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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 사랑
배옥주
사랑이란 탈중심적인 관계에서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다-알랭 바디우(Alain Badiou)
1. 새로운 세계의 구축
오랜 철학적 담론 중에서도 사랑은 끊임없이 탐구되어 온 거대 담론이다. 사랑은 ‘무의식에서 들끓는 근원적 욕망의 속성’이나 ‘인간 내면의 정서’로 정의된다. 사랑은 특성대상에 고착되지 않고 타자의 관점에서 세계를 새롭게 생성하는 힘을 발휘한다. 절대적 타자성을 지향하는 사랑은 타자를 타자로서 경험하여 타자의 맨살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모험이라고 할 수 있다(김행숙, 『에로스와 아우라』).
예술이 대상을 감각적으로 운용하여 직관적인 미를 추구하는 절대정신이라면, 예술 장르 중에서 문학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것이 ‘사랑’이다. 줄리아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는 『사랑의 역사』에서 ‘사랑의 언어는 직설적으로 옮기려 하면 부적절하고 암시적이며 불가능한 것이 되어 수많은 은유들로 흩날려간다’고 말한다. 상징적인 이미지와 미적 상상력을 함축하는 시학에서 ‘사랑’이라는 주제는 흩날려가는 은유 같은 미지의 감정을 재현해내는 데 용이하다. 따라서 사랑의 시학에서 시적 상상력이나 내면 정서를 관조하는 일은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에 답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다.
분산 프리즘을 통과한 햇빛을 다시 모으면 나눠졌던 색색의 빛들이 본래의 단색광으로 돌아간다. ‘사랑’이라는 내면 정서가 심연의 사유를 통과하기 이전에 단색광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굴절률이 각기 다른 개개인의 프리즘에 투영된 사랑은 얼마나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분산될까.
2. 찾아 헤매는 유일한 무엇
피로한 경비원이 집으로 돌아갈 채비하고
분실물 보관소에 불이 꺼지면
주인 없는 사물들의 수런거림이 시작되지
나는 동공이 열리지 않는 안경, 양질의 잠을 위한 처방전
또는 서로에게 스미듯 사이좋게 상해가는 빵과 우유
누군가 흘리고 간 모든 사연이 되어 이 밤에서 저 밤으로
건너가는 한 켤레의 닳고 닳은 구두
우리는 주인에게 버림받은 점유물이 아니야
주머니에서 멋대로 미끄러진 자유라는 손수건이야
나를 펼치면 작은 나라의 깃발이 되지
사랑을 읽고 나면 모두들 실패한 혁명가처럼 용감해지고
(중략)
누군가의 품 안에서 아늑했던 시간은
귀의 자리를 잃은 이어폰처럼 서랍 안에 갇혀 있지만
여기, 나를 꽂으면 오래전 당신의 기쁨이 흘러나온다
라디오는 아직도 인간의 목소리를 흉내낼 줄 알지
조금 망가져야 제대로 된 노래가 나오는 건
모든 라디오와 가수들의 성질이지
그렇게 하면 무언가가 고쳐질 것처럼
나의 안쪽을 주먹으로 쿵쿵 때리는 밤
나를 찾는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은
지금, 두 귀에 이어폰을 꽂듯이
손가락으로 가만히 귀를 막으면
이 밤에 함께 외로운
사물들의 수런거림이 들려
우리는 사랑에게 버림받은 유기물이 아니야
그들이 지금도 찾아 헤매는 유일했던 무엇이야
밤새 깨어 같은 말을 되뇌는 목소리는
실은 쓸쓸함을 잊기 위한 혼잣말이겠지만
부지런한 빛과 소음이 두 귀의 바깥을 세우고
분실물 보관소에 불이 켜지면
다시 사랑을 기억하는 가지런한 사물들은
침묵으로 인내하는 기다림을 시작하지
- 조온윤, 「분실물 보관소의 밤」(『문학사상』 2022년 12월호) 부분
조온윤의 시는 온통 사람 냄새로 가득하다. 여백에서 배어나오는 온기에도 진심이 만져진다. 그의 시집 『햇빛 쬐기』 가까이 두 손바닥을 펼치면 곡진한 온도를 쬘 수 있다. 조온윤은 헌혈을 하면서도 모두가 조금씩만 아파주면 한 사람은 아프지 않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나, 직선의 뼈들도 비스듬히 잇고 이으면 둥그런 원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원주율」). 또한 시인은 정말 말이 없지만 사랑받는 말을 배우고 싶어서 왼손과 오른손을 똑같이 사랑한다고 고백한다(「묵시」). 그가 형상화하는 시적 이미지는 선한 내면을 지향하는 사랑으로 데워진다. 청년시인 조온윤은 버려지거나, 한쪽만 남았거나, 외로울 때 시린 손을 잡아주는 진지한 ‘긍정맨’ 같다.
