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물놀이 갔다가 보트에 머리를 다친 아내가 코마상태에 빠져 병원에 누워있는 상태부터 시작됩니다.
카오스에 떨어진 남자는 동분서주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죠.
어린 막내 딸의 정신세계와 전혀 동화되지 못하고 하다못해 언어 자체가 다른 외계사람인가
싶습니다. 놀이동산에서 누군가 갑자기 베트남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자기집 거실에 턱 하니
앉혀 둔 당혹스러움이죠.
아내의 마지막을 뜻깊게 보내기 위해 가족들(두 딸)을 소집시켜보지만 내 배로 낳은 녀석들이
맞나 싶게 길거리 불량배만도 못한 놈들입니다.
제발 해피엔딩이길 해피엔딩이길 바라지만 감독은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긴 영화를 긴 호흡으로 계속 끌고 나갑니다.
혹은 영리하게, 혹은 평이하게.
도무지 남자가 컨트롤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첫째 딸도, 둘째도, 조상으로부터 물려 받은 땅도, 아내도.
그러나 슈퍼히어로처럼 아무런 초능력도 없는 남자지만 매우 어리숙하게 한 장면 한 장면
넘기면서 진실(리얼)과 마주하고, 인정할 건 인정하고, 싸울 건 싸우고 하며 찬찬히 걸어 나갑니다.
영화 내내 남자는 매우 성실해보이고 착해보이고 사리판단 분명한 것 같지만
이미 이 모든 사건의 배후는 남자가 원인이었습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가족에게 무관심했던 벌을 현재에 철저히 받고 있는 거지요.
이제야 가족과 소통해보려고 노력하지만 모든 게 만만치 않습니다.
조지 클루니는 아주 좋은 배우입니다.
결코 오버하지 않으며 어느 멍청한 남자의 하루 하루를 덤덤하게 연기하죠.
이런 남자가 도대체 어떻게 결혼했고 애를 둘이나 낳고 돈도 잘 벌며 크고 멋진 집에서
살 수 있었을까 믿기지 않을 만큼 어리숙하게 보여집니다.
그가 그동안 출연했던 모든 필모그래피를 떠올려보면
초기에 잘 생긴 외모로 몇 편 찍은 영화 말고는 이후 매우 훌륭한 영화들만 해왔습니다.
잘 생긴 얼굴로 나가지 않고 진지하고 철학적이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영화만
해오는, 정말 외모를 싹 빼버리고 "배우"와 "감독"으로서 진정한 명장입니다.
가장 훌륭한 장면은 첫째 딸에게 아내가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는 충격적인 말을 듣고
한 동네 사는 아내 친구집에 슬리퍼 신고 뛰어가는 장면입니다.
아주 먼 거리를 그가 막 달려가죠.
차를 가지고 가지 왜그러나 싶겠지만 이 영화는 그래서 리얼합니다.
아내의 친구니까 가까운 사람이고, 한 동네라 생각하니 금방 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거리이고,
그러나 막상 뛰어가보니 먼저 도착해있는 분노한 마음보다 뜀박질하는 발이 화날 정도로 느리고.
조용한 노래가 깔리면서 그가 슬리퍼를 신고 죽어라 뛰어가는 장면이 참 인상깊습니다.
이 영화가 일단은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건 남자의 행동들입니다.
아내가 바람핀 남자를 비행기까지 타고 찾아가서 그에게 아내의 마지막을 봐주면서
작별인사 해주길 요청합니다. 보통은 그런 놈 찾아가 뒤지게 패줘야 할텐데 말이죠.
그러나 세상은 넓고 지구인은 60억 이며 저마다 성격과 해결 방법이 다르죠.
남자는 아내를 사랑했기에 경거망동 하지 않고 아내를 위해서만 행동합니다.
일단 이렇게 인생이 꼬여버리기까지 원인 제공자도 자신이었음을 알고 있는거죠.
다시 이 영화가 현실적인 것은 첫째 딸의 남자친구란 놈입니다.
