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의 증상
가진 사람들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사실 가지고 못가지고의 기준이 참 애매하긴 하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여유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소외계층에 뭔가 도움을 주는 '나눔의 문화' '베품의 가치'를 확산시켜 보자는 움직임이 곧 사회복지이고 21세기 세계의 새 바람이며 새로운 추세이다..
이런 사회 분위기는 IMF 관리체제 이후 우리 사회의 중산층 붕괴 현상, 빈부격차 확대, 빈곤아동 문제 등이 정부의 정책적 노력만으로 해소되기 힘들 정도로 너무 심각해지고 있는 데 따른 현상으로 보인다.
중앙일보가 빈곤아동 100만명에 교육과 복지의 혜택을 주고자 벌이고 있는 '위 스타트(We Start) 운동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부자들이 어떻게 살아가는냐는 한 나라의 갈 길을 판가름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자들은 전체 사회 구성에 있어 아무래도 중심적 위치를 차지한다. 그들은 경제적 우위를 바탕으로 상대적으로 큰 정치 권력을 갖게 되며, 여론을 선도하기도 한다.
가난한 사람들의 행동은 부자들의 행동에 대한 반작용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기자는 지난해 필리핀에 갈 기회가 있었다. 그곳에서 필리핀 부자들의 사는 모습을 보고 정말 많을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과거 미국에 갔을 때 듣고 본 그곳 부자들과 크게 비교됐다.
필리핀은 어떤 나라인가.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아시아에서 제일 잘 사는 나라 중 하나로 꼽혔다. 한국전쟁 때는 우리를 도와준 고마운 나라다.
1961년 우리나라가 경제개발계획을 시작하기 직전, 필리핀의 1인당 국민소득은 170달러로 한국(76달러)보다 두배 이상 높았다. 스페인과 미국의 식민 통치를 받은 덕분에 국민들의 민주의식은 매우 높고, 서구적 교육시스템을 자랑하며, 영어가 잘 통하는 나라다. 그런데 지금 필리핀의 1인당 국민소득은 고작 1000달러 수준으로 아시아의 최빈국 대열에 속한다.
이 나라 부자들은 어떻게 사나.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는 기자가 가봤던 이라크의 바그다드와 별 차이가 없었다. 낡고 지저분한 건물들, 하수도 시설이 잘 안돼 곳곳이 질퍽이고 냄새나는 도로, 그리고 남루한 차림으로 행상을 하거나 거리를 배회하는 사람들.
그런데 마닐라 시내를 지나다 보면 서울의 용산 미국기지와 거의 비슷한 곳들을 목격할 수 있다. 높은 담장이 쳐져있고, 출입문 마다 정복을 입은 사람들이 철통 경비를 서며 출입 차량 등을 세심히 검문한다.
이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면 방금 본 마닐라 시내와는 전혀 딴판인 별천지가 열린다. 미국식 초호화 저택에는 큰 풀장이 달려있고, 고급 외제 승용차가 집집마다 두세대씩 주차돼있다. 집안에는 시원한 에어콘이 가동되는 가운데 서너명의 가정부(밥따로, 청소따로, 아이보기 따로)와 운전기사들이 분주하게 집안을 정돈하고 차를 딲는다.
깨끗하게 청소된 길가로는 이곳 주민들이 여유롭게 조징을 즐기고, 마을 한 가운데 조그만 광장에선 저녁에 열릴 파티 준비가 한창이다.
파티에 참석하지 않는 사람들은 마닐라 시내의 특급호텔로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멋들어진 외출복을 차려입고 승용차에 오른다. 차가 호텔에 도착할 때까지는 절대로 창문을 열어선 안된다. 바깥 환경이 불결하기도 하지만, 언제 잡상인이나 부랑자가 달려들어 해를 가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미국식으로 공부시키는 인터네셔널 스쿨(사립)학교로 보낸다. 그나마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 되면 미국이나 유럽으로 유학을 보낸다.
그런데 필리핀 부자들은 소득상위 5%가 경제활동과 국가 부의 90%정도를 장악하면서도 세금은 별로 내지 않는다. 허술한 외환관리시스템을 틈 타 벌어들인 돈은 속속 달러로 바꿔 해외로 빼돌린다. 외국인들은 투자를 외면하는 데, 부자들은 달러를 계속 빼돌리니 이 나라 통화인 페소화는 가치가 자꾸 떨어진다.
그 나마 필리핀 경제의 버팀목은 해외로 나가 일하는 노동자(특히 가정부)들이 송금해 들여오는 달러다. 그 규모가 한해 80억달러에 달한다.
필리핀 부자들은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필리핀에선 4-5개의 족벌이 정치권력을 돌아가며 장악한다. 독재자 마르코스 대통령이 그랬고, 지금의 아로요 대통령도 그렇다. 물론 민주적 선거를 하지만 결과는 항상 그렇게 나온다. 영화배우 출신이 잠깐 출현하는 예외적 상황도 있긴 했지만.
