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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기
인생을 통찰하고 정서의 감미로움을 곱씹게 하며 지성이 섬광처럼 번뜩이는 황태영의 수필 작품 속엔 수필 문학의 특질인 교시적, 사유, 관조가 한껏 내재돼 독자로 하여금 무릎을 치게 하는 힘을 얻게 한다. 이는 황태영의 자연관과 인생관의 긴밀한 조우에 의해서일게다. 무엇보다 황태영의 사유는 자연에 대한 관조가 주류를 이룬다. 작가만의 자연관을 기조로 한 인간 문제에 대한 직핍(直逼) 때문 이다. 이는 황태영 작가의 자연에 대한 관조로써 인생의 깊은 통찰로 자연을 있는 그대로의 인식이 아닌, 인간 문제와 자연에 대한 동일시에 의해서다.
이러한 황태영의 인간 존재 문제를 탐구하고 조명해 보고자 하는 존재 규명의 근거로써 이 수필집의 제호에서 황태영이 간구하는 봄이 인간 문제에 연접(連接)됨을 인식할 수 있다. 사계 중 봄은 계절의 여왕이라고 일컫지만, 아무리 봄철이 따습고 생명 도약의 계절이라 하여도 사람 가슴만큼 온기 있고, 사람 마음만큼 아름답고 희망적이진 못할 것이다. 자연과 인문학의 통합에 의한 작가의 남다른 통섭이 독자로 하여금 미적 감수성에 젖어들게 한다. 참신한 주제와 재재의 부림이 이 수필집에 수록된 수필의 미감을 더하는 요인으로 작용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황태영은 그의 저서 『나의 봄은 당신 입니다』 (2011.보림S&P) 발간사에서 봄을 일러 “격렬한 전투가 아니라 조용히 자신을 드러내는 계절”이라고 예찬했다. 이는 인간의 이기심, 온갖 오욕칠정으로 말미암아 생존경쟁을 위하여 나아닌 타인을 해하기보다는 상대방을 배려하고 사랑하라는 암묵적인 언어가 내재된 언술이다. ‘산하가 푸르러지고 울긋불긋 원색을 드러내는 자유를 만끽케 하는 것도 봄’이라는 자연 현상을 작가는, ‘상대를 흉보거나 헐뜯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감싸주며 조화와 균형으로 제자리를 지켜간다’로 표현하였다. 이는 자연에서 삶의 지향점을 찾자는 황태영 작가의 남다른 사유의 포착이라고 하겠다.
이런 작가의 자연관, 인생관은 평소 황태영의 작가로서의 면모를 대략적으로 엿볼 수 있어 “문文은 곧 인人이다.”라는 말이 실감난다. 수필 문학의 문장은 곧 인격의 표현이기에 고매한 인격에서 깊고 심오한 글이 나오게 마련이다. 이는 황태영 작가의 평소 삶의 자세다.
황태영 작가는 1961년 영주시 풍기 읍서 태어나 대구 고등학교 졸업, 건국대학교 대학원 법학을 전공, 금융인이자, 대한 북 레터 협회 회장으로 재직 하였으며 『국보 문학』 수필로 등단, 독서신문 필진 등의 왕성한 문학 활동을 해오다가 2017년 투병중인 암으로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황태영 글의 작품 면면을 살펴보면 봄의 훈기가 행간마다 배여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가 생전에 고구했던 수필 미학은 인간성 회복과 따뜻한 정이어서 일 것이다. 평론가 한상렬이 그의 저서 《현대수필 작가론p100》 언급했듯, “아무리 진리를 말하고 미려한 문체로 좋은 글을 쓰는 작가라 할지라도, 그 속에 ‘사랑’이 들어있지 아니하면, 울리는 종과 같을 것이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감싸 안으며 위로한다. 그렇기에 모든 예술의 뿌리는 바로 이 인간 사랑에서부터 샘솟을 것은 뻔한 일이다.”라는 말은 황태영의 작가정신과 일맥상통하는 언명이라 하겠다.
황태영의 작품을 통괄한다면 인간성 회복이 이 작품집의 원심력이다. 날로 야기되는 흉악범죄, 사회의 부조리가 증가할수록 황태영의 창작의 원심력은 현대인들의 삶의 독본으로 작용, 그의 작품 편 편을 통하여 현대인들은 마음의 세진도 한껏 헹구어지는 청량감을 느낄 것이다.
2. 펼치기
황태영 작가의 봄은 기다림의 미학이자 개인적인 희망인지도 모른다. 그의 병 발병이 언제부터인지는 모르나 자신의 병마를 예견이라도 했을까? 평자로서 객관화 시키는 일에 주력할 수 없는 것은 개인적인 친분이어서인지도 모른다. 독서신문 필진으로 오랜 기간을 함께 지면으로 만나서인지도 모른다.
황태영은 수필 경향이 서정적인 게 주류이나 구성 방식을 크게 ‘일반화(generalization)’와 ‘예시( illus-tration)’의 두 방식이 사용 되고 있다. 황태영의 작품은 이 두 방식을 직조로 하여 조화를 이루고 있어 수필 문학의 참다운 미감 적 묘미를 지녔다고 하겠다.
