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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사절(No Kids Zone)
출생률 감소로 산부인과 병원이 썰렁하고, 어린이집이 문을 닫고, 초등학교가 비어가는 시대가 됐습니다. 이런 와중에도 ‘어린이 사절’이란 문구가 무척 이색적입니다. “노키즈존(No Kids Zone·어린이 사절)은 아니지만 노키즈존을 지향합니다. 어린이를 대동하실 경우 조용한
분위기를 깨뜨리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예(禮)가 아니면 보지 말고, 듣지 말고, 말하지 말고, 행동하지
말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올바른 예의는 모두를 행복하게
합니다. 예의범절과 배려는 생명윤리입니다. 그런데 어린이들은
아직 경험과 지식이 부족해 다른 사람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 해서 ‘어린이 사절’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예의를 지켜야 할 때 지키지 못하는 어린이는 부모의 책임입니다. 바르게
교육하지 않은 부모의 무책임한 행동 때문에 어린이가 무시돼선 안 됩니다. 주거공간에서도 마찬가집니다. 층간소음 문제가 심각한 아파트에서 아이들이 뛰어다니지 않도록 가르치고, 어른들도
행동을 조심해야 합니다. 열대야로 고통을 겪는 요즘일수록 이웃끼리 서로를 배려하고 예의를 지켜야 합니다.
성경의 황금률을 마음에 되새겨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 7:12)
한상인 목사(광주순복음교회)
포기하지 않는 기도
미국 산호세제일침례교회 이지춘 원로목사님이 해주신 이야기입니다. 이 목사님은 대학시절 연세대
철학과 김형석 교수님으로부터 신앙지도를 받았습니다.
김 교수님이 겪은 일입니다. 6·25전쟁의 혼란 속에서도 부산에서 입학고사를 치렀답니다. 시험종료 후 창문 너머로 남루한 차림의 응시자가 기도하는 게 보였답니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김 교수님은 그 학생이 기특해 이름을 물어보고 격려까지 해줬습니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성적이 최하위였더랍니다. 그래서 다시 이렇게 충고해줬답니다.
“학생, 이제 그만 기도하고 내년에 도전해보게.” “네.” 학생은 또다시 기도를 하더랍니다. ‘공부는 않고 기도만 한다고
되나. 이런 게 교회의 병폐라니까.’
김 교수님이 합격자 명단을 학장께 보고했습니다. “김 교수님 오늘 몇 명이 왔지요?” “네, 입학정원보다 조금 더 왔습니다.” “전쟁 난리통에 공부하러 온 학생들이 기특하지 않아요? 모두 합격시킵시다.” “네?”
그 순간 김 교수님은 큰 충격을 받았답니다. 기도해서 최하위 성적이 합격선으로 올라간 건
아니지만 입학기준을 바꿔서라도 합격시키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본 것입니다.
물론 이건 아주 예외적인 경우입니다. 그러나 김 교수님은 그때 피난민 학생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혹시 오늘 우리는 너무 쉽게 기도를 포기하는 것 아닐까요.
박성규 목사(부산 부전교회)
더 진지한 믿음을 위하여
무엇이 믿음의 성숙을 가로막을까요. 무엇 때문에 우리의 믿음이 도리어 연약해질까요. 첫째는 깊이 생각해 고민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믿음이 너무
어리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이 두 가지 이유로 영적 세계를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깊이 생각하며 고민할 때가 되었습니다. 왜 우리가 믿는 것인가. 우리가 믿는 것은 누구 혹은 무엇인가. 그 믿음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고, 믿음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켜 줄 것인가. 이제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성장해야 합니다. 언제까지 유아기적 믿음만 갖고 살 것인가요. 우는 아기는 젖을 주면 울음을 그치고, 삐진 아이는 사탕 하나 물려주면
빙그레 웃습니다. 사춘기 녀석들은 좋은 스마트폰 하나면 입이 찢어집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젖 달라고 울 것입니까. 언제까지 사탕 달라고 삐질
것인가요.
그렇기 때문에 믿음의 세계가 안 보이고 믿음의 열매들이 안 보이며, 이 모두를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이 보이지 않는 것 아니겠습니까. 뭘 믿는지도 모르고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에
대해 깊은 생각도 없으니 그저 욕심에 가득 찬 눈빛으로 젖병만 바라보다 사탕 하나 물려주면 그저 좋다고 웃는 것은 아닐까요. 결국 하나님의 세계는 보지 못하는 것이지요.
