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 흰 연꽃을 든 보살
옛날을 생각할 때마다 어쩔 수 없는 슬픔에 잠기게 된다. 과거를 회상한다는 것은 곧 내 동포들의 엄청난 고통에 대한 회상에 다름 아니다. 물론 예전의 티벳이 완벽한 나라였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풍속에는 상당히 훌륭한 점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우리는 보존할 가치가 있는 많은 것들을 이젠 영영 잃어버리고 말았다. (9)
사람에 따라 달라이 라마라는 칭호에 대한 이미지가 제각기 다르겠지만, 내게 있어서는 그 칭호가 나의 신성한 직책을 환기시켜줄 따름이라는 얘기는 이미 하였다......티벳 불교는 다시 태어나는 방식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몇몇 특수한 존재만을 인정할 뿐인데, 달라이 라마도 그러한 존재일 따름이다. 티벳에서는 이러한 존재를 ‘툴쿠(化身)’라 한다. (10)
우리집엔 여느 집들과 달리 처마에 물받이가 있었다. 노간주 나무 가지로 만든 그 물받이는 빗물을 받아내리기 위해 가운데에 홈을 파놓았다. (14)
내가 태어날 당시에 있었던, 아버지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그때 아버지는 몇 주일 동안 침대에서 꼼짝 못하고 앓아누워 계셨는데, 아무도 그 병의 원인을 알 수 없어서 돌아가시기만을 기다리는 형편이었다. 그렇게 앓던 분이 내가 태어난 날 갑자기 회복되셨다. 그 이유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 (15)
물론 내가 보통 아이와 다르게 되리라는 생각 [달라이 라마가 되리라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못했으리라. 한 가정에 화신이 둘이나 탄생한다는 것은 거의 기대할 수 없는 일이었고, 우리 부모님 역시 내가 후에 달라이 라마라 불리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아버지가 병환에서 갑자기 회복된 것은 길조임에 틀림없었으나 누구도 그것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나 역시 내 미래에 대해 특별한 암시를 가진 적이 없었다. 내 어렸을 때의 기억은 평범한 것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최초의 기억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만 나는 그렇진 않는다.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는 편을 갈라 싸움질하는 아이들을 보고 약한 쪽에 힘을 보태주려고 달려갔던 기억, 그리고 처음으로 낙타를 보았던 기억이 있다.(16)
특히 재미있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은......또 하나 내가 좋아한 놀이는 먼 여행을 떠나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가방에 잠을 꾸리는 일이었다. 이것은 내가 언제나 식탁의 상석에 앉으려고 고집을 부린 사실과 함께, 나 스스로 후에 큰 인물이 되리라는 것을 일찍부터 알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사례라고 사람들은 말하곤 했다. 나는 어렸을 때 나의 미래에 관련된 것으로 생각되는 꿈을 여러 번 꾼 적이 있다. 그러나 그때 내가 나 자신의 미래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다. 나중에 어머니는 내가 보통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주었던 것 같은 몇 가지 사례를 내게 얘기한 적이 있다. 그 사례라는 것은 내 밥그릇을 어머니 외엔 누구도 만지지 못하게 했다든가, 낯선 사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든가 하는 것 따위이다. (17)
불교의 근본개념은 [현상계의 여러 가지 사물들이 서로 의존해서 생긴다고 하는] 연기(緣起)와 인과(因果)의 법칙이다. 이것은 간단히 말해서 사람이 경험하는 것은 모두 동기가 있는 행위에서 비롯된다고 보는 법칙이다. 그러므로 동기는 행위와 경험의 뿌리이다. 이러한 인식으로부터 ‘의식(意識)’과 ‘윤회’에 대한 불교적 이론이 구축된다.
