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맹크(Maurice de Vlaminck) 1876~1958

The River Seine at Chatou, 1906
Maurice de Vlaminck (French, 1876–1958)
Oil on canvas; 32 1/2 x 40 1/8 in. (82.6 x 101.9 cm)
프랑스의 화가. 대표적인 포비슴 화가로 손꼽힌다. 파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자유 방임적 가정 환경에서 자라나 12세부터 독학으로그림 공부를 하고, 악단에서 바 이올린을 연주하거나 기계공 등으로 일하면서 자신의 생계를 이어갔다. 화가를 지망하였으며 고흐의작품들을 보고 정열적인 작풍에 깊이 감탄하여 강렬한 원색과 분방한 필치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또 입체파 화가들과도 사귀어 감화를 받기도 하였으나, 자기 나름의정열적인 작품 세계로 돌아갔다. 그 뒤부터즐겨 그린 거친 날씨의 어두운 풍경화나 정물에는 힘찬 데포르마시옹(변형, 과장) 과 비극적인 느낌을 바탕으로 표현주의적인 기백이 넘치며, 본래의 특색인 야성의 부르짖음, 생명감의 약동이 일관하여 엿보인다.
그는 그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순수한 색채를 튜브에서 직접 짜서 그림을 완성하고 싶다. 여태까지 나는 나의 파괴 적인 본능을 실감하고, 이를 생생하고 자유로운 세계를 재창조하는데 사용할 수 있었다." 그는 다른 야수주의 작가들이 귀스타브 모로의 화실에서 공부한데 비해, 모든 전통적인 기 법과 소재를 거부하면서 내적 표현의 매체로 색채의 자율적 가치를 강조한다. 그는 "예술은 본능이다." 라고 단언하면서 자신의 내적 충동을 과감하게 분출시켰다.
야수파 그룹 중에서도 가장 야수파적인 정열의 화가인 블라맹크는 그림에 열중하기 이전의 생활이 또한 타고난 정열의 연소였다. 그는 한때 음악에 미치고, 자전거 경주 또는 프로 레슬러와의 시합 등 당당한 체구와 열정의 대결을 즐겼었다. 그러다가 그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게 되었던 것인데, 스스로 표명한 자신의의도와 희망이 아주 선명하다.

André Derain, 1906
Maurice de Vlaminck (French, 1876–1958)
Oil on cardboard; 10 3/8 x 8 1/4 in. (26.4 x 21 cm)
<나는 나의 사상에 질서를 부여하고,
욕망을 진정시키고, 나 자신 속에 화가의 순수함을 도입하기 의해 그렸다>
결국 그의 격정적인 필촉과 색채의 야수성은 하나의 카타르시스라고 말해질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야수파 화가들 대부분이 모로의 화실을 거친 데 반해, 블라맹크는 고립적인 비전 속에서 내적 표현의 매체로 색채의 자율적 가치를 인식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예술의 본질은 본능이다>고 단언하면서 자신의 내적 충동을 과감하게 분출시켰다. 이 작품은 그러한 블라맹크의 직관적인 정열이 낳은 강렬한 색채와 힘찬 선을 보여준다.

<빨간나무가있는풍경> 1906년 파리 국립 근대 미술관 소장
블라맹크는 포브 화가들 중에서도 가장 포브적이라 할 수 있다. 당당한 체구와 그에 걸맞는, 넘치는 정열은 그로 하여금 격정적인 터치와 색채를 낳게 하였 던 것이다. "예술의 본질은 본능이다."라고 단언한 그의 작품은 내장의 영위와도 같아 생리적인 강렬함 을 가지고 있다. 이 작품도 그의 직관, 정열의 모든 것을 그 강한 색채, 굳건한 생리적인 선에 의하여 나타내 고 있다. 나무 사이에 집들이 보인다. 인상파 화가들이 잘 그리던 풍경 구도이나 인상파 사람들의 화 면에서 볼 수 있는 멀리 바라다보는 듯한 느낌의 집들, 혹은 광활한 개방감 등은 찾아볼 수 없고, 충격적일 만큼 강렬한 나무의 표현, 강하고 밝은 색채 처리, 특히 빨간색의 효과로 박력 이 넘쳐 흐른다. 강한 색채에 모든 것을 걸어 자극이 강한 포브의 표현을 전개한 블라맹크 대 표작의 하나이다.

