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211(화) ◈ 눅 2:1-20 아기 예수님은 충분한 복음이 되신다.
2:1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2:2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2:3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2:4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2:5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2:6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2:7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2:8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2: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2: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2: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2: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2: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2:15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2:16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2:17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전하니
2:18 듣는 자가 다 목자들이 그들에게 말한 것들을 놀랍게 여기되
2:19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
2:20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 주 해
* 요한의 잉태 소식에 이어서 예수님의 잉태 소식이 있었고, 요한의 탄생에 이어서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가 오늘 본문의 내용이다(1-20절).
로마황제 가이사 아구스도가 인구조사를 명한 것으로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가 시작된다.
1) 천하를 호령하는 로마 황제를 통하여 하나님은 구약의 말씀을 성취하신다.
2) 요셉은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가서 호적을 해야 했고, 마리아도 동행하였다.
- 호적을 위해서 만삭인 마리아가 꼭 동행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마리아는 자신 다윗의 동네인 베들레헴에서 아이를 낳아야 함을 알고 동행한다.
3) 예수의 탄생과 죽음이 세계 역사의 맥락 속에서 일어난다.
- 하나님께서 그의 섭리를 달성하기 위하여 지상의 통치자를 이용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 구약의 출애굽, 바벨론 포로, 포로 귀환 등도 역사의 섭리자는 하나님이시다.
4) 예수님은 B.C. 4년경 헤롯왕 때에 탄생한 것으로 추정된다(눅 1:5; 마 1-2장).
2. 만삭이 된 마리아가 나사렛에서 베들레헴으로(106km 정도 떨어진 곳) 이동한다.
1) 베들레헴은 다윗의 고향이며(삼상 17:15), 메시아가 출생할 곳으로 예고된 곳이다(미 5:2).
2)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와 하나님의 아들을 베들레헴에서 낳아야 한다고 믿은 마리아로 인하여 구약의 말씀대로 베들레헴에서 다윗의 후손, 그리스도가 탄생한다.
3. 베들레헴에는 들어갈 방이 없어서 첫 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다.
1)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성자이신 아들, 창조주 하나님이 들어갈 방도 없어서 나귀 구유에 누이셨다.
2) 주님은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되어서 목수로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삶, 가난한 자들 사이에서 자라나셨다.
3) 공생애 사역 중에도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9:58)라고 하셨다.
4. 누가복음에서는 예수의 탄생 때에, 당시 비천한 신분인 목자들이 함께한다.
1) 로마황제 가이사 아구스도, 수리아 총독 구레뇨의 이름이 등장하지만 만군의 왕이신 아들은 나사렛의 요셉과 마리아의 가정에 태어나셨고, 구유에 누이셨고, 목자들과 함께하셨다.
2) 땅에서는 이렇게 초라하고 비천한 곳으로 찾아오신 예수님이지만, 만물 위에서는 엄청난 역사가 일어났으며, 땅에 이렇게 많은 천사들, 수많은 하늘 군대가 땅에 나타나서 찬송한 적은 전무후무하다.
눅 2: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눅 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5. 창조주, 전능자, 만군의 여호와, 성자가 육신을 입고 아기로 탄생하는 사건은 하늘에서는 가장 큰 표적이며 놀라운 일이며,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사건이었다.
1) 그래서 베들레헴 밤의 들판에는 수많은 하늘의 군대와 천사들이 하나님을 찬양했다.
2) 그러나 땅에서는 소수의 사람들과 목자들이 예수님의 탄생을 찬양하였다.
- 땅에서 태어나 하늘의 일들을 보며 찬양하는 자들은 소수이며, 그들은 참으로 복된 자다.
3) 하늘의 영광, 만물 위의 찬란한 영광은 이 땅의 비천한 자들에게 나타난다.
- 하나님이 밤새워 양 떼를 도둑이나 들짐승으로부터 보호하는 목자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신 이유다.
6. 천사들이 목자들에게 선포한 것은 땅의 복이 아니라 “바로 그 복음”이다.
눅 2: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눅 2: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 복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이 복음이다.
2) 목동들에게 진정한 복음은 목축업이 잘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 복음은 양들이 안전하거나, 밤에 따뜻한 방에 눕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3) 수 많은 천군 천사들이 나타나 목자들에게 보여준 복음은 그리스도 주시다.
