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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한 번에 업로드가 되지 않아서 1,2로 나누어서 올립니다. 네이버 블로그는 한 번에 읽을 수가 있습니다.
"오천만의 로마서"의 유익 2: The Benefits of Romans for Fifty Million People
1편에 이어서 2편입니다. 끝까지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율법학자를 간절히 찾으시는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비유장 마태복음 13장 52절의 말씀입니다. 개역개정으로 보면 누구나 이해가 어려우니 공동번역과 영어로 보면 대부분 내용이 그래도 이해가 됩니다. 이 구절의 이해를 통해서 여태까지 가진 성경의 이해에 대해서 신앙에 대해서 완전히 다른 차원의 삶을 사시길 축복합니다.
마태복음 13장 52절
마 13: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52.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을 맺으셨다. "그러므로 하늘 나라의 교육을 받은 율법학자는 마치 자기 곳간에서 새 것도 꺼내고 낡은 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52. He said to them, "Therefore every teacher of the law who has been instructed about the kingdom of heaven is like the owner of a house who brings out of his storeroom new treasures as well as old."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 그러므로 천국에 대해서 교육을 받은 모든 율법을 가르치는 선생 즉 율법학자는 그의 창고에서 새 보물도 꺼내고 옛 보물도 꺼내는 집의 주인과 같이 된다."]
제가 영어를 위와 같이 번역했습니다.
이 구절은 교회의 지도자가 되고 성경의 설교자 혹은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얼마나 바울과 같이 율법을 잘 배워야 됨을 설명합니다. 율법을 모르는 모든 교사 목사 신부 혹은 성경 연구가는 다 반쪽의 사람입니다. 절대로 보물의 주인이 자신의 보물 창고 즉 신 구약 성경에서 새 보물을 때에 따라서 꺼내서 나누고 때론 옛 보물도 꺼내서 나누는 사역과 같은 사역은 꿈도 꾸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즉 보물을 나누는 직업은 예수님의 사역에 해당합니다. 이 귀한 지구상 최고의 사역에 동참하는 개인은 누구나 죽을 힘을 다해서 율법학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을 나누는 사역에 동참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고 지금의 유대인도 브리스길라 아굴라가 하듯이 바울이 하듯이 당당하게 전도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때는 바야흐로 유대인 즉 이스라엘의 구원이 열릴 것입니다.
로마서의 이런 특징을 모든 로마서 독자는 먼저 알아야 합니다. 로마서의 압축성, 빙산의 모습, 그리고 경험성 등이 특징인 책임을 반드시 조금은 이해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로마서는 율법학자 바울의 법적인 책입니다. 그래서 율법에 대해서 율법학자와 같이 잘 배워야 합니다. 이러한 연유로 오랜 시간 로마서의 한 구절을 두고 믿는 이들이 서로 다투며 논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부분들이 다 결합이 되고 얽혀서 기록이 된 책이 로마서 이기에 그렇게 오랜 세월을 논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의 올바른 이해를 원하는 모든 성도는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세례를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고 전도를 하고 교회를 개척해서 바울과 같이 목회를 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바울과 같이 세상에서 거룩하게 정의롭게 살면서 세상과 싸우며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사는 목자나 선교사에게 비로소 로마서가 잘 열리리라(이해되리라)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성경도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특히 율법서를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물론 또한 로마서를 통해서 온 성경에 다 더 가까이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를 진실로 잘 배우고 싶은 성도는 만약에 자신이 이렇게 하지 못하면 그렇게 삶을 살면서 로마서를 올바르게 이해한 목자에게 가서 배우면 될 것입니다.
이렇게 전하는 저도 선교 경험이 없고, 교회에 대한 목회 경험이 없기에 역시 로마서 이해에 있어 많은 부족함이 있습니다. 영어나 헬라어에 또 많은 부족이 있기에 역시 로마서를 이해하는 데 저는 전적으로 적합하지 않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율법의 중요성을 보면서 잘 배우고자 합니다. 그래도 부족하지만 주님의 은혜로 깨달은 것을 모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제 자료를 통해서 로마서에 더 가까이 가시고 바울과 같이 살면서 이해한 로마서를 온 세상에 잘 전하는 귀한 전도자들이 속출하시길 바랍니다.
부디 바울과 같은 위대한 일꾼들이 이 한국 땅에서 속속 등장해서 온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데 큰일을 감당하기 바랍니다. 한국에서 이와 같은 위대한 세계적인 일꾼이 등장하기를 바랍니다. 그들이 온 세상의 하나님의 나라의 일꾼이 되고, 그런 사람들이 사는 이곳 한국에 주님의 평화와 위로와 축복이 임하길 간절히 빕니다.
이것이 내 자녀와 후손에 가장 복된 삶을 지금 시대를 사는 우리가 남겨주는 유일하고 가장 좋은 길입니다. 공부를 많이 시키고 돈을 많이 물려주는 것도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처한 현실이 인구가 줄고 젊은이가 직장이 없고, 자살자가 끊이지 않고, 정도 메말라지고 온 한국의 땅에 마음 놓고 마실 물이 없어지고, 미세 먼지로 마스크가 없이는 하루도 이 땅에서 살 수가 없는 상태가 되었음을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이런 상태의 현실에서 나 홀로 이 땅에 남아서 형제도 없이 정을 나눌 친구도 없이 오직 물질만 가지고 삭막하게 산다면 그 인생에게 무슨 행복이 있겠습니까? 이는 자본주의 자유 경쟁의 원리에서 근본적으로 비롯이 된 것입니다. 경쟁에 진 자는 어디 가서 호소도 못하고 실패자로 낙오자로 아무도 신경도 써주지 않고 관심도 받지 못하고 외롭게 쓸쓸히 인생에서 퇴장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깊이 생각해야 됩니다. 행복은 함께 더불어 사는 곳에 있습니다. 천국은 그런 곳이라 믿습니다.
반대로 자유경쟁으로 경쟁에서 이긴 자도 실상은 살 맛이 사라지는 곳이 한국입니다. 너무나 삭막하고 몰인정하며 여유가 없고 평화도 안식도 없는 모두가 눈을 뜨면 피곤한 몸을 안고 또 경쟁에 나서야 합니다. 오직 희망은 그대! 정의에 목이 마른 그대! 로마서를 올바로 이해하는 바로 성도 여러분들입니다. 로마서의 올바른 이해는 이 땅에 살맛이 나고 모두가 모두를 품고 함께 배려하며 모두가 평안하고 행복한 나라를 건설하게 합니다. 예수님의 우리의 구원의 진정한 목적이 여기에 있습니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절대로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멋진 하나님 나라를 품고 사랑하며 세우기 위해서 분투하는 모든 이의 분발을 촉구합니다. 부디 두 말 마시고 율법을 잘 배우시기 바랍니다! 모든 일에 앞서서 지금 바로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오천만의 로마서 다음 카페와 네이버 블로그에 기초 자료가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제 Ⅱ 편 바울의 심정에 대한 이해
1. 당시의 이스라엘과 로마의 상황
2. 바울의 외침(모든 이들이 하나가 됨, 율법의 역할, 지금의 유대인을 전도함: 동포여! 구원을 얻는 방법이 바뀌었다!! 율법이 아니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다. 그렇다고 율법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율법을 존중하고 세운다))
3. 온 세상을 품은 로마서와 바울
1. 당시 이스라엘과 로마의 상황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유대인은 여러 계파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로마의 속국으로 종교적으로 어느 정도 자유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제사장들이 있어 공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로마 전역에 흩어져 살면서 율법의 가르침에 따라서 일 년에 세 번 예루살렘 성을 방문해야 했습니다. 율법의 규정에 따른 모든 유대인의 의무입니다.
그리고 바리새파 즉 율법학자와 같이 율법의 조문을 잘 배우고 지키는 사람들이 있었고, 대부분의 유대인은 구약을 믿고 그대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사장과 율법학자(서기관)등이 지도층이 되어서 율법대로 살려고 했고 바울도 율법을 배우고 지킴에 있어 첫째가 되려고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전통이 지금의 유대인에게도 전해져서 유대인 중에서 자녀들을 모든 학문에 앞서서 모세 오경부터 배우게 하고 특히 레위기를 외우게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를 그대로 실천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과거 유대인들은 로마와 헬라의 문화와 그리고 자신들이 흩어져서 사는 곳의 관습과 법을 지키면서도 유대인의 정체성을 늘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초대 교회는 대부분 유대인들이 그 구성원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으면서 유대교의 전통을 그대로 지키려고 했고, 율법에 대해서도 할례와 머리를 깎는 것 등에 있어서 유대교의 전통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습니다. 실제로 바울은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바울 사도는 자신이 배우고 체험한 대로 예수님을 전하는 것을 늘 잊지 않았습니다. 이런 바울 사도의 복음이 당시 흩어져 있는 교회들에 보낸 바울 사도의 서신서의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이제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서신서를 쓴 바울 사도의 심정을 이해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이해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율법을 이해하는데 대해서 필수적인 것입니다.
