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엄탑사 주지 명법 스님은 2016년 평화살림콘서트에서 ‘물러섬이 곧 평화’란 주제로 말씀을 나눠주셨습니다. 나서서 뭘 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빠져 있는 요즘 우리를 흔들어 깨우는 우레였습니다. 곱씹을수록 물러섬에 담긴 뜻이 퍽 여러 가지로 다가왔습니다.
미르문화원에 있던 꼬마평화도서관은 이토록 제게 한 깨달음을 안겨 주셨던 명법 스님이 뜻을 내셔서 22번째 꼬마평화도서관입니다. 그런데 이 도서관이 한 해 전에 이곳 화엄탑사 주지로 오시게 된 명법 스님을 따라 내려와 새롭게 문을 연 것입니다.

문 열기에 앞선 일요법회 자리 외람되게 몇 말씀 드려야했습니다. 도서관 문을 열러 내려왔으니 이야기 주제는 ‘사이좋게 하는 책읽기’였습니다. 말씀 드린 얼거리는 “독서는 읽을 독은 말씀 언과 글자 매가 모여 만든 글씨이다. 독서란 책을 소리 내어 읽는다는 말이다.”였습니다. 그래야 하는 까닭을 “발성된 소리는 입에 있지 않고, 몸에도 있지 않으며 정확히 뼛속에 있다. 노래하는 것은 실제로 몸에 있는 뼈”라고 한 귀 과학자 토마티 말씀으로 대신 했습니다.
“눈으로 읽기가 머리에 끼워 넣기라면 소리 내어 읽기는 뼈에 새기는 것입니다. 더구나 함께 읽으면 얘기를 주고받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듭니다. 아울러 책을 읽으면서 서로 새긴 뜻을 주고받는다면 그야말로 일석이조입니다. 이렇게 책을 읊으면서 어울리다보면 함께 하는 이들이, 나 따로 너 따로에서 벗어나 우리를 이룹니다. 외동이가 어머니에게 우리 어머니라고 하고, 제가 아내에게 우리 아내라고 하는 까닭은 나와 아내를 싸잡으면 둘이니까 ‘우리’가 되는 것이지만, ‘우리’가 드러내려는 뜻은 ‘둘’이 아니라 ‘서로 떨어질 수 없이 하나를 이루는 깊은 사이’이기 때문입니다. 책을 벗들과 더불어 소리 내어 읽으면 ‘우리’ 사이 정이 새록새록 깊어집니다.”하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말씀을 마치고 나서 0살에서 7살 사이 유아들이 보는 책이라는 [돼지책]을 그림을 보면서 소리 내어 함께 읽고 여쭸습니다. 우리가 읽기에는 유치하느냐고요. 아니라고 뜻이 깊다고들 말씀하셨습니다. 꼬마평화도서관은 아이들만을 아우르는 도서관이 아닌 까닭입니다. 평화는 관념이 아닌 까닭입니다. 평화는 생각보다 쉽습니다.

법석을 마치고 나서 보니 “공감하니 공명하네”란 말머리를 들고 다니는 대구에 계신 꼬평 평화로우미 손경화 샘이 계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오실 줄 몰랐는데... 참으로 선물 같은 날이었습니다.

꼬마평화도서관은 ‘화엄탑사’처럼 절에, 교회에, 도서관 안에, 한의원에, 카센터에, 카페에, 반찬가게에, 마을회관에, 중학교 복도에, 초등학교에도 있습니다. 서른 권이 되지 않는 책만 가지고도 문을 열 수 있는 꼬평은 어디에라도 들어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