<샤티옹의다리> 1906년 생 트로페 라논시아드 미술관 소장
샤티옹 출생의 드랭과 함께 샤티옹파를 형성한 블라맹크는 그곳에서 자전거 경기에 열중하기도 하고,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연주 등을 하면서 그림을 그렸다. 센강을 오르내리는 배, 강가의 풍경이나 근교의 전원 풍경 등을 즐겨 그렸다. "이런 모든 것들의 색채는 우리를 매료 시켰다.……그 곳이 샤티옹이었다." 이 그림은 그 중의 하나로 수작으로 뽑히는 작품이다. 특기할 것은 여기에서 고호의 뚜렷한 영향을 강하게 의식하게 된다는 점이다. 1901년 베루네엠 주느 화랑에서 고호전을 보고 "그날, 나는 아버지보다 반 고호를 사랑하였 다."라고 할 만큼 강한 인상을 받았는데, 그의 작품 속에서 고호의 영향을 뚜렷하게 인식할 수 있게 되는 것은, 1905년 고호 회고전을 보고 난 뒤부터이다. 이 그림은 주제나 색조에서 특히 터치에서 고호의 영향이 분명하긴 하지만, 순수화된 색조 나, 평면화된 화면 처리는 현실에서 승화된 포브의 비젼으 나타내고 있다. 포브의 창시자를 자인하는 블라맹크는, 포비즘을 형성하는 세 그룹 중 샤티옹파의 핵심 멤 버이며, 샤티옹을 무대로 한 좋은 작품을 많이 남겼고 이 그림도 그 중의 하나이다.

<빨간작약>1903년
블라맹크의 작품은 제작 연대가 확실치 못한 것이 많다. 이 화가의 경우 그 연대의 추정은 카탈로그를 보더라도 여러 이설이 있어서 결정하기가 힘들다. 1907년을 고비로 격하고 정열적인 포비즘에서, 차차 냉정한 세잔적인 균형있는 구성에 중점 을 두게 되는데, 1914년까지는 그런 대로 기하학적인 폼의 단순화를 추구하여 뼈대가 튼튼한 일을 계속하였지만, 원래 이지적인 방법이 체질적으로 맞지 않은 그는 세잔과 결별하여 무겁 고 울적한 감정을 폭발시키면서 묘사적 세계에 찾아들게 된다. 흑과 백의 콘트라스트를 살려 눈 경치를 그리기도 하고 명쾌한 색채의 콘트라스트를 의식하 면서 꽃의 정물을 그리기도 하지만, 그 선명하고 강렬하였던 블라맹크의 화면에도 1920년 후 반에서부터 고독감과 비극적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한다. 환희가 없다. 검정 색이 점점 중요한 색조가 된다. 세잔의 영향이 두드러지게 되고, 블라맹크의 작품에서는 가장 야수파적인 과거의 불타는 듯한 선명한 원색이 사라지는 것이다. 마치 야수가 점점 기력을 잃어 가듯이……. 그것은 나이 탓일까, 아니면 주위에서의 호응도가 낮아서일까?