2. 바울의 심정과 외침
바울 사도는 철저한 율법주의자였습니다. 어려서부터 베냐민 지파의 사람으로 율법을 배우고 당대 최고의 율법학자인 가말리엘에게 수학했습니다. 율법을 조문조문 흠이 없이 지키려고 했던 사람입니다. 이 유대교에 대해서 큰 신념을 가지고 오직 유대교의 경전인 구약만 믿고 이스라엘의 역사적인 전통을 지닌 유대인만이 오직 선택된 하나님의 백성으로 믿었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다윗 왕과 같은 강력한 구세주가 나타나 자신의 민족을 당시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켜 줄 것이라 굳게 믿었었습니다. 수천 년의 전통이 그대로 이어왔으니 이를 그대로 믿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을 받아서 수천 년 내려온 율법 전통의 이스라엘과 이방인에서 외친 가장 강력한 메시지가 바로 그 후 2000년 동안의 온 세계 역사를 선도하고 지금의 세계에서 가장 주류가 된 “예수를 믿으세요” 였습니다. 때론 율법과 전통과 복음에서 큰 고민이 있었을 지 모릅니다.
그런데 2000년 전 바울이 아직 율법학자일 당시에 인간 예수가 나타나 스스로 구세주라 외치고 결국은 십자가에서 매달려 죽으셨습니다. 바울은 그렇게 예수님으로 인한 일들이 다 끝이 난 줄로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후에 성령께서 오셔서 성도들에게 선물로 임하시고 성령을 받은 성도가 복음을 전할 때, 복음이 확산되자 전혀 새로운 양상이 전개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들을 유대교를 위협하는 무리로 믿고 잡아서 옥에 가두고 핍박하는 일을 도맡아서 했습니다.
그렇게 바울은 유대교에 열정적이었고 자신이 율법으로 의롭게 되었고 택한 백성으로서 천국에 가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바리새인 율법관, 천국관)
그래서 첫 순교자 스데반이 잡혀서 돌에 맞아 죽는 현장에서 스데반을 죽이는 무리와 하나가 되었습니다. 바울로서는 이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를 믿는 무리를 잡아서 가두는 일에 광분하고 있던 바울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직접 나타나시었습니다. 예전의 육체로 있던 예수님이 아니라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나타나시자 바울은 말을 타고 가다가 바로 눈이 멀면서 말에서도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바울 자신이 살면서 한 번도 꿈도 꾸어 보지 못한 일이 자신에게 발생하자 자신이 지금까지 믿고 있던 모든 신념 체계가 순식간에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이는 바울뿐만 아니라 인간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직접 이렇게 오시면 혼비백산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너무나 놀라고 당황해서 혼이 나간 상태에서 누구시냐 물으니 음성이 들리는데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안에 들어가서 아나니야를 만나도록 하셨습니다. 바울은 그대로 그 음성에 순종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 지구상의 어떤 인간도 이렇게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시면 온전히 제 정신으로 있을 사람이 절대로 한 명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잘났다고 온갖 고난에도 자신을 꺾지 못했던 욥이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꼬꾸라진 것과 같은 일이 바울에게도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단언코 창조주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실재로 오시면 제 정신으로 버틸 지구상의 인간은 한 명도 없습니다. 잘난 채 할 필요도 잘난 채 할 이유도 없습니다. 인간이 공부를 조금 잘하고 인간이 조금 더 아는 것은 종이 한 장 차이로 정말로 별것이 없습니다. 미천한 저도 바울과 같은 경험을 하고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명령이 예수님으로부터 내리는데 성안에 들어가면 아나니야란 사람이 있으니 그를 만나 예수 이름의 세례를 받고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눈이 멀어버린 바울이 할 가장 최우선 순위가 아나니야를 만나 눈을 회복하는 일이었습니다. 예전과 같이 율법으로 의롭게 되고자 하고, 예수를 믿는 사람을 잡는 일은, 이제 바울의 마음에서 1%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습니다. 모든 인간은 정말로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이 인간 앞에서 뭐가 조금 더 낫다고 우쭐대거나 혹은 못한 사람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진실로 지식은 교만하게 합니다. 신학자들의 인간적인 성경 이해는 실로 별것이 아닐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저는 “바울 기독교의 창시자인가 예수님의 종인가?” 하는 제목의 책을 보았습니다. 신학자는 바로 알 수가 있는 내용도 이렇게 길게 풀어서 살핍니다.
그리고 완전히 자신이 하던 일이 잘못되었음을 순간적으로 인식한 바울은 아나니야를 만나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완전히 이렇게 회개한 바울 사도에게 그간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고 성령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바울이 성령을 받으니 성령께서 자신이 너무나 깊이 잘 알고 믿고 있던 구약의 모든 내용이 예수님에 대한 예언이요, 말씀임을 알게 하십니다. 바울이 일반인과 다른 점이 있다면 자기 잘못을 알고 완전히 회개하고 다시는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성령을 따라서 일생을 살았다는 점입니다.
아라비아 사막에서 기도하고 훈련을 받은 후에 이제는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 성령의 인도로 힘 있게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그러니 당시에 예수를 믿던 유대인들이 자신을 핍박하던 자가 변해서 도리어 예수를 전하니 이상하게 생각을 했습니다. 바울이 그간의 경위를 말하자 베드로 등이 형제로 받아들이고 이방인의 사도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함께 삼층천에도 가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들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면서 다양한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의 바울이 조금도 누리지도, 알지도,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들이 자신에게 생기고 성령께서 음성으로 순간순간 명령하고 위로하고 힘을 주는 것을 쉬지 않고 들었습니다. 다양한 핍박을 받으면서 언제나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며 자신을 사랑하며 돕는 것을 늘 체험하였습니다.
바울은 성령의 오심으로 이렇게 놀라운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서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서 죄와 사망의 법을 이기며 모든 일이 합력해서 선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다양한 은사와 능력을 체험하면서 복음을 전하며 약 20년의 세월을 보낸 후에, 그 모든 율법 지식과 선교 경험의 바탕에 성령의 감동으로 비로소 로마 성도들에게 로마서를 써서 로마교회에 보낸 것입니다. 이 책이 로마서입니다.
그런데 당시 자신이 세운 교회에 들어온 어떤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그들은 성령을 받고 자신과 같이 되려고 하지 않고 도리어 바울이 예전에 믿던 모습대로 율법을 먼저 지키고 의롭게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이런 무리를 많이 보게 되었으니 바울 사도로선 격분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고, 이들이 교회와 성도들에게 너무나 위험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도 원하시는 일이 절대로 아니었습니다. 지금 교회에 성령도 없이 회개도 없이 지식으로 목사가 되고 신학자가 되어서 교회를 세상의 빛이 되게 하지 못하고 소금도 되지 못하게 하는 자들의 행태를 깊이 연구해 보아야 합니다. 이들은 절대로 성령을 인정하지 않고 가르치지도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령의 경험도 체험도 선물로 없기에 그렇습니다. 아무리 성경을 달달 외우고 모르는 부분이 없어도 성령이 없으면 너무나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이들이 즉 회개도 없고 성령도 없는 무리가 예수를 믿는 무리 속으로 들어와서 그들에게 율법을 먼저 알고 배우고 율법대로 살아야 한다라고 가르쳤습니다. 심지어 이들은 그들 스스로도 율법을 잘 지키지 않는 자들이었습니다. 바울 자신이 세운 교회와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그들이 이렇게 가르치니 이 무리를 바울이 그냥 절대로 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 무리를 쫓아내고 이 무리들에게 배운 성도들을 바로 잡고자 로마서를 비롯한 편지(갈라디아서 등)를 쓴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배우는 로마서는 바울이 가보지 못한 교회즉 성령께서 성도들과 직접 세운 교회 로마 교회에 편지로 보낸 것입니다.
이 바울의 마음을 그대로 이해를 해야 합니다. 그의 마음 속의 외침을 우리는 먼저 들어야 한다. 그리고 당시의 이런 상황을 반드시 로마서를 공부하는 우리는 이해해야 합니다.
그는 이렇게 외치는 것입니다. “아니다! 아니다! 흩어져 있는 사랑하는 성도들아! 그들 즉 가만히 들어온 유대인들이 가르치는 데로 그렇게 믿으면 절대로 아니 된다. 그렇게 살아서도 아니 된다. 예수를 먼저 알고 올바로 믿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예수를 믿으려면 먼저 회개를 하고 예수 이름의 세례를 받고 성령을 받아야만 한다.” 실제로 사도행전의 바울의 사역을 보면 예수 이름의 세례를 받은 자, 요한의 세례만 받은 자, 성경은 많이 아나 성령 세례에 대해서 모르는 자들에게 모두 성령을 소개하고 받게 합니다. 그리고 또 외칩니다. 너희는 이미 예수를 믿고 성령도 받은 거듭난 성도이다. 이제 너희가 할 일이 성령의 인도를 받는 일이다. 성령의 인도를 제쳐두고서 가만히 들어온 율법주의자들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하고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따르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고 외친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로마 교회나 갈라디아 교회 교인들 중에는 이미 이렇게 믿고 성령까지 받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들 잘못된 유대인이 성령도 모르니 성령의 인도를 통해서 사랑을 실천하고 선을 행함으로 율법을 완성하는 것을 당연히 몰랐습니다. 이는 놀랍게도 지금의 크리스천에게도 신학자 목사 신부에게도 다 해당이 되는 지적입니다. 저는 이렇게 해서 세워지는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는 예수님의 도구 김정관 목사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인간이 하지 못하는 율법의 완성과 굳게 세움, 그리고 율법의 정의로운 요구를 성령의 도우심으로 달성해서 율법이 해와 같이 빛나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인데 아예 이 목적을 처음부터 어긋나게 하니 예수님의 종 바울은 격노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제가 전하는 바로 이 두텁게 쓴 내용이 무엇이야 처음 보는 내용인데 하는 분은 이 글을 진실로 끝까지 정독을 하셔야 하는 분입니다. 정말로 모든 성도가 올바로 이해하는 되는 내용입니다. 성경의 핵심이고 성도의 필수 이해 사항입니다.
