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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인 것과 잠재적인 것(L’actuel et le virtuel)
들뢰즈, in Dialogues, Flammarion, 1995 pp. 179–185. [미발표 원고, 1996발표]
in “들뢰즈가 만든 철학사” (박정태, 이학사, 2007), 21장 pp. 518-525.
Deleuze, L’actuel et le virtuel, Dialogues, Flammarion, 1995 [유고, 1996발표]
Cette édition comporte un chapitre inédit de Gilles Deleuze: "L'actuel et le virtuel" (1995).
Dialogues: Gilles Deleuze and Claire Parnet, Contient aussi en appendice : "L'actuel et le virtuel" [appendix to second edition 1996, “L'Actuel et le virtuel” pp. 177–185.]
* 박정태 주에서는 미발표 두 원고 「내재성: 생명(L’Immanence: une vie‥…)」과 「현실적인 것과 잠재적인 것(L’actuel et le virtuel)」는 들뢰즈가 마지막 기획한 논제로서 “집단과 다양체”라는 글에 속한다고 한다. [le groupe, l’ensemble, le corps, la collectivité 중에서 일 것인데, l’ensemble 같은데, 그러면 집단과 다양체가 아니라 집합과 다양체로 해야 한다. 집합은 산술학의 개념이고 다양체는 기하학의 개념이다. 벩송과 들뢰즈는 유형의 산술학이 아니라 위상의 기하학을 바탕으로 전개한다. 이 원문을 찾을 수 없어서 추측컨대 집합(l’ensemble)일 것이다. (52VKH)]
의식의 잠재성과 신체의 현실성의 관계를 다양체 이론에 비추어서 쓰려고 한 것이리라. 그 다양체이론에서 여러 가까운 길 중에 하나가 의식화의 길이다. 하나의 길이 정해지면, 결정체화되고, 지각이라는 측면에서 개체화된다. 여러 길이 생겨 나기전에 잠재성은 특이성이며 길의 과정은 현실화이다. 그 길이외의 다른 길(유클리드 직선이든 오목 곡선상의 직선)은 가능성이 된다. 그런데 잠재성과 현실성 사이에서 비례관계로는 잠재성이 더 많다. 그리고 벩송처럼 지각은 추억(잠재성)가 투영되어 현실성에 덧붙여질 때이다.
잠재성과 현실성 사이에서 길(다양체에서 가까운 하나의 선)이 나는 과정에서 둘 사이의 한계(경계)가 불분명하더라도 둘 사이에는 차히가 있다. 잠재성은 의식의 차원이고 현실성은 신체를 통해서이다. 전자의 차원이 4차원 이상의 연속체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복잡계이라고 하지만(여러 요소의 관계들의 복잡으로 길을 설명하기 어렵지만 길이 있기는 있다는 의미에서) 신체라는 공간체의 차원이다. 현실화 과정에서, 지각에 추억이 밖으로 덧 씌어진다는 점에서, 지각과 추억 사이는 거울 효과이며 분신을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면에서 둘 사이의 분간불가능성이 있다. 할당은 다르더라도 분간의 불가능성을 말할 수 있다면 현재가 점이 아니라 지속하는 연속체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지속하는 연속체를 수학에는 연산자라고 할 것이다.
