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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간은 능히 지지를 다룰줄 안다.
유능하며 천을귀인지지로 재복이 좋다고 봅니다. 어깨가 벌어진 잘난 남자가 많다
가을날의 모닥불이며 만물의 진화이다.
하원갑자
2017년 박근혜 탄핵결정. 문재인정부 시작
60년전 1957년 3월에는 소장 진급자 명단에 올랐을 때 과거 남로당 경력을 문제 삼은 진급 담당자]이 백선엽에게 항의하였지만, "박 장군에 대해선 내가 보장한다."며 박정희가 진급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 덕분에 박정희는 대통령이 된 후 백선엽을 "백 형"이라고 부를 정도로 그와 가까워졌다.
일본은 을사늑약의 무효와 한국 내 일본인 재산 청구권 포기를 선언하였다
소련이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했다.1달후 개탑승한 2호발사
30년전 호헌철폐. 직선개헌 시민의 승리
효종 1657년에는 송시열 전성기 선조실록을 선조수정실록으로 개편·간행했다는 것은 역사기록이 왜곡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청순치제 1657년 이후부터는 그는 점차 불교의 선종으로 관심을 두기도 했다. 이후 그는 환관과 승려들의 영향을 받았다.
60년전 정유재란발생,칠천량,명량 해전이 일어났다
40년전 윤휴탄생
30년전 정묘호란발생, 강홍립 사망
20년전
조선의 항복이 목표였던 청나라 태종은 조선의 국서를 접수하고 화의 항복의 조건 11가지를 담은 정축화약(丁丑和約)이 맺어졌다.
20년후 1677년. 소빙하기에 얼어붙은 런던 템스강 위에서 축제가 열렸다. 코끼리가 강을 가로질러 건너는 곡예가 펼쳐질 정도로 얼음이 두껍게 얼었다
30년후 아이작 뉴턴이 저서 프린키피아를 출간했다
40년후 스웨덴의 국왕 칼 11세.사망
60년후 숙종과 노론4대신 정유독대
1297년 원성종 1297년, 아리크 부케의 아들인 요부쿠르와 몽케의 손자 울루스 부카가 우구데이 칸국을 이탈하여 원나라로 귀환하였고 이로 인해 카이두의 세력은 크게 줄어들었다. 이후 카이두는 지속적으로 원을 공격
60년전 바투의 몽골군이 러시아 침공을 시작하였다
무와히드 왕조, 이베리아에서 철수 (3차 타이파 분열)
50년전 바투 칸이 구유크 칸의 소환에 형제들을 대신 보냈다.
구유크 칸이 서방 원정을 준비하였다.
아폰수 3세가 포르투갈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남송의 학자 송자가 세계 최초의 법의학 (죽음의 원인 규명) 서적인 세원집록을 발행하였다.
40년전 우량하다이가 이끈 몽골 제국군이 다리에서 출발, 1차 안남 원정을 시작하였다.
훌라구의 몽골군이 이라크를 향해 출정하였다.
12월 - 몽골 제국군이 대월 쩐왕조의 수도인 탕롱을 함락하였으나 곧 후퇴하였다.
제노바 공화국과 베네치아 공화국 간의 2차 제노아 전쟁이 발발하였다.
비잔틴 제국의 후계 국가들인 에페이로스 공국과 니케아 제국 간의 전쟁이 발발하였다.
핀란드의 카렐리아 인이 스웨덴을 습격하여 3차 스웨덴 십자군의 원인이 되었다.
최항사망으로 최씨무신정권 쇠락.
30년전 쿠빌라이 남송공략1년전
20년전 원나라 군대가 버마의 요새인 바모를 포위하였다. 제주도 목마장설치
마카오에 피난민 5만명이 모여 남송 임시 정부가 세워졌다. (송왕대)
20년후 정사년 유럽에 불어닥친 대기근이 끝났다.
호조씨의 가마쿠라 막부가 덴노가 교대로 취임할 것을 제안하였다. (남조와 북조 분열의 시초)
30년후 충숙왕은 1327년 5월 아예 심양왕 왕고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했습니다. 이조년은 한종유 등 대신들과 함께 이를 저지했습니다 에드워드 2세가 폐위되었다.
에드워드 3세가 잉글랜드의 왕으로 즉위하였고 모후 이사벨라와 모티머가 섭정이 되었다
40년후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3세가 모계를 통한 정통성을 주장하며 프랑스 국왕 필리프 6세의 정통성을 지적, 양국 간의 백년 전쟁이 시작되었다.
