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은 드넓다. 14개 읍·면을 거느려 군 단위로는 전라남도에서 제일 크다. 높은 산은 없지만 두륜산, 달마산 등 바구니를 엎어놓은 듯한 야트막한 산들이 들판을 감싸고 있다. 산허리 한 굽이를 넘어서자 시야가 넓게 펼쳐진다. 붉은 황토밭에 배추와 고구마 등 농작물을 짓는 시골의 정경이 안온하게 느껴진다. | |
해남은 원시적인 도로와 불편한 교통수단에 의존했던 옛날에는 남녘 땅 끝 바닷가에 버려진 궁벽한 지역이었다. 과거 바다 기슭의 후미진 구부렁이란 뜻의 새금(塞琴), ‘바닷물에 잠기는 땅’이란 뜻으로 침명(浸溟), 또는 ‘물가에 버려진 땅’이라는 투빈(投濱) 등으로 불렸다. 고려 초에 침명현이 해남현으로 바뀌면서 해남으로 불리기 시작했으며, 조선시대 때는 해진현이었다가 1985년에 해남군으로 고쳐졌고 1955년 해남면이 읍으로 승격, 오늘에 이르고 있다. | |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해남을 “서울에서 먼 곳에 있으며 겨울에 초목이 마르지 않고 벌레가 움츠리지 않는 곳”이라고 했다. 겨울에도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일이 별로 없고 추워 봤자 영하 2, 3도가 보통이다. 지금은 강원도 고랭지채소에 밀려 예전만큼 그 명성을 얻지 못하지만 해남은 국내 최대의 배추 산지이다. 겨우내 해풍을 견디고 얼었다 녹았다 하며 튼실하게 자란 배추는 첫맛부터 끝맛까지 달다. 낮은 구릉에는 누런 황토가 아닌 시뻘건 황토가 시각적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 황토 밑에는 이 지역 특산물인 고구마가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다. 시인 고정희는 ‘남도행’이란 시에서 “칠월 백중날 고향집 떠올리며/그리운 해남으로 달려가는 길…(중략) 그림 같은 산과 들에 절하고 싶어라/무릎 꿇고 남도 땅에 입 맞추고 싶어라”라며 해남에 대한 애정을 표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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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우단은 호남지방에서 가장 연대가 오래됐으며 규모가 큰 민가로서 대문, 사랑채, 사당 및 제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ㄷ자로 남향해 앉은 고옥(古屋)은 원래가 수원에 있었던 것. 세자시절 가르침을 받았던 효종이 고산 윤선도를 늘 곁에 두고 싶어 수원에 이 집을 지어 주었으나 효종이 승하하고 조신들의 모함에 낙향하게 되자 옛 왕과의 정을 생각해 집을 여기로 옮긴 것이다. 사당은 안채 뒤 동쪽 담장 안에 한 채가 있고 담장 밖에 고산서당이 있다. 뒤편 동북쪽 숲 속에는 어초은의 제실인 추원당(追遠堂)이 있다. 입구에는 수령 500년, 높이 20m의 은행나무가 예쁜 기와돌담을 배경으로 서 있다. 뒷산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비자나무숲이 우거져 있다. 녹우당 옆 400m 오솔길을 걸으면 비자나무숲이 나온다. 빽빽이 들어선 비자나무숲 사이에 송림과 활엽수림이 간간히 섞여 있다. 해남 윤씨의 선조가 “뒷산의 바위가 드러나면 마을이 가난해진다”고 해서 후손들이 정성으로 숲을 가꿨다고 한다. | |
녹우단과 녹우당을 헷갈리는 사람이 있을지 몰라 밝히면 고산 윤선도가 기거하던 사랑채가 녹우당이고, 녹우당을 포함한 해남 윤씨 종택을 녹우단이라 부른다. ‘녹우’(綠雨)란 녹우단이 들어선 뒷산의 비자나무숲이 바람에 흔들리면 우수수 봄비 내리는 소리처럼 들린다고 해서 붙어진 이름이다. 녹우당 편액은 공재 윤두서의 친구이자, 성호 이익의 이복형인 옥동(玉洞) 이서(李漵)의 글씨이다. | |
해남읍에서 동남으로 12㎞를 달리면 조계종 제22교구의 본사인 대흥사에 이른다. 신라 진흥왕 5년(544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한 후 수차례의 중건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일찍이 서산대사가 전쟁을 비롯한 삼재(三災)가 미치지 못해 만년 동안 흐트러지지 않을 땅이라 하여 그의 유물을 이곳에 보관토록 한 명당 터다. | |
