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생은 조선 역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인물이다. 개인적으로는 율곡 이이의 수제자라는 타이틀과 문묘종사라는 광영이 있겠으나, 정치사에서는 그야말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율곡 이이를 중심으로 한 정치세력을 서인이라 한다. 그 서인의 중심인물인 송시열의 스승이라는 위치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의 아들 김집은 부자간에 문묘에 종사되는 영광을 누렸고 그의 후손들은 3대에 걸쳐 대제학을 배출함으로서 조선 최고의 명문가로 우뚝 서기에 이른다.
그런데 이 묘소를 역장의 대표주자중에 하나로 얘기한다. 9대 조모 뒷편에 무덤을 썼기 때문인데, 필자가 논문을 통해 밝혀 놓은바와 같이 당시에는 역장이라는 개념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비록 조상의 묘 뒷편이라 할지라도 좋은 자리가 있으면 거리낌없이 써도 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러다 영정조 시기에 이르게 되면 역장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이루어지고 송사로 이어지는 사례가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본 묘역의 핵심 혈처에는 김장생의 묘가 자리한다. 혹자는 9대 조모가 좋다고 하는데 혈을 구성하는 요소중에 하나인 선익사를 비롯한 여러 정황을 보면 김장생의 묘가 혈처에 자리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