이들은 단지 성령의 인도에 앞서서 우선 율법의 준수만 강조했고 실제로 이들은 예전의 엄격한 율법을 지킨 바울과 달리 율법을 자신들도 지키지도 않고 있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자격도 없는 자가 선생이 되어 성령을 받은 착한 이들을 꾀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이들에게 속아서 흔들리는 성도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너희가 성령으로 시작해서 육으로 끝나려고 하느냐 하는 표현) 바울 사도는 이런 상황을 바로 잡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성도를 꾀어서 자신의 종으로 삼으려는 무리일 뿐입니다. 지금도 이런 무리가 교회의 지도자로 있는지 잘 살펴야 합니다. 성령도 없고 율법도 없는 모든 목사, 신부, 신학자는 이런 자들과 별로 다를 바가 진실로 없습니다. 저는 예수님과 성령님의 인도로 이들과 싸울 것입니다. 이들의 위선과 거짓을 밝혀서 교회를 올바로 세울 것입니다.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도와주시고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믿는 본분이요, 바램이요 상급입니다.
실로 이들이 성령을 받고 올바로 가던 성도를 꾀어서 잘못 가게 하니 바울이 편지로 다시 이제는 처음부터 다시 가르치는 것입니다. 바울이 얼마나 속이 상하겠습니까?
다시 이를 다시 반복해서 설명하면 회개도 없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율법을 조금 알고 자신은 지키지도 않는 못된 유대인 무리가 예수를 잘 믿는 무리 속으로 들어와서 율법을 먼저 알고 배우고 율법대로 살아야 한다라고 당시 바울이 세운 교회에서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그가 사랑하는 성도에게 이렇게 가르치니 이 무리를 바울이 그냥 절대로 볼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성도들에게 예전에 예수님도 모르던 시절의 바울이 율법을 믿고 행한 것과 같이 그렇게 율법을 믿고 행하도록 가르치니 바울이 이를 막고자 한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이 아니다! 행위도 아니다! 먼저 예수를 믿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성령을 받아야 한다. 이제는 성령의 도움으로 복음을 전하며 사랑을 실천해서 율법을 완전케 해야 한다. 우리는 성령을 받고 능력도 행해야 한다. 이 부분은 사도행전의 부분을 현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내가 다시 강조를 한 것입니다. 실제로 이미 성령을 받은 바울 당시의 성도는 다시 성령을 받을 필요가 없이 충만만 받으면 될 것입니다> 율법으로 절대로 의롭게 되어 천국에 갈 수가 없다. 죄는 예수를 믿고 용서를 통해서만 해결이 가능하다. 거짓 교사가 가르치는 데로 그렇게 믿는 것이 절대로 예수를 올바로 믿는 것이 아니다. 라고 바울 사도는 외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서 성령을 받아서 이제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위대한 율법을 완성하고 굳게 세우고 율법의 요구하는 바를 이루어서 마태복음 5장 17-20절의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할 자격과 의무를 가진 성도들에게 성령을 따라서 살아야 한다 그들의 주장을 따라서 성령을 외면하고 율법을 따라서 사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고 절규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 모두에게 회개하고 예수를 믿고 죄를 용서받고 성령도 받고 의롭게 되는 길이 이제 새롭게 열렸다. 나 바울도 이전에는 몰랐는데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고 능력을 행하면서 전도하다 보니 이 길이 진리이다. 진실로 이제는 유대인 이방인 할 것 없이 예수를 믿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순서를 지켜라! 먼저 예수를 믿어라! 회개하라! 그리고 죄의 용서를 받아라! 그리하면 성령께서 오셔서 나를 완전히 다른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하신다. 내가 거듭나게 되면 마음이 부드럽게 되어 과거에 할 수가 없던 율법을 완성시킬 수가 있다. 차원이 다른 세계가 있다. 율법을 지킴을 통해서 절대로 도달 할 수가 없는 세계가 있다. 나는 그 세계를 누리며 산다. 모든 유대인과 유대인 성도는 과거의 율법의 단계(초등교사)에 있으면 절대로 아니 된다. 내가 새롭게 된다. 이제는 복음의 시대이다. 완전히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피 흘리심과 죽으심 덕분에 이를 믿고 성령님의 선물과 충만케 하심으로 믿는 이 모두가 새롭게 창조가 된다. 내가 과거의 나를 되돌아 볼 때 과거에 내가 알고 믿던 것들이 그때는 전부라 생각했는데, 지금의 상태에서 보니 그것들은 배설물과 같다. (절대로 율법에 대해선 그렇지 않음, 이것은 단지 예수님을 믿기 전의 바울이 생각하고 행했던 것들에 대한 표현임) 지금 나의 상태는 과거와 비교가 아니 된다. 나와 같이 믿고 성령을 따라서 살아라!
과거의 나는 사랑도 온전히 못했고 정의롭게 살지도 못하고 율법에 얽매여 사망의 길로 가던 사람에 불과했다. 예전의 나와 같이 절대로 그렇게 살지 말라. 그렇게 되어서는 아니 된다. 아니다! 아니다! 율법으로 의롭게 절대로 되지 않는다. 예수를, 나를 위해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 내 죄를 속하기 위해서 죽으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어라! 예수를 믿는 일이 가장 먼저 할 일이다. 이렇게 바울 사도는 외치는 것입니다. 그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다시 강조하는 것입니다. 다시 그들에게 이렇게 회복을 하라는 것입니다. 즉 성도의 올바른 순서가 먼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 가장 우선적이고 다음이 그분의 이름의 세례를 통해서 죄를 용서받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성령께서 선물로 오시고 오신 성령은 성도를 거듭나게 하시고 그리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바울 사도와 같이 복음을 전하고 선한 삶을 살다 보면 율법을 완성하고 굳게 세우고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니 이렇게 순서대로 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들어온 율법학자는 순서를 완전히 어깁니다. 이들은 먼저 예수님을 믿는 일이 없습니다. 절대로 없습니다. 따라서 회개도 없고 죄의 용서도 없습니다 그리고 성령도 없습니다 오직 있는 것은 율법에 대한 이해 조금뿐이며 이도 실천하는 부분에서 온전하지 않는 심히 불량한 자들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머리가 되려 하고 착한 사람을 종으로 부리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이들과 진실로 비슷한 이들이 한국에 어디에 있는지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들이 모든 절차를 생략하고 오직 율법만 중요하다고 강조하니 성도가 이를 따라서 가는 일이 생긴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과 성령의 사역을 다 부정하고 오직 과거 바울이 살던 모습으로 회기하는 것입니다. 절대로 바울이 다시는 죽어도 가고 싶지 않는 길로 성도가 이들 나쁜 무리의 속임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외칩니다. 제발 예전의 나와 같이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되려는 생각을 하지 말라! 그렇게 살면 사랑도 정의도 없고 천국도 없다. 그리고 지금은 예수님께서 오셔서 만민을 구원하려고 하신다. 하나님은 유대인 만의 하나님이 절대로 아니다. 온 세상의 창조주로 모든 인간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시기를 바라신다. 천하 만민의 구세주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구원의 사역을 피를 흘리면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통해서 장사한 지 사흘 만에 부활을 통해서 이루셨다.
이제는 제발 이 예수님을 먼저 믿어라! 이렇게 바울 사도께서 로마 교회 교인들(혹은 다른 교회 교인들)에게 외치는 것입니다. 이미 예수를 믿고 회개하고 성령을 받은 성도들이 잘못 가고 있으니 다시 강조하는 것이다. 절대로 율법이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절대로 율법을 버리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먼저 예수님을 믿는 일을 우선해서 하라는 외침입니다. 즉 예수를 믿고 순서대로 오는 절차에 따라서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이를 반드시 이해하고 로마서를 읽어야 하고 갈라디아서를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는다는 의미에는 회개와 물세례와 성령의 세례가 다 세트로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예수를 믿고 회개하고 성령을 받아 성령의 인도를 받으라는 말씀이 곧 예수를 믿어라 와 조금도 다름이 없습니다. 절대로 이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바울 사도는 누구도 율법에 대해서 달리 생각하지 못하게 이렇게 사는 것이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는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고 로마서 3장 31절에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로마서 13장8-10절에서 사랑함으로 율법을 굳게 세운다고(완성) 증거하십니다. 그리고 로마서 8장 3-4절에서 성령을 따라서 살게 되면 율법이 요구하는 정의로운 바를 이루게 된다고 하십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사랑과 정의와 신실함의 미덕입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의 핵심입니다. 로마서 14장 17절로 있습니다.
롬 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사랑은 율법의 완성
롬 13: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롬 8:3-4
롬 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3 인간의 본성이 약하기 때문에 율법이 이룩할 수 없었던 것을 하느님께서 이룩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죄 많은 인간의 모습으로 보내어 그 육체를 죽이심으로써 이 세상의 죄를 없이 하셨습니다.
