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동흠의 뉴질랜드 꽁트 231회. 뉴질랜드타임즈. 14/2/2020
레볼루션(Revolution)
빌라 마리아
뉴질랜드 한여름, 2월
첫 주말이었다. 데어리플랫에 자리한 앤디네 집이 들썩였다. 홉슨빌에서
테디 부부가 찾아왔다. 함께 저녁을 먹는 시간. 뒤 켠 데크
야외탁자에 차려진 저녁상이 특별하고 풍성했다. 테디가 조금 전 무리와이 비치에서 낚아온 스내퍼 두 마리. 팔뚝만 했다. 먹음직스럽게 회를 떴다. 써니가 텃밭에서 상추와 깻잎을 따왔다. 약이 밴 고추도 숭숭 썰었다. 제니도 옆에서 톡 쏘는 간장 겨자를 만들었다. 앤디가 잘 숙성된
화이트 와인을 꺼내왔다. VIP용으로 잘 보관해두었던 와인. 빌라
마리아 로고가 빛났다.
-야, 정월 보름 저녁에 넷이서 회식이라니. 2019년 기해년, 황금 돼지가 지나갔네.
-그려, 해는 바뀌어 2020년, 하얀
쥐 경자년이야. 풍요와 희망의 해 라고 하더구먼.
두 부부가 야외 탁자에 둘러앉아 서로 와인 잔을 부딪쳤다. 석양 녘도 취기가 올랐는지 붉은 토마토 색깔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지나는
바람이 와인 잔을 넘나들었다.
-오~ 스내퍼 맛! 찰지고 쫄깃하네요. 싱싱해서
막 넘어가요.
-써니 씨, 그동안 아팠다면서요. 몸보신할 때지요. 마음껏 들어요.
동굴 여행!
고국에 연로하신 어머니 병간호하러 갔다 돌아온 써니가 몸에 탈이
생겨 고생깨나 한 뒤끝이었다. 아내 제니가 써니네 위문 방문 가자며 테디더러 낚시를 보냈던 것. 운 좋게 대어 두 마리를 낚은 일. 함께 만나 회포를 나누며 먹는
회식 자리. 좋은 진동수로 활기가 넘쳐났다. 써니가 맛있게
회를 들자 앤디가 테디에게 와인 한 잔을 더 부었다. 제니도 써니도 서로 잔을 부딪치며 지금 여기에
푹 빠져들었다.
-앤디! 아내 없이 혼자 사느라 고생 좀 했지? 연말에 찾아온다고 하면서도
공사 일이 바빠서 그리 못 해 미안했지. 다행히 오늘 이렇게 만나 쌓인 것 푸니 가슴이 시원하구먼.
-테디, 고마워. 그 공사 잘 마무리하고도 자네 얼굴이 건강한 것 보니 좋네. 요즘 대세는 뭐니 뭐니 해도 건강이야. 사실은 나도 호되게 아팠다네. 누구한테 이야기도 못했어.
입맛들이 당기는지 접시에 손이 자주 갔다. 앤디도 테디도 써니도 제니도 젓가락이 춤을 췄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바닷속에 있던 스내퍼가 접시 위로 올라왔다. 접시에서 입으로 가는 여행? 입에서 뱃속으로 떠나는 동굴 여행! 바닷냄새가 속을 채웠다. 사는 맛이 이런 거려니 싶었다. 회 접시 한 개가 비워졌다. 또 한 접시를 내놨다. 와인도 취기에 일조한지라 바닥이 났다. 또 한 병 더 땄다.
신바람 주파수
-작년 초에 앤디 자네
부부가 우리 집에 방문했잖아. 뉴질랜드 특산 스카치필렛 풍성히 사 들고서 말이야. 그때는 육 고기로 회포를 풀었었지. 몬타나 레드와인이 바닥을 냈고.
-그러네. 작년엔 육군, 올해는 해군, 내년엔
뭔가?
-당연히 공군일세. 칠면조라도 한 마리 잡아야겠네. 크리스마스 무렵이면 좋겠구먼.
