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계 김득배 선생
출생과 성장
출생
선생은 상산김씨商山金氏의 시조 김수金需의 11대 손으로 문충공파文忠公派의 파조派祖가 되는 분이다. 자는 국자國滋이며, 호는 난계蘭溪이고,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선생은 충선왕 4년(1312) 아버지 판전의시사判典醫寺事(典醫寺의 정3품직) 김록金祿과 죽산박씨竹山朴氏씨를 어머니로 하여 경북 문경시 점촌읍 흥덕동興德洞 깃골貴谷에서 삼형제 중 맏이로 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고려사 및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선생의 조모 김만궁金萬宮의 호덕설虎德說을 제일먼저 소개하고 있어서 눈길을 끈다.
김득배의 아버지 김록은 벼슬이 판전의시사判典醫寺事에 이르렀다. 처음에 주의 관속 김조金祚가 딸을 두었는데 이름을 만궁萬宮이라 하였다. 딸이 7살 때에 김조는 단적丹賊을 피하여 급히 백화성白華城으로 가다가 적이 가까이 다가 왔으므로 창황하여 만궁을 길가에 버리고 갔다. 사흘이 지난 후에 수풀에서 찾으니 만궁이 말하기를 “밤이면 무엇인가 와서 껴안아 주고 낮이면 가곤 한다.”고 하였다. 사람들이 이상히 여기어 자취를 밟아 간즉 그것은 범이었다. 자라서 주의 관속 김일金鎰에게 출가하여 록을 낳았다.
✱단적(거란)의 침입시기를 김득배의 출생과 비교하면 시간 계산 상 괴리가 나타나는 것으로 봐서 1254년 10월에 있었던 차라대車羅大가 이끄는 몽고 병의 침입을 잘못 기록한 것이 아닌가 한다. 백화성은 상주시 모동면에 있는 백화산성을 이른다.
위 이야기의 골격은 상주.문경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호덕설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보아야한다. 호덕설은 호랑이 젖을 먹고 자랐다는 견훤甄萱의 이야기에서도 볼 수 있듯이 예사롭지 않은 인물이나 영웅호걸의 출현을 예시하는 이 지방의 호신설護神說에 뿌리를 두고 있다. 즉 범상치 않은 인물의 등장을 암시함으로써 고려사에서 김득배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인물임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고자 함이 아니었겠나 한다.
일찍이 부친 김록은 원元나라로 들어가 성종정원成宗貞元 병신년丙申年(충렬왕 22년ㆍ1296) 중제과中制科 12인합격자명단에 들었는데,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와 「국파 전원발全元發 선생 연구」에 따르면 빈우광賓于光 ,전원발,김록,신천辛蕆,이구李球,조겸趙廉,신예辛裔,이승경李承慶,이천기李天驥, 김승언金升彦,최표崔彪,이서李舒 등이 급제동방及第同榜으로 올라있다.
돌아와서 도평의녹사都評議錄事와 판전의시사를 역임하였고, 조부 김일金鎰은 원종元宗 14년(1273) 원나라에서 별장別將을 지내고 귀국해서는 충렬왕 6년(1280) 장군이 되어 시승侍丞을 지냈다.
그 이상 선대 조상들의 행적에 대해서는 족보에 여러 청요직淸要職을 두루 지낸 것으로 되어있으나, 행적이나 치세治歲등의 활동기록이 없는 점으로 보아 후대에 추기한 것이 아닌가 한다. 따라서 조모 김만궁의 호덕설에서 보듯 선생의 가문은 조부에 이어 부친을 비롯한 김득배 형제들이 현달하고부터 크게 흥기된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상산지』,『상주지』,『세종실록지리지』등에도 상주의 인물로 김득배의 형제들이 첫 등장하는 것을 볼 때, 선생은 가문의 인물이기에 앞서 상주를 연 첫 인물이 분명하니, 호덕설은 어찌 보면 자연스럽고 지극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다음글에서 계속)
[출처] 출생|작성자 충혼장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