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화수경 제10권
34. 법문품[2]
[삼매의 문, 한 모양 삼매와 뭇 모양 삼매]
견의여, 여래가 설하신 여러 삼매(三昧)의 문이란 어떤 것인가?
한 모양[一相] 삼매가 있고 뭇 모양[衆相] 삼매가 있느니라.
[한 모양 삼매]
한 모양 삼매란 것은,
보살이 있어서 어느 세계에 어느 여래가 현재 설법하고 계신다는 것을 들으면, 보살이 그 부처님의 모양을 취하여 지금 앞에 있게 하고,
만일 도량에 앉았으면 위없는 보리를 얻고, 법 바퀴를 굴리고, 혹은 대중과 함께 에워싸여 법을 설하고 계신다.
이와 같은 모양을 취하여 어지럽게 생각하지 않고 여러 근(根)을 지켜 거두어들여서 마음이 흩어지지 않게 하여 한 부처님을 오로지 생각하여 이 연(緣)을 버리지 않으며,
또한 이 부처님 세계의 모양을 생각하여 이 보살은 여래의 모양과 세계의 모양에서 모양 없음을 통달하여 이와 같이 늘 행하고 관하여 이 연을 여의지 않으면,
이때에 부처님의 상(像)이 곧 나타나 앞에 있어 법을 설하리라.
이때에 보살은 공경함을 깊이 내어 이 법을 듣고 받아서 신해(信解)함을 따라 깊거나 혹은 얕거나 더욱 공경함을 더하여 여래를 존중하리라.
보살은 이 삼매에 머물러 여러 법은 모두 헐어지고 패하는 모양이라고 설하심을 듣느니라.
듣고 난 뒤 받아 지니어, 삼매를 따라 일어나 능히 사부대중을 위하여 이 법을 설하느니라.
견의여, 이것을 이름하여 ‘한 모양 삼매문에 들어간다’ 하느니라.
다시 견의여, 보살은 이 삼매에 머물러 도로 능히 이 불상의 연을 헐어 멸하고, 또한 자신도 헐어 버리느니라.
모양을 허물어뜨림으로써 온갖 법을 헐고, 온갖 법을 허물어뜨리는 까닭에 한 모양 삼매에 들어가고,
이 삼매에서 일어나 사부대중을 위하여 이 법을 해설하느니라.
견의여, 이것을 이름하여 한 모양 삼매문에 들어가는 방편이라고 하느니라.
또 견의여, 보살은 이 불상으로 반연하여 생각하기를
‘이 불상은 어디에서 왔으며, 나는 어디로 가는가’ 한 후에
그 불상이 온 곳이 없고 그도 이른 데가 없는 것을 알 것이다.
보살이 그때에 이 생각을 하고 말하기를
‘온갖 여러 법도 또한 이와 같아서, 좇아 온 데도 없고 가도 이를 데가 없다’고 하리라.
보살이 이와 같이 행하고 생각하면, 오래지 않아서 걸림 없는 법의 눈을 반드시 얻으리라.
법의 눈을 얻고 나면 여러 부처님께서 알아 생각하시는 바가 되며,
여러 깊은 법이 모두 앞에 나타나 있으리라.
이 깊은 법으로 걸림 없는 변재를 얻으며, 비록 법을 강설하지만 법을 보지는 못하리라.
견의여, 여래는 지나간 세상에 걸림 없는 지혜가 있었느니라.
또한 여러 모양 가운데 지혜도 걸림이 없었느니라.
지나간 세상에 또한 연을 짓지 않았으며 추억하는 마음을 따르지 않을 것을 알았느니라.
견의여, 보살도 또한 이와 같아서 삼매에 머물러 비록 법을 설하지만 이 법을 보지 못하느니라. 보살은 이 삼매에 머물러서 깊이 닦아 익히기 때문이니라.
듣는 인연에 따라 제2의 부처님의 모양을 취하여 앞에 나타나리니, 도량에 앉아 위없는 보리를 얻고, 법 바퀴를 굴리고, 혹은 대중에게 에워싸여 법을 설하시면, 보살은 또한 이 제2의 부처님 법을 받아 지니느니라.