현재의 연속체는 집합으로서 유형학으로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체로서 위상학으로 다루어야 할 것이다. 자와 콤파스로 임의 각을 삼등분할 수 없다는 것은 현실태로 과정에서 의식의 차원은 결정화가 되지 않지만 특이성으로 삼등분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이 특이성은 개체화가 아니지만 현실화가 될 수 있는 잠재성이자 실재성이다. 그러면 신체와 더불어 개체화와 결정화가 이루어지고, 집합론에서 다룰 수 있는 유형화가 이루어진다면, 의식 상태에서 특이화는 대사건으로 비인칭적이지만, 과정 도는 선(길)을 따라 현실화되면 인격적이며 사건들을 형성하는 주체로 등장할 수 있다. (52VLC)
** 우리는 들뢰즈의 「내재성: 생명(L’Immanence: une vie‥…)」과 「현실적인 것과 잠재적인 것(L’actuel et le virtuel)」의 두 편과 더불어 기획한 「집합과 다양체(L’ensemble et la multilplicité)」에 관해서는 따로 다루어야 할 것 같다. 유형학과 위상학의 차히는 동일반복과 이질반복 만큼이나 차히일 것이다. 집합이 산술학에 기초한다면, 다양체는 기하학의 확장에서 도래할 것이다. 아마도 홈패인 공간 대 매끈한 공간, 폴리스 대 노마드, 잉여와 증여, 이기심과 이타심 등도 사고와 사유만큼이나 차히일 것이고, 나아가 자연과 토지를 대하는 태도도 다를 것이다. 허무주의, 회의주의, 세상사 고(苦), 인생무상을 극복하는데 두 가지 방향이 있다는 것과 같은 궤를 갈 것이다. 하나는 자연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종교이다. 종교가 사악하게된 것은, 저세상의 믿음이라는 착각은 그런대로 봐 줄 수 있지만, 동일성의 부활이라는 사기와 기만 때문이다. 거기다가 그런 종교적 해결에는 변증법이라는 이름으로 공포와 전쟁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무의 인정 또는 선전제가 자신이 착하다고 착각하고 타인에게 사악하게 대하며 폭력적인 것 같은 것이 변증법이다. 반면에 자연 즉 생명과 그것의 생성의 인정은 서툴지만 착하고 온화하며 관대하다. (52VLC)
*내용 중에서 ***
1.
철학은 다양체들(les multilplicités)에 대한 이론이다. 모든 다양체는 현실적인 요소와 잠재적인 요소들을 함축한다. 순수하게 현실적인 대상이란 없다. 현실적인 모든 것은 잠재적인 이미지들로 이루어진 안개로 둘러싸여 있다. (518)
- [다양체 대 집합론, 덩이론 대 요소론, 생명(체) 대 물체, 인격 대 인간, 직관주의 대 주지주의 등으로 대별되는 철학의 문제거리는 살다(vivre)라는 관점에 대한 견해 차이이다. 살다, 즉 누가, 왜, 어떻게, ‘어떤 경우에’라는 항들과 더불어 살다라는 견해를 보면, 전자의 입장은 공감과 공명이 내재해 있고 후자의 입장은 이용과 편리라는 관점이 들어있다. 플로티노스, 스피노자, 루소, 벩송, 들뢰즈 등은 사람의 생명(인격)의 본성(자연)에 대해 고민했다면 플라톤주의, 아리스토텔레스, 아퀴나스, 홉스, 로크, 칸트, 후설 등은 인간의 지위에 대해 해답을 찾고자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이같은 [시간상의] 짧음이 그것들[창조와 파괴]을 불확실성의 언리 또는 비결정성의 원리 아래 잡아두는 한에서 잠재적이라 부른다. (519)
(“잠재적인 것의 안개구름 한 가운데에는 그 보다 높은 질서의 잠재적인 것이 여전히 있다‥… 각각의 잠재적 입자는 자기 고유한 잠재적인 우주로 둘러싸여 있으며, 또 마찬가지의 일이 각각의 잠재적인 입자에 대해하여 무한히 행해진다‥…”) (519)
그리고 역동론의 드라마틱한 동일성(l’identité, 정체성) 덕분에, 지각은 입자처럼(comme particule) 있다. 현실적인 지각은 잠재적 이미지들의 성운[별구름]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이 이미지들은 점점 더 멀어지고 점점 더 넓어지는 움직이는, 또 형성되고 분해되는 회로들 위에 분배된다. 이것[이미지]들은 다른 질서들로 된 추억들이다. (519) [성운과 회로의 용어는 벩송이 자주 쓰는 용어이기도 하다. 벩송에서 멀어지고 넓어지는 방식은 회오리와 같다.]
추억들은 소위 말해서 잠재적 이미지들이며, 그것들의 속도 또는 그것들의 짧음(leur brièveté)은 여기서 무의식(inconscience)의 원리 아래에서 유지한다. (519-520) [프로이트에서처럼 무의식(l’inconscient)이라고 하지 않았다.]
잠재적 이미지들은 현실적 대상과 분리될 수 없고 거꾸로도 안된다. 잠재적 이미지들은 현실적인 것 위에서 재작동 한다. 이런 관점에서 잠재적인 이미지들이 각각의 경우에서 사유 가능한 시간의 최대치에 의거하여 결정된 어떤 한 연속체(un continuum), 어떤 한 공간체(un spatium)을 원들의 집합 또는 각각의 원 위에서 잰다. (520) [연속체와 공간은 다른 의미일 것이다. 하나는 사유에서 다른 하나는 신체와 더불어.]