4. 이렇게 해서 육체를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 속에서 율법의 요구가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3 For what the law was powerless to do because it was weakened by the flesh, God did by sending his own Son in the likeness of sinful flesh to be a sin offering. And so he condemned sin in the flesh
4 in order that the righteous requirement of the law might be fully met in us, who do not live according to the flesh but according to the Spirit.
롬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17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서 누리는 정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
17 For the kingdom of God is not a matter of eating and drinking, but of righteousness, peace and joy in the Holy Spirit,
마태복음 23:23
마태복음 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바울은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아서 어떻게 율법을 세웁니까? 과거엔 바울이 자신의 힘으로 율법 조문을 배워서 조문조문 지키려고 최선을 다했고 자신은 스스로 그렇게 사는 자신을 보면서 흠이 없고 의롭다 여겼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율법을 지키고 율법을 세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율법학자에게 율법의 조문조문을 다 잘 지키고 더욱 중요한 의와 신의와 사랑을 실천해야 된다고 명령을 하면서 이렇게 하지 않고 형식적인 조문에 매달린 율법학자 종교지도자를 책망하셨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이 일에 대해서 이해를 절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이렇게 올바르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율법학자들이 도대체 네가 무어냐 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고 바울은 이 일을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바울은 이들과 조금도 다름이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진실로 그렇습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고서 구약을 묵상하고 신약도 묵상하면서 예수님을 올바로 이해하게 되고 참된 진리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십자가 대속과 예수님의 피 흘리심이 죄인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이 되고 하나님 아버지의 독생자를 주신 사랑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복음을 전하면서 참사랑이 무엇인지 그는 더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하신 바와 같이 우리는 복음의 전파로 이웃에 대한 최고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성령의 인도로 자신의 육신의 정욕을 이기며 살다 보니 예전에 죄로 여겨지지 않던 일들이 죄로 분별이 되었습니다. 이미 그가 잘 아는 율법의 조문과 성령의 감동은 바울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을 통해서 진실로 율법의 조문조문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한 사랑과 의와 신의에 대해서도 또한 그대로 지켜지는 것을 확인을 했습니다. 성령께서 복음 전파와 선행을 통해서 모든 율법을 완성시키는 것을 확인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율법의 굳게 섬도 확인을 합니다. 그리고 율법이 요구하는 바를 과거의 율법학자 바울은 할 수가 없었지만 성령을 받아서 새롭게 된 피조물 바울은 성령의 인도로 이를 가능하게 하게 된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이 이렇게 놀라운 것입니다. 성령이 없이는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이런 율법에 대한 일들이 절대로 인간의 노력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는 성령이 반 이상 차지하고 로마서도 성령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성령은 죄인이 회개를 하고 죄를 용서받고 기다리면 틀림없이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람에게 온다는 진리입니다. 부디 성도는 이 가장 큰 기회와 최선의 선물을 늘 사모하고 놓치지 말고 또 충만을 위해서 고집과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포기하고 겸손히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불가능한 일들이 성령의 능력으로 새롭게 된 피조물의 마음의 부드럽게 됨으로 속속 다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이 천지 개벽의 경험을 바울 사도는 성령의 인도로 복음을 전하면서 경험하고 이 경험을 토대로 로마서를 쓴 것이라 저는 굳게 믿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랑은 율법을 완성시킨다고 했고 죄와 사망의 법을 생명의 성령의 법이 이긴다고 했습니다. 결국은 이렇게 자신이 새롭게 되어 성령의 인도를 받고 복음을 전하다 보니 이제는 바울이 이렇게 정말로 과거에 그렇게 홀로 지키려고 해도 완전히 지키지 못한 율법을 다 지키면서 사는 자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를 로마서 3장 31절에서 믿음으로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운다고 표현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를 통한 믿음 생활을 통해서 율법의 정의로운 요구하는 바를 이루게 된다고 했습니다. 로마서 8장 3-4절의 말씀이다. 그리고 사랑은 율법을 완성을 시킨다고 로마서 13장 8-10절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멀리 있는 것 같지만 바울 사도는 예수님을 뵈온 후 성령을 받은 후20년 이상 전도 후에 이렇게 기록했고 저도 성령을 받은 후 약 33년이 흘러서 이렇게 이해할 수가 있었으니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루하루 성령의 인도가 맞는지 율법을 잘 살피면서 착하게 살면 때가 되면 모두가 바울과 같이 고백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저도 역시 그 길을 가고 있는 사람 중에 하나이고 온전치 않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율법을 알아야만 죄에 대해서 깨달을 수가 있다고 했으니 율법을 알기에 성령의 감동이 있는 경우 죄에 대해서 분별이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착각하고 율법을 지키면서 의롭지도 않은데 의롭다 믿고 산 예전의 삶을 잘 알고 있었고, 어떤 누구도 이런 진실한 사랑도 진리도 잘 모르는 예전의 바울 자신과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이런 마음과 자세로 모든 편지를 자신이 세운 교회에 쓰고 로마서를 쓰고 갈라디아서를 쓰는 것입니다.
얘들아! 예수를 믿는 것을 우선시 않고, 도리어 율법을 믿고 이를 통해서 의롭게 되려면 우선 회개가 없고 죄에 대한 하나님으로부터 용서가 없다. 그래서 불의가 그대로 존재하기에 절대로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을 의롭다 인정치 않으신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성령께서 죄가 있는 사람에게 절대로 선물로 임하지 않는다. 성령의 세례나 선물이 없다면 이 사람은 거듭나지 않았기에 자신의 힘으로 살아야 한다. 그러니 죄의 문제도 해결이 되지 않고 성령도 없고 영생도 천국도 없게 되는 것이다. 속지 말라! 이런 사람들에게 바울 사도는 외칩니다. 그렇게 살지 말라! 내가 예전에 하던 모습대로 너희도 하지 말라! 그 다음에 바울 사도가 말할 한 마디가 바로 예수를 믿어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설명을 드렸듯이 예수를 믿어라 하는 말 속에는 회개하라 예수님의 이름의 물세례를 받아라 죄를 용서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라 그리고 성령의 인도로 살아라 하는 말이 다 포함이 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가르치는 유대인에 대해서 모든 교회의 성도가 경각심을 가지고 그런 사람을 따르지도 말고 교회에서 용납하지도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특히 로마서의 경우는 모든 사람이 죄인이고 율법을 지켜서 행하는 유대인도 당연히 죄인으로 규정합니다. 이들에게 율법으로 절대로 의롭게 될 수가 없고 오직 예수님을 믿음을 통해서 의롭게 되는 과정을 차근차근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이 '율법이 아니다, 율법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다, 먼저 예수를 믿어라'는 것으로 성경 로마서에 표현이 된 것입니다. 즉 그들 즉 거짓 교사가 자신도 잘 지키지 못하는 율법으로 예수님의 도를 누르려고 하나 실상은 초대 교회 성도 모두가 예수님을 믿고 도리어 율법을 완성을 시켜야 하는 사명이 있는 자들인데 우리 모두도 같은 사명자입니다. 온 세상 모든 성도의 사명으로 천주교 개신교 정교회 구별이 이 사명 앞에 절대로 없습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이 그렇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미 예수도 믿고 성령도 받은 성도가 거짓된 자를 만나서 예수를 버리고 율법으로 가니 바울 사도가 예수를 믿어라 하는 것입니다. 또 다시 처음부터 이들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는 로마서가 아닌 다른 바울의 서신에 나타나는 표현입니다. 특히 갈라디아서 입니다. 로마서는 명쾌하게 불신의 이스라엘 민족과 이방인 모두에게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설명합니다. 그런데 거짓 교사가 있는 교회에는 이미 예수를 믿고 성령도 받았던 교인이 율법으로 가려고 하니 또 다시 예수님을 믿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의 믿음과 다른 서신서의 믿음이 이렇게 조금 다른 상황이 있습니다. 다시 반복합니다. 예수를 믿어라 하는 말속에 회개하라 그분의 이름의 세례를 받아라 죄를 용서받고 성령을 받아라 성령의 인도로 살아라 하는 말이 세트로 들어 있고 예수를 믿어라 하는 로마서 1장 17절과 성령의 인도를 받아라 하는 로마서 7장 6절이 완벽하게 같은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설명을 하면서도 바울 사도는 혹이 누가 율법을 무시하고 함부로 할까 봐서 로마서 3장 31절에서 율법을 무시하지 말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율법은 모세 오경으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법입니다. 이 법을 인간이 아무리 바울 사도라 해도 성령을 받았다고 해도 절대로 폐지가 되었다고 하고,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늘과 땅에서 그렇게 말을 할 수가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5장에서 분명하게 율법에 대해서 잘 지켜야 한다고 하셨으니, 이제 이 세상의 누구도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할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성도에게 얼마나 큰 죄를 짓는지 깊이 깊이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바울도 하지 않는 이야기를 만들어서 마음대로 하는 모든 사람이 율법으로 심판을 받고 처참하게 영벌로 갈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17-20
예수와 율법
마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의문 규정 즉 제사 규정은 예수님께서 제사법이 되시고 제물이 되시고 제사장이 되셔서 성취하셨기에 그대로 우리가 짐승의 제사는 지낼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부분도 잘 배워야 예수님의 사역을 잘 이해하게 됩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 속히 논의가 있어 목자들은 성도들에게 율법의 어떤 규정을 지켜야 하는지를 잘 가르쳐 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이런 심정으로 로마서와 바울 서신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제 이전의 글을 그대로 올리면서 이신칭의가 되는 하나님의 나라의 기초가 되는 믿음에 대한 설명과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의 뼈대가 되는 율법을 설명을 드릴 것입니다.
