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산책] 안반수의경(安般守意經) ⑩
몸의 부정함 觀해야 모든 집착 끊는다
지난주 소개한 네가지 단계에서는 욕망이 없어졌으나, 몸의 안락은 남아있으므로, 이것을 색계정(色界定)이라고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더 나아가야 한다. 몸의 안락이 있으면 마음이 육체의 속박을 받게 되므로, 그 속박도 떠나서 자재로워져야 한다.
‘십부정관(十不淨觀)’은 열가지 몸의 부정함을 관하는 관법으로서, 예부터 초입문한 수행자가 이 관법으로 세상의 집착을 끊는 관법이다.
죽은 시체가 점차로 썩어가는 모습을 통해서 우리의 몸이 무상하고, 깨끗한 것이 못된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관법이다. 이 관법은 육체에 대한 집착을 끊고 초선에 들어가는 수행법이다.
왜 이런 관법을 통해서 초선으로 들어가는가? 육체와 마음의 고통은 집착때문이요, 집착 중에도 몸에 에고(eogs) 집착이 가장 강력하므로, 몸의 집착을 끊기 위해서는 몸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해야한다. 불교는 허구적인 어떤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고, 구체적인 사물을 통해서 그 사물의 실상을 알고, 그것에 걸리지 않게 되는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부정관으로 몸의 집착을 끊고, 사무색관으로 마음의 집착을 끊는다.
부정관을 통해서 육체에 대한 집착이 끊어지면 본격적인 수행으로 들어갈 수 있다. 바로 이 때에 신심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범주관(四梵住觀)을 닦는다. 이것은 자(慈), 비(悲), 희(喜), 사(捨)의 네가지 거룩한 세계에 머무르게 되는 관법이다.
그리고 사무색관(四無色觀)은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정무변처(定無遍處), 식무변처(識無遍處), 무소유처(無所有處),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를 관하여 그곳에 머무르는 것이다.
그리고 식염상관(食厭想觀)은 먹고 마시는 모든 것으로부터 우리의 몸에서 나오는 분비물, 배설물 등에 대한 것을 관해서 거기에 집착하지 않게 되는 수행이다.
또한 사계차별관(四界差別觀)은 이 세상의 모든 존재에 대한 우리의 관념이 공(空)의 본성을 떠나지 않는다고 하는 사실을 통찰하여 그것에 집착하지 않는 관법이다.
◆ 이상 간단히 40가지의 내용에 대한 수행을 소개했으나, 이들은 모두 우리의 집착을 끊는 수행이므로, 어떤 대상의 진상을 관찰함으로써 그것을 있는 그대로 알게 되어 집착을 떠나게 된다. 그러므로 이들 여러 관법을 통해서 얻어지는 공덕에 대해서 『청정도론(淸淨道論)』이라는 책에서는
첫째로 모든 존재를 있는 그대로 나타나게 하여 거기에 즐겁게 머물게 된다(現法樂住)고 하고, 둘째로는 비파사나(vipasana,毘鉢舍那), 곧 모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분별하여 실상을 파악하게 되고, 셋째로는 신통력(神通力)을 얻는다고 하고, 넷째로는 모든 존재는 더없이 뛰어난 존재임을 깨닫게 되고, 다섯째는 멸진정(滅盡定)에 든다고 했다.
◆ 이 외에 소승론부(小乘論部)에서는 관법으로서 오정심(五停心) 곧 오문선(五門禪)을 들고 있다. 이 오정심관은 부정관, 자비관, 연기관, 계차별관, 수식관 등 다섯 가지 관법이다.
이 중에서 부정관은 탐심이 많은 중생이 몸의 부정함을 관하여 그 탐욕심을 다스리는 것이다. 자비관은 진심이 많은 중생이 남에게 자비심을 일으켜서 진심을 다스리는 것이다. 연기관은 어리석은 중생이 생노병사가 있게 된 열 두가지 인연을 관하여 어리석음을 다스리는 것이다. 계차별관은 집착심이 강한 중생이 모든 존재는 인연으로 거짓 모인 것이라는 것을 관찰하여 제법이 무아임을 알게 되는 관법이다. 수식관은 산란심이 있는 중생이 숨의 들고 나는 것을 헤아려서 산란심을 없애는 관법이다.
이들 다섯 가지 선법은 소승불교의 선법이라고 말해지나 이들이 대승불교의 선법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대승불교시대에는 이들 소승불교의 선법이 너무도 복잡하므로 이것을 정리하게 된다. 그것이 대승불교의 여러 가지 선법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대승불교도 중에서 독자적인 자기의 입장을 내세워 체계화하게 되었으니, 예를 들면 천태(天台)의 관법이 이것이다.
정태혁
동국대 명예교수
[출처 : 법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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