13대종사(大宗師)와 13대강사(大講師)를 배출한 유서를 자랑하는 이 절은 입구까지의 산책로가 정겹다. 동구로부터 산문까지 약 4㎞의 산로(山路)는 삼나무를 비롯한 원시림처럼 무성한 짙은 녹음 속에 싸여 있다. 숨을 깊이 들이쉬면 푸른 기운이 몸 안에 가득 들어찬다. 송림과 잡목 사이로는 계곡물이 흘려 속세의 시름을 잊게 한다. 한걸음에 봄 향기를 느끼고, 또 한걸음에 숲 내음을 좇는다. 이 길을 두고 옛 사람들은 구곡장춘(九曲長春)이라고 했다. 봄 길이 그만큼 길고 좋다는 뜻이다. 대흥사 또한 청초한 좌우의 환경과 어울러서 이름난 도량으로서 부끄러움이 없다. 시냇물에 의지한 침계구(枕溪樓)를 위시하여 대웅보전, 천불전, 무량수각 등의 규모도 장엄하려니와 각종 건물의 현판이 원교 이광사, 완당 김정희 등 명필들의 필적으로 되어 있는 것이 눈에 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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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안에 있는 유교 형식의 사당인 표충사는 1789년에 건립됐으며 서산대사와 그의 문도인 사명(四溟)대사, 뇌묵(雷黙)대사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다. 대웅전 법당에서 동남으로 오솔길을 30분쯤 걸어 들어가면 차의 명인이자 거장인 초의선사가 정진하던 일지암(一枝庵)의 옛 터가 있다. 화려하지 않고 단출한 정감을 주던 일지암은 최근 대웅전, 문화센터 등이 들어서면서 자유인의 차(茶)마음을 우려내고자 했던 선사의 뜻이 퇴색된 된 것 같아 아쉽다. | |
한반도 최남단은 북위 34도 17분 21초의 해남군 송지면 갈두산 사자봉 땅끝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우리나라 남쪽 기점을 이곳으로 잡고 북으로는 함경북도 온성부에 이른다고 말하고 있다. 육당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에서는 해남 땅끝에서 서울까지 천리, 서울에서 함경북도 온성까지를 이천리를 잡아 삼천리 금수강산이라고 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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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봉 정상에 있는 전망대에 올라 수평선을 바라보면 진도를 비롯해 어룡도, 백일도, 흑일도, 조도 등 크고 작은 섬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갈두리 선착장에서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노화도와 보길도를 오가는 연락선의 모습을 보며 가슴에 묻어 둔 것들을 훌훌 털어 버린다. 시인 김지하는 “땅 끝에 서서 더는 갈 곳 없는 땅 끝에 서서/돌아갈 수 없는 막바지 새 되어서 날거나 고기 되어서 숨거나…(중략) 내 마음속에 차츰 크게 열리어/저 바다만큼 저 하늘만큼 열린다”며 내면의 아쉬움과 시원함을 읊었다. 땅끝 전망대에서 땅끝탑까지는 산책로가 나 있다. 내리막이지만 계단과 나무 데크가 이어져 걷기에 부담스럽지 않다. 땅끝탑을 구경하고 거슬러 오르면 길이 세 갈래로 나뉜다. 최근 이곳에서 송호 오토캠핑장으로의 탐방로가 ‘걷기여행’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해안 절벽을 따라 길게 이어진 탐방로에는 팽나무, 후박나무, 후피향나무, 사철나무 등이 우거져 있다. 고개를 돌리면 시리도록 푸른 하늘과 그 빛을 고스란히 담은 남해가 손에 잡힐 듯 펼쳐진다. 그 멋스러움에 몇 발짝 옮기지도 못하고 자꾸 걸음이 멈춰진다. | |
오르고 내리고 굽이굽이 돌아나가는 길을 한참 걷다보면 중리라는 마을에 닿는다. 드라마 <허준>을 촬영한 곳으로 이곳까지 정비된 산책로는 깔끔하며 고즈넉하니 걷기여행으로 최고의 진가를 발휘한다. 중리 마을과 건너편 대섬 사이에 물 갈림 현상이 하루에 두 번 일어난다. | |
미황사는 해남군 송지면 달마산(489m) 중턱에 있다. 달마산은 백두대간의 맥이 마지막으로 솟아올라 이루어진 두륜산의 끝자락에 이어진 산으로 이곳의 지맥이 바다를 통해 한라산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남도의 금강산’으로 칭송될 만큼 산세가 수려해 기암괴봉이 등줄기를 따라 줄지어 솟아올라 변화하는 풍광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 |
미황사는 달마산의 돌병풍을 뒤에 둘러치고, 해남과 진도 일원의 다도해를 앞마당 삼아 뛰어난 풍광을 지닌 고찰이다. 절에서 내려다보면 다도해의 많은 섬이 짐승의 새끼처럼 서로 머리를 맞대고 두런거리는 모양새다. 바다와 맞닿은 들녘은 시간이 갈수록 불그스름한 갈색에서 석양에 달구어진 장엄한 황금빛으로 변해간다. 보물 제947호인 대웅전을 비롯해 여러 당우들이 화려한 단청 옷 대신 속살을 그대로 드러내 훨씬 더 절을 고풍스럽게 하고 있다. 대웅전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주춧돌로 그 위에 물고기, 게 모양 등이 양각되어 있으며 조각된 동물 문형은 토속적인 민간신앙이 불교와 만나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남도 제일의 템플스테이 명소로 각광받고 있지만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대웅전에다 세삼당(洗心堂)과 요사채, 그리고 초라한 공양간 한 집을 거느린 단출한 절이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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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산 암봉을 오르내리다 보면 아슬아슬한 벼랑 사이에 도솔암이 위태롭게 서 있다. 미황사를 창건한 의조화상이 수행 정진을 하던 곳으로 정유재란 때 왜군에 의해 폐사됐던 것을 2002년 여러 스님과 불자의 도움으로 다시 지었다. 이곳에서는 멀리 화첩을 펼친 듯한 남해로 떨어지는 일몰이 장관이다. | |