안성국 목사(익산 평안교회)
보이지 않는 수고에 대한 고마움
우리나라의 공중화장실은 대체로 깨끗한 편입니다. 엘리베이터도 역시 깨끗합니다. 이렇게 청결한 이유는 이용자들이 깨끗이 사용해서라기보다는 청소하시는 분들이 수고한 덕분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 흘린 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하철을 이용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스크린도어가 설치돼 있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합니다. 스크린도어가 설치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누군가 사고로 목숨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또 지하철이 멈춘 한밤에 스크린도어를 점검하는 수고의 땀이 있었기에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보이지 않는 수고에 대해 서로 인정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음식점에
가서 돈을 내고 밥을 사먹지만 내 돈 주고 밥 먹는다는 생각보다는 그래도 한 끼 식사를 정성껏 준비해 주시니 고맙다는 마음을 갖는다면 우리 사회는
더욱 따뜻한 정이 넘쳐날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수고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은 소중한 마음의 태도입니다. 이 시대는 똑똑한
사람보다는 따뜻한 사람이 많이 필요합니다. 똑똑한 사람은 너무 많습니다. 서로 똑똑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만 이 사회에 필요한 사람은 따뜻한 사람입니다. 보이지 않는 수고에 대해 고마워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 이 사람이
따뜻한 사람이 아닐까요.
곽주환 목사(서울 베다니교회)
꽃이 의자에 앉아 있어요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시인 이정록의 시 ‘의자’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같은 꽃을 보더라도 여자의 눈에는 낭만으로, 한의사의 눈에는 약재로, 가수의 눈에는 노래로, 시인의 눈에는 시로 보입니다. ‘+’를 보고 수학자는 덧셈이라 하고, 낙심했던 사람은 희망이라
하고, 총잡이는 가늠자라고 하고, 성도는 십자가라고 합니다. 그 사람의 관심이 그 사람의 시각이 됩니다. 허리가 아픈 사람은
꽃도 의자에 앉아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도 볼 수 있구나” 하는
의식의 확장이 소통의 시작입니다. 바울 사도는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됐다고 했습니다. 중심을 잃지 않은 상태에서 그들의 입장에서 서 본 것입니다. “꽃이
의자에 앉아 있어요.” 그렇게 공감하고 소통하면서 아픈 영혼을 더욱 더 예수님께 인도할 수 있습니다.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고전 9:22)
한재욱 목사(서울 강남비전교회)
에케 호모
독일 뷔르츠부르크에 가면 대성당이 있고 그 옆에 대주교가 살던 낡은 집이 있습니다. 그
집 2층에는 ‘에케 호모(Ecce
Homo·이 사람을 보라)’라는 그림이 한 점 걸려있지요.
빌라도가 예수님을 재판하며 “이 사람을 보라”고
외치자 그분이 말없이 고개를 떨구는 모습을 그림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1719년 한 청년이 이 그림 앞에 서 있었습니다. 문득 그의 영혼에 이런 음성이 들려옵니다. “나는 너를 위해 내 몸을 주었는데 너는 나를 위해 무엇을 하느냐.”
청년은 드레스덴으로 돌아와 백작으로서 누리던 화려한 삶을 포기하고 자기 집을 예배 장소로 바쳤습니다.
체코에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 떠도는 모라비안 교도를 만나 자신의 영지 헤른후트까지 내놓았습니다. 이
청년이 바로 니콜라우스 루트비히 본 진젠도르프 백작입니다.
그는 모라비안 형제회를 조직해 경건주의 운동에 참여합니다. 이 운동은 근대선교의 불꽃을
일으켰고 한국 최초의 선교사 귀츨라프를 조선에 파송케 했습니다. 기도의 사람 조지 뮬러를 회심시켰고
존 웨슬리에게 큰 영향을 미쳐 감리교회를 탄생케 했습니다.
이 부흥의 역사가 무명의 한 그림에서 비롯됐다니 놀랍기만 합니다. “이 사람을 보라.” 오늘 당신은 누구를 바라보고 있습니까. 모든 하나님의 일은 먼저
그분 앞에 무릎 꿇고 바라보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김석년 목사(서울 서초성결교회)
날아가는 목각 새
나무로 원앙새를 잘 새기는 장인(匠人)이 있었습니다. 목각새를 주문한 사람들은 그의 솜씨를 경탄해마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목각새를 사가는 사람이 장인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틀림없이 날아가는 목각새를 만들 수 있을
거예요.” 그 말을 들은 후부터 장인은 날아가는 목각새를 만들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1년, 2년이 지나가도 날아가는 목각새는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그의 삶은 갈수록 피폐해졌고, 사람들은 그가 이상해졌다고 했습니다.
10여년이 지난 어느 날 장인은 낙심과 좌절에 가득차서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작은 새가 날개를 다쳐 몸부림치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는 “저
새도 나처럼 날개가 꺾였구나”라고 탄식하며 그 새를 정성껏 치료해줬습니다. 며칠이 지나서 작은 새는 푸드덕하며 하늘을 날아갔습니다. 장인은
홀연히 깨달았습니다. “저 작은 새처럼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돌봐줬더라면, 날아가는 목각새를 만드는 헛수고를 하지 않았을 것을….”
