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나리과 아기별』 마해송
2023년 12월 7일 _ 12기 송수진
얇고 단단한 하드커버의 커다란 그림책일거라는 예상을 깨고, 서가에서 꺼낸 이 책은 두툼하고 묵직했다. 문학스러운 작가의 필명, 보드랍고 예쁘장한 제목, 왠지 모를 슬픔이 느껴지는 아기별의 포옹… 나도 모르게 글자를 따라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아무도 없는 외로운 바닷가에 감장돌 하나를 의지하여 어여삐 피어난 오색 꽃의 바위나리. 아무도 보아주지 않아도 아름다운 바위나리. 바위나리는 동무를 기다리며 처절한 외로움을 노래로, 울음으로 토해낸다.
이토록 사무치는 외로움을 느껴본 적이 있었는가?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린 적이 있었는가? 잠시 멈춰 어느 때에 그랬었나 생각해보았다.
어느 날 저 멀리서 바위나리의 목소리를 듣고 찾아온 착한 아기별은 바위나리에겐 우정이었고, 사랑이었고, 전부였으리라. 세상의 소리에 파묻혀 쉽게 무시될 법한 이 작은 존재에게 귀 기울여준 아기별이 참 고맙게 느껴졌다.
아픈 바위나리를 돌보다 너무 늦게 하늘로 돌아간 아기별은 결국 별나라 임금님의 호령에 바위나리 곁으로 가지 못하고, 그런 아기별을 하염없이 기다리며 바위나리는 시름시름 앓다가 그만 썰물에 끌려 바닷속으로 사라진다. 이전의 대상 없는 막연한 외로움과는 비할 수 없이 절망적이었을 상실감에 바위나리가 더욱더 안쓰럽게 느껴졌다.
‘바위나리는 그날 밤 늦도록 아기별만을 기다렸습니다.
그 이튿날도 그 이튿날도 기다리는 아기별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만 솟아나오는 눈물만은 어찌할 수 없어 눈물이 그칠 사이가 없던’ 아기별도 마찬가지였을 터. 결국 거듭된 그리움과 슬픔에 빛을 잃어버리고 만다.
쫓겨난 아기별이 정신을 잃고 빠져든 바닷속, 그곳은 바위나리가 썰물에 끌려 들어간 바로 그 바다였다. 바닷속에서 바위나리와 아기별은 다시 만났을까? 라는 생각을 하던 찰나, 마지막 문단을 읽고 나니 이내 안도감이 들었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깊고 깊은 바닷속에서 다시 빛나는 아기별은 분명 바위나리를 만나 못다한 사랑을 지금도 하고 있으리라.
이 아름답고도 슬픈 이야기가 초등학교 3학년 교과서에 실려있다고 한다. 단순히 한국 최초의 창작동화라는 이유만으로, 고운 글귀만으로 실리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자아가 자라나는 시기에 간절한 누군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따스하게 대해줄 줄 아는 마음을 심어주고 싶었던 어른들의 바람이 있었을 것이다. 또한, 살아가는 동안 힘들고 외로울 때 홀로 감내하지 말고, 나를 봐달라고 내게 관심을 달라고 언제든지 얘기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 때,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아기별처럼 손 내밀고 사랑을 줄 수 있는 어른이 되기를 다짐해본다. 그 시절 어린 내가 그토록 바랬듯이 말이다.
첫댓글 역시 수진님! 기다리고있었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