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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받지 못한 인생은 불행하다(2276.2024.11.24)
신26:16-19
할렐루야
오늘도 주의 전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혹시라도 삶의 현장에서 상처와 상한 마음을 가지고 오셨으면 말씀 듣다가 위로와 치유함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질병과 싸우는 중이라면 치료의 하나님을 만나서 치료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삶이 힘들고 지쳐서 오셨다면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새힘을 얻는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무엇인가 계획하고 기도중에 있는 것이 있다면 응답받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삶이 해결되고 성령이 충만하여 기쁨과 감사와 웃음이 넘치나는 유쾌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한 꼬마가 쪼르르 달려와서 마루에 있는 할머니와 어머니에게 대추를 하나씩 내밀었습니다. 엄마가 가만이 보니까 할머니 대추는 크고 좋아보이고 내 대추는 작고 그래서 ‘괘씸한 녀석 같으니’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가 나중에 놀려먹으려고 꼬마에게 물었습니다. ‘그때 할머니 대추는 큰 것을 드리고 나는 왜 작은 것을 주었느냐’물으니 꼬마가 하는 말이 이렇습니다. ‘엄마 사실대로 말할까요. 사실 할머니 대추는 개똥에 떨어졌던 거여요’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여러분 할머니는 그것도 모르고 우리 손자하고 얼마나 좋아했을까요? 할머니여러분 손주녀석들한테 속지마세요. 겉으로 보이는 것도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세상 모든 것이 마음의 문제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것 없다, 마음에도 없는말’등등 표현은 마음이 중요한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앞에 나오신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마음이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16절‘오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규례와 법도를 행하라고 네게 명령하시나나니 그런즉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지켜 행하라’했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라고 합니다. 본문 17절에 하나님을 내 하나님으로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하나님을 내 하나님으로 인정하시고 하나님께 마음을 다하여 예배드리시고 마음을 다하여 은혜받으시고 마음을 다하여 순종하셔서 신명기에 나타난 복을 받아서 누리시는 명품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상품 중에서도 명품이 있습니다. 나이키 하면 명품 중에 하나입니다. 나이키가 누구 때문에 명품이 되었는 줄 아십니까? 나이키의 시작은 뉴욕 뒷골목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주문을 받아서 운동화를 만들어 주던 작은 구멍가게가 잘 되니까 공장을 만들게 되고 해외에 하청을 주는 큰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그때 나이키가 하청을 준 곳이 바로 부산 지역의 신발공장들이었습니다. 한국의 신발이 워낙 꼼꼼하게 잘 만들어서 나이키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국 근로자들의 임금이 뛰고 한국에서 신발 만드는 비용이 올라가니까 나이키가 공장을 중국과 필리핀으로 옮겨버렸습니다. 나이키가 성공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곳은 부산의 신발공장이었는데 나이키가 떠나니까 부산의 신발공장들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나이키는 세계 최고를 목표로 신발을 만들었지만 부산의 공장들은 먹고 살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신발을 만들어 주기만 했기 때문에 나이키가 떠나자 부산지역의 신발산업이 추락하고 만 것입니다. 명품을 만들어 주는 자가 아니라, 명품이 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뭔가 달라졌을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들은 그냥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명품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이 세상이 인정하는 명품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명품답게 신앙생활 하셔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명품 가방은 비가 오는 날에는 가슴품에 앉고 뛰어가지만 가짜 명품은 머리에 비 안맞게 씌우고 띄어갑니다. 저는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모두가 정말 가짜 신앙인이 아니라 명품 신앙인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정말 하나님을 믿는 성도라면 하나님을 인정하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상주감리교회에서 예배드리시는 여러분은 하나님을 정말 믿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인정하시고 계십니까? 믿는 우리가 하나님을 인정하라고 말씀합니다. 본문17절‘네가 오늘 여호와를 네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또 그 도를 행하고 그의 규례와 명령과 법도를 지키며 그의 소리를 들으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인정을 받아야 할 분이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인정을 하든 인정을 하지 않든 여전히 절대 주권자이십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왜 우리가 하나님을 인정하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그것은 ‘우리의 믿음을 위해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믿음이 필요하단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알기는 하는데, 하나님께서 내 삶의 주인이심을 인정하지 못하면 온전한 신앙생활이 안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은 하는데, 실제로 내 삶에서 하나님을 인정하는 순종이 없다면 온전한 신앙생활이 안 됩니다. 