- 잉글랜드 함대가 프랑스령 플랑드르의 질랜드 일대를 습격, 캐드샌드 해전에서 승리하였다.
고다이고 덴노가 교토에서 탈출하여 요시노에 남조를 창건, 남북조 시대가 형성되었다.
- 에드워드 3세의 장남 흑태자가 첫 잉글랜드 출신의 콘월 공작이 되었다.
50년후 카파에서 돌아온 제노바 함대가 콘스탄티노플에 정박하며 흑사병을 비잔틴 제국에 퍼뜨렸다.
요안니스 5세가 요안니스 6세의 딸과 결혼하며 비잔틴 제국의 내전이 종결되었다
인도 데칸의 바흐마니 술탄국이 세워졌다.
- 잉글랜드 군이 프랑스의 칼레를 점령하였다
카잔 칸이 사망하며 차가타이 칸국이 동서로 분열되었다
60년후 킵차크 한국이 추판 왕조를 멸망시킴
937년 거란군과 석경당후진군의 연합 공격으로 이종가의 후당이 멸망하였다.연운16주가 거란에게.
고려 태조2년차
60년전 루이 2세가 서 프랑크 왕국의 왕이 되었다
고려태조 왕건탄생
50년전 베렌가리오 1세가 이탈리아 왕국의 왕위에 올랐다.
아르눌프 폰 케른텐이 프랑크푸르트에서의 선거에서 동 프랑크 왕국의 왕으로 선출되었다
진성여왕 등극
40년전바르셀로나 백작령, 서프랑크 왕국으로부터 자치 획득.효공왕즉위
30년전 당멸망.
20년전 오대십국시대 남한이 건국되었다.경명왕등극
20년후 키예프 대공국의 통치자인 성녀 올가가 러시아에 처음으로 기독교를 도입하였다.
30년후 폴란드미에슈코1세 영토의 확장에도 주력하여 967년에는 발트해 연안에 이르렀다
40년후후우마이야 왕조, 레온 왕국 침공하여 수도 레온 포위
오토2세 977년에 그는 보헤미아로 다시 원정을 떠났다. 보헤미아의 볼레슬라우스 2세가 초기의 충성을 회복시키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폴란드 대공 미에슈코 1세 역시 항복했다. 그 동안 제국 서부에서 오토는 영지와 특권을 회복하려는 대영주들의 야심을 꺾으려고 시도했다. 973년에는 아버지가 몰수했던 몽스와 루벤의 땅을 되찾았다. 그리고 977년 로타리우스의 동생 샤를을 하 로트링기아의 공작으로 임명했다. 이것은 자신의 공작령을 요구했던 프랑스 왕을 매우 화나게 했다.
오토가 바이에른을 다시 되찾으려는 하인리히 2세의 시도를 저지한 다음에, 로타리우스가 2만 군사를 통솔하여 로트링기아를 침공하고 5일 동안 아헨을 점령했다. 오토 2세는 우선 쾰른과 작센을 포기했다. 프랑스 출신인 오토의 어머니는 로타리우스의 편을 들고 부르고뉴에 있는 콘라트의 궁정으로 옮겼다
50년후 정해년 위그 카페가 프랑스의 왕이 되었다.
알 만수르가 지휘하는 후우마이야 왕조 군대가 코임브라를 점령, 파괴하여 코암브라 백작령을 멸망시켰다. (한 세기 만에 무슬림이 코임브라 회복)
60년후 헝가리 왕국 공인3년전
후우마이야 왕조, 갈리시아 왕국의 서부의 브라가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습격하였다.
탕구트 족의 수장 이계천이 송에 복속하였고, 조씨 성을 하사받았다.
577년 백제 위덕왕이 왕흥사를 창건하다.
신라 진지왕 577년부터 579년까지 상대등 거칠부가 대리청정, 백제가 서쪽 변경을 침입하였다. 이에 왕은 이찬 세종(世宗)을 파견하여 물리치고, 내리서성(內利西城) 등을 쌓아 방비를 굳게 하였다.