예수님께서는 소년의 오병이어로 남자만 5000명이 먹는 기적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엘리사는 기름 한 병을 통해서 선지생도의 아내가 빚을 갚고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줬습니다. 내게 있는 작은 것으로 기도하며 사랑을 실천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한상인 목사(광주순복음교회)
노화가 아닌 성장
“성장하는 동안은 늙지 않는다.” 올해 98세인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가 저서 ‘백년을 살아보니’에서 꺼낸
말입니다. 신체적으로는 여자가 22세, 남자가 24세까지 성장하지만 정신적 성장과 인격적 성숙은 한계가
없다고 합니다. 노력만 하면 75세까지 성장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는 너무 일찍 성장을 포기하는 젊은 늙은이들이 늘고 있다는 겁니다. 김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아무리 40대라 해도 공부하지 않고 포기하면 녹슨 기계처럼 노쇠하고 맙니다.
우리 사회는 50대 중반이나 60세를 넘기면
인생을 다 산 것처럼 여기는 분위기가 팽배합니다. 물론 직업마다 다른 특성이 있겠지요. 하지만 백수(白壽)를 앞둔 김 교수가 “인생의 황금기는 60∼75세”라고
말한 것처럼 나이 듦에 대한 태도가 달라져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배우고 일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을 배우고 관심 있는 분야를 배우는 건 우리를 성장시킵니다. 의미 있는 일을 평생 계획하고
실천하면 우리를 성숙하게 만듭니다. 우리 인생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성숙해가는 것입니다. 과일이 익어가듯 우리의 인격이 익어가고, 우리의 신앙이 깊어진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우리의 이웃들이 얼마나 행복할까요.
박성규 목사(부산 부전교회)
믿음의 근거
신앙이 좋고 실력까지 뛰어난 한 외과의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의료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시골에서 봉사를 하며 살았는데,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돈을 받지 않았고,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짧게나마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말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치료를 받으러 온 한 노인이 물었습니다.
“그렇게 말이 안 되는 소리를 어떻게 믿습니까? 어느 날,
한 여자가 찾아와서 선생님한테 자기가 처년데 임신을 했다고 말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뭐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맞습니다. 아무리 저라도 그건 믿기 힘들 것 같습니다.”
의사의 대답을 들은 노인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럼 자기도 못 믿을 이야기를 나한테는 왜 한 겁니까?”
“하지만 그 아이가 자라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고, 죽은 사람을 살리고, 바다 위를 걷기 까지 할뿐만 아니라 심지어 죽은 뒤 부활까지 한다면, 그리고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모두 그 사실을 전하는데 평생을 바쳐 이천년 뒤에도 그 사실을 믿는 사람들이 있다면, 저는
일말의 거리낌도 없이 그 여자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믿을 것입니다.”
종교가 헛된 망상이며 나약함의 도피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시선을 조금만 돌려보면 믿지 않을 증거보다 믿을 증거가 훨씬 많습니다. 예수님의 존재가 가장 확실한 하나님의 증거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반드시
창대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 체험하며 성장하는 믿음 생활이 되게 하소서!
살면서 직접 체험한 하나님의 손길을 돌아보며 믿음을 확신하십시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외가와 친가
금슬 좋았지만 서로의 종교가 다른 어느 부부가 있었습니다.
아내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지만 남편은 무신론자였습니다.
어느 날 딸아이가 엄마를 찾아와서 물었습니다.
“엄마, 맨 처음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 태어난 거예요?”
“하나님이 만드신 아담과 하와가 자녀를 낳으면서 생겨난 거란다.”
딸은 퇴근 후 집에 돌아온 아빠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아빠, 맨 처음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 태어난 거예요?”
“아주 옛날에 지구에 원숭이가 있었는데, 원숭이들이 점점 변하다가 사람으로 됐단다.”
아빠와 엄마의 대답이 다른 것을 듣고 딸이 다시 엄마한테 물었습니다.
“엄마, 아빠는 원숭이가 변해서 사람이 됐다는데 그럼 누구 말이 맞죠?”
“응, 엄마는 엄마 쪽 집안 이야기를 한 거고, 아빠는
아빠 쪽 집안 이야기를 한 거란다.”
우리의 존재에 대한 생각이 우리의 가치를 나타냅니다.
나란 존재가 하나님의 소중한 작품이란 사실을 늘 잊지 말고 또 그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반드시 창대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 주님의 존귀한 자녀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살아가게 하소서!
그리스도의 존귀한 자녀로써의 정체성과 자존감을 잃지 마십시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마음의 성형
맥스웰 몰츠가 쓴 ´성공의 법칙´은 50년간 3천 만부가 팔리며 자기계발서의 최고봉으로 꼽힙니다.
저자인 맥스웰은 성형외과 전문의였는데 자신을 찾아오는 환자들을 상담하다가 외모에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성형
수술이 아닌 ‘왜곡된 내면의 자아 이미지’를 바꾸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후로 그는 심리학과 성공학, 자기계발서의 고전 등을 공부하며 집대성했고, 마음에 상처가 있는 사람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메시지를 담아 책을 내었습니다.
맥스웰의 책을 본 사람들은 외모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바로잡으라는 메시지가 아무런 효과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중 몇몇은 책의 내용대로 실천해 놀라운 변화를 경험했고, 이런
변화를 목격한 사람들도 책에 나온 내용들을 실천해 동일한 변화를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변화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성공의 법칙´은 ´기적의 책´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습니다.