울돌목은 전남 진도와 해남 화원반도 사이의 수로로 정유재란 때 명량해전의 격전지이다. 좁은 해협으로 매우 빠른 급류가 흐르고 조류가 갑자기 변하기도 한다. 가장 좁은 부분은 폭이 330m, 수심 19m 미만으로 격류가 부딪혀 우레 같은 소리를 내기 때문에 명량 또는 울돌목이라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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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지형을 이용해 이순신 장군은 13척의 배로 왜선 133척을 격파해 명랑대첩을 거뒀다. 또한 수적인 열세를 적군에게 보이지 않기 위해 주민들이 바닷가에서 손을 잡고 돌며 아군이 많아 보이게 했다는 강강수월래의 기원이 있는 곳이다. 충무사에 있는 명량대첩비는 높이 2.67m, 폭 1.14m나 되는 거대한 비석으로 1688년에 이충무공의 명량대첩을 기념하기 위해 당시 우수영에 건립했다. 일제는 임진왜란 때 자기네들이 크게 패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1942년 명량대첩비를 강제로 뜯어다 경복궁 근정전 뒤뜰에 숨겼다. 해방 후 우수영 유지들이 충무공의 유적을 찾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갖은 난관 끝에 찾아내 다시 세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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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진기로 해남을 담는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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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4.13~2009.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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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안고속도로 목포IC에서 2번 국도를 타고 성전을 지나면 해남읍에 닿는다. 5시간 정도 소요. 남해고속도로를 이용할 경우 순천IC에서 빠져 벌교-보성-장흥-강진을 거치면 해남읍까지 내달릴 수 있다. KTX는 서울-목포간 1일 5회 왕복한다. 고속버스는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해남까지 하루에 7회 왕복 운행한다.
해남군청 문화관광과 / 061-530-5229, 5919
해남군 버스터미널 / 061-534-0885
두륜산도립공원 / 061-530-5543
땅끝관광지 / 061-530-5544 | |
천일식당 지역정보
해남읍 농협 뒤에 있다. 80년 전통을 자랑하는 한정식집으로 떡갈비정식(2만 원)은 전국에 알려져 있다. / 061-536-4001
양지가든
고산 윤선도유적지 바로 앞에 있다. 염소탕(8000원), 수육·전골 등 흑염소 요리를 전문으로 하고 있다. / 061-532-7709
호남식당
대흥사 주차장 입구에 있다. 산채정식(4인 기준 7만 원), 산채비빔밥(6000원)과 버섯요리가 맛있다. / 061-534-5500
금강산횟집
진도대교 입구 팔각정 옆에 있다. 20년 전통의 뻘낙지 요리와 모듬회(12만 원), 회덮밥(1만 원)을 잘한다. / 061-535-5114 | |
유선관
대흥사 사찰 입구에 있으며 원래 신도나 수행 승려의 객사로 쓰였다. 영화 <서편제>와 KBS <1박2일> 촬영지로 유명하다.
/ 061-534-3692
땅끝비치모텔 지역정보
땅끝 마을 가까이에 있어서 바다 전망이 좋다. / 061-534-1002
사파이어모텔 지역정보
해남읍에 있으며 시설이 깔끔한 편이다. / 061-537-4825
해남관광호텔
두륜산 케이블카 탑승권 소지 고객에 객실 요금을 최대 40%까지 할인해준다. / 061-533-1222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