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풀연가
임희구
파릇한 첫 싹이 피어오를 땐
나도 장미꽃 같은 꽃잎인 줄 알았어요
턱밑으로 깔리는
팍팍한 들판을 보면서
그때야 뜨거운 눈물을 삼켰지요
꽃은 무슨,
세상에 나 같은 것도 살아지네요
마른 들에서 살다보니
가슴도 메말랐죠
불타는 여름 한낮
타 죽을지 말라 죽을지
몰라요 맥없이 지쳐 땅바닥에 주저앉아
빼도 박도 못하는 나라는 걸 알아버린
이 지독한 오기는 또 무슨 그리움인가요
이 몸
이 가슴에도
사랑이 꽃피던 날들이 있었죠
살 터지도록 사랑한 세상
팍팍한 들판에서
남몰래 가슴 파일 날들이 더 많겠지만
삶이란 게 별거던가요
온 천지 사방
미친 듯 달려드는 바람과
여름 한낮 찌는 해가
제풀에 지쳐 들풀에 지쳐
한발 물러서는 날
깊은 그리움의
단단한 뿌리 하나 둘 뻗어나가는 거지요
시집『걸레와 찬밥』2004.
--------------------------------------------------------------------------- 감상노트<양인숙 시인> 불타는 여름, 들풀은 소리 없는 절규로 흔들리고 있다. 뭉크의 그림 ‘절규’에 서의 비명이 들리는 듯하다. 최후까지 숨죽인 소리의 몸부림, 화려한 장미나 청초 한 백합이 결코 맞닥뜨릴 수 없는 존재의 집에서 들풀의 언어는 강렬하다. 목숨보다 귀한 것이 어디 있을까, 평등한 목숨에도 가격을 매기는 박토에서 존 재증명을 위한 치열함으로 뿌리를 내렸으니, 뙤약볕 아래 노동의 맨몸으로 기고 있었구나. 팍팍한 들판에서 바람보다 빨리 눕고 일어서는 들풀, 서러움의 노역이 여. 한 벌의 고급 의상을 사면서 밑바닥 민초들의 절규를 잊지 말라는 세심을 전하 는 것일까. 소외된 슬픔이 자갈밭을 기더라도 살 터지는 사랑이 있다면 내일의 저 뿌리들은 견고해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말이다. 서귀포신문 2006년 8월 17일자 http://www.seogwip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