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아닌 벗이 비로소 나를 만든다”
<41> 강급사 소명에게 보내는 대혜선사의 편지 ①-1
[본문] 사람이 태어나서 한 세상을 사는 동안 백년이라는 세월이 능히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대는 가난한 집(白屋)에서 가문을 일으켜 훌륭한 벼슬과 중요한 직책을 다 거쳤으니 이것은 세간에서 제일가는 복 받은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능히 부끄러움을 알아서 마음을 돌이켜 도를 향하여 출세간의 생사를 벗어나는 법을 배우니 이 또한 세상에서 제일등가는 훌륭한 삶의 길(便宜)을 찾은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모름지기 급히 손발을 써서 냉정하게 정색을 하여 다른 사람들의 부림을 받지 말고 스스로 근본 생명자리를 깨달아서 돌아갈 곳을 분명히 하면 그것은 곧 세간과 출세간에서 일을 마친 대장부가 될 것입니다.
불교에서 벗이란 도반이자 선지식
자주 만나 법담 나누며 서로 배워
[강설] 급사 벼슬을 하는 강소명이라는 사람에게 보낸 편지다. 먼저 사람으로서 세상을 살아가는데 무엇이 가장 가치있는 일이며 진실로 존귀한 일인가를 말하였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으나 가문을 일으키고 벼슬살이를 하여 나라의 요직을 거쳤다면 세상에서 그야말로 성공한 인생이라고 할 만하다.
세상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목표와 가치를 여기까지로 생각하고 산다. 그러나 강소명이라는 사람은 오히려 부끄럽게 생각하고 출세간의 불법을 공부하니 이러한 사람이야말로 진정 현명하고 훌륭한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이왕 불교에 입문하였다면 지금부터는 세상에서 사람 노릇하는 일은 걷어치우고 자신의 본래면목과 참사람 참생명을 깨닫기 위해서 철저히 정진하라는 가르침이다.
[본문] 편지를 받아보니 매일 이참정에게 가서 도(道)를 이야기한다 하니 매우 좋고 훌륭한 일입니다. 이 분은 구하는 마음을 쉬어서 언어의 길이 끊어지고 마음 갈 곳이 없어짐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온갖 차별한 가르침의 갖가지 방법에서 옛 사람들의 수단을 엿보았기에 이젠 옛 사람들의 방편으로 사용한 문자에 걸리지 않습니다.
산승은 저 사람의 이와 같은 사실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그 사람과는 한 글자도 나누지 아니한 것은 그를 오히려 둔하게 할까 염려한 것입니다. 곧바로 그가 올 때까지 기다려서 스스로 산승과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그때 비로소 그와 함께 눈썹을 서로 맞대어 상대(眉毛厮結)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냥 가만히 있을 것입니다. 도를 배우는 사람이 만약 구하는 마음이 쉬지 아니하면 비록 그와 더불어 눈썹을 서로 맞대어 상대한들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참으로 어리석고 미치어 밖으로만 달릴 뿐입니다.
옛 사람이 말씀하시기를 “선한 사람을 가까이 하는 것은 마치 안개 속을 걸어가는 것과 같아서 비록 옷은 젖지 아니하나 때때로 축축하여 지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습니다. 다만 이참정과 함께 자주 자주 이야기하시기를 빌고 또 빕니다.
[강설] 옛 말에 “나를 낳아준 사람은 부모요, 나를 만든 사람은 벗(生我者父母 成我者朋友)이라”하였다. 세상의 공부를 하는 일에서나 출세간의 도를 닦는 일에서나 벗을 잘 만나야 성공한다. 불교에서 벗이란 도반이며 선지식이다. 강소명이 이참정과 자주 만나는 것을 칭찬하고 그를 배우라는 가르침이다.
이참정은 그 공부가 이미 말의 길이 끊어지고 마음 갈 곳이 없어진(言語道斷 心行處滅) 사람으로서 옛 사람들의 갖가지 서로 다른 방편의 가르침에 미혹하지 않는 분이라고 칭찬하였다.
흔히 하는 말로 “아는 사람은 말이 없다”라고 하였듯이 이참정이야말로 도를 아는 사람으로서 본보기가 되고 기준이 될 만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은근히 표현하면서 그와 자주 자주 만나서 법담을 주고받으며 공부에 대해서 지도받기를 당부하였다.
안개 속을 걸어가면 옷이 젖고 먹을 가까이 하면 검어지듯이 가까이 하는 주변의 도반 영향으로 자신의 사람됨도 크게 달라진다.
[출처 : 불교신문 2012.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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