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촌학교를 다닌다는것은 쉽지않았다
역시 사립은 돈이 많이들어가서ᆢ 여름방학이 지나고 ᆢ
2학기가 시작되고 반장선거를하자 만장일치로 샘이가당선ᆢ 허영회선생님을 찾아가서 학교도 제대로 안다니는데ᆢ
다른애에게 양보를 했으면 좋겠다고ᆢ 괜찮아요 ᆢ부반장이 있으니 샘은 상징적인 의미가있다고 학교는 이틀에한번
오지만 모든것에 적극적으로하고 선생님일도 잘도와주고ᆢ
아내는 졸지에 반장엄마가되고ᆢ소풍때는ᆢ 어머니회에서
부탁하는 선생님도시락을ᆢ 같이있는 가족모두의 지혜인 김밥을준비했지만ㆍ 그뒤로 2학년 부터는 학교에서 간부를
사양하게됬고 ᆢ우리가족도 사회와의간격을 좀 알게됬다
바둑공부도 이제 샘이가 스스로 열심히 하지않으면 안되는
난 늘 샘이를 닥달하고ᆢ 시합이 있어도 따라다닐수 없었다
집은 더 가난해졌다ᆢ 다시 제2회 리붕배가 열렸는데도ᆢ
동행을 못하고 이사범한테 부탁을했다 이사범이 가르치는
다른애들과함께ᆢ입상없이 돌아와서 내가 무서워 눈치보고
ᆢ 그뒤로 더멀리 더 복잡한곳으로 프로기사가 근무하는 ᆢ
등교가없는 날에는 지도만 가르쳐주고 다니게했다ᆢ 가끔
어쩌다ᆢ 미친날에는 음료수를 사들고가서 인사를했다ᆢ
박카스는 꼭 우리동네서샀다 그동네가서 사면 비쌀것같아 ᆢ 이때 영등포역에 영기원이 있었고 그 유명한 전영선사범
님이 계셨다 그곳에 양덕주사범님도 계셨다 어느날 양사범
과 둔바둑을 집에와서 자랑스럽게 얘기하고 기보를 적었다
지금도 보관하고있다ᆢ 어느 대회에서도 성적을 못내고 ᆢ
나도 매일 매일이 어려워 함께 다니지 못했다ᆢ 어느날인가
일한돈을 받으러 종로5가를 가는데 차비가없어서 정릉에서
걸어갔다 어느 다방에서 만났는데 지금은 돈이없다고 담에
준다고ᆢ 집까지 다시 걸어서왔다ᆢ 이시기에는 쌀이나ᆢ
연탄ᆢ 부식등을 전부 외상으로 가져다 생활하고 수금하면
갚고ᆢ 또 외상하고ᆢ 가게집들은 산동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있었다 ᆢ 가난은 불편한게 아니라ᆢ 죄인것이다
첫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