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의식의 반영
1. 물안개
한동안 중년남성들의 당사자 모임명이 고민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알콜모임이라는 말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이름 없이 4회기가 지났다.
“선생님~ 저 알콜모임 때문에 연락했는데요.
어제 너무 많이 마셔서 오늘 못갈 것 같아요. 전해주세요.”
걸죽한 박씨아저씨의 목소리 너머로 무안함과 미안함이 묻어있다.
아차 싶었다. 알콜모임 참여자라고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내 말에,
“그럼 뭐라고 해요?”라고 되묻는다.
얼굴도 모르는 젊은 사회복지사에게 알콜모임 참여자라고 소개하는 박씨아저씨.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그렇게 대하고 말하니,
본인마저 알콜인이라고 이야기한다.
말은 의식의 반영이다.
나는 회복 회복 입으로 외치면서 당사자를 진정으로 신뢰하고 있었을까?
회복할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었나?
어쩌면 나의 확신없음이 당사자에게 전해진 건 아닐까?
얼굴이 화끈거렸다.
모임명이 고민돼 참여자들에게 여쭤봤다.
의외로 간단했다.
술을 드러내지 않고도 당사자 모임을 표현할 수 있는 수많은 말이 있었다.
으라차차, 회복모임, 찔레꽃, 더불어 한길,,, 물안개
민주적으로 투표까지 한 후 아주 멋지게 “물안개”라는 이름이 선정됐다.
“물안개”라는 이름이 선정된 후 직원들에게 부탁했다.
매주 목요일 음주에서 회복되기 위한 모임이 진행되니
참여자분들이 혹여나 술, 알콜모임 참여자라고 말씀하시면
꼭꼭 물안개 혹은 회복모임이라고 정정해달라고.
+) 박씨아저씨는 두번째 모임에는 무단불참 하시더니,
그래도 오늘은 불참이라고 연락을 주셨다.
우리 사이에 신뢰가 차곡차곡 쌓인다는 것. 그거면 충분하다. 😀
2. 마음소풍
정신적 약자들과 함께한 일년의 프로그램이 끝났다.
함께 일한 옆기관 팀장님과 그간의 일들을 이야기하며 지지와 칭찬과 격려를 나눴다.
함께 나눌 동료가 있다는 것. 꽤 든든하다.
증상이나 치료에 대해서 편하게 얘기하면서도 치료를 받으러 오는 곳이 아니라서 좋다는 김씨 아저씨,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정신건강복지센터 프로그램보다 복지관이 훨씬 좋다는 황씨 아저씨,
친구가 생겨서 좋다는 유씨 아저씨,
가야할 곳, 만날수 있는 사람이 생긴게 행복하다는 김씨 아저씨
전문가라고 칭하는 정신건강복지센터와 협업하지 않아도
분명히 우리가 더 잘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똑같은 자조모임이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당사자주의, 사람중심실천이 빛을 본 것 같아서 기쁘고 감동적인 하루,,
격식이 없고 소박하고 수다를 떨수있고 음식이 있는 이곳을,
언제든 이웃을 만날 수 있는 이곳을 잘 유지하고 싶다.
이웃이 있고 인정이 흐르는 마을, 약자도 살만하고 어울려 사는 마을을 만들고 싶다아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