사람은 눈물로 꽃은 향기로 사랑을 부른다. 그리움에 잠을 이루지 못해도 정신은 맑고 강건해진다. 사랑은 기다림이다. 사랑은 희망이다. 의학적으로 2-3시간을 넘기기 어려운 중환자가 힘겹게 3-4일을 버티며 보고싶은 사람을 기다린 불가사의도 있다.벌과 나비를 기다리는 꽃은 쉽게 시들지 않는다.- < 봄을 기다리는 나무는 시들지 않는다.>에서
작품 속 화자는 사랑이라는 말이 난무 하는 현대인에게 이 글로 경종을 울리고 있다. 진정한 사랑의 고갈뿐만 아니라 조급증에도 시달리는 현대인들이다. 이러한 사회적 부조리로 목적을 향하여 단계별로 발걸음을 내딛기 보다는 걸핏하면 한탕주의에 길들여지고 있다. 이에 화자의 시선은 기다림의 인내로 치 닿는다. ‘의학적으로 2-3시간을 넘기기 어려운 중환자가 힘겹게 3-4일을 버티며 보고 싶은 사람을 기다린 불가사의도 있다.’에서는 간절한 기다림의 강한 의지가 불러오는 존재 사태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어 하이데거의 존재 사태를 의미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존재사태’는 대상이 존재 하는 이유, 즉 ‘기다림에 의한 중환자의 불가사의한 의지’의 당위성을 화자는 이 내용에서 주장하고 있다고 하겠다.
사람은 저마다 타고난 개성과 능력이 있다. 이로 말미암아 성향이 제각각이다. 이런 타인의 장, 단점, 능력을 인정할 때 비로소 세상은 조화로움을 유지한다. 타인이 자신과 다르다 하여 시기, 비하하는 것을 경계한 그의 글, < 학다리 길다고 자르지 말고 오리다리 짧다고 당기지 마라>는 교훈적인 요소가 전부여서 수필의 효용성을 제대로 갖춘 작품이라 하겠다.
판사는 판결로 말하고 화가는 그림으로 말한다.판사는 화가의 그림이 비싸다고 질투할 필요가 없다. 화가도 판사가 지위가 높아보인다고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두루미를 보고 긴부리는 돌연변이라고 우겨서도 여우를 보고 부리가 없는 열등 돌물이라고 놀려서는 아니 된다. 세상에 빛나지 않는 별은 없다. 의미 없이 피어난 꽃도 없다. 서로의 다양성을 존중하며 모두를 스승으로 삼을 때 경험의 폭과 격이 높아진다. 지식이 많은 사람보다는 포용력이 큰 사람이 더 믿음직 하다 -< 학다리 길다고 자르지 말고 오리다리 짧다고 당기지 마라>에서
판사, 화가, 두루미, 여우를 예시하며 작품 속 대상의 본질을 비교와 대조, 대칭적 수법으로 두 동물의 속성과 두 개의 직업에 관하여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남이 지닌 것을 부러워하기보다는 자신이 지닌 역량과 개성을 중시하여 그것을 발전시킬 때 생의 보람이 있다는 의미를 시사하는 내용이다.
삶을 산다는 것은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 있기에 현재 삶의 곤고함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황태영의 수필 <희망이 없는 사람은 있어도 희망이 없는 순간은 없다>에서 불확실한 미래에 살고 있는 우리네의 희망을 희구해 볼까 한다.
자살을 꿈꾸거나 실행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 중에는 돈이 많은 사람도 있고 빚투성이인 사람도 있다. 권력자도 있고 서민도 있다. 최고의 학력을 가진 자도 있고 초등학교 중퇴자도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돈, 권력, 학벌이 아니었다. 그들이 공히 갖지 못했던 것은 희망이었다. 스웨덴의 레나 마리아는 두 팔이 없고 한 쪽 다리가 짧은 중증 장애인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그녀는 오른 팔 하나로 운전, 성가대 지휘까지 하고 세계 장애인 수영 선수권 대회에서 금메달을 4개를 따기도 했다. 그녀가 발로 집필한 ‘발로 쓴 내 인생의 악보’는 9개국 언어로 출판 되어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 희망이 없는 사람은 있어도 희망이 없는 순간은 없다>에서
인간에게 가장 두려운 적은 절망인 것으로 살펴본다면 ‘희망’ 자체가 삶의 윤활유요, 촉진제일 것이다. 멀쩡한 육신으로 희망을 잃는다면 마음의 장애나 별반 다를 게 없다. 악조건 속에서도 희망이란 등불에 의지한다면 충분히 그 고통을 감내하고 극복할 수 있다는 그야말로 희망적인 글이어서 독자들에게 좋은 기운을 안겨주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이 글에 탑재된 요지는 희망인 까닭이다.
황태형의 수필의 지형은 높은 곳에서 낮은 데로 낮추는 자기 겸허에서 비롯된다. 그의 수필 < 누군가에게 다가가 봄이 되려면 내가 먼저 봄이 되어야 한다>의 경우만 하여도 그렇다.
