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일보 2007/03/24 020면 16:23 >
한규철 / 경성대 사학과 교수
국내 발해 박사 제1호(고려대 대학원 문학박사)로 러시아 사회과학원 극동역사고고연구소 및 중국사회과학원 헤이룽장성 역사연구소의 초빙교수 등을 지냈다. 한국고대사학회 및 부산경남사학회 회장과, 17개 학회가 참가한 중국의 고구려사왜곡공동대책위원회 공동대표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고구려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다.
극적 재미 위해 역사적 진실 왜곡 안돼
한국사적 정통성 확보 문화적 토대 마련은 성과
등장인물 등 사실과 많이 달라 잘못된 인식 우려
드라마 '대조영'은 역사적 사실과 문학적 상상력 사이를 오가면서 때로는 지나친 허구로 오해를 불러오기도 한다. 사진은 '대조영'의 한 장면.
과거에는 전쟁 사극이 갖는 촬영장의 한계로 인해 어려운 점이 많았지만 지방자치단체에서 70억 원이든 100억 원이든 세트장 건설을 도맡아 해주고 있기에 이러한 점 역시 문제되지 않는 것 같다. 중국에서도 각 사찰마다 관우를 비롯한 <삼국지>의 인물들은 숭배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관광상품이 된지 오래다.
하지만 시청자들과 작가·연출·기획진이 생각하고 있는 드라마에 대한 의미는 상당한 편차를 갖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통해서 역사를 배운다고 할 정도로 사극에 대한 신뢰가 대단하다. 그럼에도 드라마의 실상은 2%의 뼈대에 98%의 허구적 사실로 꾸며진 것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소설 같은 드라마일 뿐이다.
인물의 시대적 배경이나 성격,그리고 역사적 사실의 선후관계를 제멋대로 하는 작품을 '퓨전드라마'라 하고 90% 이상 작가의 상상을 허락한다 할지라도 단 1%의 뼈대가 바르다면 이것을 '정통사극'이라고 한다. 지난 19일 고구려연구회는 '역사와 고구려·발해 드라마'란 주제로 최근 드라마들을 역사적인 입장에서 평가하는 자리를 가졌다. TV 사극이 학술대회에서 처음으로 평가를 받아 본 셈이다.
발해사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발해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구체적 모습이 어떠했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나 발해사는 이와 함께 더 큰 문제를 안고 관심의 대상이 되어 있다. 발해국이 고구려를 계승한 왕조였는가,아니면 고구려와 다른 말갈의 왕조였느냐 하는 문제다. 특히 고구려와 발해 후손을 자처하는 한국인들이야 말로 이 문제에 대해서 민감하다.
이러한 시점에서 '대조영'은 한국고대사에서 잊혀져 온 발해사를 최대 지상파 방송에서 처음으로 조명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것으로 인해 발해사의 한국사적 의미를 재확인하고 한국인들에게 고구려,발해 후손을 자처할 수 있는 역사·문화적 토대를 튼실히 하고 있다. 다음으로는 발해사의 구체적인 문제이기도 한데, 발해의 건국이 단지 영주(營州)에서 이진충의 반란을 계기로 우연히 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고구려 유민들의 복국(復國) 운동의 결실이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역설적으로 고구려사에 비해 기록이 없어 작가가 가장 자유롭다고도 할 수 있는 '대조영'의 문학적 상상력에 대해서도 국민들은 한번 생각하는 기회가 필요하다. 허구의 역사를 본래의 모습으로 잘못 머리에 각인하게 하는 역기능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대조영'이 긍정적인 면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통사극'으로서의 문제 또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대조영'에 등장하여 극의 흐름에 영향을 주는 주된 인물은 50명 정도였다. 대조영 등 고구려인이 27명,당나라 사람이 11명,거란 7명,백제 2명,신라 1명이다. 그 중에서 고구려의 가공인물은 숙영공주,부기원,흑수돌,계진,신홍,달기,부지광,장산해,고사웅,이기우,선겸,지명천 등이고, 당나라 사람으로는 이문 장수와 홍패, 거란인으로서는 초린,설계두,모개이고 신라는 김찬 장수, 백제의 미모사,금란 등이다.
작가는 가급적 가공인물보다도 역사상의 인물을 등장시키려 한다. 이것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정통사극으로서의 신뢰를 높이는 효과를 가져온다. 그러나 인물이 기록과 달리 나타날 경우에는 그 폐해 또한 적지 않다.