분실물 보관소에 밤이 찾아 왔다. 경비원이 떠나고 불 꺼진 분실물 보관소에 보관되어 있는 분실물들은 화자 자신이다. 화자는 자기도 모르게 잃어버린 손수건이나 이어폰, 안경, 우산 따위의 ‘분실물’이라는 대상에 투사되어 있다. 화자는 사물을 대하는 자세에 감정을 이입하여 결핍된 세계 속에서 자아를 발견한다. 잃어버렸지만 찾아가지 않고 남겨져 있는 분실물에 자아의 심리적 감정을 투영시켜 안타까움을 드러낸다. 분실물은 “사랑에게 버림받은 유기물이 아니”라고 되뇌지만, 끝까지 외부세계와 단절되어 분실물 보관소에 남겨진다면 종국에는 유기물과 다를 게 무엇인가.
화자는 누군가 잃어버린 ‘분실물’이라는 대상을 “그들이 지금도 찾아 헤매는 유일했던 무엇”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분실물 보관소의 분실물들은 자신을 찾아와줄 주인을 기다리며 오래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분실물들은 밤새 깨어 주인이 애타게 찾는 유일한 존재라는 사실을 믿고 싶지만, 이미 사랑이 식어버린 목소리는 “쓸쓸함을 잊기 위한 혼잣말”로 공허하게 울리고 말 것을 알고 있다. 혁명적인 사랑을 기대할 수 없는 우리는 소외된 ‘나’들과 ‘당신’들을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분실물 보관소의 아침은 사랑을 전제한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는다. 어쩌면 “나를 찾는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올”지도 모르는 일이므로. “두 귀의 바깥을 세우”고 주인을 기다리는 모습에서 잊혀진 사랑을 기다리는 쓸쓸한 감각적 여운이 극대화된다. 마음이 사라지는 그때 비로소 사랑이 극대화되듯.
3. 우주의 뒷덜미가 환하도록
운동장 바닥에 쪼그려
혼자 마음을 쓰고 있는 아이에 대해 생각한다면
흙은 난생 첨 고백을 받는 기분이겠지
그토록 많은 가래와 꽁초로 뒤범벅이 된 운동장은
문득 자신도 시집이 될 수 있다고 믿어보겠지
희고 맑은 구름들에게 열어 보여주고 싶겠지 외진
그네 귀퉁이 어딘가겠지만
바람이 불기 전까지 믿고 싶겠지
그 아이가 헤진 운동화로 슥슥 써둔 낙서를 훑어버리면
흙은 눈가를 문지르는 기분이겠지
그 날은 구름도 비를 내려주겠지
- 김재현, 「고백」(『애지』 2022년 겨울호) 전문
고백에는 쌍방이 필요하고 더불어 용기가 필요하다. 썸에서 연애로 발전하거나, 연애가 무르익어 결혼을 생각하게 될때 고백을 하게 된다. 고백은 상호소통이 잘 되는 관계에서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 「고백」에서 화자는 철저한 관찰자 시점을 유지한다. 화자가 관찰하는 대상은 ‘아이’와 ‘운동장’과 ‘흙’이다. 화자는 전지전능한 관찰가가 되어 아이와 흙과 운동장의 마음을 꿰뚫는다. 시인은 ‘아이와 흙과 운동장’이라는 객관적 상관물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여 현재의상황에 직면한다.
