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북의 한 아파트에 사는 40대 주부 안희자씨는 집에서 종합일간지 2개와 경제지 하나를 구독하고 있습니다. 안씨는 발행부수 최고인 A신문에 대해 품격 있는 문화기사, 날카로운 사설·칼럼을 매력으로 꼽습니다. 대학입시를 앞둔 딸이 수능 문제지를, 연로한 시부모님은 건강섹션을 좋아하며, 배달사고가 났을 때 성의 있게 처리해준 독자서비스팀에 감동한 적 있어 애착이 큽니다. 또 다른 종합지 B신문은 여성·생활기사가 충실하고 주말매거진이 재미있으며, 경제전문 C신문은 남편의 사업과 부동산 투자에 유용한 내용이 많아 꼼꼼히 챙겨봅니다.
같은 복도에 있는 다른 집을 보면 4곳이 A 신문을, 3곳이 B신문을, 2곳이 C신문을 받아본다고 합니다. ‘진보적’이라고 일컬어지는 신문 D와 E를 받아보는 집이 각각 한 곳, 신문을 아예 안 보는 집도 서너 곳 됩니다.
그런데 이런 아파트의 풍경이 ‘잘못됐으니 바로잡겠다’고 집권 여당이 나섰습니다. 열린우리당 의원 151명이 지난달 20일 발의한 ‘정기간행물법 개정안’을 보면 “신문시장에서 1개사가 30% 이상을 차지하거나, 3개사가 합쳐 60%를 넘으면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규정해 신문판매, 가격결정, 광고수주 등 경영 전반에 정부 감시체제를 발동하고 규정을 어기면 과징금을 물리겠다”고 합니다.
이들 말대로라면 이 아파트에서 가장 사랑받는 A신문은 물론, 함께 ‘마의 60%’를 형성한 B, C신문도 불이익을 받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아마 이들 메이저 신문이 독자를 상대로 “구독을 끊어 달라”고 사정하는 코메디 같은 사태가 빚어질지도 모릅니다.
신문 시장의 점유율을 인위적으로 규제하겠다니, 선진국에선 상상도 못 할 일입니다. 일본만 해도 메이저 3개 신문이 거의 100%(산케이등 경제지, 스포츠지 포함시 70여%)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여당측은 “다양한 신문 논조가 독자들에게 전달되게 하겠다”며 독자가 적은 신문에 국민 세금으로 지원금까지 주겠다고 합니다. 얼핏 그럴 듯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불이익을 주려는 메이저 신문, 즉 조선·동아일보 등이 현 정부의 정책에 비판의 칼날을 가장 날카롭게 세우는 언론사라는 점에서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반면 이들이 제도적으로 돕겠다는 마이너 신문사와 인터넷 언론이 친여(親與) 매체라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 아닙니까. 게다가 정작 방송사에 대해선 독과점과 관련해 아무런 개혁안도 내놓지 않았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방송 없으면 내가 대통령 됐겠나”라고 했다는 말이 안씨에게 문득 떠오릅니다.
자유시장 경제체제 아래 어느 사기업이 온갖 경영상태와 영업기밀을 정부 앞에 내놓고 감시를 받아야 합니까. 결국 권력이 비판 언론을 손아귀에 넣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열린우리당이 최근 발의한 정기간행물법 개정안(신문법안)이 신문시장 점유율 규제 등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독소조항을 담아 위헌 시비 등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원로언론인 남시욱(南時旭) 세종대 석좌교수와 심재철(沈載喆) 고려대교수(신문방송학), 문재완(文在完) 단국대교수(법학)가 ‘여 신문법안 무엇이 문제인가’ 시리즈 결산좌담을 통해 이 법안을 분석하고, 올바른 언론법안의 방향에 대해 전망해본다.
남시욱=여당 신문법안은 5공 당시의 언론기본법으로 회귀하는 느낌을 준다. 언론기본법은 신문의 공적 책임을 강조하는 한편. 신문진흥정책 같은 내용도 있었다. 그러나 87년 민주화 이래 이를 폐지하고 비교적 민주적인 법안을 만들었는데, 다시 노무현 정권은 비판언론을 견제하기 위함인지 시대역행적으로 가버렸다.