잠재적 이미지들로 넓혀진 원들은 대상의 전체적 충동을 형성하는데, 그것은 잠재적 층들 자체이며, 이 층들 안에 현실적 대상이 이번에는 잠재적이 된다. 여기서 대상과 이미지는 둘 다 모두 잠재적이며, 내재성의 평면을 구성한다. 그리고 내재성의 평면에서 현실적 대상은 용해된다. ... 잠재적 이미지들의 연속체는 조각으로 되었고[파편화], 공간체는 규칙적이거나 또는 불규칙적인 시간의 해체에 따라서 절단된다.(520) [의식의 연속체 파편화와 신체의 공간화에서 절단은 차히의 위상에 속한다.]
그리고 잠재적 대상의 전체적 충동은 부분적 연속체에 상응하는 힘들로(en forces), 잘려진 공간체를 가로질러가는 속도들로(en vitesse) 부셔진다. (521) [의식에서 힘들로, 신체에서 속도로]
라이프니츠가 제시했던 대로, 힘은 현실화 과정에서 공간만큼이나 잠재적이며, 이 공간 속에서 힘이 이전되고 있다. (521) [벡터의 힘이 공간에서 잠재적으로 또는 현실적으로 이동하고 있다. 라이프니츠는 움직이는 과정전체를 묘사한다는 의미에서 힘을 운동의 궤적으로 보기보다 에너지의 (연속적)이동으로 보았다.]
그러나 모든 평면들은, 잠재적인 것에 이끌리는 길을 따라서, 하나를 이룬다(ne font qu’un). 내재적 평면은 잠재적인 동시에 잠재적인 것의 현실화[작업]을 포함하는 데, 이 경우는 둘 사이에 할당할 수 있는 경계가 없을 경우이다. 현실적인 것은 현실화의 부가물[보충물] 또는 생산물이며, 현실화의 주체는 잠재적인 것이다. 현실화는 잠재적인 것에 속한다. 잠재적인 것의 현실화는 특이성(la singularité)이며, 반면에 현실적인 것 그 자체는 구성된 개체성(l’individualité)이다. (521) [특이성은 의식을 의미하고 개체성은 신체를 포함한 인격을 의미한다. / 개별화(individuation)과 결정체화(cristalisation) 대 특이화(singularsation)과 현실화(actualisation) = 인물화 대 인격화라고 해야 하나. .. ]
2.
우리는 이제까지, 현실적인 것이 점점 더 너비를 갖게[펼쳐지는]되고 점점 더 멀어지며 점점 더 다양해지는 여러 다른 잠재성들로 둘러 싸여 있는 경우를 고려했다: 입자는 순식간(찰나)을 창조하고, 지각은 추억들을 불러온다. (522) [여기서 입자는 벩송의 인광과 같다. 신체는 인광의 사라짐에서 현실에서 멀어지고, 지각한다는 의식(현실화)은 기억 속에 있는 추억을 덧붙여서 현실화로 나간다.]
현실적 입자는 자신의 잠재적 분신을 가지며, 이 분신은 입자로부터 거의 머리 떨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현실적 지각은, 마치 일종의 무매개적적이고 계속 이어지고 심지어는 동시적인 분신처럼, 자기 자신의 추억을 갖는다. (522)
[벩송에서 (신체의) 지각과 (의식) 추억의 연결은 무매개적이고 거울효과처럼 동시적이다. 이 둘 사이의 평행론을 주장하는 자들은 둘 사이의 일대일 대응이 있을 것이라고 하는 것은 없다. 지각과 추억에서 추억들이 지각보다 훨씬 더 많다는 것은 살아온 내력에서 당연히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벩송이 우리에게 제시했던 대로, 추억은 지각된 대상 다음에 형성되었을 현실적 이미지가 아니다. 그러나 잠재적 이미지는 대상의 현실적 지각과 공존적이기 때문이다. 추억은 현실적 대상과 동시간적인 잠재적 이미지, 즉 그것의 분신[이중화]이며, 그것의 “거울 속 이미지”(son “image en miroire”)이다.