하나님을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에게 온전한 믿음이 가능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실존을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내 삶의 주인이심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절대적임을 인정할 때 가장 온전한 신앙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에게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가장 좋아하는 성경의 단어가 있습니다. ‘아멘’이라는 단어입니다. ‘아멘’은 믿음의 용어입니다. ‘아멘’은 하나님께서 가장 기쁘게 받으시는 천국의 언어입니다. ‘아멘’이라는 단어 속에는 온갖 소중한 믿음의 의미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말씀이 선포될 때 ‘아멘’하는 것은 ‘그 말씀을 믿음으로 받습니다.’란 의미도 담겨져 있고, ‘그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습니다.’란 의미도 담겨져 있고, 또 ‘그 말씀에 순종하겠습니다.’란 의미도 담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대표기도할 때 회중들이 ‘아멘’하는 것은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습니다.’란 의미도 담겨져 있고, 또 ‘그대로 이루어주시옵소서.’란 의미도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멘’을 무심코 사용하거나, 아무 의미도 없이 습관적으로 사용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말씀이 선포될 때 ‘아멘’을 확신을 가지고 크게 잘 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대표기도 할 때도 ‘아멘’으로 크게 화답하시는 것은 매우 좋고 중요합니다. 신앙생활에서 ‘아멘’ 못지않게 많이 사용하고 중요한 단어가 또 있습니다. 그것은 ‘믿습니다.’란 말입니다. 그 동안 우리는 믿는다는 말이 워낙 중요하고 좋은 말이다 보니 믿음의 사람들이 믿는다는 말로 다 때우려는 경향이 생겼습니다. 설교 시간에 목사님께서 ‘믿습니까?’라고 하면 졸다가도 ‘아멘’하면 되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믿는다는 것인지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아멘’을 합니다. 믿는다는 말이면 충분하고, 믿는다는 말은 워낙 중요한 고백이 맞습니다. 그러나 믿는다는 말이 상투적인 말이 되어서도 안 되고, 편리한 교회 용어에 불과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가 믿는다고 하는 이 말 속에 ‘인정한다’는 의미를 더해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믿는다는 말을 사용할 때마다 우리 속에서는 ‘하나님을 인정합니다’라는 고백을 담아서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이면 충분하지만, 이왕이면 우리는 ‘인정하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님들은 하나님을 인정하는 믿음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인정하고, 하나님의 능력도 인정하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그 믿음이 머리로만 아는 믿음이 아니라, 실제 삶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믿음이 되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말로만 좋은 믿음이 아니라 실제로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경험하는 믿음생활이 되시기 바랍니다.
1.하나님을 인정하면 하나님을 사모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인정하면 사모합니다. 온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인정하기를 가슴으로 원하는 사람은 예외 없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가슴으로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치고 그를 자신의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사람은 자신의 목숨과 생애를 걸고서라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신6:4-5절‘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마음, 성품, 힘’이란 표현은 나의 목숨과 삶 전체를 다 가리키는 말이지요.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이 자녀들을 키우다보면 그들에게 부모로서 무엇을 기대하십니까? 부모가 자녀를 사랑한 만큼, 자녀도 부모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 아닐까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만큼 더 큰 가치가 세상에 없습니다. 아무리 돈이 좋고 물질이 좋고 세상 명예와 쾌락이 좋아도 우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바꿀 수 없어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 삶의 최고 목적이요 존재 가치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면 하나님을 사모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사모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인정하지 못하니깐 사모함도 없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처음 왕이 되었을 때 자신이 왕이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인정했습니다. 그랬더니 솔로몬에게 사모함이 대단했습니다. 자신을 왕으로 세우신 분도 하나님이시오, 앞으로 자신을 지켜주시고 함께 하실 분도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믿음을 가진 솔로몬은 일천 번제를 하나님께 올려드렸습니다. 일천 번제는 사모함이 없고서는 드릴 수 없는 그런 최선의 제사입니다. 그렇다면 그 사모함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요? 전적으로 하나님을 인정하는 믿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솔로몬에게 그런 인정하는 믿음도 없고, 그래서 그런 사모함도 없었다면 과연 누가 시켜서 일천 번제를 드릴 수 있었겠습니까? 시켜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정하는 믿음과 사모하는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솔로몬의 일천 번제였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솔로몬은 갈수록 하나님을 인정하는 믿음이 약해집니다. 이제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보다 자신의 실력을 인정하려고 합니다. 점점 세상의 것들을 인정하는 솔로몬이 되었습니다.