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江陵 鶴山 金光坪) 이야기
3. 마을의 화전(花煎)놀이
진달래 화전(花煎) / 우리 마을 화전놀이(1962년)
※위 사진에서 왼쪽 뒷줄 장구를 메고 있는 분이 우리 고모, 여섯 번째가 우리 어머니.
1960년대 초, 나의 어린 시절을 보냈던 학산 금광평(金光坪) 마을은 연이은 흉년으로 살기도 어려웠고 인심도 흉흉했던 시기인데 봄에는 비가 맞춤하게 내려 시기를 놓치지 않고 씨앗을 넣을 수 있었다. 곡우(穀雨) 즈음, 진달래가 피어 앞뒤 동산이 울긋불긋해지면 마을의 연중행사인 곡우날(양력 4월 20일경) 화전(花煎)놀이를 가는 것이 마을의 연중행사였다.
우리 마을의 화전놀이는 매년 곡우(穀雨) 날이 되면 칠성암(현 法王寺) 아래쪽 큰골 입구인 보어구(堡口) 계곡으로 항상 갔다.
아침이 되면 이른 조반을 마친 어른들이 솥단지 등 무게가 나가는 도구들을 지게에 지고 먼저 출발하였고 여자들과 아이들은 자잘구레 화전놀이에 필요한 도구들을 챙겨서는 이고, 들고 나중에 출발한다. 남녀노소, 심지어 강아지까지 따라나서는 화전놀이 날은 마을이 온통 텅텅 비었다. 마을 사람 모두 모처럼 웃고 떠들며 나들이를 나서면 울긋불긋 차려입은 여인들로 마을 길은 온통 꽃길을 이루었는데 산에 핀 진달래와 어울려 장관을 이루곤 했다.
남자들은 도착하자마자 우선 솥을 걸고는 곡우(穀雨/樹液) 받을 준비를 한다.
골짜기 응달진 곳을 찾아 수액(樹液)을 받을 나무를 정하고는 나무 밑 부분을 괭이로 파는데 뿌리가 나오면 곁뿌리 하나를 자르고 흙을 씻어낸 다음 똑똑 떨어지는 수액을 받기 위해 병이나 주전자를 받쳐 놓았다. 수액은 고로쇠나무나 다래 덩굴이 많이 나온다고 했는데 이따금 자작나무나 느릅나무를 골라 수액을 받기도 했다.
한 시간 남짓 있다가 가보면 맑은 수액이 그득히 고이고는 했는데 나무에 따라 엷은 분홍색도 있고 푸르스름한 빛도 있다.
느릅나무 수액은 간(肝)에 좋다고 하고, 고로쇠나무 수액은 위(胃)에 좋다고 하였는데 어른들이 먼저 맛보신 다음 우리 차례가 되면 달짝지근하고 시원한 맛에 한 모금이라도 더 마시려고 다투곤 했다.
여자들은 한편으로는 쌀을 씻어 밥을 짓고, 한편에서는 알불(숯불)을 내어 솥뚜껑을 뒤집어 놓고 화전(花煎) 지질 준비를 하면 아이들은 참꽃(진달래)을 따 날랐다. 솥뚜껑이 달아오르면 기름을 두르고는 미리 준비한 찹쌀가루나 녹두가루 반죽한 것을 떼어 올려놓아 누른 다음 그 위에다 꽃잎을 얹어 지져내었다.
또 녹두전을 지지다가 속에 팥고물을 넣어 부꾸미를 지져 내놓기도 하고, 녹두가루에 참꽃 잎을 넣어 반죽하였다가 썰어서 녹두 참꽃 국수를 하기도 하였는데 어른들만 드리고 우리는 맛보기가 어려웠다.
부꾸미(煎餠)는 찹쌀가루, 밀가루, 수숫가루 등을 반죽하여 둥글넓적하게 빚은 다음 번철(燔鐵)에 지지는데 밤, 대추, 팥 등으로 속을 넣어 만들기도 하여 너무 맛있었던 옛날 시골 음식이다.
또 어른들은 바짓가랑이를 걷고 개울에 들어가 돌멩이를 들추며 가재를 잡기도 하였고, 맞춤한 다래 덩굴을 골라 송아지 코뚜레를 장만하기도 하였다. 우리 꼬맹이들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달음박질도 하고 진달래꽃을 한 아름씩이나 꺾어 자랑하거나 진달래 꽃잎을 따서 그냥 먹기도 하였고, 또 길바닥에 앉아 꼰지니(고누)를 놀기도 하였는데 너무 재미있는 날이었다. 아낙네들은 식사가 끝나면 가지고 간 장구를 치며 어울려 덩실덩실 춤을 추고 놀았는데 우리 고모는 장구를 잘 쳐서 항상 장구를 둘러메고 다니셨다.
이북(以北)에서 피난 나온 권씨는 마을 농악대 무동(舞童) 모자에 다는 꽃을 일구는 재주가 있었는데 사진기(카메라)도 가지고 있어 무척 신기하였다. 사람들이 늘어서면 사진기를 가슴팍에다 대고 네모난 구멍으로 내려다보며 사진을 찍었다.
나중, 요즘의 명함보다 작은 흑백사진을 집에서 직접 현상하여 내놓았는데 사진 밑에다 글씨까지 넣어 한 장에 얼마씩 받고 동네 사람들에게 팔았다. 젊은 아낙네들이나 처녀들은 앞다투어 사진을 찍고는 했는데 마을 사람들은 권씨의 여러 가지 재주에 놀라움을 나타내곤 하였다.
권씨는 40대 홀아비로 혼자 살았는데 농악대 무동(舞童)들 고깔에 매다는 꽃을 특히 잘 만들었다.
흰 미농지를 여러 겹 포개서 이리저리 접은 다음 끝부분을 철사로 묶고는 가위로 요리조리 오려서 살살 일구면 불두화(佛頭花) 모양의 커다랗고 소담스러운 꽃송이가 피어오르듯 생겨난다.
고깔 하나에 대여섯 개씩 달아야 하므로 상당히 많이 만들었는데 다 만든 후 색색의 물감을 풀어서 병에 담고 대롱을 끼워 꽃에다 댄 다음 입으로 불면 흰 꽃이 빨강, 노랑, 파랑, 연두 등 가지가지 색으로 다시 피어나고는 했다.
마을의 위쪽, 칠성산(七星山) 계곡의 물이 모이는 보어구(堡口) 주변이 매년 화전(花煎)놀이의 장소인데 산골짜기와 산등성이는 진달래꽃으로 온통 붉게 물들었고, 먼 데와 가까운 데서 들리는 뻐꾸기 울음소리와 이름 모를 산새들의 지저귐에 넋을 놓다 보면 하루가 아쉽게도 금방 지나가 버렸다.
어스름 산 그림자가 드리워질 즈음 은은한 칠성암 범종(梵鐘) 소리를 들으며 마을로 돌아왔다. 우리 마을은 비록 모두 가난에 쪼들리기는 했지만, 이웃 간의 정(情)만은 매우 두터웠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