또한 현실적 대상과 그 대상의 잠재적 이미지 사이에는 유착과 분열이, 오히려 진동(oscillation)이, 영속적인 교환이 있다. 잠재적인 이미지는 끊임없이 현실적이 되고, 영화 상하이에서 온 부인(La Dame de Shanghaï (The Lady from Shanghai, 1947)의 방식에서 마치 등장인물을 사로잡아, 그 등장인물을 던져넣고, 이번에는 그에게 잠재성만을 남겨두는 거울 속에서처럼 말이다. (523)
현실적인 것과 잠재적인 것은 공존하며 그리고 그것들은 우리를 끊임없이 하나로부터 다른 하나로 이끌어 가는 좁은 회로 속으로 들어간다. 그것은 더 이상 특이화(singularsation) 이 아니고 마치 현실적인 것과 그것의 잠재적인 것 사이에서 과정과 같은 개별화(individuation)이다. 그것은 더 이상 현실화(actualisation)가 아니라, 결정체화(cristalisation)이다. (523)
현실적인 것과 잠재적인 것 사이에는 [경계의] 할당불가능(inassignabilité)이 더 이상 없으며, 오히려 서로 교환하는 두 항들 사이에 분간불가능성(indiscernablilité)이 있다. (523)
현실적 대상과 잠재적 이미지, 잠재적이 된 대상과 현실적이 된 이미지, 이것들은 모습들(les figures)이며, 이 모습들은 이미 기초 광학에서 속한다. 그러나 모든 경우에서 잠재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의 구별은 시간의 가장 근본적 분열(la scission)에 상응한다. 그 때 시간은 두 개의 큰 길을 따라서 세분화하면서 앞으로 나간다. 즉 현재를 지나가게 하고 그리고 과거를 보존하게 하는 두 길이다. (523-524) [벩송의 경우에 현재는 과거를 달고서 미래를 갉아먹으며 진행한다고 한다.]
현재는 연속적 시간에 의해, 다시 말하면 유일한 방향에서 가정된 운동에 의해, 측정된 변화하는 자료(une donée)[datum]이다. 즉 현재는 시간이 다써버린 정도에서 지나간다. 지나가는 것이 현재이고 또 현실적인 것을 정의하는 것도 현재이다. 잠재적인 것은, 일정한 방향에서 운동의 최소치를 재는 시간보다 더 적은 시간 안에서, 자기편으로부터 나타난다. 그런 이유로 잠재적인 것은 “하루살이(éphémère, 순식간)”이다. (524) [현재 안에서 잠재적인 것은 순간적으로 나타났다가 현재가 미래로 갉아먹으며 진행할 때 사라진다.] 4.
현재는 (자기 척도에 맞추어서) 지나가고, 반면에 순식간은 ([순식간대로] 자기 척도에 맞추어서) 보존하고 또 보존된다. 잠재적인 것들은 자기들을 분리하는 현실적인 것 그 위로 무매개적으로 소통한다. 시간의 두 측면, 즉 지나가는 현재의 현실적 이미지와 스스로 보존되는 과거의 잠재적 이미지, 이 둘은 할당불가능한 경계를 갖지만 현실화작업에서 구별된다. 그럼에도 [두 측면의] 각각이 다른 측면의 역할을 빌리면서, 분간불가능하게 되기까지 결정화 속에서는 서로 교환된다. (524) [어제, 이제, 아제에 관한 의식의 지속에서, 벩송의 견해를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이제가 지나가는 동안에 경계가 없이 연결되어 있지만 현실화에서 한 지점은 둘의 중첩(소통)이 있다. 그럼에도 이제가 진행하는 한 현재는 잠재적인 것(추억)으로 밀려난다.]
현실적인 것과 잠재적인 것의 연관은 항상 회로를 구성하는데 두 가지 방식으로 이다. 때로는 현실적인 것이, 마치 넓은 회로들 속에 사물에 귀착하는 것처럼, 잠재적인 것들에 귀착한다. 때로는 현실적인 것이, 마치 자기 자신의 잠재걱인 것에 귀착하는 것처럼, 잠재적인 것에 귀착한다. (525) [하나는 기억총체와 연관있고 다른 하나는 해당하는 추억에 연관이 있다. 추억은 기억총체 속에 있다.]
