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지 가을호
2023년 가을호를 펴내면서
수數, 덫
백승자
그녀는 한 번도 고지告知 받지 못한 번호들에 묶여 있다
애초에 선택권을 박탈당한 피사체
지문 번호를 고르는 건
앵글에서의 소멸을 자초하는 일
태어나자마자 거미줄 같은 숫자에 갇혀
반항을 모르는 포로가 되었다
삶의 스텝마다 도사리고 있는 늪의 더듬이들
1등이 아니면 안된다는
1로 태어나 2로 살면 안된다는
99보다는 100이어야 한다는
수는 언제나 객관적 흐름이었다
끝없이 숫자를 복사해내는 시간은
뫼비우스띠를 그녀의 발목에 채우고
한사코 채찍질을 하고 있다
봄에 서서
가을 문고리를 붙잡고 있는 그녀
마지막 번호는 꿈꿀 수 있을까
----백승자 시집, {그와 나의 아포리즘}에서
‘수數’란 어떤 사물의 숫자나 그 양의 크기를 말하지만, 수학에서는 자연수, 정수, 분수, 유리수, 실수, 허수 등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할 수가 있다. 우리 인간들의 문법에서는 하나의 사물을 나타내는 단수일 수도 있고, 둘 이상의 사물을 나타내는 복수일 수도 있다.
인류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 문자라고 할 수가 있지만, 아라비아숫자와 인도인이 발명해낸 ‘0’의 숫자는 문자의 역사상 가장 중요하고 위대한 대전환, 즉, ‘인식의 혁명’을 가져왔다고 할 수가 있다. 아는 것은 계산하는 것이고, 계산하는 것은 세계를 정복하는 것이다. 주판알을 튕기며 덧셈과 뺄셈을 하던 시대와 곱셈과 나눗셈을 하던 시대가 다르고, 인간의 두뇌로 수많은 문제들과 방정식을 풀던 시대와 컴퓨터와 인공지능을 통하여 대수학과 기하학과 미적분학의 수많은 문제들을 풀던 시대가 다르다. 모든 문명은 숫자 위에 세워진 것이며, 이 계산하는 능력에 따라서 고대와 근대와 현대와, 그리고 탈현대를 설명할 수도 있고, 그 순서는 숫자의 역사처럼 단계적이라고 할 수가 있다.
인간은 사유하는, 또는 계산하는 동물인 만큼, 백승자 시인의 말대로, 우리 인간들은 숫자에 묶여 있다고 할 수가 있다. 숫자는 지문이고 덫이고, 숫자는 암흑(늪)이고 운명이다. 누구나 다같이 숫자에 묶여 있는 것이고, 이 숫자의 운명에서 “지문 번호를 고르는 건/ 앵글에서의 소멸을 자초하는 일”일 뿐이라고 할 수가 있다. 애초부터 자유와 선택권을 박탈당한 피사체에 지나지 않았고, “태어나자마자 거미줄 같은 숫자에 갇혀/ 반항을 모르는 포로가 되었”던 것이다. “1등이 아니면 안 된다는” 일등주의의 늪, “1로 태어나 2로 살면 안 된다는” 고정관념과 편견의 늪, “99보다는 100이어야 한다는” 만점주의의 늪, 뉴턴과 아인시타인과도 같은 천재가 되어야 한다는 천재교육의 늪, 지구촌을 벗어나 빛보다 더 빠른 속도로 우주를 정복해야 한다는 탐욕의 늪 등----. 10진법, 2진법, 빅데이터에 의한 인공지능의 판단과 계산법은 늘, 항상 객관적이고 정확했지만, 그러나 “끝없이 숫자를 복사해내는 시간은/ 뫼비우스띠를 그녀의 발목에 채우고/ 한사코 채찍질을” 해대고 있는 고문과도 같았던 것이다.
뫼비우스띠----. 안과 밖이 구분이 안 되고, 출구와 입구가 구분이 안 되는 뫼비우스띠, 선인지 악인지 구분이 안 되고, 잘 사는 것인지 못 사는 것인지 구분이 안 되는 뫼비우스띠----. 백승자 시인의 [수數, 덫]은 뫼비우스띠이고, 암흑 속의 늪이며, 또한, 그녀의 [수數, 덫]은 무한경쟁의 삶이자 엉망진창의 신호탄이라고 할 수가 있다.