생각의 깊이라곤 아메바랑 동급이고 감히 일상적 대화가 되지 않는 찌질한 젊은이인데
그래도 자기는 기타도 칠 줄 알고 요리도 잘하며 체스클럽 부회장이라고 자부하며 삽니다.
자기 자신만 사랑하며 일상적인 어투나 행동은 전혀 타인들과 동화되지 않는,
세상에 널리고 널린 짜증나는 십대 캐릭터 중에 하나죠.
감독은 이 캐릭터를 처음부터 끝까지 남자의 가족과 동행시킵니다.
그가 뭔가 중요한 순간에 멋진 일을 하나 해낸다거나 영화 말미 쯤 그래도 뭔가 하나
괜찮은 일을 해낸다던가 하는 반전은 절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냥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 캐릭터일 뿐입니다.
딸의 대사가 가관입니다.
"그냥 둘 이 있으면 심각한 이야기는 하지 않아요. 즐거울려고 만나는 거니까"
이 영화가 비현실적이면서도 리얼한 것은 바로 이런 캐릭터들과 대사들 때문입니다.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 딸의 남자친구를 영화 끝까지 데려간 것은 감독의 참 좋은
생각입니다.
관객들에게 그냥 보여주는 거지요.
봐, 일상이란 이래. 우리는 이런 세상을 살아가는거지. 그래도 그냥 살아가야 해.
당신과 우리들이 어쩔 수 없지만 이게 현실이고 이게 일상이고 이런 사람들이 다
사회의 구성원이며 우리의 이웃이야. 누군가는 시리얼을 만들고 누군가는 차를 만들어.
혹시 모르지. 당신이 아침에 허기를 채운 한 끼 시리얼을 그 사람이 만들었을지.
그렇게 서로 모르는 사이지만 세상이란 사회는 기계 부품들처럼 서로 의도하지 않아도
도우면서, 서로 물물교환 하면서 덤덤한 일상들이 순리적으로 돌아가는, 그런 게 세상이라는거야....
소통하지 않고 살아왔던 한 남자가 가족과 일상과 소통하려 동분서주 하는 모습.
영화 내내 배경음악으로 쉬지 않고 흘러대는 하와이안 명곡들은 전혀 장면들과
어울리지 않을 듯 하지만 묘하게 화면과 섞어져 무척 아름답습니다.
하와이가 배경인 영화에 하와이 음악이 흐르는데도 왠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은
남자의 행동들 때문이겠지만 그게 묘한 아이러니로 다가와 훌륭한 장면들을 연출해 줍니다.
예상했던대로 남자는 조상 때부터 간직해오던 땅을 팔지도 않고 아내의 상대 남자를
패주지도 않으며 전혀 대화가 안통하는(아니 자신이 통하려고 노력하지 않은 벌)
딸들, 그리고 예기치 않은 아내의 죽음탓에 그럭저럭 소통하게 됩니다.
원인을 자신이 제공해 놓고 결국 아내가 죽음에 이르러서야 가족과 소통하겠다 노력하며
결국 영화는 좋은 쪽으로 흘러가지만 아내의 죽음이 없었다면 평생 이러고 살았을
답답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영화는 비현실적이면서도 현실적이고 자칫 리얼해 보이면서도 언리얼한 복잡한
덩어리 입니다.
어느 엉뚱한 남자의 엉뚱한 고군분투.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덤덤하면서 훌륭합니다.
남자와 막내 딸이 소파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티비를 봅니다.
주방에서 걸어나온 첫째 딸도 소파에 앉아 대화가 통하지 않았던 아빠와 담요를 같이 덮고
티비를 봅니다.
아내이자 엄마는 세상에 없고 그냥 이젠 셋 만의 고요한 일상입니다.
아빠가 먹던 아이스크림 통을 큰딸이 받아서 그 숟가락 그대로 아이스크림을 떠먹고
막내딸이 먹고 있던 아이스크림을 아빠가 받아서 또 그대로 떠먹습니다.
대사는 없습니다.
담담하면서 따듯하고 고요하게 영화는 끝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