- 그것도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아니라 “구유에 누이신 아기 예수님”이다.
7.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며 “표적”이다.
눅 2: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 성탄절이 있는 우리에게 “구유에 누인 아기”는 성육신 하신 복음이다.
2) 그러나 그 때, 밤에 양들을 지키는 목자들에게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운 아기를 보는 것”이 “표적”이 될 수 있을까?
3) 표적은 하나님께서 자신이 역사하려고 하는 바를 확증해주는 사인(sign)이다.
- 즉 표적은 복음을 가리키는 하나님의 사인(기적)이다.
8. 사복음서에서 표적은 주로 치유, 축사, 능력을 행함으로 나타난다.
1) 그러나 목자들에게 나타난 표적은 “구유에 누인 아기”다.
2) 목자들의 생계에 어떤 보탬도 주지 않는 아기, 목자들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는 아기, 목자들의 문제를 하나도 해결해 주지 않는 아기가 하나님이 보여주신 “표적”이다.
3) 목자들이 보는 표적 즉 메시아, 구세주는 매우 비천한 상태, 약한 자로 보여진다.
4) 그러나 목자들은 “아기 예수”를 하나님이 보여주신 표적으로 받아들이며 하나님을 찬양하였고, 마리아는 이 일들을 마음에 새긴다.
9. 하나님을 알게 하는 표적, 복음을 알게 하는 표적은 “기적, 문제해결, 소원성취”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1) 표적 자체를 따르는 신앙이라면 “아기 예수”는 시시한 표적이며, 실망스런 표적이다.
2) 그러나 표적이 하나님(복음)을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에 “아기 예수”는 하나님을 보게 하고, 아들을 내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하고, 겸손한 구원자를 보게 하는 표적이다.
3) 아기 예수를 표적으로 삼는 자는 “큰 기쁨의 좋은 소식, 큰 복음”을 아는 자다.
10. 아기 예수를 복음으로 받아들이고 기뻐한 이들을 볼 때마다 참 부럽고 놀랍다.
1) 그들은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기적, 문제를 해결해 주는 능력을 경험하지 않고, 아기 예수를 복음으로 받아들였다.
2) 예수님은 복음이다. 부활하신 예수님도 복음이고, 십자가의 예수님도 복음이고, 공생애의 예수님도 복음이고, 어린 시절 예수님도 복음이고, 아기 예수님도 복음이다.
- 아기 예수님을 복음으로 알고 믿는 자는 심령이 가난한 자로써, 복이 있다.
3) 그들은 복음 자체를 받아들이고 기뻐한 자들이다.
- 하나님이 주시는 존재물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 존재로 복음을 받아들이고 기뻐한 자다.
11. 천사는 목자들에게 복음이신 예수님은 “온 백성에게 기쁨이 될 소식”이라고 하였고, 목자들은 천사들이 알려주신 바, 일어난 그 일을 보자면서 베들레헴으로 찾아간다(15)
1) 목자들이 베들레헴으로 아기 예수님을 찾아나선 선택을 한 것은 먼저 천사들이 나타나 복음을 전하여 주었기 때문이다.
2) 천사들이 먼저 찾아오고, 복음을 먼저 전해준 그 은혜에 의하여 목자들은 저절로 주님이 우리에게 알려주신 것을 보자는 마음이 생겼고, 그 마음대로 순종하여 복음이신 아기 예수님을 보았다.
3) 그리고 자신들이 들은 말을 사람들에게 알려 주었다(16). 즉 저절로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하여 준 것이다.
4) 베들레헴의 구유에 찾아오고 복음을 전한 목자들이 귀하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일어난 일들이다. 즉 주님이 하신 일이다. 주님이 목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주었고, 그로 인하여 그들은 복음을 목격하고, 복음의 말을 전하여 주었다.
5) 우리에게도 주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시고, 주님이 먼저 찾아오시고, 주님이 먼저 복음을 듣게 하시고, 주님을 찾게 하시고, 주님의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그 은혜의 영광을 찬양한다.
◈ 나의 묵상
“복음이면 충분합니다”라는 고백이 진실하다면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로 충분하다.” 나의 세상살이, 경제, 건강, 관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도 아기 예수로도 주님은 복음이 되신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를 위해 죽으시고, 나와 함께 장사되시며, 성자를 내어 주신 그 사랑이면 나는 이미 충분한 은혜와 사랑을 입은 자다.