인간은 계산하는 동물이고, 수억 만 분의 일과 수천 억 광년까지의 거리와 그 도착시간까지도 계산해내고, 따라서 천문학적인 부를 축적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가장 중요하고 크나큰 오류는 그 숫자의 늪에 빠져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숫자는 탐욕을 위한 간계의 산물, 그 모든 것을 적과 동지, 또는 선과 악으로 나누지만, 그러나 어느 누구도 정의의 수호신이 될 수 없는 ‘악마의 선물’이라고도 할 수가 있을 것이다. 만일, 숫자가 메피스토펠레스와도 같은 악마의 선물이라면, 그렇다면 그것은 ‘악마’를 ‘천사’라고 부르지 않은 것에 대한 복수이며, 전체 인류를 멸망시키려는 독극물이라고도 할 수가 있을 것이다. 10진법과 2진법, 또는 컴퓨터와 인공지능으로 숫자를 세고, 또 세도 “봄에 서서/ 가을 문고리를 붙잡고 있는 그녀”에게는 그 어떤 행복도 찾아오지를 않는다.
숫자란 미래의 희망이며 행복을 가져다가 주는 복음과도 같았지만, 그러나 우리 인간들은 태어나자마자 거미줄 같은 숫자에 갇혀 반항을 모르는 포로가 되었던 것이다. ‘스페이스 X’를 타고 가든, ‘블루 오리진’을 타고 가든, 큰곰자리이든, 백조자리이든, 그 어느 은하계의 무릉도원이든지간에, 우리 인간들은 숫자라는 덫에 빠져 헤어나올 수가 없다는 것이 백승자 시인의 전언인 것이다. 잘 계산하는 것은 불행에 불행을 더 하는 것이고, 불행에 불행을 더 하는 것은 숫자에 중독되는 것이다. 일등, 만점, 뉴턴, 아인시타인, 억만 장자 등도 중독성의 독약에 해당되고, 국민소득, 상류사회, 선진국민, 세계챔피언 등도 중독성의 독약에 해당된다.
숫자는 늪이고 마약(독약)이고, 이 숫자놀음은 백승자 시인의 [수數, 덫]처럼, 역사의 종말이자 인간멸종의 신호탄이라고 할 수가 있다. 백승자 시인의 [수數, 덫]은 대단히 지적이고 뛰어난 시이며, 인문학적 차원에서 ‘수數’가 ‘덫’이라는 것을 고발하고 있는 시라고 할 수가 있다.
아는 것은 병이고, 계산하는 것은 숫자의 덫에 빠져드는 것이다.
‘기획특집: 논쟁문화의 장’은 아흔 세 번째로 반경환의 명시감상과 정훈의 [그리움에 젖은 슬픔의 거름을 본다](송유미의 {점자편지}의 시세계)와 이서빈 외 ‘남과 다른 시쓰기 동인’의 시들을 내보낸다. 이번 호의 ‘애지의 초대석’에는 정영선 시인과 박분필 시인, 그리고 김정원 시인을 초대했다. 정영선 시인의 [빨래] 외 4편과 이경수의 작품론 [몰락의 시간을 사는 시], 박분필 시인의 [바다경마장] 외 4편과 조동범의 작품론 [노마드 혹은 디아스포라의 여정을 읽는 시간], 그리고 김정원 시인의 [분재] 외 4편과 김병호의 [서정적 품격을 지닌 철학적 사유]를 다 함께 읽고 감상해주기를 바란다. ‘애지의 초점: 이 시인을 조명한다’에서는 서호준 시인과 허이서 시인, 그리고 이옥 시인의 시들을 내보낸다. 서호준 시인의 [지구편]과 임지훈의 작품론 [가상(들), 그리고 현실이라는 가상]과 허이서 시인의 [호한조] 외 4편과 임현준의 작품론 [가만히 통증을 관조하는 시 그리고 시인], 그리고 이옥 시인의 [질문의 온도]외 4편과 반경환의 작품론 {손바닥 경전]을 다 함께 읽고 감상해주기를 바란다. 본지는 이번 호에도 [‘ㅅ’과 ‘ㄹ’ 읽기] 외 4편을 응모해온 이용우 씨와 [건조주의보 내린 사이] 외 4편을 응모해온 조숙진 씨를 애지신인문학상 당선자로 내보낸다.
백승자 시집 {그와 나의 아포리즘}, 현순애 시집 [붉은 광장이 소란하다}, 손성배 시집 {향수}, 배기환 시집 {시간은 기억의 수레를 끌고}, 김기준 산문집 {나를 깨워줘}, 정여운 산문집 {다알리아 에스프리} 등을 출간했으며, 이병연 시인, 정미영 시인, 박설하 시인, 최세규 시인, 그리고 박정란의 산문집, 반경환의 명시감상 등이 출간 대기중에 있다.
이 어렵고 힘든 시기에 {애지} 필자 선생님들과 독자 여러분들, 그리고 애지문학회 회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아무튼 계간시전문지 {애지}와 편집진은 너무나도 분명하고 확고한 걸음으로 ‘애지의 창간 이념과 목표’에 따라 최선의 노력을 다하게 될 것이다.
비판만이 위대하고, 또 위대하다. 비판은 당신의 존재증명이다.
당신은 누구를, 무엇을 비판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