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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당집 제15권[3]
[분주 화상] 汾州
마조의 법을 이었다. 선사의 휘는 무업無業이요, 성은 두杜씨이며, 상주商州의 상락上洛 사람이다.
처음에 그의 어머니가 갑자기 공중에서
“잠시 머물러도 되겠는가?” 하는 소리를 듣고,
이내 태기가 있었는데, 탄생하는 날 저녁에 이상한 광채가 방 안에 가득하였다.
차츰 자라서 동자가 된 뒤에는 아이들과 장난을 하지 않고, 다닐 때에는 반드시 앞만 보고, 앉을 때에는 가부좌를 틀고 앉으니,
상주 지방 사람들이 보고서 모두가 다음과 같이 감탄하였다.
“이는 위없는 법기法器이다. 속히 출가시켜 삼보를 이어 빛내게 하라.”
아홉 살 때 부모에게 여쭙고 상주의 개원사開元寺 지본志本 선사에게 의지해 출가하니, 스승이 『금강金剛』ㆍ『법화法華』ㆍ『유마維摩』ㆍ『열반涅槃』 등의 경을 주었는데, 한 번 보고는 남김없이 모두 기억해 버렸다. 12세에 머리를 깎고, 계를 받은 뒤 양주襄州의 유幽 율사律師에게 계를 받고 『사분율소四分律疏』를 받아 가지고 한여름 동안 익혀서 곧 강을 하게 되었다.
『화엄』과 『열반』 등의 경전도 오래 강하니,
사람들이 말하기를,
“생(生:道生)ㆍ조(肇:僧肇)가 죽지 않았고, 원(遠:慧遠)ㆍ임(林:法琳)이 다시 태어났다” 하였다.
뒤에 홍주洪州 마조 선사가 선문禪門의 상수라는 말을 듣고 특별히 가서 참배하였다. 선사의 몸은 6척이나 되어 서면 마치 산이 우뚝한 것 같았다.
마조가 선사를 언뜻 보고 기이하게 여기어 말했다.
“웅장한 불당佛堂이건만 그 안에 부처가 없구나.”
이에 선사가 절을 하고서 물었다.
“3승의 지극한 교법은 대략 연구했습니다만 일찍이 선문禪門에서 말하는 ‘마음 그대로가 부처다’ 하는 말을 자주 들었는데, 그 뜻은 실로 알기 어려우니, 바라옵건대 가르쳐 주십시오.”
마조가 대답했다.
“네가 모르겠다는 마음이 바로 그것이니 더 이상 다른 물건이 없다. 알지 못할 때는 미혹이요, 알 때는 곧 깨달음이다.
미혹하면 중생이요, 깨달으면 부처이니 도는 중생을 여의지 않는데 따로 부처가 있겠는가?
마치 주먹이 곧 손이요, 손이 곧 주먹인 것과 같으니라.”
선사는 이 말에 활짝 깨닫고 눈물을 흘리면서 마조에게 말했다.
“평소에 불도는 멀고도 어려워서 여러 겁을 애써 닦아야 비로소 이루는 것이라 여겼는데, 오늘 비로소 법신의 실상實相은 본래부터 구족하고 일체 만법이 마음으로부터 변해 나오는 것이어서 다만 이름만 있을 뿐 진실한 것이란 전혀 없는 줄 알았습니다.”
이에 마조가 말했다.
“옳은 말이다, 옳은 말이다. 모든 마음의 성품은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 것이며, 일체의 법은 본래부터 공적空寂하다.
그러므로 경에서 말하기를,
‘모든 법이 본래부터 항상 적멸한 모습이다’ 하였고,
또 말하기를,
‘끝내는 공적한 집이다’ 하였으며,
또 말하기를,
‘모든 법이 공한 것으로 자리를 삼는다’ 하였으니,
이는 여러 부처님들이 머무를 바 없는 자리에 머물러 계신다는 것이니라.
만일 이와 같이 안다면 이는 곧 공적한 집에 머무는 것이며, 법이 공한 자리에 앉는 것이니, 발을 들고 발을 내림에 도량을 여의지 않는 것이니라. 말이 떨어지자 당장 깨달으면 다시는 다른 점차漸次가 없나니, 이른바 ‘발을 옮기지 않고도 열반의 산에 오른다’는 것이니라.”
선사는 곧장 보소寶所에 나아가서 화성에는 머무르지 않았다. 원화元和의 황제께서 자리에 계시는 3년 동안에 두 차례나 조칙을 내려 선사를 청했건만 선사는 병을 핑계로 나아가지 않았다. 목종穆宗이 즉위하여 다시 조칙을 내리자, 사신이 와서 말했다.