그런데 이에 앞서서 짚고 넘어가야 하는 의문점이 있습니다. 이미 순서대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죄를 사함 받고 성령을 받은 무리가 대부분이었던 초대 교회입니다. 그리고 바울 사도가 세운 교회들이 다 그러했습니다. 그런데 왜 당시의 성도들이 이들 거짓 교사 즉 이렇게 가르치는 사람을 용납했고 따라갔을까? 바울 사도는 어떻게 진리에 똑바로 서서 이들 거짓 교사를 책망하고 성도들에게 못된 무리를 용납하지 말라고 했는가? 때론 바울 사도를 제외하고 율법과 믿음 사이에서 사도인 베드로와 안디옥 교회의 중심인 바나바도 흔들릴 때가 있었습니다.
비록 부족한 부분이 있겠지만, 그 이유를 제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설명해 보고자 합니다. 저는 사도행전 2장 37-절의 설명대로 성령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책을 통해서 오시고 제게 두려움을 주셨습니다. 성경을 볼 때 고린도 전서 13장을 통해서 제 모습이 거울과 같이 보이는데, 저는 사랑하는 모습이 조금도 없는 완벽하고 흉악한 죄인 이었습니다. 너무나 잘못된 저의 모습을 성경 말씀을 통해서 보고 바로 눈물이 났고, 저는 하나님께 저를 도구로 써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절대로 절대로 과거 저의 사랑 없는 모습으로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살고 있던 과거의 제 모습이 너무나 악한 존재임이 너무나 분명하게 보였는데 어찌 과거와 같이 생각하고 행동할 수가 있겠습니까? 저는 완전히 회개하고 고린도 전서 13장과 같이 살려고 5년을 몸부림쳤습니다. 정말로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사실 100% 그렇게도 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강력하게 과거의 제 모습을 부인하고 힘을 다해서 사람들을 사랑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1991년 5월 19일 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 봄이 오기 전의 겨울, 서울의 신림동 선민교회에서 당시 박기수 목사님께서 설교를 하실 때 갑자기 우셨는데 예수님께서 성전을 가득 채우시며 오셨습니다. 큰 얼굴의 수염이 있으신 흑백의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입에서 빨간색의 불을 제 가슴에 뿜어주셨습니다. 제 마음 속에 촛불과 같은 작은 불꽃이 몇 개(2-3개)가 이는 것이 보였습니다. 큰불이 아니었습니다. 손에 땀이 나며 제가 누군가 예수를 믿는 아픈 사람을 만지면 반드시 낫을 것이란 믿음이 왔습니다. 그리고 3일을 천국에 있는 것과 같았습니다. 행정고시 1차 시험에 붙어서 곧 2차 시험을 쳐야 하는데 세상의 모든 것들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다시 예전의 세상의 모습으로 가야 하는데 잘 가야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아픈 분을 만지면 하나님께서 고치심으로 병이 치유가 되고, 방언이 통변이 되고 다양한 기적들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통해서 하시는 일이었습니다. 누구에게 함부로 말도 못할 너무나 좋은 놀라운 체험이었습니다.
행정고시 2차 시험에서 1점 차 낙방하고 목사가 되기로 하고 성경을 읽고 정리하고 신학대학원 준비를 했습니다.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2011년에 저는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이때 “전도자의 입장에서 본 교회 성장에 대한 연구”라는 논문을 준비하면서 사도행전 2장 37-38절의 말씀을 보면서 비로소 베드로 등에게 일어난 일이 똑같이 저에게도 일어난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성령을 받고 약 18년 정도가 지난 후에 알게 된 것입니다
행 2: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당연히 저는 그 동안에 성경도 깊이 몰랐으니 교회에서 시키는 데로 배웠습니다. 늘 교회는 잘 다녔지만 직분도 없었습니다. 전도팀에서 전도를 주로 했는데 이제 신학을 해서 목사가 되어야 하니 성경을 배우면서 교사도 3년을 했습니다. 당연히 담당 목사님의 가르침을 배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잠실교회 교사) 그리고 순복음 교회에서 약 5-6년 가량 신림동에서 고시 공부를 할 때 성경 공부 등을 배우고 설교를 들었습니다. 이 배움을 그대로 가지고 천주교를 믿던 전처와 결혼을 해서 너무나 많이 싸웠습니다. 교회의 가르침보다는 제 자신의 모든 신앙의 면에서 미성숙 때문이었으리라 믿습니다. 할 수가 없어서 성당에도 가고 전처가 잠실교회에도 왔습니다(1994년 결혼을 해서 잠실교회에 출석하고 저는 지금까지 다니고 있음) 그리고 성당에서 천주교 신학(일반 성도 신학)도 배우고, 로마서 강의도 들었고, 아내가 읽던 다양한 천주교 서적도 읽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처가 집을 떠난 후에 저는 4년 동안의 불면과 우울의 극심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정말로 다시 겪고 싶은 마음이 하나도 없는 지옥의 나날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려서 전도를 시작했고 재혼을 하고 신학도 재개했습니다. 전처가 떠난 자리가 너무나 컸고 전처의 온전한 헌신이 저를 많이 바꾸어 놓았습니다. 저는 성령을 받고도 행정고시 2차 시험도 1점 차로 떨어질 정도로 잘 공부를 했기에 저 자신에 대해서 너무나 자부심이 강했습니다. 실상은 성경도 신앙도 잘 모르는 초보였는데 저는 저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실로 전처는 저의 위대한 선생이었는데 사랑으로 저를 가르쳤습니다. 저는 전처를 통해서 사랑할 구석 없는 죄인을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절대로 천주교를 옳지 않다고 할 수가 없게 되었고, 제 스스로 천주교 서적을 보았지만 좋은 점만 보였습니다. 정말로 깊이와 정확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4년의 지옥과 같은 생활도 저에겐 성경을 깨닫는 축복의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아주 낮은 곳으로 이끌었습니다. 2002년 한. 일 월드컵 등 세상의 모든 것에서 저는 차단이 되었었습니다.
새로 온 제 처는 정교회의 러시아 국적의 고려인이었는데 백인과 모든 면에서 너무나 같았습니다. 우리는 약 20년을 살면서 쉬지 않고 싸웠습니다. 모세가 200만 백성을 광야로 인도하고 이끄는 느낌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내 하나 간수하는 데 저는 힘이 들었습니다. 제 아내는 아내 대로 너무나 힘이 들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지구상에 한 명의 남자로 제가 있다 해도 절대로 저와는 결혼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 즉 싸우고 고난 받고 하는 가운데서 제 신앙은 이렇게 형성이 된 것입니다. 물론 쉬지 않고 30년을 전도했고 성경 정리도 약 25년 이상 쉬지 않고 하고 이렇게 문서로 복음을 전하는 일을 8년 동안 온 세계에 중점으로 하고 있습니다.
1992년 봄 성령을 받았지만 저는 성경도 잘 모르고 성숙한 신앙인이 아니었고 누가 저를 인정하지도 않았고 목사가 아니니 당연히 교회의 가르침에 순종할 수밖에 없지 않았겠습니까? 그리고 약 30년의 세월을 성경을 읽고 정리하고 기도를 쉬지 않고 전도도 쉬지 않고 하면서 극심한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 살았습니다. 은행에서 나온 1983년 이후 늘 쪼달리며 살았습니다. 40년이 넘게 가난에 시달렸습니다. 이런 가운데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다 인도하셨으니 위의 일들을 한 것입니다. 제가 이런 믿음과 율법에 대해서 이런 결론에 도달한 것은 100%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저는 성경이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로 연결이 되고 하나님의 나라의 중심인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성령께서 저를 이렇게 인도하신 것입니다. 제 노력은 진실로 없고 저는 게으르고 목이 곧고 제 마음대로 하려고 해서 저와 같이 산 전처와 지금의 아내를 울게 하고 힘들게 한 것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로 다 할 수 없는 인내와 저보다 사랑이 많은 성도와 가족과 잠실 교회 성도의 기도와 도움으로 여기까지 왔으니 모든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할렐루야!!
이제 성령을 받은 성도들이 거짓 유대인 율법주의자들에게 속은 이유가 이해가 될 것입니다. 이를 이해시키려 이렇게 길게 설명한 것입니다. 성령을 받아도 성경도 배워야 하고, 전도도 몸으로 직접 해야 하고, 다양한 공부를 잘 해야 합니다. 절대로 절대로 성령을 받았다고 모든 것을 다 한껏 번에 알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고 그럴 가능성도 없습니다. 우리는 성령을 받고도 먹어야 하고 하루하루 살아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결혼 생활, 가정 생활, 그리고 직장 생활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와 같이 성령을 받은 사람을 교회가 어디에서 먹여주는 곳이 있습니까? 오히려 신학을 하고 목회를 하는 목사를 교회가 먹이지 이렇게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을 받은 신자를 인정하고 먹이고 하는 교회는 현대에 없습니다. 도리어 성령을 초대 교회와 같이 받은 이들이 이들 목사의 가르침을 받으며 교회의 법에 순종해서 집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되어 살고 있습니다. 이들을 보면 너무나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너무나 잘 배우고 큰일을 할 사람들이 일생을 그렇게 그냥 보내는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운 것입니다. 뜨거운 불을 받은 이여!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성령을 따라 성장해 가라! 교회뿐만 아니라 온 세상을 품고 그렇게 가라!!
