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이어 교회
예수님의 오병이어 사건은 벳새다(눅9:10)의 빈들(마14:13)에서 일어났다. 4세기 비잔틴 시대에 벳새다에 교회를 세울 수 없었기 때문에 타브가에 이 사건을 기념하는 교회를 세웠다.
그리스도교 성지 순례기로 유명한 에테리아의 기록에 의하면 주후 383년경에 타브가 지역을 순례 하며 “그곳은 가버나움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거기에는 일곱 샘이 있었고 모두 풍부한 양의 물을 담고 있었다. 그곳에서 예수님께서는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굶주린 군중들을 배불리 먹이셨다. 예수께서 기적을 베푸실 때 떡을 올려놓으셨다고 생각되는 바위 위에 제단을 꾸며 사용하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순례자들은 그 바위가 병과 건강에 효험이 있다고 생각하고 바위조각을 조금씩 떼어가고 있었다고 하였으며, 주후 350년경에 주님이 떡을 올려놓으신 그 바위를 제단으로 하여 기념 성전이 건축 되었다고 그녀는 기록하고 있다.
세례를 받는 물통
권사님이 세례받은지가 언젠데 또다시~
450년 비잔틴 교회를 중건할 때 그 바위를 새로운 제단 밑으로 옮겼고 주변을 모자이크로 장식했다. 사진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바위 앞에 생선 두 마리와 네 개의 빵이 담긴 바구니가 모자이크로 장식되어있다. 떡을 4개만 그린 것은 진정한 생명의 떡이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오병이어 모자이크를 남긴 비잔틴 시대의 화가들은 이 호수 안에 있는 물고기들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던것 같다. 물고기 지느러미가 두 개씩 표현되어 있는데 이 호수에는 두 개의 지느러미를 가진 물고기는 없다.
카페르나움은
예수의 제2의 고향이었으며, 그의 생애 중에 이곳은 수비대 주둔 도시이자 행정중심지, 세관 소재지였다. 예수는 이곳에서 이 지역 출신인 베드로·안드레아·마태오를 제자로 삼고 많은 기적을 일으켰다.
카페르나움은 어느 곳보다도 예수님의 많은 기적이 행해진 곳이기도 하다. 열병으로 누워 있던 시몬 베드로의 장모 치유(마르 1,29-31), 죽었던 야이로의 딸 소생(마르 5,35-43), 망령들린 자의 치유(루가 6,6-11), 중풍병자를 치유시키셨으며(마르 2,1-12), 고관의 아들을 낫게 하신 기적(요한 4,46-53)등, 이외에도 수많은 기적을 행하셨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이곳 크파르나훔에서 제자들을 불러 가르치시고,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병자들을 치유해주시고, 악마에게 사로잡힌이들을 해방시키시고, 기도하시는 일상을 보내셨다.
엔게디 국립공원으로로 가기위해서 1시간30분 정도 버스로 달려야 한다. 가는도중에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들어갔다가 나와야 하는데 체크포인트(우리나라 검문소 같은곳)를 지날때 운전기사가 코리언이라고 큰소리로 외치니 별다른 검문절차없이 통과시켜 주었다. 이곳에서 한국 관광객은 대부분이 성지순례팀이기 때문에 매너가 좋아서 호감도가 높다고 한다.
길가에 바위가 금방이라도 굴러내려서 버스를 덮칠것 같은데 이곳 사람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워낙 비가 오지않는 곳이라서 굴러내릴일이 없다고 한다. 그래도 쪼옴~~
엔게디의 엔은 샘물을 뜻하고 게디는 새끼염소를 가리킨다. 그러니까 엔게디는 "새끼염소의 샘"이되나?
다윗이 사울의 추격을 피해서 도망간곳이 엔게디 광야이다.