아이는 지금 운동장 바닥에 쪼그려 앉아 무언가를 쓰고 있다. 화자는 아이가 쓰는 그 무엇을 ‘마음’이라고 단정 짓는다. 흙은 아이에게 “고백을 받”는 기분일 것이다. 아이가 마음을 쓰는 흙은 운동장 위에 깔려 있는데, 그 운동장은 “가래와 꽁초로 뒤범벅”된 더러운 곳이다. 그런데 화자는 운동장이 “문득 자신도 시집이 될 수 있다고 믿어”볼 것을 예측하고 있다. 갑자기 등장한 ‘시집’을 통해 혼자 쪼그려 앉아 마음을 고백하는 저 아이가 시인인 화자 자신일 거라고 짐작하게 된다. 시인은 그 시가 비록 “외진 그네 모퉁이”처럼 하잘 것 없는 습작이라 할지라도 “희고 맑은 구름들에게” 기꺼이 보여주고 싶다. ‘외진’이라는 수식어의 의도적인 행 갈음을 볼 때 ‘외진’은 마음처럼 써지지 않는 시 앞에서 외롭고 힘든 심사를 고백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시인의 고백은 실패로 끝난다. 아이가 헤진 운동화로 낙서를 훑어버리기 때문이다. 아이가 쓰고 있던 ‘마음’이, 아이가 운동화로 훑어버리는 ‘낙서’로 변용된다는 사실에서 낙담하는 시인의 감정이 오롯이 드러난다. 고백하는 마음이 ‘지워버리는 낙서’가 된 것이다. 눈가를 문지르는 슬픈 감정의 기분이 될 거라고 말하는 ‘흙’의 말에는 주체로서 화자의 고투가 담겨 있다. “구름이 비를 내려주”면 위로를 받은 운동장은 상처를 치유하고 ‘마음’은 잘 아물 것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시 앞에 무릎 꿇고 “우주의 뒷덜미가 내내 환하”도록(「손톱 깎는 날」) 멈출 수 없는 고백이다.
4. 이름이 없는 감정까지도
빵을 구웠다
오븐에서 부푼 빵을 꺼내면
얼마 안 가 푹 꺼졌다
나도 그런 모습으로 자주 희망을 잃었다
아무 번호를 누르고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하고 말하는 목소리
붙잡고 소리 지르고 싶어도
입을 다물게 되는 사람들의 표정
나 너무 감격스러워
호수공원을 걷다가 네가 말했다
푹 꺼진 빵을 찢으면
고소한 냄새와 뜨겁고 아름다운 연기가
피어오른다
(중략)
사랑하는 것들 나열하기
마지막엔 꼭 죽음이 붙었지만
그럼에도 호수공원 걷기는 멈출 수가 없고
호수에 비친 잎들을 보며 감격하기를 멈출 수 없고
찢은 빵을 너의 입에 넣는 것을 멈출 수 없고
(중략)
자정이 되자 공원의 모든 불이 꺼진다
저 불은 곧 다시 켜질 것이다
너에게 설거지를 부탁했다
이른 아침 건조대에는
많이 낡은 희망이
깨끗하게 닦인 채 하얗게 놓여있었다
- 김상희, 「말하는 희망」(『현대시』 2022년 11월호) 부분
희망의 말은 삶을 긍정하는 무한한 힘을 가진다. 「말하는 희망」에서 ‘나’는 ‘너’와 상호소통하며 ‘갓 구운 빵’에 빗대어 희망을 전하고 있다. ‘내’가 구운 빵은 “얼마 안가 푹 꺼”진다. 먼 미래를 생각할 수 없는 암울한 현재가 훌쩍 지나가고, 눈앞에는 밟혀 죽을 것 같은 ‘나’를 닮은 작은 것들만 보인다. 마지막엔 “꼭 죽음이 붙”을 만큼 지금의 ‘나’는 절망적이다.