그리고 누구나 하나님을 만나면 혹은 성령을 받으면 너무나 대단한 자부심이 생깁니다. 정말로 남의 말을 잘 듣지 않고 고집을 부릴 수도 있는데 제가 대표적으로 그렇게 산 사람입니다. 그래서 전처와 지금의 제 처와 내 주변의 모든 사람이 힘이 든 것입니다. 성령을 받고 겸손하고 그래서 성경을 잘 배우면 얼마나 위대한 사람이 될 것인데, 성령 충만, 은사 충만, 그리고 늘 기적이 있으면 다른 무엇을 배우고 하고 싶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족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는 그랬습니다. 제가 이런 마음을 갖고 여의도 순복음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사랑이 많은 천주교인 여인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녀로부터 사랑만 받고 저는 그녀를 죽도록 힘들게 하고 스스로 떠나게 했습니다. 이제 성경을 한국에서 가장 잘 배우는 통합교단의 교회에 와서 목사가 되려고 성경을 공부하려 하였습니다. 그런데 정교회 국적의 여인을 만나서 20년 동안 죽도록 싸우고 이렇게 변한 것이 지금의 제 모습입니다. 성령을 받고도 너무나 잘 순종하지 않고 이렇게 살면서 고난을 당하면 조금 변하고 또 당하고 조금 변하는 과정을 겪고 있으니 정말로 저는 잘 순종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역시 많은 흠이 있으니 성령을 받은 사람은 이를 참고해서 늘 겸손해야 하고 반드시 성경을 잘 배워야 합니다. 제게 일어난 모든 일이 하나님의 안배이니 제가 저를 주장할 것은 없습니다. 저와 같이 못나고 부족한 자를 먼저 하나님께서 언제나 저를 사랑하시고 예수님께서 늘 함께 하시고 성령께서 언제나 저를 감동하시고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과 인내 덕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덕분입니다. 그리고 두 아내가 온 힘을 다해서 사랑해 주고, 가족이 나를 돌보고 교회가 기도와 섬김으로 제가 이렇게 글을 쓰고 있으니 이들에게 큰 도움을 받은 것입니다. 모든 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모든 분께 하나님의 한량없으신 위로와 축복이 임하길 빕니다.
진실로 돌과 같은 사람이 저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 말씀으로 저를 회개를 시키시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를 씻어 주셨습니다. 성령께서 오셔서 거듭나게 하시고, 마음을 녹이셨습니다. 그리고 나는 30년을 전도하고 성경을 읽고 정리하고, 온갖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교회와 주변의 저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어머니와 남동생의 사랑과 헌신은 한결같았습니다. 늦게 얻은 아들은 언제가 제게 힘을 주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냥 보는 것으로 행복했습니다. 저와 할아버지를 본 받아서 늘 부지런한 삶을 살기 바랍니다.
그래서 저는 환갑이 지나도 지칠 줄 모르는 하나님의 나라에 건설에 대한 열망을 갖고 있고, 이는 푯대를 보며 달려간 바울과 같이 되고 싶은 마음에서 입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할렐루야!
3. 온 세상을 품은 로마서와 바울
로마서가 이해가 어려운 것은 로마서가 온 세상을 다 품고 있고, 바울 사도도 유대인의 좁은 시각에서 벗어나 역시 온 인류를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는 법적인 이해가 필요한데 이미 2000년 전에 죄형 법정주의를 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로마서는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인류를 그 논의의 대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율법이 없던 시대의 사람은 양심의 법에 의해서 그리고 율법 이후의 시대의 사람은 율법에 의해서 그리고 예수님 오신 이후의 사람은 예수님을 믿고 아니 믿고에 따라서 심판을 받음을 설명합니다. 그런데 여전히 심판의 기준은 율법입니다. 언제나 율법과 우리는 분리가 되면 아니됩니다. 주야로 묵상할 말씀이 바로 하나님의 법입니다. 시편 1편이 바로 나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쉬지 않고 묵상해야 합니다.
그리고 로마서는 야만인이나 헬라인이니 혹은 로마인이나 혹은 유대인이나 종족과 민족과 국가를 가리지 않고 모든 세상의 사람에 대해서 그의 죄와 구원에 대해서 논의를 합니다. 그 스케일이 모든 시간을 포함하며 모든 사람을 다 포용합니다. 그래서 그 시간적인 길이와 모든 세상에 살았던 사람, 사는 사람, 그리고 앞으로 이 지구상에 살 사람 모두를 다 포함하기에 그 넓이로 인해서 이해가 많이는 아니지만 조금 어렵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제 2000년이 지난 현대를 살면서 이슬람의 복음화와 유대인의 복음화와 그리고 미 전도 종족의 전도와 그리고 이들이 서로 하나가 되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야 하는 일이 시급합니다. 로마서는 현대의 모든 나라와 민족을 진실로 구원해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데 모든 필요한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로마서가 하나님의 말씀인 것은 2000년 전의 저술이 현대에도 한 치의 오차가 없이 그대로 다 수용이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인간이 이렇게 글을 쓸 수가 있겠습니까? 바울 사도의 성령의 영감을 그대로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 시대는 천주교가 개신교가 그리고 정교회가 로마서를 서로 조금씩 다르게 이해를 하고 구약을 전해 준 이스라엘은 오직 구약과 모세 오경 즉 율법을 잘 배우고 지키려고 합니다.
이때 우리가 유대인을 전도하려고 할 때 우리가 "야! 율법은 왜 지키냐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제 예수님만 믿으면 돼!" 하고 전하면 영원토록 유대인을 전도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로마서를 올바로 이해하고서 "그래! 너희가 율법을 잘 지키는데 그것은 참으로 귀하고 올바른 일이야! 예수님께서도 율법을 조문조문 잘 지키는 것을 원하셨어! 그런데 예수님 당시의 율법학자들이 율법을 조문조문 지키면서 형식에 치우쳐서 율법의 정신인 사랑과 정의와 믿음을 잘 실천하지 않았어! 실로 율법은 사랑과 정의와 신실함을 그 생명으로 하고 온 지구의 사람을 다 행복하게 해 주고 남을 정도로 위대해, 나는 이를 인정해 그리고 너희들이 3500년 이상을 온갖 고난에도 불구하고 글자 한자 틀리지 않게 잘 보존하고 잘 배우고 지키려고 하니 너희 민족의 위대함을 인정해! 정말이야 나도 그렇게 되고 싶어 절대로 너희와 율법을 부정하지 않아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율법을 조문 조문 그리고 그 정신이 되는 사랑과 정의와 신실함도 잘 지켜야 천국에 간다고 했어! 그렇지만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당시 율법학자와 종교지도자들이 율법을 오직 형식적으로 지키고 죄를 너무나 짓기에 예수님께서 혼을 내신거야!" 라고 먼저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바울 사도도 율법을 무시하지 않았어! 너희가 홀로 온 세상에서 율법을 너희 힘으로 지키려고 하나 어렵잖아? 우리도 율법을 인정해! 세상에서 가장 공평하고 정의로운 법으로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에게 주신 법으로 인정해! 그래서 우리는 예수를 믿고 당신들 너희 유대인보다 더욱더 잘 지키려고 해. 우리도 율법이 지배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싶어! 절대로 너희가 잘 믿는 율법을 무시하지 않아!" 하면서 바울 사도와 같이 우리는 그들에게 그런데 "예수님을 믿어야 해! 그래서 죄를 용서받고 성령을 받아서 이제는 정말로 율법을 완성시킬 수가 있는 거야. 너희 조상이 1000년 동안 지키려던 율법을 우리는 이제 예수님을 믿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완성하고 굳게 세우고 율법의 정의로운 요구를 이룰 수가 있게 된 거야!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으면 우리는 전혀 새로운 사람이 된다. 우리는 이를 거듭난다고 해.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거야 그래서 마음이 부드럽게 돼 이제 이 사람은 율법을 성령의 인도로 잘 지키게 되는 거야! 너희가 그렇게 존중하고 지키려는 율법을 잘 지키게 하려고 예수님께서 오셨고 성령께서 오신 거야! 이를 너희 구약의 에스겔서 28장 24-28절에 정확하게 먼저 예언을 했어! 얼마나 놀랍고 좋은 일이야! 진실로 너희가 너희 힘으로 꿈꾸는 율법대로 되는 세상을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셔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루려는 거야! 얼마나 복되고 좋은 일이 너희에게 있는 거야 하면서 이제 너와 모든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을 꼭 믿어야 해" 라고 전할 것입니다. 처음의 접근과 다음의 접근은 그 방법에 큰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로마서의 이렇게 정확한 이해는 유대인을 전도하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우리 한 민족이 앞서서 해야 하는 것입니다.