“복음이면 충분하다”고 외치고 외쳤었지만 나는 죄의 세력에 속아서 존재물을 구하는 자가 되었다. 복음으로 충분하지 않아 하는 나의 영혼, 나의 외식을 주님은 드러내셨다. 사람들의 인정을 받지 못하자, 건강이 무너지자, 마음이 불안해지고 우울해지자, 내 뜻대로 관계가 되지 못하자....나는 주님 한분이면 충분하지 않는 자임이 드러났다. 아기 예수로 충분하지 않았다. 광야가 오자 존재이신 하나님을 구하지 않고, 존재물을 구하는 나를 보았다. 하나님보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들을 즐거워하는 나를 알아차리게 하셨다. 메마름이 오자 존재를 예배한 것이 아니라, 예배의 감정과 감격, 임재의 느낌, 해소되는 마음을 예배한 것을 알게 되었다.
주님 한 분으로 충분하면 하나님을 느낄 수 없어도 감사하다. 하나님이 내 인생에서 어떤 도움을 주지 않아도 기뻐한다. 하나님이 나를 메마름과 비참함 가운데 내버려 두심으로 내 영혼의 진실한 상태를 드러내 주셨다. 나의 무화과나무 잎을 벗기심은 비참하나 감사한 일이다. 무화과나무 잎으로 만족하는 신앙생활을 한다면 그처럼 비참한 것은 없다. 신앙의 껍데기, 감정적인 신앙이라는 껍데기가 벗겨지자 벌거벗은 자, 비참한 자, 쥐구멍에 숨고 싶은 자가 되었다. 칼빈의 말대로 나를 알면 하나님을 아는데 유익하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를 알도록 무화과 나무 잎을 벗기셨다. 그리고 이렇게 비참한 자를 사랑하시는 주님을 알게 하셨다.
벌거벗겨 수치 가운데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수치스러운 나를 품으신다. 주님의 수치를 아랑곳하지 않고 나의 수치를 가리워 주신다. 그분이 수치를 당하심으로 나의 수치를 덮어주시는 것이다. 그분이 가죽옷이 되심으로 나의 수치와 정죄를 덮어주셨다.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시는 주님의 인자와 긍휼이 크다. 나도 나를 용납할 수 없어 자기 변명과 자기 합리화로 수치를 가리는 자를 하나님은 있는 그대로 용납하신다. 내가 죄인이며 원수짓을 해도 아들을 내어주는 사랑으로 품어주신다. 그 사랑이 나의 완악함을 이기고 언제나 승리한다. 그 사랑이 나의 낙심과 불안을 이기고 승리한다. 오늘도 비참하나 아버지께로 나아간다. 이런 나를 용납하시는 아버지께 나아간다. 그리고 주님 한분으로 충분한 믿음, 연합, 사랑으로 이끌어 주시기를 기도한다. 아기 예수가 복음이 되고, 아기 예수로 충분한 자로 주님을 찬양하기 원한다. 마리아처럼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한다. 그리고 아기 예수님을 찬양한다. 존재이신 하나님을 존재로 찬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품으시고 나와 함께 계시는 주님은 지금부터 영원토록 찬양받기 합당하시다.
◈ 묵상 기도
주님, 아기 예수님은 함께 있는 것만 하시지 아무런 일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마리아와 목자들은 아기 예수님,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만으로도 기뻐하며 찬양했습니다. 내가 어떤 처지에 있던 하나님은 지금까지 저와 함께해 주셨습니다. 죄를 사랑하고, 교만할 때에도 저를 떠나지 아니하셨습니다. 저를 징계하시고 심판하실지언정, 저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긍휼히 여기시고 사랑으로 돌보아 주셨습니다. 메마름과 비참함을 통하여 나를 알게 하신 주님, 이제는 하나님을 알게 하여 주십시오. 존재물이 사라진 그 때에도 존재이신 하나님은 함께해 주셨습니다. 존재물에 사로잡혔던 신앙, 존재물을 따라다녔던 자, 이제는 존재이신 하나님, 만물 위의 하나님, 그분을 구하며 사랑하며 그 안에 거하기를 원합니다. 존재로 충분한 믿음이 없는 이 죄인에게 만물 위, 영원한 그곳에서 연합되는 믿음을 주십시오. 아버지와 아들을 아는 생명의 풍성함을 알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