사랑은 결핍과 부재의 자기소모적인 감정을 달래기 위한 위안에서 비롯된다. “사랑하는 것들”을 “나열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공원의 불은 다시 켜질 것을 믿게 된다. 사랑도 희망도 자꾸 소환하다보면 어느새 주머니 속에서 만져질 것만 같다. ‘너’와 함께 호수공원을 걸으면 “푹 꺼진 빵을 찢으면”서도 “고소한 냄새”를 맡을 수 있고 아름답게 피어오르는 희망의 연기를 볼 수 있게 된다. ‘너’와 공원을 산책할 때면 호수에 비친 작은 잎사귀 하나에도 감격하고, 이미 푹 꺼진 빵도 ‘너’의 입에 계속 넣어주고 싶은 심경의 변화가 생긴다. ‘너’로 인해 충만한 사랑을 얻고 희망을 말 할 수 있게 된 ‘나’는 할머니가 계신 요양원에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 여유가 생긴 것이다.
‘나’는 ‘너’에게 설거지를 부탁한다. ‘너’로 인해 불안과 절망을 깨끗하게 씻어낸 희망이 건조대에 놓이게 될 것을 예감하고 있다. 많이 낡았지만 하얗게 걸린 희망 앞에서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눈앞에서 쓰러진 것들과 ‘심장을 건네주고 싶은 것들을 껴안고 쓰다듬고 싶다. 아무도 외롭지 않도록”이라고.
5. 어두운 목재 느낌의 마음
마음이 없어진 이곳에 과거의 마음들은
귀한 재료로 사용되었다
눈을 감았다 뜨니 세상은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다시 시작되고 있었고 나는
어떤 뜻도
목적도 없이 트럭 뒷자리에 올라
이 이상하고 부드러운 노동에 합류하였다
모든 작업이 끝나면 내게도
타지 않고 남아 있는 마음 가구로 쓸 만한
강한 재질의 마음을 선물로 준다고 했다
아침저녁으로 발굴되는 사람들의 사랑은 크기나 강도
빛깔이 너무 다양해 운반 트럭 위에 한꺼번에 모아 놓고 보아도 제각기 눈에 띄었다
(중략)
그럼에도 우리의 예감은 점점 확실해진다 이 지난한 노동이 끝나고 그와 나에게 최종적으 로 쥐어질 마음은 난로 밑에서나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에서 결국 타버릴
곤두박질해 사라질 투명한
가능성을 지닌
어두운 목재 느낌이 나는 부분일 것이라고
- 김연덕, 「목재 느낌이 나는 부분」(『문학사상』 2022년 12월호) 부분
통나무집에 들어가면 나뭇결마다 온화한 숨소리가 들린다. 「목재 느낌이 나는 부분」에서는 ‘목재’의 속성을 빌어 편안해지는 마음이나 사랑의 정서를 대신한다. 위 시에서는 ‘마음’이 온기의 속성을 품은 의미와 일맥상통하는 목재로 환치된다. 이는 모든 물질이 생명과 혼을 가지고 있다는 자연관의 물활론에서 비롯된다. 권력과 모순으로 치닫는 현대는 점점 “마음이 없어”지듯 나무가 사라진 사막처럼 교감이 단절된다. 그래서 과거의 진솔한 마음들은 현재와 미래의 마음을 움직이는 귀한 재료로 소환된다. 눈을 감았다 뜬 ‘나’는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목적도 없이 트럭 뒷자리에 올”라 “이상하고 부드러운 노동에 합류”한다. 작업이 끝났을 때 “타지 않고 남아 있는 마음 가구로 쓸” 수 있는 “강한 재질의 마음을 선물로 준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가 ‘나’에게 선물하겠다는 ‘강한 재질의 마음’은 열악한 상황에서도 지켜내는 올곧은 사랑을 떠올리게 한다.