외모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그리고 마음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우리의 영혼입니다. 외모를 잘 가꾸는 것도 중요하고 마음의 안정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영혼의 참된 안식을 찾는 일은 더욱 중요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말씀을 통해 영혼의 안식을 얻으십시오. 반드시 창대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 허황된 겉모습보다도 진실한 내면과 영혼에 더욱 신경쓰게 하소서!
내 삶의 어떤 영역에서 부족함을 느끼는지 체크해보고 기도하십시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하늘에 계신 분
‘안네의 일기’는 유태인 소녀 안네 프랑크가 독일 군인들의 감시를 피해 2년간 숨어 지내면서 기록한 일기입니다.
이 일기는 14살 소녀가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며 기록했던 슬픈 내용이지만 일기 중에는 다음과
같은 글도 나옵니다.
“상황이 이렇지만 하늘을 우러러보면 아마도 모든 것은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겨요. 언젠간 이 잔인한 상황도 끝이 나고 세계는 다시 평화가 시작될 수 있을 거예요.”
톨스토이의 최대 장편인 ‘전쟁과 평화’에는 안드레이
대령이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대령은 치열한 전투 중에 부상을 당해 말에서 떨어지게 되는데 그 와중에
하늘을 바라보며 독백을 합니다.
“저토록 높고 맑은 하늘을 어째서 이제껏 바라보지 않았단 말인가? 이제 하늘을 보게 된
나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기다리며 초조해 할 때 다시 한 번 믿음을 굳건히 할 수 있던 것도 밤하늘을 바라봄을 통해서였습니다. 나의 하늘의 아버지이신 주님께서는 항상 나를 바라보고 계시고 또 지켜주고 계십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늘에 계신 분이 누구인지, 또 얼마나 나를 사랑하시는지 잊지 마십시오. 반드시 창대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 늘 하나님과 동행하는 기쁨을 느끼는 삶을 살게 하소서!
지치고 힘들 때일수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묵상하십시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성실의 대가
런던의 빈민가에서 태어나 자란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가난한 환경 탓에 제대로 배우지 못했던 청년은 첫 직업으로 남의 글을 베껴 쓰는 일을 했습니다. 가진
건 없어도 매사에 성실하고 낙천적이었던 청년은 자신의 첫 번째 직업을 매우 소중하게 여기며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시간당 돈을 받는 일이었기에 다른 직원들은 최소한의 일감만 맡아가며 시간을 때웠지만 청년은 최선을 다해 글을 베끼며 글의 내용을 직접
읽고 익혔습니다.
그렇게 10년간 일을 하던 청년은 어느 덧 자신도 글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실제로 책을 내기 위해 집필을 시작했습니다. 35세가 되던 해에 ‘파리
대왕’이라는 소설을 처음으로 발표하게 되었는데 윌리엄 골딩이라는 청년이 쓴 이 책은 450만부나 팔리는 대성공을 거두었고 1983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되는 영예까지 누렸습니다.
‘탤런트 코드’의 저자 다니엘 코일에 따르면 위대한 작가들에겐 자신이나 남의 작품을 계속해서
쓰고 베끼는 습관이 있었다고 합니다. 윌리엄은 자신의 작업이 재능을 키워준다는 사실을 몰랐지만 성실함으로
인해 문학적 재능을 갈고닦고 또 꽃피울 수가 있었습니다.
평범한 일을 비범하게 하는 사람은 성실한 사람입니다. 작은 일에도 성실한 사람만이 하나님이
주시는 특별한 선물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먼저 작은 일부터 최고의 성실로 처리하십시오. 반드시 창대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 주님께 당당히 보여드릴 수 있는 성실한 자세로 일을 하게 하소서!
최근에 맡은 모든 일들을 성실한 자세로 처리하십시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인간의 한계
19세기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시인 중에 윌리엄 헨리라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윌리엄 헨리는 문학 뿐 아니라 다양한 방면에도 뛰어난 재능이 있어서 사람들에게 ‘진정한
천재’라고 불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말년에 심한 폐병을 앓았고
다리가 썩는 중병에 걸리는 크나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당시 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는 병이었기에 고통을
참아낼 수밖에 없었는데, 결국 그는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다양한 방면에 뛰어난 두각을 나타내며 천재였던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은 ‘아, 인간의 의지는 한계가 있는 것이구나!’라는 말이었습니다.
갈멜산에서 850명의 이방 선지자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고 위대한 승리를 거두었던 엘리야에게도
이러한 고난이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확인했고 놀라운 승리도 거둔 선지자였지만 나약한 심신에
인간적인 고뇌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하나님의 도움과 위로로 다시 인간의 나약함을
극복할 힘을 얻었습니다.