-좋은 생각이네. 서구사회에 살면 이곳 문화도 접해봐야지. 연말이면 회사에서 선물을
신청하라고 하더구먼. 칠면조, 베이컨, 선물 권 바우처. 셋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더구먼. 그동안 베이컨과 선물 바우처를 택해서 받았지. 내년에 칠면조를 신청해야지.
-생각의 전환이 흥미롭네. 똑같은 방식에서 훌쩍 날아 새롭게 시도해보는 일. 우리 만남이 뉴질랜드
와서 이뤄졌지. 벌써 20년, 만날 때마다 서로에게 신바람 나는 진동으로 공감을 줬어. 신바람
주파수가 사는 맛을 더해줬지.
부르릉~ 앤디 스마트폰이
진동으로 울렸다. 앤디가 확인하더니 꾹 눌러 껐다. 테디가
의아한 듯 고개를 들었다. 앤디가 이유를 이야기했다.
-중요한 건 지금, 이 모임이잖아. 이 전화, 지금
안 받아도 상관없어. 급한 게 아니니. 상대도 알 거야. 시간을 다투는 일이면 문자메시지가 올 거야. 나는 그렇게 하거든.
-역시 앤디 자네는 자네답구먼. 어떤 이는 이럴 때 계속 전화 받느라 주변 분위기를 다운시키기도 하던데. 눈앞에
사람 놓고 좀 그렇더구먼. 그렇게는 하지 말아야지. 참, 아까 자네가 이야기하다 만 것. 호되게 아팠다는 것. 누구에게도 이야기 못 했다는 게 뭔가?
앤디가 텃밭에 열린 방울토마토를 한 움큼 따왔다. 물에 씻어 접시에 내놓았다. 싱싱하고 탱글탱글했다. 디저트로 한 알씩 입에 넣고 깨물었다. 천연 과즙이 새초롬했다. 앤디가 차분히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원래 내 별자리
-지난 연말에 스마트폰을
잃어버렸잖은가. 멘붕이 되더구먼. 써니가 고국에서 장모님
병상에서 수발들 때였어. 거기다 내 몸까지 바닥을 기었지. 소변
길이 막혀버렸어. 일 볼 때면 뜨끔뜨끔했어. 병원 GP한테도 가보고, 한의원도 찾았지.
여러 검사도 해보고. 이상이 없대. 나는 죽겠는데. 밤에 자다가도 여러 차례 깼지. 잔뇨가 남아서. 밤잠 설치니 얼굴이 푸석해졌어. 쉬는 날, 수박을 한 통 다 먹고 동네 리저브를 뛰었지. 강한 요의를 느껴
화장실로 들어갔어. 쏴~ 폭포수가 발사되더구먼. 툭! 하면서 뭔가 빠져나가더구먼.
까만 돌조각이었어. 요로결석이었던 거야.
-아이고야. 엄청 통증이 컸겠구먼. 요로결석?
그거 사람 죽이지. 나도 재 작년에 그걸로 고생하다
111 응급차로 와이타케레 병원에 실려갔잖아. 병원 가서 2000번 정도 진동 충격으로 깨 부쉈지.
-절실한 체험이었어. 극한 상황에 달하니까 바램이 단순해지더구먼. 제때 소변보는 일. 밤에 제대로 잠자는 일. 필요할 때 전화하는 일. 내 의식에 일대 혁명이 일어났지. 회사 동료 키위들이 내 이야기를
듣더니 레볼루션(Revolution)이라고 하더구먼.
-빙고! 절대 공감하네. 그보다 절실하고 필요한 게 있나. 현재 이곳에서 자유로움이 최우선이지.
-그렇지. 혁명이란 때려 부숴 새로 짓거나 좋게 고치는 게 아니라네. 별이
궤도를 돌고 돌아 제 자리로 돌아오는 현상이 혁명 이라더구먼. 지금 여기. 원래 내 별자리에 와 있는 거야. 이게 은총이고 감사지.
넷이서 잔에 와인을 가득 채웠다.
와인 잔 넷이 팅팅 부딪쳤다. 건배 사가 저녁노을 쪽으로 울려 퍼졌다.
-레볼루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