‘그’의 조부모는 안전한 기분이 드는 사람과 사랑에 빠졌지만, 그건 사랑 없는 자식을 기르면서 느낄 수 있는 기분이라고 환기한다. 사랑 없는 자식을 기르는 기분은 안전한 기분과 동격이 될 수 있을까. 목재 이전의 나무였을 때 그 뿌리는 어떤 방식으로 숲의 세계를 재단하고 있었을지 모르듯, 사랑도 시작되기 전까지는 어떤 방식으로 전개될지 알 수 없다. 벌목 현장에서 발굴되는 목재나 아침저녁으로 발굴되는 사랑은 크기나 강도, 색깔이 다양해 모아놓고 보면 제각각의 개성을 드러낸다. 존재 방식이 각기 다를 수밖에 없는 화자는 ‘그’와 자신에게 끝내 쥐어질 마음은 어두운 목재느낌”이 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고된 노동이 끝난 후 지키지 못하고 소멸해버릴 사랑에 대해 어두운 목재 느낌을 받게 될 운명을 수용하는 것이다. “가슴과 가슴 사이”에서 “난로 밑에서” 타버리거나 “곤두박질해 사라”질 가능성을 지닌 미약한 사랑으로는 주체를 상실한 소외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6. 비밀
지옥 같은 날이었어 그때만 생각하면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거 있지 오 촉짜리 알전구, 어두운 홍등가에나 있음직한 그 불빛 아래서일 거야 그래도 리즈시절이 없었냐고? 뽕 같은 날이 있었지 하필이면 뽕밭이었어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미쳤지 살랑거리는 휘파람 소리가 나를 구원할 환청으로 들렸다니까 봄날은 오래 가지 않았어 뽕잎은 한 철을 버티지 못하고 벌레처럼 변해 버렸지 부드럽던 새순마저 우악스러운 가시로 바뀌었으니까 그렇게 한평생이 지나갔어 그런데 요즘 들어 자꾸 내 손목을 끌어당기는데 온몸에 소름이 돋아 미칠 지경이야 (중략) 팔팔한 스무 살 언저리에서 팔순이 된 지금까지 이러는데 더는 참을 수 없어 오죽하면 젊은 의사 양반한테 이렇게 하소연 하겠어 제발 그 약 좀 처방해줘 노인정에서 그러던데 의사 처방받아야 한다고 그래 맞아 정력감퇴제 근데 이런 말 하는 내가 주책이지 또 나한테만 이상하다고 그러겠지 팔다리가 결리고 온몸이 쑤시는 건 순전히 날씨 탓이겠지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자식들한테는 꼭 비밀로 해 줘
- 김연종, 「악천후」(『애지』 2022년 겨울호) 부분
인간에게 주어진 성욕은 식욕이나 수면욕과는 다르게 애착관계로 연결되는 긴밀성을 지닌다. 함께 살아가는 남성과 여성은 시간이 지날수록 신체적이거나 정신적인 차이를 인정해야 진정한 사랑의 관계를 이어갈 수 있다. 자신에게 부여된 성역할이 대우를 받지 못 한다고 생각하게 되면 스트레스를 받고 심하게는 코르티솔 호르몬에 이상이 생겨 질병을 유발한다. 나이가 들면 육체적이고 정열적인 에로스의 사랑이 식고, 필리아의 사랑과 플라토닉 사랑에서도 한 걸음 나아가 조건을 배제한 아가페의 사랑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악천후」는 ‘중풍 맞은 팔순의 영감탱이’를 남편으로 둔 아내의 혼잣말이다. 그녀는 “젊은 의사 양반”에게 성적 욕구가 강한 남편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구구절절 하소연한다. 그녀의 한평생은 “한 철을 버티지 못하고 벌레처럼 변해버”린 뽕잎이며, “부드럽던 새순”은 “우악스런 가시”로 변해버렸다. 늙은 아내가 변화해온 모습을 살펴보면 생의 한살이가 녹록치 않아 보인다. 게다가 병까지 앓고 있는 팔순의 남편은 죽음을 목전에 둔 황혼녘의 지금도 자신의 “손목을 끌어당기”니 “소름이 돋”을 만큼 싫다고 표현한다. 늙은 아내는 “스무 살 언저리”에서 시작된 남편의 성적 욕구가 “팔순이 된 지금까지” 이어진다는 데 대해 화학적 요법을 시행할 결단을 내린다. 그래서 젊은 의사에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상담을 요청한 것이다.