제 아무리 위대한 성취를 이룬 사람이라 하더라도 인간의 한계를 극복할 순 없습니다. 절대로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공허함을 채우고 위로해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부족한 부분은 모두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반드시 창대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 자만하지 않는 자신감으로 겸손히 주님께 나아가게 하소서!
하나님께 맡길 부분과 내가 노력할 부분을 잘 구분하십시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사랑을 알게 되면
18세기 프랑스에 데넥커라는 조각가가 있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천재들 못지않은 조각가로 인정을 받았던 그는 특히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러 신상들을 정교하게 조각했습니다. 그는 세심한 특징까지 놓치지 않기 위해 여러 번 신화를 읽을 정도로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점점 자신의 실력에 자신감이 생긴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 ‘그리스도’를 조각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작업을 시작한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잘 알고 있던 그리스 신화와는 달리 예수님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전처럼 조각으로 표현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직접 복음서를 읽고 예수님을 알아가기 시작했고
신앙이 성장할수록 그의 그리스도 상도 조금씩 완성되었습니다.
마침내 거의 완벽에 가까운 그리스도 상을 조각해 낸 데넥커에게 경탄한 나폴레옹은 자신이 좋아하는 비너스 조각상을 만들어주지 않겠냐고
물었는데 데넥커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황제의 명령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를 조각한 이 손으로 더 이상 다른 신은 조각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그 사랑을 알게 되면 더 이상 세상을 이전처럼 사랑할 수 없습니다. 주님과 세상을 놓고 갈등하지 말고 결단하십시오. 반드시 창대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 거짓 없이 신실한 마음으로 주님을 따르게 하소서!
그 무엇보다 주님을 더욱 사랑한다는 고백 하십시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물건을 사게 만든 것
폴란드의 제스 스미스란 제약회사 세일즈맨의 이야기입니다.
불경기에 직장을 구할 능력이 없어 세일즈맨 일을 시작한 스미스는 마지막 기회라 생각을 하며 최선을 다했습니다. 판매왕들의 영업 기술을 찾아가 배우기도 하며 식사 시간과 자는 시간 외에는 고객을 찾아다니며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나 몇 달 동안의 노력에도 단 한 건의 실적도 올리지 못했고 결국 세일즈맨을 그만 두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비록 물건을 팔지 못했지만 만나서 얘기라도 들어준 고객들에게 인사나 해야겠다 싶어 오로지 감사를 목적으로
약 한 달 동안 고객들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런데 고마움을 전하러 간 자리에서 고객들이 약을 사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홍보를 해도
꿈쩍도 않던 고객들이 스스로 약을 주문하고 다른 사람에게 추천을 해주기까지 했습니다. 순전히 감사와
배려의 마음으로 고객들을 대했던 스미스 씨의 모습이 고객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이 일을 통해
스미스 씨는 같은 배려와 친절이라도 진심이 담겨있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몇 년 뒤에는 폴란드에서 가장 성공한 세일즈맨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에게도 사람에게도 언제나 진심을 다한 최선이 필요합니다. 성도들의 이런 노력을 통해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고 사람들이 복음을 믿게 됩니다. 모든 마음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고 사람을
섬기십시오. 반드시 창대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 모든 선행과 친절에 진심을 담아 행하게 하소서!
내가 하는 말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영향력이 있는지 살펴 보십시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30%의 비밀들
어느 공동체든지 이른바 선각자(先覺者) 30%가 전체를 이끌어간다고 합니다. 그들에
의해 세상은 변화하고 발전해 왔습니다. 다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분명하고 명확한 소신으로 업적을 만들어내는
믿음직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어느 모임이건 리더의 뜻에 반하는 30%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대가 혹 리더라면 반대편에 선 30%의 지지를 얻는 일에
과욕을 부리지 않아도 됩니다. 30%의 반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니까 말이죠.
반면 변변치 않은 리더에게도 30% 지지자들이 생긴답니다.
고개를 갸우뚱할 이상한 일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불의한 지도자는
이 30%의 지지로 자신의 만용과 고집을 합리화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변화에 미온적인 30%는 자신의 용기 없음이 겸손이라며 위안을 삼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름과 옳음’을 부르짖는 자들의 외침을 애써 외면합니다. 그들이 옥에 갇히고, 고문 당해 목숨을 잃어도 애써 겸손합니다. 그들의 수고로 오늘의
자유와 평화가 있었음을 애써 잊으려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30%의
지지에 힘입어 겸손할 이유를 찾습니다. 30%의 반대에도 용기를 내야 할 이유를 찾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다짐할 이유를 찾습니다. “겸손을 취하되
비겁하지 말자. 용기 있게 행동하되 만용에 휘둘리지 말자.”
안성국 목사(익산 평안교회)
허일(虛日)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 오후/ 파리 한 마리 손발을 비비고 있다/ 어덴지 크게 슬픈 일 있을 것만
같아라.”