간신(奸臣) 부기원과 같은 가공인물을 활용한다든지 667년 당나라가 신성을 공격할 때, 성주를 묶고 문을 열어 주어 항복한 사부구와 같이 고구려를 배신한 장수를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은 작가에게 허용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걸사비우의 경우는 그 정도가 심하다. 기록을 통해 볼 때 걸사비우는 대조영의 의형제이자 부하장수가 아닌 오히려 그 아버지인 걸걸중상(대중상)과 같은 반열의 장수였다. 그와 같은 실제적 인물의 활약은 드라마 자체를 곧 역사로 알게하는 문제를 안게 한다. 발해건국까지의 주인공은 대조영이 아닌 그 아버지 걸걸중상이었다는 것도 기록과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드라마 출연자와 촬영 장소 등이 갖는 물리적 환경으로 인하여 야기된 문제일 수도 있지만 고구려 멸망의 원인에 대하여 드라마는 지나치게 내부적 원인이 강조되고 있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다. 고구려가 엄연한 침략자인 당나라에 의해 멸망되었던 점이 소홀히 다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 삼국에서의 신라의 위치 역할 등이 보다 적극적으로 반영되었어야 했다고 본다. 신라의 대당외교와 삼국통일 의지 등이 고구려를 멸망시키게 한 점이라든지 신라의 역할에 대한 부분이 미흡했지 않나 싶다. 물론 고구려 멸망과정에서 주화파와 주전파의 갈등과 논쟁들은 풍전등화와 같은 시대와 국가의 운명 앞에서 어떤 길을 택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해 주었다는 데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점이 지나치게 많은 분량으로 방영되는 것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자국사에 대하여 무의식적으로 패배주의에 빠지게 하고 대국사에 대한 열등의식을 부추기는 역기능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같은 사건을 묘사하는데 있어서도 중요한 역사사실이 누락 내지 은폐되는 경우도 있었다. 672년 백빙산전투 등에서 기록에도 엄연한 당나라 장군 고간(高侃)은 등장치 않고 오히려 지어낸 이적의 동생이자 당나라 장군으로 등장한 이문의 활약이 크다. 당나라 장군의 이름이 고간이라면, 시청자들로 하여금 고구려 장수로 오해를 불러 일으킬 것을 염려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발해사의 성격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부분이 있어 다행으로 생각한다. 발해를 고구려유민 국가로 인식하고 말갈에 대한 생각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작가의 인터뷰에서도 확인했지만 고구려 변방인들을 이민족시하여 부른 '말갈(靺鞨)'인들을 따로 구별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앞으로 '대조영'은 당을 축출하기 위해 고구려 유민세력과 백제,고구려인들이 포함된 통일신라군이 힘을 합쳐 활동하는 모습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묘사되어야 할 것이다. 실제로 고구려항쟁 및 복국운동 세력과 신라가 연합해 당군을 물리치는 기록은 많이 있기 때문에 이를 잘 반영했으면 한다.
설인귀, 고구려 멸망 앞장 사극서 너무 미화
드라마 속의 사건이 역사적 사실과 다르게 그려진 사례 중의 하나는 설인귀에 대한 것이다. 사극의 재미를 불어 넣어 준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겠지만 그가 지나치게 미화·과장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실과도 거리가 멀다.
설인귀(薛仁貴,613~682)는 평민 출신으로 당나라 장수가 됐다. 당태종을 위기에서 구함으로써 중국 소설에서 <삼국지>에 나오는 장비 다음의 충신(忠臣)으로 회자되는 사람이기도 하다. 요즈음 한국의 역사 드라마에 대응이라도 하듯 중국에서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것이 곧 '설인귀전'이라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는 고구려 멸망에 큰 공을 세우고 안동도호부의 안동도호가 되기는 했지만(668년) 곧 토번 진압에 투입됐던 인물이다. 그는 고구려 장군 검모잠이 안승을 왕으로 옹립하던 670년 4월 당시에는 토번에 파견되어 있었고, 8월에도 토번을 치다가 대비천(大非川)에서 대패하고 돌아오기도 했다.
그러나 사극에서는 줄곧 설인귀가 신성 뿐만 아니라, 요동지역에서 활약하고 있다. 보장왕이 '요동주도독조선왕'으로 임명돼 고구려 복국운동에 참여했다는 것은 설인귀가 그 지역에 없었을 개연성이 크다는 점을 의미한다.
첫댓글 저두 대조영 재미있게 보고있는데 허구가 많네요...ㅜㅜ
역사드라마와 역사는 다르니까요^^;; 그래도 드라마가 일단 관심을 갖게 해 주니까, 나머지 정확한 내용들은 역사공부를 통해 얻을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