그러면서 솔로몬에게는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식어집니다. 솔로몬에게 시집을 온 이방 공주들이 솔로몬 별궁에서 우상을 숭배하겠다고 해도 솔로몬은 그렇게 하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땅에 다윗이 울려 퍼지게 했던 찬송소리가 그치고 곳곳에서 우상 숭배하는 현상들이 넘쳐나도 그러려니 하며 그냥 둡니다. 솔로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인정하면 하나님을 사모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아서 사모함이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본문 16절‘오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규례와 법도를 행하라고 네게 명령하시나니 하나님을 대하는 인간의 자세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마음’은(레바브)라는 말로‘지․정․의’인격전체를 말합니다. 즉 온 몸과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는 뜻입니다.‘성품’은(네페쉬)라는 말로‘생명’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일부분이 아니라 생명을 다하기까지 하나님을 섬겨야 할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대하는 인간의 자세요. 모습입니다. 마22:37절‘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런즉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지켜 행하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마음을 다하는 것, 뜻을 다하는 것은 억지로 시켜서 할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할 수 있는 것은 그 사람 안에 자원하는 마음이 생길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 자원하는 마음은 바로 하나님을 인정할 때 생기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에서 주님을 위해서 무엇인가 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열심을 먼저 가져보려고 하고, 사명도 먼저 충성해 보려고 하고, 주님을 위해서 무엇인가 하는 것을 우리는 먼저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래서 우리는 주님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쁨과 만족이 없을 수가 있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는 것이 잘 안 될 수가 있습니다. 그 이유가 바로 우리 안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믿음을 분명하게 가지는 것을 먼저 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하기 전에 자신 안에 주님을 인정하는 믿음을 먼저 확신으로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할 수가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했을 때 우리는 늘 기쁨과 만족과 행복을 함께 누릴 수 있습니다.
2.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고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라’는 것입니다.
인정하면 순종합니다. 17절‘네가 오늘날 여호와를 네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또 그 도을 행하고 그 규례와 명령과 법도를 지키며 그 소리를 들으라’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인간의 기본 자세입니다. 이 말씀이 공동번역에는 이해하기 쉽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너희는 오늘 야훼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었다. 야훼께서는 너희에게 하나님이 되어 주시겠다고 하셨다. 그 대신 너희는 분부 받은 그 길을 따라 하나님의 규정과 계명과 법규를 지켜 그의 말씀에 복종해야 한다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내가 너희의 하나님이 되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으니 너희는 하나님의 분부대로 규정과 계명과 법규를 지켜 말씀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고 복종해야 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지녀야 할 기본자세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그 동안 어떤 자세, 어떤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서 계셨습니까? 마음을 다하고 생명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삶의 일부분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삶의 전체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복종해야 하는 것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정말 하나님을 나의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가슴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말씀을 순종하고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의 말씀과 명령을 행하는 것을 통해 나타납니다.
사랑은 순종의 삶을 통해 나타나게끔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요일5:3절‘너희가 나를 사랑하느냐 나의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뜻은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라’는데 있습니다. 랍비들에 따르면 율법에는 613개의 계명들이 있다고 하는데요, 사실 이 수많은 계명들 중에서 가장 근본이 되는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두 계명들입니다. 십계명의 전반부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연관되어 있구요, 십계명의 후반부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성경이 복잡한 것 같지만, 사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내용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가장 소중한 기대는 서로 사랑하는 그의 자녀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사랑이듯이, 우리도 하나님을 닮아 사랑의 존재가 되라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거는 가장 큰 기대요 바람입니다.