사해의 서안에 있다. 매우 건조한 지역에서 유일하게 샘이 솟아 오래전부터 이곳에 사람들이 거주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초에 부근의 텔(층을 이룬 흙무덤)을 발굴한 결과 BC 4000년대 청동기시대의 성소 유물이 나왔고, BC 7세기 이래 비잔틴 시대의 전기간에 걸쳐 계속 사람이 산 흔적도 나타났다. 1953년에 설립된 키부츠에서는 대추야자·바나나·조생종채소가 재배된다. 주변지역에서는 희귀한 열대성 식물이 자라고 있는 이스라엘의 자연보호구역으로, 많은 관광객이 찾아온다.(다음 백과 중에서)
멀리희하게 보이는 물줄기가 엔게디 폭포이다. 아무리 물이 귀한 곳이긴해도 폭포라고 하기엔 조금 민망한 모습이다.
공원에서 내려다 본 사해의 모습
쿰란
1947년 '사해 사본'이 처음 발견된 동굴로 유명해졌다. 와디 쿰란 수로(水路)의 북쪽, 사해에서 약 1.6㎞ 떨어진 곳에 있는 키르베트 쿰란(아랍어로 '쿰란 유적지'라는 뜻)에서 행해진 발굴을 통해 건물들의 유적이 발견되었는데 사해 사본의 소유자인 에세네파(派) 공동체가 살았던 곳으로 추정된다. 건물 주변으로는 넓은 묘지가 있다.
동굴에서 발견된 성경 사본 모조품
마침 초막절 기간이라서 율법을 지키는 유대인들은 초막생활을 하고있다. 초막은 삼면이 막혀있고 지붕으로는 별이 세 개이상 보일 정도로 허술하게 지어야 한다.
수로의 모습
사해 성경사본이 발견된 동굴
요단강
성경에서 요단강이 나오면 우리나라 4대강 정도를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로는 작은 하천에 지나지 않는다. 또 이스라엘에는 이것보다 더 큰 강도 없다.
시리아에서 남쪽으로 흐르며 이스라엘을 지나 요르단에 이른다. 시리아의 헤르몬 산과 레바논에서 발원한다. 요르단 강은 갈릴리호를 가로질러 사해로 흘러들며, 총길이는 360Km가 넘지만 구불구불하게 흐르기 때문에 발원지와 사해 사이의 실제 거리는 200Km도 되지 않는다. 그리스도교도, 유대교도, 이슬람교도 모두가 요르단 강을 신성하게 여긴다. 예수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곳도 이 강이었다. 성경에는 아브라함과 조카 롯이 갈라설 때 요단 강이 언급되었다. 성경에 따르면 약속의 땅 가나안과 경계를 이루는 요단 강은 죄를 씻는 곳, 천국으로 건너가는 곳 등의 상징성을 나타내고 있다.(다음 백과에서)
요르단 강이 국경이기 때문에 강 건너편은 요르단이다
여리고
종려나무가 많아 ‘종려의 성읍’이라 일컬어지는(신 34:3; 삿 1:16; 대하 28:15) 이곳은 가나안 정복 전쟁의 첫 대상지였다. 이스라엘은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이곳을 이적적인 방법으로 탈취했다(수 2:1-3; 6:1-25; 히 11:31). 당시 인솔자였던 여호수아는 무너진 여리고를 재건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선언했으나(수 6:26), 분열 왕국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이를 어기고 성을 건축하다가 첫째와 막내 아들을 잃었다(왕상 16:34). 베냐민 지파에게 할당된 여리고는(수 18:12, 21), 겐 사람의 거주지가 되기도 했고(삿 1:16), 모압 왕 에글론이 점령하기도 했다(삼하 10:4-5).
성벽이 안벽과 바깥벽의 이중벽으로 되어있고, 바깥벽 두께가 약 1.8 m, 높이가 9.2 m이며, 안벽과의 공간이 약 4.6 m 가량이다. 성읍크기는 2만m2, 언덕위에 위치해 있으며, 외벽은 경사지게 축조되어 있어서 외부에서 성벽을 기어오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삭개오 나무
시험산
예수님이 유대광야에서 사탄의 시험을 받은 장소로 추정되는 산이다.
여리고 수원지
테러 위험 때문에 관리인이 문을 잠궈두고 있다.
예수님 탄생교회
예수님께 경배를 하러 들어가는 사람은 머리를 숙여 겸손하게 들어가야 한다고 하여 이 문을 "겸손의 문"이라고 한다.
예수님을 뉘였던 장소를 보기 위하여 줄을 서있는 모습
베들레햄에서 꿈나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