60년전 신라의 중앙 관부 중 군사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였던 관청인 병부가 설치되었다
50년전 이차돈의 순교로 신라의 왕 법흥왕이 불교를 공인하였다. - 일본에서 이와이의 난이 일어났다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삼촌(숙부) 유스티누스 1세의 뒤를 이어 (동)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40년전 동고트 왕국 군이 로마를 포위하였고 벨리사리우스의 방어군과 공방전을 벌였다. (~538년 3월)
12월 27일 - 하기아 소피아가 완공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캄란 전투에서 아서 왕의 군대가 모드레드 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30년전 547년, 고환이 죽고 그의 뒤를 이은 장남 고징은 집권하고 북제를 개창
20년전 서위가 멸망하고 북주가 건국되었다.양나라멸망
21년후 1차 전쟁은 598년 영양왕은 직접 말갈 1만을 이끌고 요서의 영주를 공격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후 수 문제가 분노하여 30만 대군을 일으킴
30년후 수양제 즉위
40년후 두건덕 617년, 고사달이 죽자 낙수에서 스스로를 장락왕(長樂王)이라고 칭했다. 10만 대군으로 설세웅을 격파하면서 하북을 근거지로 삼게 되었다. 일단 이밀의 수하를 자처했으며, 수양제를 죽인 우문화급이 소황후에 빠져 정사를 게을리하자, 요성의 우문화급을 격파하고 그의 아들들과 함께 목을 베었다. 우문화급의 목은 돌궐 계민가한의 부인이 되었던 수문제의 4녀 (양제의 여동생) 의성공주(義誠公主)에게 보내졌다.
50년후 선지자 무함마드의 이슬람군이 참호를 이용하여 메디나에서 메카군의 포위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아내었다. 이 공성전에서 이슬람군의 승리는 종래의 메카 세력을 몰락하게 했으며 이슬람을 추종하는 아랍 신흥 종교인들에게 알라의 은총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한다크 전투)
몽골 초원에서 조드 (대한파)가 닥쳐 많은 가축과 사람이 동사했다. 돌궐 제국 붕괴의 시작.
60년후 이슬람군이 사산조 페르시아의 수도 크테시폰을 점령하였다
217년 4월 카라칼라의 예측할 수 없는 행동에 의심을 품은 병사들이 마크리누스에게 호소해 카라칼라는 자신을 경호하던 백인대장의 형을 죽인 것이 원인이 되어,메소포타미아 카레 근처의 신전에서 암살당했다.마크리누스는 원로원 출신이 아닌 최초의 황제로 됨
217년에는 고구려 산상왕때 후한 평주의 하요(夏瑤)가 1천여 가(家)를 거느리고 투항하였으며, 왕은 책성(柵城)에 이들을 안치하였다.
60년전 신라 제8대 아달라왕 4년(서기 157년), 동해안에 연오랑과 세오녀가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연오랑이 바닷가 바위에서 해조를 따다가 갑자기 바위가 움직여 연오랑을 싣고 왜국으로 건너갔다
40년전
29년전 188년 신라의 모산성을 공격,조비탄생
20년전로마 제국군이 크테시폰을 약탈하고 거주민들을 노예로 만들었다.
산상왕이 고구려 제10대 왕이 되자, 그의 형 고발기는 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왕위를 차지하지 못한 데 따른 불만으로 인하여 왕궁을 공격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이후 그는 요동으로 달아나서 후한의 태수 공손도에게 자신의 몸을 의탁하였다. 그 후 발기는 공손도가 빌려준 군사 3만명을 이끌고 고구려를 대대적으로 공격했으나 실패하고 결국은 자살하고 말았다.
후한의 무장 원술이 황제를 자칭하고 국호를 중(仲)이라 하였다.
20년후
30년후 고트족이 현재의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지방을 공격하였다.
첨해 이사금이 신라 제12대 국왕이 되었다
40년후 식스토 2세가 24대 로마 교황이 되었다.
50년후 고트족이 발칸 반도, 소아시아 지방을 공격하여 아테네, 코린토스, 아르고스, 스파르타와 같은 도시들을 약탈하였다.
헤룰리 세력이 흑해 연안을 공격하였으나 로마 제국의 대함대에 격파당하였다
60년후 삼국지가 끝나갈 무렵 탁발실록이 선비족의 군주가 되었다.
bc144년 아쿠아 마르키아는 기원전 144년 집정관 퀸투스 마르키우스 렉스 (Quintus Marcius Rex)에 의해 건설되었다.
BC524년 에트루리아 인들은 이탈리아 남부로 세력을 확장하고자 그리스 도시 쿠매를 공격했지만 큰 손실을 입고 물러나야 했다
BC 884년 즉위한 아슈르바니팔 2세는 니느웨와 앗수르 사이에 갈라 성을 건축하여 대제국의 면모를 과시했다.