모든 것을 인정하면 자유로워집니다. 혹 자신에게 닥친 어려움을 인정하지 못하면 그 고통은 몇 갑절 더 고통스럽게 여겨집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닥친 어려움도 인정하면 다소 편안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자기실수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게 되면 갈수록 비겁해지고 불편해집니다. 지금 정치하는 사람들을 보면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실수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게 되면 구차한 변명이 계속 이어집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점점 더 비참해지고 비겁해지고 불편해집니다. 자기실수나 잘못을 인정하고 나면 자유로워지고 편안해집니다.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다가 보니 자꾸만 감추려 하고 숨으려 하고 피하려 하고 편법을 사용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인정하고 나면 더 이상 변명도 필요 없고, 편법도 필요가 없어 단순해집니다. 인정하고 나면 드디어 자유하고 해방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하나님을 인정하면 신앙생활이 매우 심플(간단)해집니다. 신앙생활이 그리 복잡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삶 가운데 말씀을 인정하지 못할 때 우리 삶에 자꾸만 복잡함이 찾아옵니다. 우리 삶에 하나님을 인정하지 못할수록 인생이 갈팡질팡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말씀을 인정하면 단순하게 순종할 수 있습니다. 따질 것도 없고, 고민할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면 하나님께서 당연히 가장 우선순위가 되시기 때문에 따질 것도 없고, 고민할 필요도 없습니다.
믿음의 순종은 하나님을 인정하는 믿음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맞고, 하나님의 뜻이 맞다고 인정할 때 가장 분명한 순종이 나옵니다. 반대로 불순종은 내 생각이 옳다는 것에서 불순종이 나옵니다. 불순종에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믿음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초대교회 사도들과 성도들은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복음은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인정하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인정하고, 복음을 인정할 때 죽음 앞에서도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인정하는 믿음은 순종할 수밖에 없는 믿음이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칠일 동안 매일 한 바퀴씩 돌았습니다. 매우 위험하고 매우 수고로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일 여리고 성을 돕니다. 그들이 이렇게 여리고 성을 하루도 빠짐없이 돌았던 것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하신 말씀을 믿음으로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하실 일을 인정하는 믿음이 아니었다면 여리고 성을 도는 행위는 매우 어리석고 엉뚱한 짓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되 막연하게 믿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는 믿음이 될 때 확고한 순종이 가능합니다. 순종이 자꾸만 망설여지는 것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불순종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 큰 죄인지 알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나누면서 불순종이 왜 하나님 앞에 그토록 큰 잘못인지 알 수 있습니다. 불순종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순종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알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나누면서 순종을 왜 하나님께서 그렇게 기뻐하시고 좋아하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순종은 매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매사에 하나님을 인정하십시오. 그러면 매사에 순종하는 삶이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믿음이 우리에게 있으면 순종은 어렵게 여겨지지도 않고, 순종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3.인정하면 하나님께서도 인정해주십니다.
우리는 세계 최고의 신발을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음에도 아직 리복이나 아디다스, 나이키 같은 뛰어난 상표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세계 최고의 브랜드가 되겠다는 목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목표 없이 ‘아이고 내 팔자야 이 신발 만들다가 내 인생 끝나겠구나’하면서 신발을 만드니까 결국 뒷북만 치는 것입니다. 꿈꾸는 자가 세상을 주도하게 됩니다. 명품은 목표를 가진 자가 받는 영광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들과 달리 명품이어야 합니다. 값싸게 여겨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신26:18-29절‘여호와께서도 네게 말씀하신 대로 오늘날 너를 자기의 보배로운 백성으로 인정하시고 또 그 모든 명령을 지키게 하리라 확언하셨은즉 여호와께서 너의 칭찬과 명예와 영광으로 그 지으신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그 말씀하신 대로 너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라’ 인간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은 이렇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잘 섬기면 하나님은 큰 은혜와 복을 내려주시는 분이십니다. 공동번역 18절의 말씀이 ‘이에 응답하여’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즉, 인간이 마음과 생명을 다하여 삶의 전체로 하나님을 섬기고 순종하면 그에 따라서 하나님이 이런 복을 내려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어떤 복을 주신다고 합니까? 18절‘너를 자기의 보배로운 백성으로 인정하시고’,그냥 백성이 아니라 보배로운 백성으로 보배로운 자녀로 삼으시겠다는 것입니다. 19절‘칭찬과 명예와 영광으로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머리가 되게 하시고, 높은 자가 되게 하시며, 영화로운 자가 되게 하시겠다는 겁니다. 19절‘너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라’했습니다.‘성민이 되게 하리라’-거룩한 백성, 여호와의 손에서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자녀, 하나님의 철저한 보호와 사랑을 입는 자’로 삼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마음과 성품과 생명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는 것은 인간의 기본 자세요, 그런 사람은 여호와의 거룩한 성민이 되는 복을 누리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유태인하면, 세계가 무시하지 못하는 민족입니다. 