이호우 시인의 시 ‘허일(虛日)’입니다. 내게는 특별한 일도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은 허사같은
하루였는지 모르지만, 누군가에겐 깊고 짙은 하루일 수가 있습니다. 무엇이
그리 슬픈지 무엇을 그리 잘못했는지 파리 한 마리가 저리도 손을 비비고 있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그대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어간 이들이 그토록 살고 싶어 하던 내일이다.” 랠프 왈도 에머슨의 말입니다. ‘오늘’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허일(虛日)은 없습니다. 이 세상에 아무 의미 없이 태어난 허생(虛生)도 없습니다. 우리는 우연히 이 땅에 ‘던져진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어 이 땅에 ‘보내진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점(點)같은 하루하루가
모두 충만일(充滿日)입니다. 점이 연결돼 선이 되고 선이 연결돼 면이 되고 마침내 입체가 되듯이, 오늘
하루의 점을 경건한 꽃자리로 만들 때 승리하는 인생이 됩니다.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히 3:13)
한재욱 목사(서울 강남비전교회)
영원한 페트라 예수
페트라(Petra)는 그리스어로 ‘바위, 반석’이라는 뜻입니다. 페트라는
고대 에돔의 도시였으며, 나바테아 왕국 수도로 크게 번영하다 로마에 정복당했습니다. 오늘날 페트라는 요르단의 고대 유적입니다. 페트라로 들어가려면 폭이 3m도 안 되는 거대한 바위틈 사이로 1㎞ 가량 가야합니다. 그 끝에 다다르면 파라오의 보물창고라는 뜻을 가진 ‘알카즈네’라는 건축물이 나옵니다. 그런 골짜기에 바위절벽을 깎아 만든 화려한
건물이 있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곳은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서 성배를 찾는 장소로 유명해졌습니다.
성경 오바댜서에 “바위틈에 거주하며 높은 곳에 사는 자여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누가 능히
나를 땅에 끌어내리겠느냐 하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견고한
바위 도시로 인해 교만해진 에돔을 책망하는 말씀입니다. 결국 심판 예언처럼 페트라는 멸망해 모래 속에
묻혀 있다가 20세기에 들어와 발굴됐습니다.
오늘날 핵무기와 미사일을 개발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는 집단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하겠느냐고 으스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입니다. 인간의 무기나 물질, 권력은 결코 영원한 페트라, 반석이 될 수 없습니다. 영원한 페트라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한상인 목사(광주순복음교회)
존귀하고 겸손한 성도
성도는 세상 어떤 것보다 존귀한 존재입니다. 학력 직업 외모와 상관없이 존귀합니다. 창세 전에 선택받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죽으심으로 구원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묶는 밧줄 같은 열등감에 허덕일 필요가 없습니다.
성도들은 한편으로 한없이 부족한 존재들입니다. 시편
103편 14절은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먼지는 히브리어로 아파르입니다. 아파르는 흙이라는 뜻인데, 히브리어 사전을 보면 ‘인간 몸의 재료’라는 뜻도 있습니다.
인간이라는 영어 단어 휴먼(Human)도 흙이라는 라틴어 휴무스(Humus)에서 나왔습니다. 휴무스에서 겸손이라는 뜻의 휴밀리티(Humility)도 나왔습니다.
성도는 존귀하나 그 근본이 흙에서 나왔음을 알고 겸손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교만을 이길
수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자신을 티끌(창 18:27)이라고 했습니다.
제대로 된 신앙은 언제나 겸손합니다. 우리는 존귀한 성도라는 의식을 갖고 열등감을 이겨야
합니다. 그리고 진토(塵土)라는 근본을 기억하며 겸손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
기뻐하시는 성도, 이웃에게 복음과 행복을 나누는 성도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박성규 목사(부산 부전교회)
알 깨기의 감동, 줄탁동시
줄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봅시다.
달걀 안에서 생명이 움틉니다. 눈과 부리가 생긴 뒤 작은 날개가 나왔습니다. 이내 노란 털옷도 생겼죠. 포근했지만 작은 껍질 안은 답답합니다.
병아리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눈을 뜹니다. 드디어 용기를 낸 병아리는 제법 단단히
여문 부리로 지금껏 자신을 안전하게 보호하던 보금자리를 쪼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웬걸, 작은 부리로는 쉽게 깨지지 않습니다. 깨지
못하면 작은 틀 안에 갇혀 죽음을 맞이할 위기의 순간입니다.
탁(啄)의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어미닭은 애지중지 달걀을 품고 21일을 보냈습니다. 추위와
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어미닭의 사랑은 오직 달걀에만 주목합니다.
그렇게 충만한 돌봄과 보살핌 속에서 지내던 어느 날, 어미는 기다리던 소리를 듣게 됩니다. 병아리가 달걀을 깨뜨리려는 소리입니다. 어미는 믿음직한 부리로 병아리의
부화를 돕습니다. 어미의 부리는 정말 단단하고 튼튼해 절대 실패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십니까. 새롭게 변화되기를 진심으로 바라십니까. 아버지의 돕는 손길을 간절히 사모하십니까. 먼저 시작하셔야 합니다. 줄의 소리를 내십시오. 지체 없이 도우시는 전능자의 탁(啄)의 손길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안성국 목사(익산 평안교회)
채워가는 인생
장모님께서 얼마 전 별세하셨습니다. 많이 슬프기도 했지만 위로도 받았습니다. 장모님은 의식이 없는 상태로 들어가기 전에 힘을 다해 “여호와를
찬양하라, 여호와를 찬양하라,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외치신 다음, “이제는 힘이 없어 더 이상 못하겠다. 하나님 나를 받아주세요” 하셨습니다. 이것이 마지막 말씀이었습니다.