▲ 남시욱
언론인·세종대 석좌교수 ▲1938년생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독일 베를린 국제신문연구소 디플로마 ▲동아일보 편집국장 ▲한국신문편집인협회 회장 ▲문화일보 대표이사 사장 | |
심재철=법안에는 신문발전기금 등 마이너 신문을 정부가 지원하는 조항도 있다. 그러나 국민 세금을 가지고 신문에 나눠주는 것 자체가 정부에 예속될 위험을 동반하기 때문에 효과는 부정적이라고 본다. 정부·언론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관계가 있어야 발전하는데 정부가 기자 교육에 직접 관여해야 하는가. 방송사에 있는 친구들이 ‘소위 조중동이 없으면 우리나라 언론시장이 어떻게 되겠느냐’고 걱정한다. 이미 방송은 정부에 잡혀 있고, 결국 이 법안대로 돼 신문시장까지 정부가 개입하게 되면 여론 형성도 왜곡될 우려가 있다.
문재완=신문은 기본적으로 ‘사기업’이어야 한다. 사기업이 아니라면 구성이나 운영에 대해 정부가 간섭하게 되기 때문이다. 정부로부터의 독립이 전제돼야 한다. 그런데 여당 신문법안은 언론사가 공기관이라는 인식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광고는 몇 퍼센트 이상 실으면 안된다 규정하고 배달이나 오보에 대한 피해 문제까지 명문화해 법으로 과잉규제하려 하는 듯싶다. 전제가 잘못됐다.
남시욱=이번 법 개정에 참여한 분들의 발상은 낡은 것 같다. 인터넷 언론을 한국사람이 아니거나 한국에 거주하지 않으면 낼 수 없게 되어 있다. 블로그 시대에 글로벌 디지털 시대다. 인터넷 매체의 속성을 너무나 모르는 발상이다. 여당 신문법안의 주요 내용 중 하나가 편집위원회 구성 의무화 및 편집규약 제정을 강제하는 것이다. 1970년대 중반에 독일에서 실패한 실험이다. 여당측은 결국 편집 방향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신문사 내 분규를 야기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만든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 시대착오다.

▲ 심재철
고려대 정경대 정경학부 교수 ▲1956년생 ▲미주 한국일보 로스앤젤레스 기자 ▲고려대 신문 방송학과 졸업·미국 위스콘신대 대학원 언론학 박사 ▲미국 미주리켄자스시티대 커뮤니케이션학과 조교수 | |
심재철=엉성하고 위헌 소지마저 있는 이런 법안이 왜 나왔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권이 불만스럽게 여기는 신문을 통제하려는 의도로 편집위원회, 독자권익위원회를 구성해 사기업인 신문을 규제하려는 것 아닌가 한다. 여기서 짚어볼 것은 그동안 메이저 신문이 정권을 비판하는 부정적 뉴스를 지나치게 많이 보도했다는 점이다.
광고도 기사이고, 광고를 보면 신문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좋은 광고가 많은 신문이 좋은 신문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광고를 어떻게 해서든 규제하려는 시도가 있는 것부터가 표현의 자유를 속박하는 것이다.
문재완=법안 속 시민단체는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다. 이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신문에 간섭하도록 정부가 법안을 통해 유도한다. 독자위원회를 통해 신문사에도 들어가고, 언론중재위원회에도 들어가고, 언론진흥원 구성에도 관여토록 했다.
물론 매체력이 약한 신문에 대한 독자 접근을 위해 정부가 공동배달제 등으로 도울 수는 있다고 본다. 다만 개정하겠다는 법에 보면 단순한 배달이 아니라 ‘판매’라는 개념까지 넣었다. 이건 아니다. 자칫 민간 부문 신문공정경쟁에 정부가 편파적으로 개입할 우려가 있다.
남시욱=국가는 시장 자체가 기능하도록만 하면 된다. 신문시장 개입은 최소화하는 게 좋다. 또 하나, 신문잡지부수공사기구(ABC) 제도에 조중동 말고는 조사를 받지 않고 있어, 어느 신문사 부수가 얼마인지 모르게 돼 있다. 언론시장 정상화 조정자로서 국가 역할은 이런 ABC제도 정착을 돕는 것 아닌가.

