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기행> 8. 장쑤성(江蘇省)<3>
죽림칠현(그림) / 죽림칠현 은거지(隱居地)
<7> 운대산(雲臺山) 죽림칠현(竹林七賢)
죽림칠현은 중국 위(魏)나라 말기, 실세였던 사마씨(司馬氏) 일족들이 국정을 장악하고 전횡(專橫)을 일삼자 이에 등을 돌리고 노장(老莊)의 무위자연사상(無爲自然思想)에 심취했던 지식인들을 일컫는다.
노장사상(老莊思想)에 빠져 있던 혜강(嵆康), 완적(阮籍), 산도(山濤), 향수(向秀), 유영(劉伶), 완함(阮咸), 왕융(王戎) 등 7인의 현자(賢者)들은 세속(世俗)를 피하여 이곳에 은거(隱居)하였다.
이곳 운대산은 AD 300년, 진(晉)나라 초기 죽림칠현(竹林七賢)이 은거하였다는 백가암(百家岩)이 있다.
노장사상(老莊思想)은 위진남북조시대(魏晉南北朝時代) 노자(老子)와 장자(莊子) 등, 도가(道家)의 학자들이 인위적인 도덕이나 제도를 배격하고 자연의 순리에 따를 것을 주장하던 학문의 일파이다.
중국 학문의 뿌리는 공자(孔子: BC 6세기)와 맹자(孟子: BC 4세기)에 의해 인(仁)을 기초로 한 유학(儒學)의 기틀이 세워졌는데 연이어 불교가 들어오면서 유학(儒道)과 껄끄러운 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식인들은 제각기 새로운 덕목들을 내세워 제자백가(諸子百家)로 불릴 만큼 각양각색의 학파(學派)들이 난립(亂立)하였다.
그중 하나가 신선사상(神仙思想)을 근본으로 하는 도가(道家), 일명 도교(道教)인데 음양(陰陽), 오행(五行), 복서(卜筮), 무축(巫祝), 도참(圖讖/참위<讖緯>) 등을 더하고 불교의 영향을 받아 성립되었다.
▶도참(圖讖)-미래의 예언 ※참위(讖緯)도 도참과 같은 의미이다. ▶복서(卜筮)-점치기
<8> 역사의 도시 장쑤성 성도(省都) 난징(南京)
난징(南京) 기차역 / 명대(明代)에 쌓은 성곽 유적
양쯔강(揚子江) 하구의 장쑤성(江苏省) 난징(南京)은 춘추전국시대 초(楚)나라의 왕도(王都)였는데 이후 많은 제국(諸國)들이 도읍(都邑)으로 삼았던 역사 깊은 도시로, 남경(南京)이라는 말 자체가 남쪽의 수도(首都)라는 뜻이겠다.
난징은 명대(明代)에 쌓은 성곽도 남아있고 명(明)나라의 고궁(古宮), 쑨원(孫文)의 무덤인 중산릉(中山陵), 명나라 홍무제(洪武帝/주원장)의 효릉(孝陵), 링구사(靈谷寺) 등 볼거리도 많은 곳이다.
이곳은 연중 날씨가 온화한 날씨 탓인지 도시 전체가 울창한 숲으로 덮여 있는 느낌이며 가로수도 수령(樹齡)이 오래된 고목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 것도 이채롭다. 해산물이 주재료인 광동요리(廣東料理/중국 남부지방)는 우리 입맛에도 잘 맞는다. 중국이 자랑하는 난징박물원(南京博物院)은 선사시대 유물도 많이 전시되어 있고 우리나라 백제(百濟) 유물과 유사한 유물도 많이 전시되어 그 연관성이 주목된단다. 중국은 우리와 달리 박물관(博物館)이라 하지 않고 끝에 원(院)을 붙이는 것이 특이하다. 난징박물원에는 국보급 유물은 물론 선사시대 이래로 농경문화(農耕文化) 유물들과 서화(書畵), 도자기(陶瓷器), 공예(工藝) 예술품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
회족(回族) 식당 아가씨 / 난징 박물원 유물 / 거리의 남생이 장수
중국은 국토가 워낙 넓고 소수민족(55개 소수민족)이 많이 살고 있어서 그런지 지역마다 복색(服色)도 다르고 생활수준이나 가치관도 큰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도시권과 시골 지역의 생활수준 격차가 너무 큰 탓도 차이의 원인이 되겠지만 곳곳에서 중국인 특유의 공통적인 생활문화를 엿볼 수 있어서 재미있다.
청두(成都) 무후사(武侯祠) 앞에서 본 살아있는 남생이 장수, 이름 모를 열매로 장식품(열쇠고리 모양)을 만들어 파는 사람, 절에 가면 엄청나게 굵고 많은 향을 바쳐서 경내는 그 향이 타는 연기로 항상 자욱한데 무슨 소원을 비는지 수없이 절을 해 대는 중국인들, 화장실에 변기를 나란히 두 개 설치한 것은 함께 변을 보며 담소를 나누라는 것인지.....
내가 먼저 ‘여행 에피소드’에서 쓴 것처럼 기차 안에서 술을 마시고 그렇게 시끄럽게 떠들었는데도 중국인들은 인상 한 번 찡그리지 않고 함께 웃는다. 우리나라 경우라면 곧바로 경찰을 부르던지 조용히 하라고 큰소리가 오갔을 것이다. 나는 촌스러워서 그런지 이런 중국 문화가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우리나라는 언제부터인가 인심이 각박해졌고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참지를 못한다. 경제적 여유가 생긴 때문일까? 유럽이나 미주 쪽을 여행하면서도 항상 느꼈던 것은 그 사람들은 처음 보는 여행객에게도 따뜻한 미소와 목례(目禮)를 보내며 항상 상대방을 배려하는 태도를 보인다. 우리도 조금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그리고 자신을 낮추는 관용의 미덕을 익히는 것이 필요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