장모님의 임종 과정을 지켜보면서 인생의 마지막은 그 순간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평상시 어떤 마음 태도와 생활양식을 갖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형성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어원적으로 본다면 거짓은 ‘겉’과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거죽이나 가죽, 껍질 꺼풀 껍데기 등이 모두 같은
계통의 어원에서 비롯됐다고 합니다. 속과 다른 행동, 모습을
거짓이라고 본 것입니다.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을 향해 ‘회칠한
무덤 같다’고 하신 말씀은 겉은 하얗게 보이나 속은 그렇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속과 겉이 다른 것이 거짓입니다.
껍데기로 예수 믿으면 마지막엔 신앙의 참 모습을 드러낼 수 없습니다. 거짓은 가죽이고 참은
안에서부터 차오를 때에 나오는 결과입니다. 하루하루를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것으로 채워가면 어떨까요. 그것이 참이요, 마지막은 주님을 찬양하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곽주환 목사(서울 베다니교회)
나의 장미꽃 한 송이
“꽃밭에 수천 수만 송이의 장미꽃이 있은들 무엇합니까?(중략) 내가 고깔 씌워준 장미 한 송이, 내 손안의 작은 물병 하나와 바꿀
수 없습니다. 내가 만난 사람, 시간을 주고 마음을 주며
내가 사랑하고 우정을 나눈 사람. 이 우주 안에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나의 장미꽃 한 송이입니다.”
고도원 저(著) ‘사랑하고 싶어서’(꿈꾸는 책방)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보면, 지구에 온 어린 왕자가 수천 송이의 장미를 보고 실망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제껏 별에 두고 온 자신의 장미만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많은 장미를 보자 ‘멘붕’이 온 것입니다. 이때 현명한 여우가 이렇게 말합니다.
“너의 장미꽃을 그토록 소중하게 만드는 건 그 꽃을 위해 네가 소비한 그 시간이란다!”
세상에는 수많은 장미가 있지만, 내가 마음과 시간과 땀과 눈물을 쏟은 나의 장미가 가장
소중합니다. 나의 아내(남편)가 소중한 이유입니다.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의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의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잠 5:18∼19)
한재욱 목사(서울 강남비전교회)
평생 동지
하나님의 일은 누구든 혼자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그 뜻에 동참하는 동지가 필요합니다. 만일 내게 주어진 사명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면 반드시 뜻을 함께하는 동지가 있을 것입니다.
개혁자 루터에게는 멜란히톤이라는 평생 동지가 있었습니다. 루터가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발표한 지 6개월 만에 그가 속한 수도회 총회가
하이델베르크에서 열렸습니다. 당연히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이때
루터는 그 반박문을 20여개로 요약해 더욱 견결하게 선포합니다.
“인간은 스스로 구원할 수 없고, 공로로 구원받을 수도 없다. 인간이 구원받는 길은 오직 성경으로, 오직 은혜로, 오직 십자가 대속을 믿음으로만 가능하다.”
당시 그 자리엔 하이델베르크의 젊은 신학자 멜란히톤도 있었습니다. 그는 루터의 선포를 듣고
크게 감동해 일평생 그와 함께 종교개혁의 길을 가고자 다짐합니다. 가는 길이 비록 거칠고 험할지라도
주의 뜻을 함께 이뤄가는 동지가 돼 무덤까지 동행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영성에 기도 못지않게 중요한 게 신앙 동지애, 곧 우정입니다. 당신에게는 이런 우정을 나누는 이들이 있습니까.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나를 도우십니다. 그리고 사람을 향해 나를
보내십니다. “우정은 임마누엘의 또 다른 표현이다.”
김석년 목사(서울 서초성결교회)
첫 월급을 타면 의자를
행복지수 세계 1위 덴마크에선 첫 월급을 타면
의자를 산다고 합니다.
그들에게 의자는 일생 자기만의 문화를 만드는 공간입니다.
쉼과 독서와 음악감상
차와 대화와 글씨기
……
의자가 엔틱이 되는 세월과 함께
한 인생도 자기만의 경륜과 문화와 행복을 쌓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도 아파트 마련과 남들이 만들어 놓은 명품 가방의 소비로 인생을 탈진시키지 말고
자기만의 개성 있는 삶과 행복을 창조해나도록 이 가을엔 의자를 마련해 보면 어떻겠습니까?
이제사 김영란 법으로라도 룸살롱과 접대부를 찾지 못하고
제 집으로 찾아 들어야 하는
부정 청탁의 문이 막혀버린 이 새 시대에!