본래의 부처님의 모양을 또한 버리지 않고, 또한 이 부처님께 뵈이나니, 이 보살은 함께 두 부처님께 반연하여 모양을 취하여 앞에 나타나 법 설하심을 받아 듣느니라.
견의여, 이것을 또한 이름하여 한 모양 삼매 문에 들어갔다고 하느니라.
다시 견의여, 보살은 한 부처님의 모양을 잘 닦아 익힌 때문에, 여러 부처님께 뵙고자 하면 뜻대로 모두 능히 앞에 나타나느니라.
견의여, 비유하자면 마치 비구가 마음에 자재함을 얻어 온갖 사람을 관하여 푸른 빛깔의 모양을 취하면, 능히 온갖 세계를 모두 한 푸른 빛깔 모양으로 할 수 있는 것과 같으니라.
이 사람의 반연한 바는 오직 한 푸른 빛깔로써 안팎의 법을 관하기를 모두 한 푸른 빛깔로 함이니, 이 연 가운데 자재한 힘을 얻은 때문이니라.
견의여, 보살도 또한 이와 같아서, 그 들음에 따라 여러 부처님의 이름이 어떤 세계에 있을지라도 곧 이 부처님과 세계의 모양이 모두 반연하여 앞에 나타나리니, 보살이 이것을 잘 닦아 익혀서 부처님의 연을 생각한 까닭이니라.
여러 세계를 관하여 모두 다 부처님께서 되나니, 언제나 이 관하는 힘을 잘 닦아 익힌 때문이며,
문득 온갖 여러 가지 연을 능히 요달하여 모두 한 연으로 만드는 것을 부처님의 연이 나타나 있다고 하니,
이것을 이름하여 한 모양 삼매문이라 하느니라.”
견의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무슨 방편으로 이 삼매를 얻으셨나이까?”
부처님께서 견의에게 말씀하셨다.
“이 부처님 연에 생각을 붙잡아 매어서 흩지 않으면 이 연을 여의지 않나니, 이것도 삼매의 문이라 이름하느니라.
견의여, 이 한 연으로써 여러 가지 법을 요달하여 온갖 법이 모조리 같은 모양임을 보나니, 이것을 한 모양 삼매라고 이름하느니라.”
보살은 이 삼매에 머물러서 또 한 법의 문에 들어가나니,
말하자면 온갖 말은 모두 여래의 말씀이요, 온갖 있는 몸은 모두 여래의 몸이니 여(如)를 여의지 않기 때문이니라.
[뭇 모양의 삼매의 문]
다시 견의여, 보살이 여러 부처님의 이름을 듣기를 둘, 셋, 넷, 다섯, 열, 스물, 서른, 마흔, 쉰, 백, 천, 만이 지나가도 한 때 오로지 생각하면 모두 나타나 앞에 계시며, 여러 세계의 제자 대중이 나타나 앞에 있어 공경하고 존중하리라.
또한 이 부처님께서 갖추신 묘한 몸ㆍ형상ㆍ빛깔ㆍ상호를 생각하면 모두 나타나 앞에 계시리니, 공경하고 존중히 할 것이며,
또한 낱낱이 32대인의 모양과 불허행상(不虛行相)과 사자분신상(師子奮迅相)과 무견정상(無見頂相)과 상왕관상(象王觀相)과 취대광상(取大光相)을 취하여 신해(信解)로써 한량없는 모양을 관하여 지으며,
또한 여러 부처님 세계의 모양을 취하여 신해로써 한량없는 청정한 모양을 관하여 지으며,
또한 제자 대중을 취하여 신해로써 한량없는 모양을 관하여 짓느니라.
그때에 이런 생각을 하리라.
‘이와 같은 여러 부처님께서는 어디서 왔으며, 나는 어디에서 와 이르렀는가?’
즉시 여러 부처님과 자기 몸은 좇아 온 곳도 없고 또한 이른 곳도 없는 것을 알고, 관하여 이와 같이 믿어 알리라.
이때에 보살은 이와 같은 생각을 하리라.
‘이와 같은 일 가운데는 정한 법에 여래라고 이름함이 없다.