▲ 문재완
단국대 사회과학대 법학부 교수 ▲1961년생 ▲매일경제 기자 ▲미국 뉴욕주 변호사 ▲서울대 공법학과 졸업·미국 인디애나대 법학 박사 | |
문재완=신문 부수를 포함해 각 신문사가 신고한 내용이 틀릴 경우에는 어떻게 확인하는가의 문제도 중요하다. 정부가 가만히 있을 것 같지는 않고 이 자료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신문사보고 다 내라고 해서 실사를 할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그 내용이 공표되기 때문에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에 대한 침해가 될 우려가 있다.
심재철=좀 전향적으로 생각해보자. 이 법은 여러 독소조항이 있지만, 긍정적으로 평가하면 신문을 돕겠다는 뜻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신문발전기금은 신문의 독립성을 훼손할 것 같고, 그것보다는 전통적인 신문시장을 발전시키려는 근본적 장치가 필요하다. 세계적인 추세는 ‘뉴스 통합’ ‘신문이 아닌 미디어 시장’이다. 그러니까 신문이 방송이나 통신 등 다른 미디어로 나아갈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이 필요하다. 종이 신문에만 국한되지 않고, 기사 콘텐츠를 이용해 다른 미디어 영역에서 경쟁하도록 길을 터주는 것이다. 일본은 ‘빅3’ 신문사가 공중파방송도 한다. 미국 유럽 등에 비해 우리 미디어 관련법은 부문간 진입 장벽이 너무 높다.
남시욱=현재 어떤 특정한 도시에 가면 신문이 10개 정도나 있는데 이건 아니다. 중앙종합지만 해도 10개가 넘는 나라가 한국 말고 어디 있는가. 신문시장이 정상으로 작동이 안 된다. 신문시장에도 시장기능이 작동하게 하라는 얘기다. 권력이 뒤에서 봐주니까 혹시 그런 것은 아닌가 의심스럽다. 새 법안에는 정부가 신문산업을 재편하려는 ‘조작 위험’이 있다.
심재철=미디어 시장을 활성화하고 여론 다양성을 확보하는 데 언론법안은 정기능을 해야 할 것이다. 신문사도 외부에서 이런 비판적 시각이 있다는 점을 깨닫고, 내부에서 제대로 된 독자지향형 개혁을 추진했으면 한다.
여, 신문법안 무엇이 문제인가?
공정거래위 자의적 해석 여지많아
언론 길들이기 기구로 악용 소지
과징금 수백억원까지 부과할 수도
입력 : 2004.10.26 18:47 29' / 수정 : 2004.10.26 19:34 16'
열린우리당이 지난 20일 국회에 제출한 신문법안이 현실화될 경우, 5공하 군부 정권이 신문 검열을 한 것 이상의 효과를 낼 수 있는 새로운 ‘신문통제기구’들이 등장할 것이라고 언론·경제학자들은 지적한다.
재계 검찰로 불리며 민간기업에 대해 강력한 권한을 행사해온 공정거래위원회는 조선·동아일보 등 독자가 많은 신문에 대해 규제 칼날을 들이댈 대표적 통제기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신문법안에 의해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추정될 가능성이 큰 조선·동아일보 등은 앞으로 공정거래법에 따라 마이너 신문보다 훨씬 강화된 기준에 의해 신문판매나 가격결정, 광고수주 등 경영활동에 대해 상시 감시 체제에 놓인다. 공정거래법 과징금 부과기준은 시장지배적지위 남용에 대해 ‘위반기간 동안 판매 또는 매입한 관련상품에 100분의 3을 곱한 금액을 초과하지 아니하는 범위’로 과징금 부과 한도를 규정하고 있다. 지난해 조선일보의 신문관련 매출액이 약 4100억원이란 점을 감안할 때, 최고 123억원의 과징금을 물릴 수 있다는 계산이다. 공정위가 위반기간이 2년, 3년으로 늘어났다고 판단할 경우 과징금 액수는 200억~300억원대로 급증할 수도 있다.