우선 의식에 대해서 말하자면, 원인이 결과를 낳고 그 결과가 다시 원인이 되어 또 결과를 낳기 때문에 의식은 연속된다고 본다. 의식은 한순간에서 그 다음 순간으로 흘러가면서 경험과 인상을 축적한다. 육체의 죽음에 이른 한 개체의 의식에는 과거의 모든 경험과 인상이 각인되어 있으며, 그것에 선행하는 행위 또한 그 의식에 내포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행위(行爲)’라는 의미를 가진 카르마Karma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몸-동물이나 사람, 혹은 신의 몸-에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은 카르마를 수반하는 의식이다. (18)
불교도들은 의식이란 본래 중립적인 것이기 때문에, 존재자인 한 회피할 수 없는 삶, 고통, 죽음, 그리고 윤회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러한 해탈은 오로지, 나쁜 카르마를 제거하고 세속적 집착에서 벗어날 때라야만 가능하다고 한다. 이러한 경지에 도달해야만 비로소 의식은 자유로워지고, 궁극적으로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깨달음을 얻은 존재는, 티벳 불교의 전통에 따르면, ‘윤회’, 즉 삼사라Samsara로부터 자유로워져서 존재자의 실상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에 고통 받는 중생들이 모두 고통에서 벗어나게 될 때까지 그들을 돕기 위해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된다. (19)
나는 앞서간 열세 명의 달라이 라마(제1대 달라이 라마는 서기 1351년에 태어났다)의 화신으로 여겨진다. 달라이 라마는 범어로는 아발로키테쉬바라Avalokiteshvara라 하고, 티벳어로는 첸레직Chenrezig이라 하는 관세음보살, 즉 흰 연꽃을 든 보살의 화신이다. 실제로 붓다 샤카무니 당시에 살았던 한 브라만 소년에까지 소급하면 나는 74대째가 된다. 이러한 것을 진짜로 믿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여기에 대해선 대답이 간단하지 않다. 그러나 이제 쉰 여섯이라는 나이를 먹고 이생에서의 경험을 돌이켜보거나, 또 내 개인적인 종교체험에서 볼 때, 나보다 앞서간 열 세 명의 달라이 라마와 첸레직, 그리고 붓다가 나와 영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은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다. (19)
내가 만 세 살이 되기도 전에 달라이 라마의 환생을 찾기 외해 정부가 보낸 일단의 관리들이 쿰붐 사원에 도착했다. 그들은 몇 가지 조짐을 보고 그리고 오게 된 것이었다. 그 조짐들 중 하나는 13대 달라이 라마인 툽텐 갸초의 시신에 관련된 것이었다. 13대 달라이 라마는 1933년에 쉰 일곱을 일기로 돌아갔는데, 국무회의가 열리는 동안에 남쪽으로 향해있던 시신의 머리가 북동쪽으로 돌려진 것이 발견되었다. 그 바로 직후 고위 라마승인 섭정이 환상을 보았다. 섭정은 남부 티벳에 있는 신성한 호수 라모이 라초의 물을 바라보고 있던 중에 티벳문자 Ah와 Ka, 그리고 Ma자가 물 위에 떠 있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그리고 청록색과 황금색으로 된 지붕을 이고 있는 3층 사원과, 그 사원에서 언덕으로 이어지는 좁다란 길이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엔 이상한 모양을 한 빗물받이 홈통이 있는 조그마한 집을 보았다. 그는 Ah가 북동 지방인 암도를 가리키는 것임을 확신하였다. 그래서 파견단을 그리고 보내게 된 것이다.
파견단은 쿰붐에 도착해서는 제대로 찾아왔다는 것을 느꼈다. Ah가 암도를 가리키는 것이라면 Ka는 쿰붐 사원을 가리키는 것이 틀림없겠기 때문이었다. 그 사원은 실제로 3층으로 되어 있었으며, 지붕은 청록색이었다. 이제 그들은 언덕과, 이상한 물받이가 있는 오두막을 찾아내어야 했다.......
......아기는 그를 알아보고 “세라 라마, 세라 라마”하고 소리쳤다. 세라는 규창 린포체가 있던 사원 이름이었다......이번에는 13대 달라이 라마가 쓰던 소지품들과, 그와 비슷하지만 13대 달라이 라마의 소지품이 아닌 물건들을 함께 가지고 왔다. 아기는 소지품이 앞에 놓일 때마다 “이건 내꺼야, 이건 내꺼야”하며 13대 달라이 라마의 소지품을 정확히 가려내었다......물론 나는 이 모든 일을 다 기억하진 못한다. 나는 너무 어렸었다. 단 하나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꿰뚫는 듯한 눈빛을 가진 한 사람뿐이다. 나중에 그의 이름이 켄랍 텐진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후에 나의 예복담당관이 되었으며, 내게 글 쓰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19~20)
거기에 도착한 후에 열린 축제는 내게 티벳 국민에 대한 영적 지도력을 부여한다는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축제는 온종일 계속되었다. 그때 기억도 흐릿하기는 하지만 비로소 진짜 내 집에 돌아왔다는 안도감을 느꼈었다. 사람들이 끝없이 몰려들었다.......누구에게 들어봐도 그때 나는 겨우 네 살 된 아이치고는 꽤 의젓했다고들 한다. 그것은 내가 진짜 달라이 라마의 환생인지 지켜보기 위해 온 한두 명의 최고위 승려의 눈에도 그러했던 것 같다. (23)
달라이 라마/ 유배된 자유 중에서 (정신세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