내재성의 평면은 마치 잠적인 것과 다른 항들과 연관처럼 현실화를 포함하고, 동시에 마치 잠재적인 것이 항과 교환하는 것처럼, 현실적인 것을 포함한다.(525)
현실적인 것들은 이미 구성되었던 개별자들을 함축하고, 또 일상적인 점들에 의해 규정화작업들을 함축한다(impliquer). 반면에 현실적인 것과 잠재적인 것의 연관은 작동 중인 개별화작업(une individuation)을 형성하거나 또는 각 경우에서 규정하는 특징점들에 의해 특이화작업(une sigularisation)을 형성한다(former). (525, 마지막 문단의 끝 문장)
(5:19, 52VLC)
# 인명록 **********
1646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 독일 형이상학자, 철학자. / 뉴턴(Isaac Newton, 1642–1727) 둘은 거의 같은 시기에 활동했다.
1859 벩송(Henri Bergson, 1859-1941) 프랑스 철학자.
1943 까세(Michel Cassé, 1943-) 프랑스 천체물리학자, 작가, 시인. Du vide et de la création, 2001, Odile Jacob, 1993.
1944 샤뜰레(Gilles Châtelet, 1944-1999) 프랑스 수학자, 철학자. Les Enjeux du mobile, « collection Des Travaux », Éditions du Seuil, 1993.
1947 영화 상하이에서 온 부인(La Dame de Shanghaï (The Lady from Shanghai, 1947) 1947년 상연된 미국 범죄물(noir), 웰즈(Orson Welles 1915-1985) 감독, sorti en 1947.
1956 레비(Pierre Lévy, 1956-) 프랑스 철학자, 사회학자, 정보통신과학(Sciences de l'information et de la communication: SIC) 탐구자. Qu'est-ce que le virtuel ?. Paris : La Découverte, 1995 [들뢰즈 대단하다. 세상을 뜨기전까지 첨단을 보고 있었구나!]
(5:34, 52VLC)
# 참조: 상하이에서 온 여인(The Lady from Shanghai, 1947)
웰즈(Orson Welles 1915-1985), 1947년 ‧ 드라마/미스터리 영화 ‧ 1시간 32분
1940년대 뉴욕. 매력적이고, 냉소적인 언어의 소유자인 선원 마이클 오하라는 우연히 미국 최고의 변호사이자 부호인 아서 베니스터의 부인 엘사를 만난다. 강도로부터 엘사를 구한 마이클은 첫눈에 엘사에게 반하고, 엘사 또한 돈 때문에 결혼한 남편과는 달리 젊은 선원 마이클을 사랑하게 된다. 베니스터가 부인을 구해준 고마움으로 자신의 지중해 항해에 마이클을 선원으로 채용하면서 세 사람의 오묘한 관계는 시작된다. 시종일관 마이클로부터 눈을 떼지 못하는 엘사와 엘사를 거부하지 못하는 마이클 앞에 두 사람의 관계를 눈치챈 베니스터의 동료 조지 그리스비가 접근한다. 그는 현재의 삶에서 도망치고 싶으니, 마이클에게 자신을 죽여 달라는 부탁을 하고, 그 대신 5천 달러를 주겠다는 거래를 한다. 그리고 자신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주겠다는 것. 평소 이성적이던 마이클도 엘사와의 사랑에 눈이 멀어 그의 거래를 받아들이기로 하는데... 그러나 사라지기로 한 그리스비가 시체로 발견되고, 마이클은 살인혐의로 기소된다. 베니스터는 자청하여 마이클의 변론을 맡게 된다. 과연 마이클의 운명은? 영화사상 가장 바로크적인 필름 느와르 영화라 불릴만한 작품으로 유명한 팜므파탈이며 웰스의 부인이던 리타 헤이워스가 엘자 역을 맡았다. 앙드레 바쟁은 <상하이에서 온 여인>을 두고 <시민 케인>과 <위대한 앰버슨가>에 사용한 실험적 기법과 테크닉은 포기했지만, 웰스의 영화들 가운데 가장 풍부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의 거울 방에서의 총격 장면은 수많은 영화들이 모방했을 정도로 유명한 장면으로 기억에 남는다.
개봉일: 1947년 12월 24일 (프랑스)
감독: 오손 웰스
원작자: 셔우드 킹의 원작: If I Die Before I Wake
각본: 오손 웰스, 윌리엄 캐슬, 찰스 레더러, 플레처 마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