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집백연경 제5권
5. 아귀품(餓鬼品)
50) 담바라(嚪婆羅) 아귀와 같은 인연
부처님께서는 비사리(毘舍離)의 미후강(獼猴江) 언덕 중각강당에 계시었다.
당시 성중의 차라(遮羅)라고 하는 한 장자가 자기 배필이 될 여인을 골라 아내로 맞이하여 항상 음악을 오락거리 삼아 지내왔다.
그러다 그 부인에게 태기가 있으면서 더러운 냄새가 풍겨 가까이할 수 없게 되자 남편이 물었다.
“전에 당신은 그렇지 않았는데, 이제 무슨 까닭으로 온몸에서 더러운 냄새를 풍기는가?”
부인이 이렇게 대답하였다.
“이는 틀림없이 태중에 있는 내 아이의 어떤 업행으로 말미암아 그러한 것 같습니다.”
과연 열 달이 되어서 아들을 낳기는 했으나 뼈만 앙상할 정도로 야위고 초췌해서 볼 수가 없었으며, 또 온몸에 똥ㆍ오줌을 칠한 채 태어났다.
점차 나이가 들어서는 집에 있기를 좋아하지 않고 항상 똥ㆍ오줌 같은 더러운 것만을 탐식하므로, 부모ㆍ친척들이 다 보기 싫어서 집 바깥으로 쫓아내어 가까이하지 못하게 했다.
아이는 역시 본래의 습성 그대로 뒷간 같은 더러운 곳에 가서 똥ㆍ오줌을 구해 그것을 달게 먹고 지냈으니, 이러한 것을 보게 된 주민들이 아이의 이름을 담바라귀(嚪婆羅鬼)라고 불렀다.
때마침 그 나라의 어떤 외도가 길을 가다가 우연히 이 아이를 만나 보고서 찬탄하며 말했다.
“좋아, 나를 따라갈 생각이 없느냐?”
아이는 이 말을 듣자 아주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외도 앞에 나아가 말하였다.
“자애로운 마음으로 저를 가엾이 여기시어 함께 갈 수 있게 해 주옵소서.”
이때에 외도가 그를 출가시켜 알몸을 하게 하고 재[灰]를 그 몸에 바르고 청정한 행을 닦게 하였다.
그러나 담바라는 비록 도의 문에 있으면서도 똥ㆍ오줌 따위가 있는 더러운 곳을 탐하였다.
외도가 그것을 보자 때로는 꾸짖고 때로는 때려 가면서 타일렀다.
“너는 무슨 까닭으로 아직도 더러운 곳만을 좋아하느냐?”
담바라는 그 외도에게 자주 이러한 꾸지람을 듣고 매질을 당하자 그곳을 떠나 어떤 강 기슭의 구덩이 속에 가서 스스로 즐겁게 지내려고 하였다.
그런데 거기에 이미 자리잡고 있는 5백의 아귀들이 담바라가 오자 그 냄새 나는 몸을 싫어하여 모두가 가까이 하지 않았으나,
담바라는 여러 아귀들을 향해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인간에 있을 때 너무나 꾸지람을 듣고 매질을 당하여 고통을 받았더니, 이제 여기에 와서부터는 꾸지람과 매질을 당하지 않고 나 혼자 즐기네.”
그러나 아귀들이 냄새 나고 깨끗하지 못한 담바라를 보고 막상 다 떠나가자,
담바라는 여러 아귀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이 냄새 나는 몸이나마 당신들을 의지하여 수일 동안 잘 지내왔는데, 당신들이 이제 또 나를 버리고 가 나 홀로 뒤에 남아 있게 되었으니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소.”
이렇게 말하고서 매우 괴로워하고 근심하며 땅에 주저앉아 있었다.
마침 세존께서 밤낮 여섯 때로 중생들 가운데 그 어떤 제도 받을 자가 있는가를 관찰하여 직접 가서 제도하시던 때인지라, 저 담바라가 그의 동료를 잃고서 근심과 괴로움에 쌓여 땅에 주저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곧 굴 속에 찾아가서 갖가지 법을 설하시어 그로 하여금 환희심을 내게 하셨다.
그때에 담바라도 불 세존의 그 모든 감관이 적정(寂定)하여 빛나는 광명이 마치 백천의 해와 같아 그 몸을 장엄함을 보고는, 환희심을 내어 엎드려 예배하고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세간에 저같이 하열한 인간도 출가할 수 있나이까?”
부처님께서 담바라에게 말씀하셨다.
“나의 법에는 높고 낮음이 없어서 누구나 다 출가할 수 있노라.”
부처님의 이 말씀을 들은 담바라가 다시 아뢰었다.
“저를 가엾이 여기시어 출가하게 해 주옵소서.”