필리핀 부자들에겐 다른 국민들이 공동체의 일원이란 생각이 별로 없다. 가난은 다른 사람들의 운명일 따름이다. 그들을 도와줘야한다는 의식도, 왠지 안스럽다는 느낌도 없다. 그저 그들은 그들일 따름이다. 그럼에도 혹시 내 돈과 권력을 빼앗으로 덤비지 않을까 경계심은 늦출 수 없다. 그래서 필리핀 부자들은 왠지 항상 불안하다. 필리핀은 공산주의 사상이 여전히 뿌리를 뻗고, 실제 공산 게릴라들이 활동하는 나라다.
필리핀도 여름이면 태풍이 수없이 휩쓸고 지나간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심하다. 수재민이 속출한다. 하지만 수재민 구호성금 같은 걸 모으는 일은 없다. 부자들은 남의 나라 일인 듯 무감각하다.
필리핀 부자들은 여차하면 해외로 튈 루트를 확보하고 있다. 미국 등지에는 집도 사놓았고, 외국 은행 계좌에 달러도 충분히 있다. 필리핀 부자들은 국민들로부터 존경받지 못하며, 그러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필리핀은 한마디로 희망이 없는 나라, 절망의 나라로 보였다. 이 나라가 이렇게 된 데는 돈에다 권력까지 거머쥔 부자들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지 않을까?
미국의 부자들은 어떤가. 물론 세계 최고 경제대국의 부자 답게 필리핀 부자들 보다 훨씬 잘 산다. 하지만 이들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 노력하며 그래서 존경받는 사람이 많다.
우선 버는 것 만큼 세금을 잘 낸다. 미국 국세청의 감시 시스템이 워낙 출중한 면도 있지만 탈세할 생각은 꿈에도 못꾼다.
미국 부자들은 재산을 자식들에게 넘겨주기 보다는 사회에 환원하고 죽는 경우가 많다. 대학과 종교단체, 사회 복지단체 등에 거액을 기부한다. 또 소외계층을 위한 자원봉사 활동에도 적극 참여한다. 그게 그 사회에서 온전히 살기 위한 생존 방식이 됐든, 일부 가식이 섞였든, 아무튼 그렇게 산다. 항상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친절하며, 격의없이 대화를 나눈다.
미국의 부자들도 경치좋고 환경좋은 곳에 몰려산다. 미국의 도시 마다 부자들이 모여사는 부촌이 있다. 하지만 필리핀 부자 처럼 철조망이 둘러친 울타리는 없다. 사설 경비원들야 있지만.
이제 한국의 부자들에 대해 생각해 보자.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각자 상상에 맡기겠다. 요즘 요란한 타워팰리스 같은 곳은 과연 어떤 것인지 등등..
다만 이제 한국의 부자들도 어떤 길을 갈지 갈림길에 선 것 같다. 한국이란 공동체가 허물어지면 부자들도 결코 행복할 수 없다. 그들의 돈은 계속 불어날지라도 무언가 항상 불안해하면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들은 자식들에게 많은 돈을 물려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과연 자식들의 행복을 보장해줄 수 있을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
그래도 아직은 희망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아직 한국 사람은 부자든 가난한 자든, 주변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마냥 외면하지는 않는다. 우리 공동체가 잘 굴러가기를 바란다. 북한 동포들의 고통도 나의 고통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아직은 우리 사회의 다수다. 그게 희망이다.
필리핀 마닐라 시가지를 다닐 때 첫 번째 들어오는 인상은 망치로 두들겨 만든'지프니'라는 차에 웅크리고 앉아 바라보는 서민들의 슬픈 눈동자였다. 한때'아시아의 진주'라고 불렸던 이 나라. 그러나 지금의 모습은 슬프다. 식당, 잡화상, 아파트, 심지어 학교 앞에서도 총을 찬 경비원이 날카로운 눈매를 드리우고 있고, 여행 가이드 역시 혼자 시내를 다니지 말라고 신신 당부 한다. 납치, 강도의 위험이 있어서이다. 거리엔'1달러'를 외치며 구걸하는 아이들이 많다. 시내를 관통하는 철길 옆으로 함석집들이 끝없이 늘어서 있다.
어릴적 즐겨 불렀던 동요'기찻길 옆 오막살이'가 떠오른다. 함석집 안에 잠든 어린이는 과연 기차가 지날 때'잘도 자고'있을까? 돈 없고, 집 없는 사람들이 눈치 안보고 살 곳은 기찻길 옆이 제격이다. 철도 주변의 땅은 대부분 정부 소유이고, 정부는 빈민들이 무허가로 집짓고 사는데 대하여 비교적 관대하기 때문이다. 인천의 기찻길 옆 오막살이들은 경인 복복선 공사로 지금은 모두 철거됐지만, 1970년대 만 해도 경인 전철역 주변에 철길 쪽으로 작은 창이 달린 집들이 줄지어 있었다.