과연 바울 사도는 유대인에 대해서 어떻게 대했고 지금 유대인에게 우리가 어떻게 그들을 전도하기를 원하실까요? 이를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저는 후자로 갑니다. 로마서의 이해에 따라서 지금 시대의 유대인을 전도하는 전략이 너무나 달라지는 것입니다. 과연 그때나 지금이나 유대인은 한결같이 율법을 잘 배우고 오직 율법대로 살려고 하고 예수님은 믿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유대인을 돌아오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놀라운 하나님의 깨닫게 하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저는 지금까지 제가 설명한 대로 유대인을 만나 전도할 기회가 오면 그렇게 설명을 할 것입니다. 이들에게 이런 내용을 이미 에스겔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셨으니 이 구절이 유대인을 돌아오게 할 것입니다. 함께 보면서 본론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겔 36: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에스겔은 남 유다의 선지자로 바벨론의 침공으로 남 유다가 멸망하자 포로로 잡혀간 사람입니다. 바벨론의 강가에서 환상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전합니다. 맑은 물을 뿌려서 정결케 되고 새 명을 주어 마음이 부드럽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율법을 행하게 하심으로 하나님께서 통치를 하신다고 하십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에 대한 설명이고 이는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세례와 그분의 성령 세례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와 함께 거듭난 성도는 마음이 부드럽게 되고 이렇게 되면 성령의 인도로 율법을 행하게 되어 율법이 지켜지는 하나님의 통치가 임한다는 로마서의 설명과 완벽하게 동일하고 사복음서, 사도행전의 내용이 다 들어가 있으니 삼위 일체 하나님의 총동원 전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은 이렇게 설명하는 저는 약 6년 정도 전에 미군부대 SG로 근무할 때 미군과 같이 훈련을 하게 되었는데 20세 젊은 미군 병사와 같이 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짧은 영어로 예수를 믿느냐 물었습니다. 믿지 않으면 복음을 전하려고 했습니다. 순간 그 병사가 자신이 유대인이라고 했습니다. 순간 저는 이들이 너무나 구약을 잘 믿고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고 무언가 전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바로 포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로마서를 이해하고서 이제는 잘 전할 자신이 있는 것입니다. 저도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조금씩 성경의 깊이로 나아가고 있는 사람이지 완벽하지 않습니다.
제 Ⅲ 편 이신 칭의의 믿음과 율법에 대한 이해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건설
1. 서론: 이신칭의의 간증문과 간략한 이해
2. 하나님 나라 기초가 되는 믿음에 대한 이해
3. 하나님 나라 뼈대가 되는 율법에 대한 이해
4. 논의의 요약
5. 하나님의 나라의 건설
1. 서론: : 이신칭의의 간증문과 간략한 이해
전도자 Evangelist ・ 2021. 6. 26. 5:35
할렐루야! 사랑과 자비가 충만하신 하나님 아버지! 어지럽고 혼탁한 세상에서 늘 함께하시며 우리를 위로하시고 힘을 주시고 올바른 길로 가게 하심을 감사 드립니다. 코로나는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모이기를 힘쓰면서 서로 교제하며 하나님을 함께 찬양해야 하는 우리 믿음의 형제들은 속히 다시 모이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비도 많고, 하늘이 맑은 날도 많고, 유월이 끝나가는 데 아침 저녁으로 날씨가 선선합니다. 코로나로 세상의 기후도 영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변이종이 또 생겨서 끝날 조짐이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이런 시기를 기도로 그리고 준비로 인내하며 잘 보내어 다시 모일 때 더욱더 하나님을 잘 찬양하게 하소서! 부패와 불의가 오직 성경의 기준으로 분별할 수 있는데 우리는 이 시대를 율법이 없이 세상의 법과 각자의 소견으로 이기려고 합니다. 이는 너무나 세상을 이기기 힘들 것이라 믿습니다.
부디 오천만 국민과 일천만 성도가 하나님께서 주신 역사상 가장 위대한 법인 율법을 잘 배우고 잘 지키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샬롬! 이신칭의에 대한 이해는 오랜 시간을 걸쳐서 일어난 영적인 전투입니다. 먼저 2015년 경에 쓴 간증문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는 과정적 이신칭의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감에 따라서 로마서의 이해가 깊어지면서 조금씩 첨부가 됩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모든 분이 이신칭의에 대해서 완전히 새로운 이해를 하실 것입니다.
전도자에게 보인 이신칭의(以信稱義)
2015년 국민일보 간증문
김 정 관 목사
1. 감사와 찬양
어릴 때 어부였던 아버지와 함께 보았던 무섭게 빠른 속도로 흐르는 시푸른 깊은 바다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오직 달과 바람과 고기의 움직임을 쫓던 순박한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이스라엘 갈릴리 바다로 연결되어 어부 베드로에게 오셨던 주님이 오늘날 저에게 다시 오셔서 주님과 세상과 말씀에 대해 일일이 알려주시고 복음의 일군이 되어 주님과 함께 어디든지 누구든 복음을 전하게 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끝없는 은혜와 측량할 수 없는 사랑! 그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십자가의 중한 고통과 죽음으로 죄를 사하시고 성령을 주셔서 아무 소망 없이 죽어야만 했던 죄인이 성령의 충만한 의인이 되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서 세상에서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주님의 도구의 삶을 살게 하신 삼위하나님의 놀라우신 은총을 날마다 찬양합니다. 그리고 30년 한결같이 기도와 물질로 후원한 가족과 교회와 늘 아들같이 돌보아 주신 원 광기 목사님께 그리고 믿음의 친구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나서 자란 고향 남해 노량은 이순신 장군께서 전사하신 곳이라 충렬사라는 사당이 있고 마을 주민들은 마을 앞 바다에서 고기를 잡거나 농사를 지으면서 참으로 순박하게 사는 곳이었습니다. 동네 어른들 모두를 자신의 조부, 조모와 같이 공경하고 집집마다 자녀를 많이 낳아서 보통 한 가족이 10명 이상 되는 대가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의료시설이나 약이 구비되어 있지 아니하여도 많은 분들이 80세를 넘게 사는 장수하는 마을이었습니다. 저도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와 8남매가 함께 어른들을 극진히 공경하며 형제간에 우애가 넘치는 가정에서 참으로 행복하게 중학교까지 다녔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어부시라 조그만 노 젓는 배를 타고 그물을 바다에 내려 고기를 잡으셨는데 동네에서 제일가는 어부셨기에 늘 많은 고기를 잡으셨습니다. 우리도 심심하면 낚싯대를 가지고 고기를 낚았으며 여름에 햇볕이 내리 쬐면 바다 속에 들어가 온 종일 멱을 감았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도시로 나온 후 지금까지 대도시에서 사는데 가끔 고향에 가 보면 바다에 떠 있는 섬들과 넘실거리는 바다와 갯내음 그리고 시원한 바람은 마치 제가 딴 세상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합니다. 그 곳에는 참으로 아무 걱정 없이 놀기만 하던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학교공부를 마치자마자 책 보따리를 던져놓고 친구들과 함께 산과 바다와 들판으로 떼를 지어 놀려 다녔습니다. 지금의 초•중등학생과 달리 공부에 대한 압박이 1퍼센트도 없었기에 놀기에만 열중할 수 있었던 참으로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2. 세상과 죄에 깊이 물들다
마산상고에 진학하면서 가족과 떨어지게 되었고 3년 동안 열심히 주산공부와 타자 등 상업공부에 힘써 졸업과 동시에 은행에 들어가게 되고 제주도로 발령을 받아 직장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아버지께서 고2 때 돌아가셔서 큰 형이 어머니와 함께 집안을 돌보셨기에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집에 다 보냈습니다. 큰 형이 어머니와 제 월급 문제로 다툼이 있게 되고 어머니께서 집을 나가시게 되었기에 저도 돈 보내는 것을 단념하였습니다. 그 후에 저는 불교에 심취해서 법정 스님의 글을 읽고 좋아져서 은근히 법정 스님과 같이 출가를 할까 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가슴 한 켠에 늘 허전한 마음이 들어 우연히 제주도의 사창가를 가게 되었고 틈만 나면 그곳에 가게 되었습니다. 이 후에 춘천과 군대 그리고 충무에까지 그런 곳에 가는 일이 연결되어 젊은 육체의 소욕을 건전하지 못한 방법으로 풀곤 하였습니다.
군대 가기 전에 같이 일하던 동료와 사랑에 빠져서 동거를 하다시피 하면서 지내다 아기가 생기면 아무 생각 없이 지우곤 했습니다. 너무나 큰 죄를 쉽게 지었습니다. 카투사로 군대에 갔는데 1년이 지나면서 애인은 저의 무책임한 모습에 실망해 떠나갔습니다. 실연을 당한 저도 군대를 마치고 은행에 대한 미련이 없어지고 군대에서 만난 대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형편이 아니 되는 데도 예비고사를 보고 대학에 늦게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지점장님도 말리고 어머니도 홀로 계시는데 어린 동생들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너무나 좋은 직장을 버리고 제 하고 싶은 대로 대학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 때부터 어머니는 세차장 일을 시작하셨는데 80이 넘으실 때까지 노동을 하셔야만 했습니다. 고시를 목표로 정하고 공부를 해서 여자에 차인 저의 위상을 높이고 시대적 염원인 통일의 사상적 배경을 제공해 보겠다는 원대한 꿈을 품고 김해 장유에 있는 고시원에 들어갔습니다.
