 넓은 팬층을 확보한 듯 보였다. 이미 라디오나 케이블 매체를 통해 심심찮게 접할 수 있는 stay는 넬이 갖고 있는 밴드로써 내재된 유니크한 매력과 메이저 뮤지션이 갖춰야 할 파퓰러한 성향을 겸비한 트랙으로 넬의 메이저 데뷔에 가장 혁혁한 공을 세운 듯 보인다.
약간 불안했던 지난 단독 공연과는 달리 이번 공연은 전체적으로 밴드의 기량을 십분 발휘한 무대였다. 앨범의 트랙리스트와 똑 같은 순서로 진행된 <유령의 노래>,<고양이>,의 연주는 넬의 팬들에게 무엇보다도 큰 즐거움을 준 듯 싶었으며 보컬 김종완의 키보드 연주와 함께 연주된 muse의 는 넬의 또 다른 감성을 한껏 살린 커버로 를 모르고 있던 팬들에게도 강한 인상을 남겼을 듯하다.
이미 radiohead와 muse가 넬의 이름과 함께 거론된지도 꽤 된 상황에서 이런 커버의 의미는 자신들이 좋아했던 밴드들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랄까, 하지만 곡을 소화함에 있어서는 약간 아쉬운 면이 였보였던 커버였다.
2집 수록곡 과 시적인 가사가 두드러지는 <인어의 별>을 연이어 연주하면서 들뜬 공연장의 분위기는 를 통해 선보인 넬 초기의 생경함으로 달아올랐고. 후반부 폭발적인 보컬라인이 매력적으로 편곡된 <믿어선 안될 말>로 넬은 무대를 정점에 올려놓았다.
강하고, 라우드한 음악도 락이지만 자신들의 음악도 락이라고 말하는 넬은 이미 메인스트림 뮤지션으로써, 또 하나의 밴드로써 완전히 자리매김한 듯 보였다.
15분간 인터미션이 진행된 후 등장한 밴드는 바로 공연 전날 두번째 앨범을 발매한 피아. 피아의 상장인 원숭이 복장을 한 4명이 등장 어설픈 춤과 연주를 무대에서 선보이기 시작했다. 사뭇 엉뚱해져가는 분위기에서 갑작스레 조명을 밝게 비춘 F. X부스에 등장한 심지가 원숭이들을 내쫓고 피아의 포스터를 강한 포즈와 함께 들어올림으로써 공연의 시작을 알렸다.
강렬한 음악만큼이나 시각적인 면들 또한 상당한 매력을 발산했던 피아였기에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데 있어 이런 퍼포먼스는 여느 타 밴드에 비해 상당히 자연스럽게 다가 온 듯 하다. 1집 앨범 발매 이후로 근 2년만에 팬들에게 다시 돌아온 피아는 옛모습과 새로운 모습들을 섞어 놓은 무대를 선보였다.
무대를 장악하는 그루브함과 폭발적인 파괴력으로 어우러진 순간 순간들이 옛모습에 해당한다면, 스크리밍과 그로울링에서 싱잉에 좀 더 비중을 두게 된 듯한 옥요한의 보컬과 조금은 덜 헤비하지만 짙어진 느낌의 기타, dj의 비중을 뛰어넘는 F.X 파트의 감각적인 스크래칭과 이펙트들을 새로운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앨범 발매 이후로 갖는 첫 라이브인 만큼 <소용돌이>, , , ,, 등 대부분 새 앨범의 수록 곡들로 무대를 채웠는데, 특히 같은 경우는 기존 팬들 같은 경우 피아의 음악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멜로디 중심의 새로운 음악을 들려주었다.
지나치게 조명과 카메라 앵글이(무대 양쪽으로 스크린을 설치했다) 보컬인 옥요한에만 집중된 점은 다소 아쉬웠는데, 공연 전체적으로 밴드의 보컬에만 초점을 맞췄던 조명과 카메라 앵글은 차후 공연에서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자신들의 새로움에 대해 긍정적인 의견을 피력해달라는 당부의 멘트와 함께 낯설지만 부족하지는 않았던, 새로운 음악들에 대해 피아의 기존 팬들은 훌쩍 달라진 메이저 뮤지션을 대하는 당혹감을 느꼈을까, 아니면 새로운 피아를 여전히 환영했을까.
마이클 잭슨의 를 코어사운드로 커버한 뒤 1집 수록곡 <원숭이>를 연주한 피아의 무대를 본 팬이라면 위와 같은 질문에 고민하지 않아도 될듯하다. 마지막 곡을 통해 자신들은 전혀 변하지 않았고, 새 앨범의 음악적인 선회는 밴드의 선택, 즉 세상 누구에게나 일어날 법한 내면적인 변화 이상의 무거운 짐을 진 것이 아니다 라는 확신에 찬 피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리라는 생각 때문이다.