<이주연>
성공을 위한 자기 관리 지침
아놀드 베네트는 성공적인 삶을 위한 자기관리에 대하여
이런 제언을 하였습니다.
첫째는 내일부터가 아니라 오늘부터
둘째는 다음부터가 아니라 지금부터
셋째는 내일은 무엇을 할 것인지가 아니라
오늘은 무엇을 했는지 생각하고 물으라는 것입니다.
이런 제언들은 성공적인 삶을 살고자하면 한 마디로 미루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즉각 행동하라, 실천하라는 요청입니다.
셋째는 무엇이 이뤄졌으면이 아니라
무엇을 노력하고 있는지
넷째는 원하는 것이 왜 안 이뤄지는지가 아니라
원하는 것을 위해 왜 행동하지 않는지 물으라는 것입니다.
이는 노력 없는 바람, 행동 없는 소원은 망상에 지나지 않기에
지극히 타당한 제언이라 여깁니다.
다섯째는 나는 왜 안 되느냐가 아니라
나는 왜 행동하지 않느냐
여섯째 나는 무엇 무엇을 할 것이다가 아니라
나는 무엇 무엇을 하고 있다고
스스로 말하고 생각하는 습관을 기르라는 것입니다.
이 역시 실천을 하지 않으면서
부정적인 자기 올무에 사로잡혀
사지가 마비된 사람들을 향해서 행동하고
과감히 삶에 뛰어 들어 실천하라는 요구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아놀드 베네트가 요구하는 것은
내 소원은 이것이다가 아니라,
나는 이렇게 된다라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결국 최후의 문제는 믿음의 문제입니다.
나의 미래의 자화상, 나의 운명은
결국 믿는 대로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 하나는
지금의 삶에 뛰어들어 행동하고 실천하고
자기의 미래를 믿으며 나가려고 하여도
그렇게 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까닭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인간이란 자기도 자기를 마음대로
조정할 수 없는 마치 길들여지지 않은 말과도 같기 때문입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영적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자신이 부드러워지고 진실해지고
자유해지는 과정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하기에 기도하고 겸손히 주 앞에 머리를 숙이고
순복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주연>
*오늘의 단상*
오늘은 창조주께서 주신 다시 오지 않을 경축할 날입니다.
하루를 사랑과 진실의 축제일로 보내십시오.
영의 빛 아래 있어야
인간은 영과 혼과 육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셋이 모두 건강해야 하며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이 셋 중 육이 가장 강한 자리를 잡으면
인간은 육욕이 강화되어
탐욕과 성욕의 시녀가 되고
이기심과 물질주의에 빠지고 맙니다.
영의 빛 아래
혼과 육이 자리하고 있을 때에
혼과 육이 제 기능을 바로 하며
인간은 가장 품위 있고
존귀한 존재가 됩니다.
<이주연>
*오늘의 단상*
모든 만남은 10분 전에 도착하십시오.
신뢰와 주도력을 갖게 됩니다.
거룩한 갈망
사람은 욕망에 사로잡혀 삽니다.
그 욕망은 거룩한 갈망으로 바뀌지 아니하는 한
탐욕의 길로 나갑니다.
이 탐욕은 결코 쉽게 만족될 수 없는 무절제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탐욕은 종국엔 좌절이나 분노를 불러옵니다.
잘해야 이생의 자랑뿐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거룩한 갈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거룩한 갈망을 가지게 되면 우리는 탐욕을 넘어서서
가치 있는 것을 구하게 되고
더 나아가 영원한 것을 구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은 참으로 오랜 동안
이 탐욕과 거룩한 갈망 사이를 오가며 방황하고 번뇌합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인생의 가을엔
탐욕을 버리고 거룩한 갈망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 되면 우리는 점점 더 단순한 삶으로 나아가게 되고
높은 의식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종당엔 소유와 세속적 잘남이 아니라
구원과 주의 진리의 말씀만을 사모하고
그것에 희망을 걸고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영성의 길입니다.
<산마루 설교 "거룩한 갈망" 중에서>
*오늘의 단상*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산란한 마음이 집중을 얻고 길을 찾게 되어 방황을 그칠 것입니다.
사형수처럼 담대히
감옥에 들어가보면
잡범들은 석방될 날이
"얼마 남았네!" 하며
시끄럽게 굴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항상 조용히
도사처럼 묵묵히 지내는 이가 있습니다.
그는 사형수입니다.
-산마루 특강, 이후근 선생님 말씀 중-
작은 욕망에 사로잡혀 잡범처럼
들뜬 인생을 살 것인가,
아니면 묵묵히 하루하루를 사형수처럼
주어진 삶을 있는 그대로 삼킬 것인가?
만일 누구든
사형수처럼 작은 욕망을 접고
다만 주어진 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대장부처럼 삶을 삶으로 살아낼 것입니다.
<이주연>
*오늘의 단상*
자기를 마음껏 표현하십시오.
그러나 교만해지지는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