하원갑자
1837년
찰스 디킨스가 올리버 트위스트의 첫 이야기 발표.
미시간 주가 26번째 미국의 주가 됨.
조지3세 1820년까지 60년치세후 조지4세 승계했으나
자식이 요절하자 월리엄4세 즉위.
6월 20일 - 영국 빅토리아 여왕 즉위.
헌종즉위 3년만에 김조근의 딸을 왕비로 삼다.
60년전 로스의 도안인 초기 미국의 국기가 대륙 회의에서 채택됨.
40년전 존 애덤스가 미합중국의 2대 대통령으로 취임.
-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가 프로이센 왕국의 새로운 국왕으로 즉위.
30년전 순조 시파의 승리, 홍낙임복권
20년전 채수영모반사건.
19년후 김정희 사망, 안동김씨 독재
30년후 - 에도 막부가 정권반상. 이로써 메이지 유신이 시작되었다
미국이 러시아 제국으로부터 알래스카를 매입하였다.
40녀후 세이난 전쟁이 발발
60년후 대한제국 고종이 재한(在韓) 제정 러시아 공사관에서 경운궁으로 환궁을 단행
대한제국선언
1477년 부르고뉴 공작 용담공 샤를와 프랑스 왕 사이에서 벌어진 일련의 전쟁으로 이후 스위스 연방도 참여하여 이 전쟁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해내었다. 1477년 낭시 전투(Battle of Nancy)에서 크게 패하고 전장에서 전사했다.
조선 성종 친정
90년전 브란덴부르크백작 지기스문트가 헝가리왕이 됨.
60년전 세종 세자로 대리청정.신숙주. 박팽년. 세조탄생
40년전 조선의 과학자 장영실 등에 의하여 해시계 현주일구가 만들어졌다.
포르투갈이 모로코의 탕헤르를 포위 공격하였으나 격퇴당하였다. 대공위시대이후 이어온
룩셈부르크가 지기스문트사망으로 끝나고 알브레히트2세의 합스부르크가가 독일왕으로 등극하여 치세를 이어감.
30년전 최초의 한글 음운서인 《동국정운》이 완성되었다.수양대군의 《석보상절》과 이를 바탕으로 악장화한 《월인천강지곡》이 완성되었다
20년전 조선의 문신 김종직이 세조의 왕위 찬탈을 풍자한 글인조의제문을 완성하였다
10년전 1467년 필립공이 죽자, 그의 아들 '용맹공' 칼(쌰를르)이 부르군디공작으로 승계되었다
20년후 성운,백인걸 탄생
이언적스승,손중돈을 성균관직강 겸 종학전훈에 임명
30년후 중종반정 2년차.1507년 8월 22일에 명나라 예부로부터 임시로 국사를 서리하라는 칙명을 받았다. 이어 바로 승인이 떨어짐으로서 정식 국왕으로 즉위하게 되었다
40년후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대학 성당의 정문에 붙였고 이것이 종교 개혁을 촉발시키게 되었다.
50년후 경빈박씨가 세자저주로 복성군과 귀양감.
60년후 도요토미 히데요시.권율탄생
2년전 칭제건국한 금나라
고려 예종 제왕운기(帝王韻紀)에 따르면 1117년, 금나라에서 "형인 대여진금국황제(大女眞金國皇帝)가 아우인 고려국 황제에게 글을 보낸다." 는 글로써 화친하기를 청하였으나 조정의 반대로 회답하지 않았음.
60년전 바라빌레 전투에서 노르망디 공 기욤 (윌리엄 1세) 이 프랑스 - 앙주 연합군을 격파하였다
카스티야 왕국의 페르디난트 1세가 무슬림 국가들과 동맹하고 있는 이베리아 중부의 기독교 국가들을 공격하였다
50년전 송신종이 북송 제 6대 황제에 즉위하였다
올라프 3세와 마그누스 2세가 노르웨이의 공동 국왕이 되었다.
두 에릭이 서로 싸우다 전사한 후 할스텐이 스웨덴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40년전 1077년 셀주크 제국이 니케아를 점령하였다.
무라비트 왕조가 가나 제국을 완전히 멸망시키고 이베리아로의 진출을 시작하였다.
카스티야 왕국의 알폰소 6세가 바다호스 토후국을 격파하고 코리아를 점령하였다.