필리핀의 부자들은 천문학적인 부를 소유한 재산가들이 총 인구의 10% 정도에 달한다. 그리고 소위 중산층이라고 하는 계층이 약 15%. 그 나머지는 하루 1달러로 먹고사는 극빈층들이다. 필리핀의 1인당 연간 국민소득은 2003년 기준으로 1,000달러에 불과하다. 그 많은 하층민들은 사회에서'인생역전'은 꿈도 못 꾼다. 원천적으로 25%의 기득권층이 그들의 진입을 막고 있고, 독재자 마르코스 집권 시기에 부패정치와 정경유착으로 만들어진 이런 장벽이 여전히 꿋꿋하게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력해진 젊은 남성들은 '게이'가 되고, 사회 진출이 용이한 여성이 가장 역할을 하게 되는데, 그래도 대학 나온 배운 여성들은 자기나라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잘사는 나라 식모로 간다. 영어 사용율이 높아 우리나라 강남에 사는 사람들도 필리핀식모를 많이 두었다.
값싼 학비와 교육지원 정책으로 깡통을 두들겨 '지프니'라는 승합차를 만들 정도의 지식과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청년들에게 미래는 암울하다. 그래서인지 거리에서 만나는 그들의 표정은 밝아 보이지 않았다. 코코넛 하나만 활용해도 잘 살 수 있는 나라, 7천개가 넘는 섬으로 이루어져 관광산업 하나만 제대로 해도 먹고 살 걱정 없는 나라가 필리핀이다. 그러나 그 엄청난 부는 소수의 기득권층의 몫이다. 마르코스 이후 라모스 대통령이 나라를 제대로 잡나했더니 단임의 한계로 물러나고, 한량 에스트라다가 나타나 나라를 또 말아먹었다. 결국 두 번째의 피플 파워로 임기를 못 채우고 쫓겨나고, 지금의 아로요대통령 체제를 이루었지만, 기득권자들의 아성은 흔들리지 않고 있다. 중산층의 힘이 약하기 때문이다. 필리핀의 지식인들은 중산층의 힘으로 '성장'과'분배'를 동시에 이룬 한국을 무척이나 부러워하고 있다.
필리핀을 보면서 나는 아르헨티나를 떠 올렸다. 그리고'라틴 아메리카의 어머니'메르세데스 소사를 생각했다. 1935년 가난한 인디오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난 그녀는 옛 잉카제국의 일부인 투쿠만 태생이다. 안데스 민속 문화유산이 풍부한 곳에서 자란 소사는 그래서인지 피아졸라의 탱고음악과는 본질적으로 냄새가 다른, 오랜 세월 구비전승으로 내려와 영혼을 울리는 폴끌로레의 노래를 한다.
'추악한 전쟁'의 시대(1976~1983). 1974년 후안 도밍고 페론 이후 정국을 장악한 군부독재의 시대가 있었다. 최초 3년 동안 군부독재자의 만행은 극에 달했다.'사라지다'라는 단어가 직접목적어를 필요로 하는 타동사로 변할 정도로. 당시 실종된 인구는 줄잡아 9천명에서 1만5천명으로 추정되고, 정신병자와 유아 사망율이 급증했다. 메르세데스 소사는 이 시대의'이웃과 스스로의 목소리'를 통하여 자유의 갈망을 노래했다. 결국 스페인으로 망명. 그러나 그녀의 노래는 계속되었고, 그녀의 노래는 라틴 아메리카의 희망으로 민중들의 가슴 속에 스며들었다.
1982년 포클랜드 전쟁에서 패한 아르헨티나에'민주의 봄'이 오고 있었다. 조국에 돌아온 소사는'나는 저항가수가 아니라 민중의 고통과 희망을 노래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녀가 남긴 불후의 감동적인 누에바 깐시온이 있다. 바로'삶에 대한 감사'이다. 그동안 넵스터에서 다운받아 CD로 구어 만든 판으로 안데스풍의 미사곡 등 소사의 음악을 들어왔었는데, 얼마 전부터 마음만 먹으면 정규 앨범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나라 대중들에게는 인지도가 낮아 한번도 한국에서 공연을 하지 못했다. 이런 현상은 한국에 와서 푸대접을 받고 간 아프리카 민중음악의 대모'미리암 마케바'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마약 냄새나는 미국 편향적인 대중음악 풍토에서만 볼 수 있는 진기한 현상이다.
비올렛타 빠라가 산전수전을 다 거친 후 체득한 삶의 무게와 깊이에 대한 서정을 강렬하고 서정적인 목소리로 부르는 메르세데스 소사의 노래 '삶에 대한 감사'를 들어보자. 이관희 2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