사랑은 소유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 주체가 되는 내적 행동’이라고 주장하는 에리히 프롬(Erich Fromm, 『사랑의 기술』)의 말을 빌린다면 팔순 남편이 늙은 아내의 손목을 끌어당기는 행위가 낭만적 사랑에서 비롯된 육체적 감정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에로스적 충동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삶을 긍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늙은 사람은 사회에서 소외된 약자이며 죽음을 준비하는 생의 소외자라고 할 수 있다. 무의미한 존재가 되어 주변부로 밀려난 팔순의 남편이 늙은 아내가 정력감퇴제를 처방받으러 온 걸 알게 된다면 어떤 표정일까. 늙은 아내의 비밀스런 하소연을 듣다보면 정신적인 사랑과 육체적인 사랑의 경계를 나누기가 애매해진다. 은밀하지만 솔직한 아내의 혼잣말을 통해 황혼 세대의 육체적, 정신적 사랑에서 해학의 묘미를 발견할 수 있다.
7. 절대적 타자성
사랑은 규정된 가치 체계를 뛰어넘어 새로운 세계 질서를 만들 수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다. 사랑은 예측이 불가능하고 의미가 고정될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새로운 열림의 가능성을 담지하고 있다. 계산과 통제가 어려운 사랑은 신선한 미적 감각에서 영감을 얻는 예술가들에게 흥미로운 주제가 된다. 다섯 편의 시에 등장하는 제각각의 사랑은 개성적인 빛깔로 형상화되는 다양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분실물 보관소에 보관된 물건들은 사랑을 기억하며 침묵으로 인내하는 기다림을 이어가고(「분실물 보관소의 밤」), ‘마음’이 ‘낙서’로 변하는 시인의 습작은 ‘詩’에게 더 좋은 시집을 묶을 수 있기를 고백하는 솔직한 심경을 드러낸다(「고백」). 갓 구운 빵도 얼마 안가 푹 꺼져버리지만, 사랑하는 것들을 나열하다보면 아름답게 피어오르는 연기와 마주하게 된다(「말하는 희망」). 또한 ‘목재’의 자리에 ‘마음’과 ‘사랑’을 대입해보면 종국에는 소멸하고 말 사랑의 운명에 대해 “어두운 목재 느낌이 나는 부분”일 거라는 회한을 표출한다(「목재 느낌이 나는 부분」). 팔순이 되어서도 육체적 사랑의 충동을 자제하지 못하는 남편 때문에 의사에게 정력감퇴제 처방 상담을 풀어놓는 아내의 하소연이 웃프다. 황혼세대에서 표출되는 사랑의 방식이 해학적이다(「악천후」).
사랑의 시학은 주체와 타자에 기반한 관계를 통해, 자아의 존재 이유로서 절대적 타자성의 세계를 지향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외되는 인간 군상의 모습이 득실대는 비극적인 세계에서 타자에 대한 사랑은 시인이 추구해야할 소명이 아닐까. 바디우(Alain Badiou)의 말처럼 ‘사랑은 타자의 실존에 관한 경험’이라는 정의에서 근원적인 물음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혹, 사랑을 쓰다가 들키더라도.
약력
배옥주
2008년 《서정시학》으로 시 등단
2022년 《애지》로 평론 등단
<부경대학교> 문학박사
시집 『오후의 지퍼들』, 『The 빨강』
연구서 『이형기 시 이미지와 표상 공간』
평론집 『언어의 가면』
<요산창작지원금> 수혜, <김민부 문학상>, <두레 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