카노사의 굴욕 :
30년전 런던에서 화재가 발생, 성 바울 대성당을 포함한 시가지 대부분을 태웠다.
송나라의 구법당 내에 파쟁이 발생하였다
월리엄2세가 영국왕이 됨.
20년전- 니케아 포위 중에 보에몽 1세의 노르만 군대가 십자군에 참가하였다.
- 니케아가 십자군에게 함락되었다.
- 튀르크 군대가 도릴라이움 전투에서 십자군의 반격을 받이 패배하였다. 소아시아의 라타키야가 십자군에게 점령되었다.
-십자군이 안티오크를 포위하였다.
20년후 잉글랜드 국왕 스티븐 1세가 마틸다로부터 노르망디를 탈환하려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아키텐의 상속녀 엘레오노르와 프랑스의 왕위 계승자 루이가 결혼하였다.
- 루이 7세가 프랑스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30년후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콘라트 3세의 독일 십자군이 레겐스부르크에서 출정하였다
프랑스 국왕 루이 7세의 십자군이 출병하였다
40년후 셀주크 제국의 술탄 하마단의 무함마드 2세가 동생 말리크 샤가 하마단을 점거했다는 소식에 퇴각하면서 셀주크 제국의 바그다드 공격이 끝났다.
- 카스티야와 레온의 왕 알폰소 7세 사후, 그의 아들인 산초 3세와 페르난도 2세가 각각 카스티야 왕국과 레온 왕국의 통치권을 얻게 되었다.
50년후 - 칼 7세가 크누트에게 살해되며 1173년까지 스웨덴 왕국은 내전에 시달리게 된다.
- 몬테 포르지오 전투에서 프리드리히 1세의 독일 군대가 로마 코뮌군을 격파하고 로마에 입성하였다.
60년후 고려 무신정권 시기에 공주 명학소에서 망이·망소이의 난이 일어났다
757년 경덕왕 757년 3월에는 녹읍이 다시 지급되었다.전국 중국식 지명사용
이후 신라쇠퇴
당 안사의 난 진압
당숙종757년 정월에 안록산(安祿山)이 결국 자신의 아들 안경서에게 살해당하자 자연스레 반란군의 힘은 약해졌고, 그 해 9월에 곽자의와 함께 수도 장안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12월에는 태상황제 이융기 역시 돌아왔다.
60년전 대조영이 천문령 전투에서 당을 격퇴시켰다
곽자의탄생
50년전 겐메이 덴노가 일본 43대 덴노로 즉위하였다.
우마이야 왕조, 발레아레스 제도 점령, 티레니아 해 (서 지중해) 제해권 확보
40년전 7월 15일(혹은 8월 15일)제4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방전 개전 (~718.8.15) ((동)로마 제국 vs 우마이야 왕조)
코르도바가 알 안달루스의 수도로 결정되었다.
30년전 우마이야 왕조 군대, 아키텐 점령
혜초가 인도에서 돌아와 왕오천축국전을 저술하였다
20년전 카롤루스 마르텔이 이끄는 프랑크 왕국군이 아비뇽에 주둔한 우마이야 왕조군을 섬멸하고 아비뇽을 탈환하였다.
효성왕원년
20년후 이프리키야의 현재 알제리에 이란 출신의 이바디 세력이 루스탐 왕조를 세웠다. (~909년)
혜공왕무렵 김경상은 당시의 정치를 비판하는 상소를 올려 전제주의적인 왕권의 복구를 꾀하는 일련의 움직임을 견제하였다
30년후 비잔티움 제국의 여제 이레네가 주도하여 이루어진 제 2차 니케아 공의회가 열렸는데, 이 공의회에서는 성상 박해를 끝내고 성상 공경의 전통이 다시 복원할 것을 결의하였다
혜초사망
40년후이레네가 그의 아들 콘스탄티누스 6세의 비잔티움 제국 황제 자리를 찬탈한 뒤 왕위에 올랐다.
속일본기가 완성되었다.
프랑크 군대, 소브라르베 점령
50년후 비잔티움 제국과 아바스 왕조 간에 평화 조약이 맺어졌다.
60년후 지야다트가 아글라브 왕조의 에미르로 즉위하였다
397년 광개토대왕 6년(397년)
광개토대왕은 후연,연나라의 요동성을 차지하고 요동을 고구려의 영역으로 삼았습니다
동진 효무제 사망으로 무능한 안제 즉위,직무를 수행할 수 없었기에 숙부인 회계왕 사마도자가 섭정하였으나 그는 귀신에 빠져서 직무를 아예 안하며 주색에 여념이 없었다.