“이번의 성은聖恩은 평소와는 같지 않습니다.”
이에 선사가 웃으면서 말했다.
“빈도에게 무슨 덕이 있어서 여러 차례 성주聖主를 번거롭게 한단 말인가? 떠나기는 떠나야 되겠으나 길이 엇갈릴까 걱정이로다.”
떠날 차비를 하면서 머리를 깎고, 목욕을 하였다. 그리하여 밤중이 되자, 제자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의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성품은 허공과 그 수명이 같으니, 마치 금강과 같아서 파괴할 수 없다. 온갖 법은 그림자와 같고 메아리 같아서 실다움이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경에서 말하기를,
‘오직 이 한 가지 일만이 진실하고 나머지 둘은 진실이 아니다’ 하였느니라.”
말을 마치자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태연히 떠나시니, 장경長慶 3년 계축년癸丑年 12월 21일이었다.
다비茶毘를 한 뒤에 서쪽에다 탑을 세우니, 칙명으로 시호를 대달大達 선사라 하였고, 탑호를 징원澄源이라 하였다. 분주汾州의 자사刺史인 양찬楊灒이 비문을 지었다.
[대동 화상] 大同
마조의 법을 이었다. 선사의 휘는 광징廣澄이다. 행장을 보지 못해 그 생애를 기록할 수 없다.
어떤 이가 물었다.
“어떤 것이 현현함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되돌아가느니라.”
“어떤 것이 현현한 가운데서도 현현한 것입니까?”
“되돌아가지 않는 것이니라.”
[금우 화상] 金牛
마조의 법을 이었다.
선사는 평상시 손수 밥을 지어 대중을 공양시켰는데, 밥을 가지고 큰방 앞에 와서는 손뼉을 치고 춤을 추며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보살들아, 밥을 먹으러 오라.”
나중에 어떤 스님이 이 일을 들어 장경에게 물었다.
“옛사람이 손뼉을 치면서 크게 웃은 뜻이 무엇입니까?”
장경이 대답했다.
“공양 때문에 경축하고 찬탄하는 것과 같다.”
어떤 스님이 동산洞山에게 물었다.
“손뼉을 치고 크게 웃는 것은 종들의 짓이 아닙니까?”
동산이 대답했다.
“그러하니라.”
스님이 다시 물었다.
“위로 향하는 일[向上事]을 스님께서 곧장 보여 주십시오.”
동산이 대답했다.
“한 번도 그대가 질문하는 것을 본 적이 없느니라.”
스님이 다시 여쭈었다.
“지금 묻고 있습니다.”
이에 동산이 말했다.
“예끼, 이 종놈아.”
[구양 화상] 龜洋
마조의 법을 이었다. 선사의 휘는 무료無了요, 속성은 심沈씨이며, 보전현莆田縣 호공壺公의 완당宛塘 사람이다.
7세에 집을 나와 먼동이 트기 전에 거침없이 절에 들어간 뒤 절을 제집같이 여겼다. 18세에 머리를 깎은 뒤 청원淸源의 영천사靈泉寺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평소 산천 구경을 즐겼는데, 한번은 절의 북쪽에서 나무를 하다 보니 길이 보이지 않았다. 선사는 석장을 짚고 길을 찾아다니다 여섯 눈을 가진 큰 거북을 만났는데, 이내 자취를 감추기에 그 자리에다 암자를 짓고 살았다. 어느 날 사슴 한 마리가 호랑이에게 쫓겨 오니, 선사가 주장자로 호랑이를 막아 주었다. 그 뒤로부터 구양龜洋이라 불렸다. 나중에 어떤 스님이 가까운 종릉鍾陵에서 와서 마조의 뜻을 전하자, 선사가 말했다.
“나는 이미 마 대사의 뜻을 얻었노라.”
임종이 가까워지자 유훈遺訓을 남기고, 이어 다음과 같은 게송을 남겼다.
80년 동안 이것저것을 따져왔으니
지금 와서 백두공白頭公을 원치 않는다.
길지도 짧지도 않고, 크지도 작지도 않으니
도리어 여러 사람과 성품이 같도다.
원래부터 가지도 않고 머물지도 않으니
본래부터 제 성품이 공함을 알아 버렸다.
