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을 기린다(6) 구원회 선생님
구원회(具沅會) 선생님은 교수님들 중에 연세가 높으신 편이었다. 우리를 가르칠 무렵에 아마도 50대였을 것이다. 어린아이처럼 순진하고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였다. 우리는 선생님으로부터 영작문(英作文)과 시사영어(時事英語)를 배웠다.
영작문은 교과서 없이 매시간 끝날 무렵, 우리말 한두 문단을 출제하여 다음 시간에 영작해 오라는 것이었다. 다음 시간에 자원하는 학생들 두세 명이 칠판에 자기 작품을 판서하면 선생님은 그것을 수정 보완하면서 가르치시고, 또 선생님의 모범 작품을 칠판에 쓰신다. 무엇보다 선생님의 그 유려한 필기체 글씨가 잊혀지지 않는다.
시사영어는 뉴스위크(Newsweek)나 타임(Time)지 같은 그 당시 미국의 유명한 시사주간지를 교재로 삼았다. 난해한 시사 용어가 많아 독해가 쉽지 않았으나 선생님의 해박한 용어 해설로 흥미 있게 공부했다. 선생님은 ‘시사용어사전’을 편찬하고자 원고작성에 착수하셨는데, 사전 편찬이란 혼자서 하기엔 워낙 방대한 작업이라 생전에 꿈을 이루지 못하셨다.
졸업 후 여러 해 동안 서울에 사는 미나회원들은 신년 초에 신설동에 있던 선생님 댁을 찾아 새해인사를 드렸다. 그때마다 선생님께서 우리들에게 친히 커피를 타 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특히 1974년엔 선생님께서 지으신 영작문 책 ‘Sentence Patterns in ENGLISH COMPOSITION’을, 1983년엔 선생님께서 번역하신 ‘망명군’(亡命軍: AN ARMY IN EXILE)을 선물로 주셨다.
‘망명군’은 제2차세계대전의 결과 소련에 나라를 빼앗겨 영국에 망명 중인 폴란드 군대의 바디소프 안데르스(Wladyslaw Anders) 장군이 쓴 1939년 2차대전 발발로부터 1946년까지의 기록이다. 선생님은 이것이 책으로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6.25전쟁 직전에 ‘타임’지 신간소개란에서 보고 원서를 입수하여 번역에 착수했다. 그 후 피난지에서 돌아와 1956년 주한영국대사관을 통해 장군의 주소를 알아내어 장군에게 서신으로 번역권을 얻었다. 그러나 전쟁 직후라 마땅한 출판사 구하기가 어려워 출판이 너무 늦어서 저자에게 송구스러운 마음 금할 수 없다고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