60년전 샤푸르 2세의 사산조 페르시아가 로마 제국을 공격하였다. 페르시아군은 메소포타미아 지방을 탈환하기 위해 티그리스 강을 넘어 로마 제국을 공격해왔다
50년전 347년성한 제 5대 황제 이세가 동진의 환온에게 항복하면서 성한이 멸망하였다
40년전 스트라스부르 근처에서 율리아누스 황제의 로마 제국군이 알레만니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전진 2대왕 부생사망
30년전 독일 남서부에서 발렌티니아누스 1세가 이끄는 로마 제국군이알레만니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20년전 소수림왕의 고구려군이 평양성을 공격한 데 대한 보복으로 백제를 공격하였다.
모에시아에서 로마 제국군과 고트족 군대가 맞붙은 전쟁이 일어났으며, 양측 모두 많은 사상자가 나왔다
10년전 서기 387년,탁발규는 마읍을 공격하여 유현을 쫓아내고마침내 [대]의 옛 땅인 [유원]을 확보하게 된다.북위의 기초
서기 387년 아르메니아는 로마에 의해 멸망을 당함
10년후 서로마 제국의 장군 플라비우스 클라우디우스 콘스탄티누스가 브리타니아에서 자신이 서로마 제국의 황제임을 선언하였다.
광개토대왕 407년 모용희를 죽이고 자립한 고운(高雲)과는 수교를 맺다
혁련발발이 하나라를 세웠다
20년후 동진의 군대가 오호십육국시대 후진의 수도 장안을 공격하여 함락시킨 뒤, 황제 요홍을 처형하면서 후진이 멸망하였다.
눌지 마립간이 신라 19대 왕이 되었다.
서고트 왕국이 아키텐 지방을 받고 서로마 제국의 동맹이 되었다.
30년후 고구려가 도읍을 국내성에서 평양성으로 옮겼다
비유왕즉위
40년후 서로마 제국이 서고트 왕국과 평화 조약을 맺었다.
50년후 - 테오도시우스 성벽이 지진에 의해서 상당부분 파괴되었다.
- 아틸라가 훈족 군대를 이끌고 발칸 반도를 공격하였고, 불가리아에서 이를 저지하려던 비잔티움 제국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60년후 호르미즈드 3세가 사산조 페르시아의 샤가 되었다
힐데리히 1세가 프랑크족의 군주가 되었다.
마요리아누스가 서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레오 1세가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37년 칼리굴라가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다.대무신왕 37년에도 낙랑을 정벌하여 병합. 멸망한 낙랑의 유민 5000명은 신라로 투항하였다.
60년전 부여에 남았던 유화부인사망
30년전 콩코르디아 신전이 착공되었다
20년후 탈해이사금 등극
30년후 로마 장군 베스파시아누스와 그의 아들 티투스가 유대인 저항군의 요새인 요타파타 요새를 함락시키고 주민들을 살해하거나 사로잡아 노예로 만들었다
60년후 로마 황제 네르바가 트라야누스를 양자로 삼았다
96년에 가야가 침입해 들어왔을 때는 오히려 97년에 화친을 받아냈다. 이후 지역 맹주로서 각국의 분쟁 해결을 주선하거나 말 안 듣는 국가를 패거나 하는 모습을 보인다. 여기서 가야 가락국(김해 금관가야)의 수로왕이 나온다. 음즙벌국(지금의 경주시 안강읍)과 실직국(삼척시) 사이에 영토 분쟁이 일어났는데, 이 두 나라는 먼저 파사 이사금에게 와서 중재해 달라고 청했지만 일단 파사 이사금은 나이가 많고 지식도 많은 김해 수로왕에게 묻자고 떠넘겼다. 수로왕은 파사 이사금이 맡은 영토 문제를 대신 지혜롭게 해결해 음즙벌국의 손을 들어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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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324알렉산더가 열병이 퍼지고 장마가 계속되었으므로, 군대를 돌려 BC 324년에 페르세폴리스에 되돌아왔다
BC 684년, 후발제인(後發制人) 제군이 국경을 침범하자 장공은 곡부시의 북쪽 교외인 장작까지 적을 유인했다. 오판한 제군은 엄청난 기세로 노군을 추격했다. 노군은 제군의 2차례 공격을 막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