게송을 마친 뒤에 단엄하게 앉아서 입적하니, 정당正堂에다 탑을 세웠다. 그 뒤로 20년 만에 탑 밑에서 물이 솟기에 파서 보니, 선사의 전신全身이 물속에 떠 있었다. 민왕閩王이 이 소식을 듣고, 마차를 보내 궁중으로 모셔다 공양하고, 탑과 부도를 세우려 하였다. 그러던 중 백성이 우러러보는 가운데서 선사의 전신이 방귀를 뀌니, 그 소리를 온 고을 안이 다 들었다. 이에 민왕이 향을 사르고 말했다.
“본래의 산으로 다시 모시겠사오니, 바라옵건대 냄새를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자 선사가 향기를 뿜어 온 고을이 모두 우러러보고 예배하였다. 이때 갖가지 물자를 후하게 베풀어 본래의 탑이 있던 자리에 그대로 다시 모셨다.
[진 선사] 陳
선사의 휘는 혜충慧忠이며, 선유현仙遊縣 사람이다. 속성은 진陳씨이니, 아홉 살에 구양암龜洋庵에 가서 출가하였다. 머리를 깎은 뒤에 행각을 나섰다가 암庵 화상을 만나니,
그는 다음과 같이 물었다.
“어디서 떠났는가?”
선사가 대답했다.
“육모봉六眸峯에서 왔습니다.”
“7신통을 갖추었는가?”
이에 선사가 대답했다.
“중동(重瞳:겹눈동자)이 아닌 것이 걱정입니다.”
그리고는 본사로 돌아갔다. 회창會昌의 사태沙汰를 만나 5, 6년을 피신했다가 나중에 선종宣宗이 중흥中興하니, 선사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부터 전하는 말에 ‘위로 도사道士의 지위에 올라서도 부록을 받지 않고, 성불한 사미는 계를 지니지 않는다’ 하였느니라.”
그리고는 낮이 되어도 곡기를 입에 대지도 않고 집을 짓지도 않고 오로지 선禪을 닦다가 이 산에서 입적하니, 문인들이 심沈 선사의 절 동쪽 모퉁이로 2백 걸음 밖에다 탑을 세우자,
사람들은 모두가 말하기를,
“구양의 두 진인眞人이로다” 하였다.
지금까지도 향과 인등이 끊이지 않으며, 기도하면 영험이 적지 않다. 황도선黃滔先 등이 비문을 지었다.
[흑간 화상] 黑磵
마조馬祖의 법을 이었고, 낙동洛東에서 살았다.
“어떤 것이 비밀한 방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귀를 자르고 거리에 누웠느니라.”
“어떤 것이 비밀한 방 안의 사람입니까?”
선사가 손으로 가슴을 쥐어박았다.
[한마암 화상] 閑魔巖
마조馬祖의 법을 이었다. 선사는 항상 나무집게 하나를 들고 다니다가 스님이 뵈러 오는 것을 보면 갑자기 목을 집게로 집고는 말했다.
“어떤 마귀가 너를 출가하게 했느냐, 어떤 마귀가 너로 하여금 계를 받게 했느냐, 어떤 마귀가 너를 행각行脚하게 했느냐?
대답을 해도 던져서 죽일 것이요, 대답을 못하더라도 던져서 죽일 것이다. 빨리 일러라, 빨리 일러라.”
그 스님이 대답이 없으면, 때려서 내쫓았다.
[방 거사] 龐
마조馬祖의 법을 이었다. 거사는 형양衡陽에서 태어났는데, 한번은 마조에게 가서 다음과 같이 물었다.
“만 가지 법과 짝이 되지 않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마조가 대답했다.
“거사가 한 입에 서강西江의 물을 다 마셔 버린 뒤에 말해 주리다.”
거사가 이 말에 활짝 깨닫고, 곧 창고로 가서 벼루와 붓을 가져다가 다음과 같이 게송을 지었다.
시방의 무리가 한 자리에 모여서
제각기 무위無爲의 법을 배운다.
여기가 부처를 고르는 곳이니
마음이 공하면 급제하여 돌아간다.
그리고는 한두 해 동안 머물러 있으면서 묻고 배웠으나, 유생儒生의 모습은 끝내 버리지 않았다. 마음은 형상 밖에서 노닐어 마음이 이끄는 대로 행하여도 참 진리에 부합하였고, 자취를 섞어도 인간 세계를 훨씬 뛰어넘었으니, 그야말로 현현한 진리를 배우는 선비의 무리이며, 재가在家의 보살이었다.
처음에는 양양襄陽의 동암東巖에서 살다가 나중에는 곽서郭西의 조그마한 집으로 옮겼다. 오직 딸아이의 시중을 받았는데, 대[竹] 조리를 만들어서 딸을 시켜 장에 갖다 판 돈으로 나날의 생계를 이으면서 평생 도를 즐겼다.