<서커스> 1910 cafe.daum.net/jsseo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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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맹크[Vlaminck, Maurice de 1876. 4. 4 ~1958. 10. 11]파리 출생. 집안은 플랑드르 출신. 부모는 음악가로 아들의 교육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자유방임적 가정환경에서 자라나 12세경부터 독학으로 그림 공부를 하고, 악단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거나 기계공 등으로 일하면서 자신의 생계를 이어갔다. 화가를 지망하였으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1900년 A.드랭(1880∼1954)과 알게 되어 센 강가의 성관(城館)에 공동 아틀리에를 가지고부터였다. 이듬해 고흐의 회고전을 보고 정열적인 작풍에 깊이 감탄하여 강렬한 원색과 분방한 필치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1905년 마티스의 권고로 ‘앵데팡당전(展)’에, 다음에는 살롱 도톤에 출품하여 H.마티스, A.마르케, A.드랭 등의 작품과 함께 ‘야수의 우리’에 전시되었다. 그러나 원색배합에 의한 순수한 포비슴시대는 2∼3년으로 끝나고, 1908년경부터 P.세잔의 화풍에 이끌려 어두운 색조 속에 견고한 화면구성을 보였다. 또 입체파화가들과도 사귀어 감화를 받기도 했으나, 그러한 방향이 주지적(主知的)이라고 생각하여 15년경 자기 나름의 정열적인 제작으로 돌아갔다. 그 후부터 즐겨 그린 거친 날씨의 어두운 풍경화나 정물에는 힘찬 데포르마시옹(dformation:변형, 과장)과 비극적인 터치의 바닥에 표현주의적인 기백이 넘치며, 본래의 특색인 야성의 부르짖음, 생명감의 약동이 일관하여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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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간나무가 있는 풍경
 Flowers
 Grand nu au divan
 Paysage de Valmondois
 Portrait of a Woman
 Still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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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드 블라맹크 Maurice de Vlaminck
[French Fauvist Painter, 1876-1958]
[말리 르 루아 레스토랑] Restaurant at Marly-le-Roi
1905. 60 x 81,5 cm.
Museo de Orsay. París. France
블라맹크 (프랑스 화가) [ Maurice de Vlaminck ]
1876. 4. 4 파리~1958. 10. 11 프랑스 뤼에유라가들리에르.
프랑스의 화가.
반항적인 기질을 가진 그는 생생하고 선명한 색을 두껍게 칠한 실험적인 그림들을 제작했으며 야수파 화가들과 밀접한 교류를 가졌다.
시골이나 그 근처에서 생애의 대부분을 살았는데, 자연을 그리는 독특한 재능과 소탈한 성격은 여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1895년부터 미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여 소묘를 배우고 인상주의 화가들을 연구했으며, 1899년에는 어린시절부터의 친구였던 앙드레 드랭과 화실을 같이 쓰기 시작했다. 음악가·배우·자전거선수·소설가로서도 활동했다.
1901년에는 미술계에 새로운 영향을 미친 빈센트 반 고흐의 전시회에서 큰 자극을 받았으며, 앙리 마티스와 만나고 파리의 '앵데팡당전'에 처음으로 작품을 발표했다. 그의 작품은 여전히 대상을 묘사하는 것이었지만, 예전보다 더 색채를 자유롭게 사용함으로써 야수파의 격정적인 표현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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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에 그는 논란이 많았던 '살롱 도톤'에 작품을 전시했는데, 이때 매우 주관적이고 대담하며 강렬한 색채를 구사한 몇몇 작품들에 대해 '야수'라는 말이 처음 붙여졌다. 1908년경 그는 회색과 흰색, 짙은 청색을 두껍게 칠한 풍경화로 방향을 바꾸었다. 그의 양식은 폴 세잔의 말년의 작품과 비슷해졌으며, 기초가 더욱 튼튼한 구도 감각을 가지게 되었다. 1915년경 그는 나름대로 뚜렷하고 철저한 프랑스 표현주의 양식을 확립하기 시작했다.
첫댓글 "예술의 본질은 본능이다" 크~~~~가슴에 와 닫는 명언이로고 !!!!
강렬한 색감 좋아 좋아~~ 라일락님 잘 보고갑니더
나두 물감을 그대로 짜면서 그리고싶다...요즈음 물감값이 장난이아니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