그때 세존께서 곧 금 빛깔의 오른팔을 들고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잘 왔도다, 비구야.”
그러자 수염과 머리털이 저절로 떨어지고 법복이 몸에 입혀져 곧 사문의 모습을 갖추었는데, 그 조용한 위의가 마치 오래된 비구와 다름이 없었다.
이에 담바라는 이미 부처님의 은혜를 입고 출가하고 나서 곧 부처님 앞에 게송을 읊어 아뢰었다.
이제 부처님 은혜를 입어
평소 제가 소원한 바 그대로
더럽고 냄새 나는 몸을 벗어나
사문의 모습을 이루었습니다.
부처님께서 담바라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제 나의 법에 이미 출가했으니 전일한 마음으로 부지런히 수행하면, 오래지 않아서 아라한과를 얻음과 동시에 3명(明)ㆍ6통(通)과 8해탈(解脫)을 구족하여 모든 천상ㆍ세간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으리라.”
여러 비구들이 이 일을 보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제 저 담바라 비구는 전생에 무슨 업을 지어서 그러한 죄보(罪報)를 받다가, 이제 와선 또 무슨 인연으로 부처님을 만나서 아라한과까지 얻게 되나이까?”
세존께서 곧 비구들을 위해 게송을 읊어 말씀하셨다.
전생에 지은 선업과 악업은
백 겁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나니
죄업의 인연 때문에
이제 이러한 과보를 얻었느니라.
비구들은 부처님의 이 게송을 듣고 나서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과거세에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를 저희들은 알지 못하오니, 원컨대 자세히 말씀해 주옵소서.”
그러자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자세히 들으라. 내가 이제 너희들을 위해 분별 해설하리라.
이 현겁에 사람의 수명이 4만 세를 누릴 때 가라가손타(迦羅迦孫陀)부처님이 바라날국(波羅捺國)에 출현하시어 여러 비구들과 함께 지방을 유행(遊行)하면서 교화하던 차에 보전국(寶殿國)에 도착하셨다. 저 국왕이 부처님께서 오신다는 소문을 듣고 마음 속으로 기뻐하면서 신하들을 거느린 채 성문에 나와 받들어 맞이한 다음 엎드려 예배하고 무릎을 꿇고 부처님께 청하였다.
‘원컨대 세존께서 자비하신 마음으로 저희들을 가엾이 여기시어 석 달 동안만 저희들이 올리는 의복ㆍ음식ㆍ탕약ㆍ침구 등의 공양을 받아 주옵소서.’
부처님께서 그렇게 하기를 허락하시자, 저 국왕은 곧 부처님과 비구승을 위해 별도 방사를 마련하고, 비구 한 사람을 청해 사주(寺主)의 일을 맡아 관리하게 하였다.
어느 날 사주가 외출한 사이에 다른 어떤 나한(羅漢) 비구가 그 절에 들어오자, 마침 사주에게 보시를 하던 이가 저 나한 비구의 조용한 위의를 보고서 그를 목욕실로 인도하여 깨끗이 목욕하게 하고 다시 향유(香油)를 몸에 발라 주었다.
그 무렵 외출했던 사주가 절에 돌아와서 몸에 향유를 바른 나한 비구를 보고 문득 질투심이 생겨나 곧 악설을 퍼부었다.
‘네가 출가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똥으로 너의 몸을 발라 놓은 것과 같구나.’
이렇게 말하고 나자 몸에 향유를 바른 저 나한 비구가 마음으로 가엾이 여겨 곧 허공에 솟아올라 열여덟 가지 변화를 나타내었다.
이때 저 사주가 이러한 변화를 보고 나서 깊이 부끄럽게 여겨 나한 비구를 향해 참회, 사과한 다음 각자의 처소로 돌아갔다.
마침내 이 업연으로 말미암아 저 사주가 5백 세 동안 항상 더럽고도 냄새 나는 몸을 받아 다른 사람들에게 가까이 할 수 없게 되었느니라.”
부처님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알아 두라. 그 당시 나한에게 악설을 퍼부은 저 사주 비구가 바로 오늘의 담바라 비구이다.
그래도 그가 일찍이 출가 수도하였고 결국 나한 비구에게 자신의 죄과를 참회했기에 이제 나를 만나서 출가 득도하게 된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담바라의 인연을 말씀하실 때에 각자 몸ㆍ입ㆍ뜻의 업을 보호하여 질투심을 버리고 생사를 싫어함으로써 그 중에 혹은 수다원과를, 혹은 사다함과를, 혹은 아나함과를, 혹은 아라한과를 얻은 자도 있었으며, 혹은 벽지불의 마음, 혹은 위없는 보리심을 낸 자도 있었다.
다른 여러 비구들도 부처님의 이 말씀을 듣고는, 다 환희심을 내어 받들어 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