서울대 이상승 교수(경제학부)는 “현대차·SK텔레콤 등 대기업들이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감시를 받아 기업활동이 위축되는 것처럼 신문사도 똑같은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경제연구원 법경제연구센터 이인권 소장은 “공정거래법 자체가 이현령 비현령(耳懸鈴 鼻懸鈴·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고리) 식으로 자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많다”라며 “정치권의 입김을 배제하지 못할 경우, 공정위가 정권의 언론길들이기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지난 2001년 김대중 정부의 언론사 세무조사 때도 언론사에 대한 부당내부거래 조사를 실시, 수십억원대 과징금을 부과, 정권의 신문사 공격에 보조를 취한 전력이 있다.
한겨레·서울신문과 오마이뉴스·서프라이즈 등 마이너신문·인터넷매체에 대해 ‘회유’를 통한 ‘신문통제기구’ 역할을 담당할 창구는 문화관광부 장관이다. 신문법안 제28조는 신문발전기금을 설치하도록 규정해, 제29조에서 “여론의 다양성 촉진과 신문산업 및 인터넷 언론의 진흥을 위한 사업, 정기간행물 및 인터넷언론의 보급촉진과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지원사업, 인력양성과 교육·조사·연구에 관한 사업, 정보화 지원사업”에 돈을 사용하도록 했다.
그러나 조선·동아일보 등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추정되는 신문사에는 기금 지원을 금지시켰다.
김우룡 외국어대 교수(언론학)는 “국내는 외국에 비해 너무 많은 신문사들이 시장 기제를 무시한 채 난립된 것이 문제인데, 모든 신문사를 여론다양화 명분으로 정부가 나서 지원한다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며, “정부 돈받고 정부를 비판할 수 있나, 정부와 친소관계를 계산해 차별규제, 선별지원하는 신문통제기구 행태는 한국 언론자유를 말살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위적 시장점유율 제한은 위헌"
입력 : 2004.10.26 18:47 53'
‘예외적이고 인위적인 시장점유율의 제한’은 과거 국회와 헌법재판소가 ‘위헌(違憲)’이라는 결론을 내린 사안이다. 때문에 법조계에선 여당 신문법안에 대해 “불필요한 소모적 논쟁으로 국론만 분열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1994년 겨울 국회 재무위(현 재경위)의 여야의원들은 소주시장 시장점유율을 공정거래법보다 훨씬 강화해서 적용하는 주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1개사의 시장점유율이 33%가 넘거나 2개사의 점유율이 50%를 넘으면 국세청장이 초과분에 대해 감축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한 것. 여당 신문법안이 1개지(紙) 30%, 3개지(紙) 60%로 공정거래법 기준을 낮춰, 제재를 강화하려는 것과 흡사하다. 하지만 이에 대해 “자본주의 역사상 유례가 없는 악법”이라는 비판이 빗발치자, 국회 법사위는 “자유시장경제와 영업의 자유, 재산권을 침해한다”며 법안통과를 막았다.
1995년 여름 국회가 지방 주류도매상이 해당 도(道)의 소주를 50% 이상 의무 구입해야 한다는 ‘군소업체 지원 방식’으로 ‘시장점유율’ 문제를 우회돌파하는 법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키면서 이 문제는 다시 논란이 됐다. 여당의 신문법안이 정부기금으로 마이너 신문을 지원, “시장점유율을 인위적으로 재조정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는 것과 비슷하다.
이 주세법안은 당시 홍재형(洪在馨) 경제부총리(현 여당 정책위원장)가 “영업자유 및 재산권 침해, 소비자선택권 제한, 공정거래 질서 저해 등 위헌소지가 많아 동의할 수 없다”며 대통령 거부권 행사 건의까지 검토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시행됐으나, 1년여 만인 1996년 12월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결국 ‘사망선고’를 받았다. 헌재 전원재판부(주심 신창언·申昌彦)는 당시 재판관 9명 중 6명의 의견으로 “평등원칙 위반이며, 기업과 경쟁의 자유, 즉 직업의 자유와 소비자의 행복추구권에서 파생된 자기결정권을 지나치게 침해하는 위헌적 규정”이라고 판시했다.
첫댓글 의견은 정리해서 잠시후에 올릴께요... 할일이 밀려서 바쁘군요 ^^;;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