실제로 미국을 좌지우지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여전히 끊임없는 전쟁과 테러로 얼룩진 삶을 살아가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 주신 궁극적인 목표 예수 그리스도에게 초점을 두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겠다는 이 놀라운 축복을 이제 누가 누릴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이름 없는 어부들을 중심으로 세계를 변화시키는 핵심적인 인물들로 삼으셨습니다. 바로 우리 상주감리교회가 이 같은 명품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보배로운 백성으로 삼으시고 찬송과 명예와 영광으로 면류관을 씌워주신 것은 나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나의 진정한 주인으로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좋은 일을 만나든지 어려운 일을 만나든지 하나님만이 나의 하나님이 되게 하시라는 것이지요. 내 삶 속에서 내 깃발을 꼽지 말고 하나님의 깃발을 꼽고 살라는 것입니다. 어떤 신자들은 말로는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시라고 고백만 할 뿐 실제 세상에서나 교회에서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곧바로 자기 생각대로, 자기 이익 중심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있어요. 하지만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라고 한다면 그는 자신의 이익에 맞지 않아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언제든지 무릎을 꿇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은 모두가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있는 기본욕구입니다. 그래서 남편이 아내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가장 불행한 남편이 됩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인정받지 못해도 가장 불행한 아내가 됩니다. 자녀가 부모님께 인정받지 못한다는 심리적인 불안감은 자녀에게 가장 치명적인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사람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것도 심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능하다면 우리는 사람에게도 인정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우리는 다른 사람을 인정해 주는데 인색하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가족, 또 교회 안에서 믿음의 가족들끼리 서로 인정해 주는 것은 참으로 소중하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얼마나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가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도 이토록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하물며 주권자이며 최후 심판주이신 예수님께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얼마나 될까요? 이제 우리는 그 누구에게 인정받는 것보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 인정받는 상주감리교회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인정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정해 주십니다. 19절‘그런즉 여호와께서 너를 그 지으신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사 찬송과 명예와 영광을 삼으시고 그가 말씀하신 대로 너를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라’,잠3:6절‘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살아가는 인생들은 모두 헛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온갖 철학과 과학을 가지고 인생을 논하고 세상을 편리하게 살아가더라도 결국 하나님이 없는 인생은 무조건 헛된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대통령 되고, 하나님 인정하지 않고 부자 되고, 하나님 인정하지 않고 성공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솔로몬도 그런 인생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여리고 성 세리장인 삭개오도 세상에서 성공하고 출세했지만 예수님 없는 자신이 너무 공허해서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서라도 예수님을 만나려고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인생은 무조건 헛된 인생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것은 더더욱 중요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날 동안도 하나님을 인정하고 또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것도 참으
로 중요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세상에서 모든 인생을 마친 후 모두가 한 곳에 서야만 합니다. 바울은 항상 그곳을 생각하며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고후5:9-10절‘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평소에 주님을 인정하고, 평소에 주님의 인정하심을 받고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바울은 잊지 않고 살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존재들인데도 하나님은 우리를 자신의 보배로운 백성으로 삼아주시고 찬송가 명예와 영광으로 관을 씌워주셨습니다. 이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도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에 응답하여 매일 매일의 나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인정합시다. 하나님만이 나의 주인이 되도록 합시다. 그리고 하나님을 가슴으로 뜨겁게 사랑하고 그의 말씀과 명령을 순종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가장 크신 뜻은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과 다른 점이 있다면 사랑의 하나님을 닮아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데 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도 이런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들이 되셔서 주님의 인정하심을 받는 성도들이 되셔서 늘 이 세상에서도 주님 동행해 주시고, 최후 심판 날 주님께서 우리를 인정해주셔서 하나님 나라에서 영생복락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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