말하자면, 팬들이 가장 염려하는, 메이저 레이블에 안착한 뒤 서태지라는 네임 밸류로 인한 밴드의 변질을 염려할 필요는 없었다는 뜻이다. 넬에 비해서는 다소 마이너 장르인 코어를 앞세운 피아가 어떻게 대중성과 자신들의 음악을 조화시킬는지, 앞으로의 활동이 기대되는 무대였다.
마지막 밴드는 국내 파워 메틀씬의 지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국내 씬에서 큰 의미를 차지 하고 있는 밴드 디아블로의 무대였다. 네 밴드의 공연 중 가장 폭발적이고 강력한 무대를 선보였던 디아블로의 공연은 "왜 디아블로인가"를 여실히 증명해 준 무대였다.
"당신들은 파티에 즐기러 온 것이다. 마음껏 즐겨라" 라는 멘트 하에 펼쳐진 더 이상 헤비할 수는 없었던 기타와 드럼, 베이스와 보컬 네 파트의 연륜이 묻어나는 완벽한 조화는 관객들을 절로 슬램에 몰입시켰고, 저절로 서핑을 타게 만들어 자신들의 무대를 밴드 스스로 연출해내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그 절대적인 헤비함앞에 어떠한 표현도 초라해 질 수 밖에 없었던 디아블로의 무대는 , , 등 구 곡과 신곡의 조합으로 이뤄졌다. 특히 신곡 에서는 객원 랩퍼를 참가 시키는 등 변화하는 디아블로의 음악을 엿볼 수 있기도 했는데, 타 밴드의 경우 랩퍼의 참여에 대해 말이 많았겠지만 디아블로는 랩핑에게 자신들의 음악을 더욱 발전시키기 위한 부가적인 장치 이상의 의미를 허락하지 않은 듯 보였다. 디아블로는 의심할 수 없는 메틀 밴드 였고. 그들의 음악인 파워 메틀에서 한발치도 벗어나지 않은 순수함을 팬들 앞에 자랑스레 꺼내놓은 무대였다.
디아블로의 <고래 사냥>이 연주되자, 괴수 인디진 소속 모든 밴드들이 한 무대에 서는 멋진 장면이 연출 되었다. 아마 이번 레이블 파티의 하이라이트는 <고래사냥>에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물론 연주 하나하나 혹은 감상의 차원에서는 특별한 의미가 없었지만 말도 많고 걱정도 많았던 괴수인디진이 이제 진정한 레이블로 자리잡았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한 피날레였다. 네 밴드가 함께 어우러진 디아블로의 무대를 마지막으로 공연은 막을 내렸다.
코어매거진/넬/피아/디아블로의 이름은 소속 레이블인 괴수인디진으로 인해, 서태지 팬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고 있기도 하다. (서태지라는 이름만으로 조건반사적인 불편함을 괴수인디진에게 드러냈던 팬들의 비판을 동시에 받고 있기도 하지만)
그러나 넬에 대한 프로모션과 괴수인디진 라이브 파티를 통해 메이저 레이블로써의 기능적인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낸 괴수인디진은 그들이 앞으로 행할 여러 가지 계획들을 궁금하게 만든다. 레이블의 역할과 한계를 명확히 알고 있고, 또 그것을 실천해 낼 수 있는 현실적인 여력을 갖고 있다면 그것이 단지 메이저라는 이유로 부정되어야만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무엇보다도 우리는 서태지라는 이름 하에, 우리가 좋아했고, 또 좋아하는 밴드들이 희석됨을 염려해야 할 것 이다. 서태지라는 천재적인 비즈니스 마인드를 가진 뮤지션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서태지는 태초부터 확실한 메이저 뮤지션의 길을 걸어왔고,( "서태지와 아이들" 이전의 베이시스트 서태지에 대한 이야기는 빼놓기로 하자.
지금 서태지의 팬 중에서 그때부터 서태지를 좋아했다고 자부 할 수 있는 팬들이 몇이나 될 것인가?) 괴수인디진의 밴드들은 험난한 인디즈를 거쳐 지금의 안정적인 환경에 놓이게 되었다. 소위 서태지가 "키워서" 뜬 것이 아니라 밴드들은 처음 음악을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자신들의 힘으로 싸워 왔음을 알아 주고 인정해야 하는 건 레이블 매니저도 아니고 익스큐티브 프로듀서도 아닌, 팬들의 몫이다.
괴수인디진의 밴드들 앞에서 서태지라는 이름 세 글자로 그들의 모든 것을 (그것이 긍정이든 부정이든) 판단하려는 우를 범하지는 말자. 물론 그러기에 앞서 소속 밴드들은 얼마나 서태지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지, 괴수인디진은 레이블로써의 범위에 대해 올바르게 규정 짓고 있는가에 대한 대답을 먼저 들을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국내 록씬의 첫 메이저 실험작인 괴수인디진의 활성화가 전체 인디씬에 대한 새로운 붐으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제 모든 준비를 갖춘 밴드들은 더 넓은 세상을 기다리고 있고, 그 문을 열어줄 첫번째 역할을 괴수인디진이 훌륭하게 수행해 줄 것이라는 (바램에 훨씬 가까울) 기대를 조심스레 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