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현주(洪顯周, 1793년~1865년)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세숙世叔, 호는 해거재海居齋· 약헌 約軒. 아버지는 홍인모(洪仁謨, 1755-1812)이고, 우의정 홍석주(洪奭周, 1774-1842)의 아우이며 정조의 사위이다.
정조의 둘째딸 숙선옹주(淑善翁主, 1793-1836)와 혼인하여 영명위 永明尉에 봉해졌다. 1815년(순조 15) 지돈녕부사가 되었으며 시호는 효간孝簡이다. 그는 문장에 뛰어나 당대에 명성을 떨쳤으며 저서로는 <해거시집海居詩集>이 있다.
홍현주는 뛰어난 문장가였으며, 시문과 서화 등을 잘하였고, 차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는 정약용 김정희 초의선사 정학연 등 당대 최고 문사와 교분을 나누었을 뿐만 아니라, 청나라 문인인 오숭량, 옹수곤 등과도 시문을 통해 교류하였다.
‘소림모옥도’는 본래 화첩 중 한 장이었고, 화제에 ‘방원인필법(倣元人筆法)’이라 적혀 있는데, 이는 원나라 예찬(倪瓚, 1301- 1374)의 필법으로 그렸다는 의미이다. 이 작품의 주제인 ‘소림모옥(疏林茅屋)’은 ‘고목 사이로 쓸쓸히 자리 잡은 초가집’이다. 이러한 형식은 예찬에 의해 주로 그려지며 화단에 유행하게 되었고, 갈필로 먹을 아껴 까슬까슬하게 그려 탈속의 풍모를 보이는 이런 양식은 조선 시대 김정희에 의해 본격적으로 수용돼 조선후기 문인화의 전형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