이와 같이 관할 때에 온갖 법은 공(空)ㆍ무소유(無所有)ㆍ일상(一相)ㆍ무상(無相)임을 알 것이니라.
무상(無相)의 문을 써서 온갖 법에 들어가나니, 이와 같이 믿고 알아 온갖 여러 법이 한 모양임을 통달하여 알 것이니라.
견의여, 보살은 여러 부처님을 능히 연하여 생각을 한 곳에 붙잡아 매나니, 이것을 뭇 모양의 삼매의 문이라 이름하느니라.
견의여, 만일 이 보살이 삼매에 들어 여러 가지 법의 한 모양과 모양 없음을 요달하면 이것을 뭇 모양의 삼매라고 이름하느니라.
보살이 이 삼매에 머물러 아는 것과 보는 것은 여래 아님이 없느니라.
또한 여래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느니라.
아는 것과 보는 것도 이 법 아닌 것이 없되 또한 법을 보지 못하느니라.
알고 보는 것이 모두 부처님의 제자로되, 또한 부처님 제자 대중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느니라.
아는 것과 보는 것이 설법 아닌 것이 없되, 또한 설법함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느니라.
보고 아는 것이 연 아닌 것이 없되 연을 또한 보지 못하느니라.
보고 아는 것이 이 변재(辯才) 아닌 것이 없되 변재를 또한 보지 못하느니라.
여러 가지 보는 것이 불도 아닌 것이 없으되 불도를 또한 보지 못하느니라.
여러 가지 보는 것이 세계 아닌 것이 없으되 세계를 또한 보지 못하느니라.
여러 가지 보는 것이 대중의 모임 아닌 것이 없되 대중 모임을 또한 보지 못하느니라.
법을 설하지 않는 것이 없되 설한 것이 없으며,
법이 나타나지 않음이 없되 나타난 것이 또한 없으며,
믿어 알지 않는 것이 없되 믿어 아는 것이 또한 없으며,
분별 아닌 것이 없되 분별이 또한 없으며,
법이 헐어지지 않음이 없되 헐어지는 것이 또한 없으며,
법이 나오지 않음이 없되 나온 것이 또한 없으며,
법이 비추지 않음이 없되 비춘 것이 또한 없느니라.
견의여, 이것을 여러 보살의 삼매의 몸이라 이름하느니라.
이 문에 들어간 이는 반드시 여러 법에 걸림 없는 지혜를 얻고 이렇게 능히 관함을 걸림 없는 눈이라고 이름하며
이 일 가운데 탐착하지 않으면 이를 법의 눈이라고 이름하느니라.
견의여, 보살은 이 삼매로써 걸림 없고 가없는 변재를 능히 얻느니라.”
[오는 세상의 보살들의 삼매]
그때에 견의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몇 군데의 보살이 오는 세상에 삼매를 이루어 한량없고 가없는 변재를 얻으며, 어떤 보살들이 오는 세상에 삼매를 이루어 한량없고 가없는 변재를 능히 얻으리까?”
“견의여, 보살이 만일 뒷세상에 비구로부터 이 삼매를 들을 것 같으면, 이 비구는 삼매를 이루어 가없고 한량없는 변재를 능히 얻은 것이니라.
견의여, 그대가 물은 대로, 몇 군데의 보살이 이 삼매를 이루어 가없는 변재를 얻었느냐?
이 삼매를 늘 닦는 이는 능히 이 삼매를 이루고, 또한 한량없고 가없는 변재를 얻으리라.
견의여, 이 문은 8백의 법 갈무리를 능히 여나니, 현재 아촉(阿閦) 불토의 여러 보살들이 이 문을 늘 쓰느니라.
[중구문]
견의여, 이 한 문에서 온갖 법의 문과 여러 삼매의 눈을 거두어 잡나니, 이것을 중구문(重句門)이라 이름하느니라.
이런 까닭에 견의여, 만일 사람이 법답게 이 삼매의 문, 중구문에 들어가고자 하는 이는 여러 선지식을 친하고 가까이하여 묻되,
어떻게 행하며 관찰하며 닦아 익히리까 하여 그 가르침을 따라 말대로 닦아 행해야 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