당나라 때 상건은 유명한 시인인 조하의 시를 몹시 얻고 싶었다. 상건은 조하가 유람 올 영암사 벽에 자신의 시를 절반만 적어놓았다. 조하는 미완성의 시를 보고 나머지 절반을 채워 넣었다. 사람들은 보잘 것 없는 것을 주고 훌륭한 것을 얻었다고 하여 상건이 포전인옥抛塼引玉 , ‘벽돌을 버리고 옥을 얻었다’고 말하였다. 옥을 얻으려면 보잘 것 없더라도 내가 성심껏 손을 내밀어야 한다. -< 누군가에게 봄이 되려면 내가 먼저 봄이 되어야 한다>에서
이기심이 팽배하여 이타심이 고갈된 현 세태엔 썩 어울리는 내용은 아닐 것이다. 이즈막엔 선하게 사는 사람이 타인에게 이용당하고 손해 보는 세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흔히 당하는 보이스피싱만 하여도 그렇다. 상대방을 적으나마 의심만 하였어도 평생 모은 피 같은 돈을 졸지에 잃는 일은 없을 것이다. 타인의 마음을 내 마음처럼 여기다보니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이 아니던가.
조하의 시를 얻고 싶은 욕심에 산사의 벽에 미완성의 시를 적은 상건을 연민한 조하다. 상건의 미완된 시를 보충 한 조하에 대한 고사는 현대인들의 메마른 심성을 적시는 단비와 같다. 위 글은 짧지만 인생의 철학적 요소마저 다분하여 사색적 수필의 범주에 속하는 수필이라 하겠다.
3. 나가기
수필의 특질 상 작가가 지향하는 작품 세계는 다면, 다층적이라 하겠다. 작가 황태영이 창조한 수필들만 살펴봐도 자연을 관조하며 인간 문제의식에 천착 하였을 뿐만 아니라 삶의 정도(正道)가 무엇인지를 독자들에게 은연중 제시하는 게 그것이다. 그의 수필 < 곧은 나무가 먼저 베여지고 물맛 좋은 우물이 먼저 마르게 된다>에서 다시금 옷깃을 여미는 삶의 자세를 체득해 볼까 한다.
모두 지위가 높고 돈이 많고 1등 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참으로 행복한 삶을 살은 사람은 죽기 전 웃음의 총량이 가장 많았던 사람 일 것이다. 지위가 높아도 부패와 탈법으로 전전긍긍했던 사람, 재산이 많아도 늘 남들을 의심하고 피하려고만 했던 사람, 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불안해했던 사람들은 웃을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웃을 수 있다면 이미 세상의 가장 큰 재산을 가진 것이며 그 무엇도 부러워 할 필요가 없다. 곧은 나무가 먼저 베여지고 물맛 좋은 우물이 먼저 마르게 된다. 도둑을 잘 지키는 개는 잘 물고 잘 짖는 탓으로 도둑의 칼에 맞아죽게 되고 표범은 아름다운 무늬 때문에 사냥꾼의 표적이 된다. 잘남을 자랑할 것도 못남을 부끄러워 할 필요도 없다.-< 곧은 나무가 먼저 베여지고 물맛 좋은 우물이 먼저 마르게 된다>에서
겸양과 겸손은 훌륭한 인품의 표상이다. 높은 곳에 오를수록 발밑은 미끄럽기 마련이다. 위 인용문 결미를 살펴보면, ‘도둑을 잘 지키는 개는 잘 물고 잘 짖는 탓으로 도둑의 칼에 맞아죽게 되고 표범은 아름다운 무늬 때문에 사냥꾼의 표적이 된다. 잘남을 자랑할 것도 못남을 부끄러워 할 필요도 없다.’에서 황태영 작가의 인품이 제대로 드러나는 구절이라고 하겠다. 평소 그는 자신의 화려했던 전력이나 학벌 등을 자랑하지 않았다. 이 글을 평하기 위하여 비로소 인터넷을 뒤진 결과 그의 만만찮은 경력과 높은 학식을 갖춘 인물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전직이 금융인이었고 작고 전 까지는 인사동서 희여골이라는 식당을 운영하였으며 평자와는 독서신문 귀한 지면을 아래, 위로 차지하면서 함께 필진으로 이 십 여년 가까이 활동해 왔다. 무엇보다 그는 주위 사람들을 배려하고 그들의 아픔에 귀 기울이는 다정다감한 사람이었다. 갑자기 그가 세상을 등진 뒤, 그를 애도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장례를 지켜봤다는데서 평소 그의 됨됨이를 미뤄 짐작해 본다. 누구나 사람은 관 뚜껑을 덮어봐야 제대로 된 평가를 얻는다고 했던가.
홀연히 그가 떠난 뒤, 그의 분신과도 같은 작품만 인쇄체로 선명히 남아 그의 순수한 영혼의 울림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그는 갔지만 생전 그가 추구하던 따뜻한 인간애, 인간냄새 물씬 나는 세상 구현의 꿈은 우리 몫으로 아직도 남아 살면서 풀어야 할 큰 과제가 아닌가 한다.
* 참고 문헌
한상렬《현대수필 작가론》 (1998, 서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