그가 남긴 게송이 3백여 수 있어서 세상에 퍼졌는데, 한결같이 말이 지극한 진리에 부합하고 구절마다 현현한 도를 밝혔으므로 유생儒生들도 주옥같이 여겼고, 승도[緇徒]들도 보배로 여겼다. 이에 간략히 두세 수만을 싣고 나머지는 기록하지 않노라.
마음이 여여如如하면 경계도 여여하여
실도 없고 거짓도 없다.
있음에도 관계하지 않고
없음에도 머무르지 않으니
이는 성현이 아니라
일을 끝낸 범부凡夫일 뿐이다.
또 다음과 같이 송했다.
경을 보거든 뜻을 알아야 하고
뜻을 알았거든 수행을 시작한다.
만일 요의교了義敎에 의지하면
곧 열반의 성에 든다.
만일 그가 이치를 모르면
많이 알아도 소경만 못하나니
글을 따라 땅만 널리 차지한 것이고
마음 소가 밭을 갈려 하지 않는 것이다.
밭마다 모두가 풀이 덮였으니
벼 싹이 어디서 자랄 수 있으랴.
또 다음과 같이 송했다.
변하고 변하는 바로 이
5온의 산더미에 참 지혜가 있도다.
시방의 세계가 1승으로서 같거늘
형상 없는 법신이 어찌 둘이 있으랴.
번뇌를 버리고서 보리를 보려 하면
어디에 불지佛地가 있는지 알지 못하리라.
또 다음과 같이 송했다.
탐욕이 없는 것이 보시보다 수승하고
어리석음 없는 것이 좌선보다 수승하며
성냄이 없는 것이 지계보다 수승하고
잡념이 없는 것이 구도보다 수승하다.
낮에는 범부의 일을 경영하다가
밤이면 편안히 잠이 든다.
추울 때에는 불을 향해 앉으니
불은 본래 연기가 없다.
흑암녀黑暗女를 두려워하지 않고
공덕천功德天을 구하지도 않는다.
인연 따라 방편을 내니
모두 함께 반야선般若船을 타네.
만일 이렇게 배운다면
공덕이 실로 끝이 없으리.
또 다음과 같이 송했다.
세상 사람은 방로龐老를 미워하나
방로는 그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문을 열고 벗을 기다리나
벗은 찾아오지 않는다.
한 알의 환약으로 만 가지 병 고치니
여러 가지 약방문이 필요하지 않도다.
또 다음과 같이 송했다.
마음이 여여하면
정신도 저절로 공해지나니
약을 먹지 않아도
병이 저절로 없어진다.
병이 없어지고 나면
연꽃 같은 여의주를 저절로 보게 되어
수고로운 일 없어지니
바쁘게 설치지 말라.
지혜로운 이는 재색을 보되
환같이 허망한 줄 아나니
의식衣食은 몸을 지탱하는 것,
여여한 도리를 배우라 권하노라.
때가 되어 암자를 떠나갈 때에는
채울 것이 아무것도 없다.
또 다음과 같이 송했다.
탐욕과 성냄을 멈추려 않고
공연히 애를 써서 주석서만 외운다.
약방문만 보고 먹지 않으면
병이 어떻게 없어지리오.
공을 취하니, 공이 곧 색이요
색을 취하니, 색은 무상無常한 것이다.
색과 공은 나의 것이 아니니
단정히 앉아서 고향을 찾는다.
또 다음과 같이 송했다.
사람에게 한 권의 경이 있나니
형상도 없고 이름도 없다.
읽을 줄 아는 이 아무도 없고
나[我]에게 집착한 이, 들을 줄 모른다.
누군가가 풀어 읽을 줄 안다면
진리에 들어가 무상無常의 이치를 알리라.
보살의 도를 이야기한 것도 아니요,
부처가 되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거사가 입적할 무렵, 딸을 시켜 물을 데우게 하여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고는 평상에 단정히 앉아서 딸에게 뒷일을 당부한 뒤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는 해가 한나절 되는 것을 보거든 와서 이야기하라.”
딸이 분부대로 보고 와서 알렸다.
“사시巳時 또는 오시午時가 된 듯한데 일식을 하고 있습니다.”
거사가 말했다.
“어찌 그럴 수가 있겠는가?”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서 직접 보러 나가는데, 그 딸이 얼른 평상을 찾아 걸터앉고서 단정히 천화遷化하니, 아버지가 돌아보면서 말했다.
“장하구나, 말은 내가 먼저 했으나 떠나기는 나중이 되었구나.”
이 일로 인해 거사는 이레를 늦게 입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