그 곳에 교회 수련관이 있었는데 지금은 반석교회 원로 목사님이 되신 성경석 목사님과 소천하신 김성수 장로님께서 저와 모든 고시생들을 잘 대해 주시며 전도를 하셨습니다. 저는 누가 ‘예수를 믿으라.’ 하면 ‘내 자신을 믿지 왜 예수를 믿나?’하고 반문했으며 스스로 의롭고 도덕적이며 선한 사람이라 생각했습니다. 공부를 해서 은행에도 들어갔으니 고시도 합격할 것이라 생각하고 기독교 대신 불교에 심취해 매일 산 중턱에서 가부좌를 틀고 묵상을 하곤 했습니다. 사실 카투사로 군 복무를 할 때 군대에 있는 교회에 처음 나갔다가 ‘다음 주에 대표기도를 하라.’는 말을 듣고 군대를 마칠 때까지 교회에 나가지 않은 경험이 있습니다.
3. 하나님께서 고전 13장 말씀으로 찾아오셔서 저를 회개시킴
고시원장이셨던 동향의 김성수 장로님께서 성경책을 한 권 주시기에 나는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거절하려고 했지만 고향 분이라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받아서 공부하는 좁은 방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늘 하던 대로 틈틈이 산에 올라 명상을 하곤 했는데 오월의 어느 날 산 중턱에서 바라본 산의 파릇파릇한 나무들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웠는데 갑자기 저것들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놀라운 깨달음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산에서 명상을 하고 내려와 고시공부 책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머리가 까뒤집어지는 듯 아프고 커다란 두려움이 함께 밀려왔습니다. 어찌 할 바를 몰라 두리번거리는데 제 눈에 성경책이 들어와 읽어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책을 펴서 읽는데 고린도 전서 13장 말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냥 글이 아니라 한 구절 한 구절이 제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성경 말씀에 비추인 제 마음은 제가 평소에 생각하던 선하고 의로운 마음이 아니고 고전 13장 말씀과 완전 반대인 못된 마음이었습니다. 순간 무릎이 꿇리고 눈물이 나며 기도가 나오는데 “저를 도구로 써 주세요.” 라는 기도였습니다.
그 순간부터는 예전과 같은 태도와 모습으로 절대로 살 수가 없었습니다. 고전 13장 말씀을 묵상하며 그대로 살려고 몸부림치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나 잘못된 저의 모습을 강하게 되돌아 보았기에 절대로 예전과 같이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기가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생각나는 대로 육체가 이끄는 대로 살아오던 사람이 갑자기 사랑을 하려니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두려움과 함께 본 성경의 거울에 비친 제 마음의 잘못을 너무나 강하게 보았기에 고전 13장의 말씀대로 살 도리 외는 다른 길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반석교회에 출석해서 예배를 드리고 몇 년이 지나 사영리로 전하는 대학생의 전도를 받아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그 동안 대학공부와 고시공부를 병행해서 했는데 대학 3학년 때 행정고시 1차에 합격했으나 2차에는 낙방했습니다.
4. 예수그리스도 이름의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다
대학교회에서 입교 절차를 통해서 제가 죄인임을 고백했고, 이런 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십자가 대속 없이는 아무런 소망이 없으며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받아들임을 온 교회의 회중 앞에서 선포하고 몇 년 더 신앙생활을 한 후에 다시 장유로 옮겨 반석교회에 출석하며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목사님과 성도들 모두가 잘 대해 주시고 고시생에 대한 배려를 많이 해 주셨지만 교회생활이 편하고 쉬운 일만 아니었습니다. 우선 대학공부와 고시공부에 모든 것을 걸고 있었기에 이에 충실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어릴 때부터 교회생활을 하지 않아 예배시간에 찬송을 하는 것이나 성경말씀이 고린도 전서 13장 외에는 이해도 잘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목사님과 성도들의 격려로 잘 참고 늘 마음으로는 고전 13장 말씀을 묵상하며 그렇게 살려고 몸부림쳤습니다.
5년이 지난 1991년 5월 19일 김해 장유 반석교회에서 성경석 목사님의 집례와 김성수 장로님의 도움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를 받고 나니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는 것이 모든 면에서 편안해지고 쉬워졌습니다. 비록 죄 사함에 대한 이해는 많이 없었지만 교회에 출석하고 예배하고 기도하는 것들이 이전과는 다르게 많이 편안해졌습니다. 찬송도 함께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고시공부를 하면서 성경책도 조금씩 보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보니 비로소 제가 너무나 많은 죄를 짓고 살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하라는 선한 일은 한 적이 거의 없고 하지 말라는 악한 행위는 하지 않은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죄인이 아니고 의인이라 생각했으며, 도덕적으로도 흠이 없다고 착각하고 살았던 것입니다. 성경을 볼 때 마다 보이는 죄에 대해서 하나님께 잘못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죄를 짓지 않으려 몸부림쳤습니다. 마태복음을 읽던 중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에 대해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는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5. 예수님으로부터 불세례를 받다
1991년 다시 행정고시 1차에 합격하고 대학원에 진학해서 2차 준비를 착실히 하였습니다. 서울대 옆 신림동에서 1992년 2차 준비를 하면서 선민교회에서 다시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고시공부와 대학공부를 병행해야 했기에 서울과 지방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공부를 하였는데 이제는 나이도 있고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했습니다. 서울대생과 성대생, 부산대생 그리고 강원대생 등 1차 합격자 7명이 모여서 그룹을 만들어 매주 1-2번 만나서 모의고사를 보고 서로 답안을 보며 토론을 했습니다. 또 1차 합격자만 200명 정도를 모아서 출제위원급 교수를 각 과목별로 초빙해 강의를 하며 문제를 출제하고 채점을 해서 등수를 발표하는 2차 대비 실전과정에도 등록해서 모의시험을 매주 쳤습니다. 다행히도 저는 매번 시험에서 고득점해서 200명 중 10위 안에 늘 들었기에 그룹스터디 하는 학생들도 제가 고득점으로 최종 합격할 것이라 믿어 주는 편이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를 하면서도 교회생활도 충실히 해서 주일 성수와 어려운 가운데서도 10일조 생활을 빠짐없이 하던 중 고등학교 동창인 문호를 만났습니다. 제가 예수님을 전도하니 우습게 여기고 오히려 영적으로 저를 힘들게 해서 하지 않던 새벽기도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예배시간에도 창자가 뒤틀리고 곁에서 찬송을 하면 천둥소리같이 들리고 참으로 어려운 순간들이 계속되었습니다. 한 달 정도 그렇게 새벽기도를 나가면서 순복음 교회에 다니시는 할머니 한 분도 아침마다 모시고 같이 나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날 신림동 선민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그날도 역시 자리에 앉아 있기도 힘들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결단하고 박기수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있는데 갑자기 목사님께서 설교 중 우셨습니다. 그리고 성전에 평소 그림으로 보던 수염 있으신 예수님의 얼굴이 칼라가 아닌 흑백으로 성전을 가득 채우시며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입에서 빨간색의 불이 뿜어져 나와서 제 가슴으로 오는데 제 가슴에 촛불과 같은 작은 불꽃이 몇 개가 있는 것이 보이고 손에 땀이 나면서 ‘아픈 사람을 만지면 나으리라.’는 믿음도 함께 왔습니다.
너무나 좋은 축복을 받았기에 나누고 싶은 생각이 나서 예배를 마치고 당시 국수를 삶아서 나누어 먹었던 지하식당으로 내려갔습니다. 늘 저를 보면 아들같이 안아주시던 박외분 권사님이 서 계셔서 뒤에서 옷만 가만히 만졌는데 갑자기 뒤로 돌아서시고 엄지를 세우시며 “수석해라. 수석해라!” 두 번 말씀하셨습니다. 나중에 행시에 수석 하라는 말로 이해하고 방에 수석합격이라 써 붙였습니다. 그리고 늘 성전에 계시던 관리집사님(지금은 장로님이 되신)이 그 분께는 아무 말도 아니했는데 웃으시면서 “하나님을 만났구먼.” 하셨습니다. 그 때는 고시공부도 세상일도 모두 잊어버리고 천국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하루는 새벽에 일어나 무엇을 할지 몰라 “하나님 무엇을 할까요?” 물으니 “문호!” 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상해서 다시 물으니 이번에도 “문호!”라고 하시는데 그 음성이 한 번 더 물으면 고막이 터질 것 같아 문호에게 가라는 말로 이해하고 문호 집에 갔는데 문호는 아직 새벽이라 이불 속에 있으면서 제가 왜 아침부터 찾아오나 의아해 하며 보고 있었습니다. 그의 아내가 아침을 하기 위해 쌀을 씻다가 차를 한잔 내 왔는데 차를 서로 먹다가 문호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면서 ‘예수님을 만났다.’ 하며 저로 인함이 아니라 성경을 차분히 읽다가 만났다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또 하나님께 “무엇을 할까요?” 물으니 목사가 되라고 하셔서 생각해 보지도 못한 일을 하라고 하시기에 또 박기수 목사님을 너무나 영적으로 괴롭힌 것 같아 할 수 없다고 하니 “기도를 하라.”고 다시 말씀하셔서 기도를 하니 마음에서 “예”라는 대답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야지 하고 조심스럽게 일상으로 돌아와 고시 2차 시험을 쳤는데 과목낙제 없이 1점 차이로 낙방하고 8년간 대학 대학원을 거치며 열심히 했는데 합격하지 못해 실망한 마음을 추스르고 목사가 되려고 마음을 바꾸어 먹었습니다.
6. 결혼을 하고 신대원 준비하면서 전도에 매진하다 이혼을 당하다.
1994년 튼튼영어 교대지사에서 근무하면서 만난 천주교에 다니는 자매에게 목사가 될 것이니 도와주길 부탁드리고 문정동 성당에서 가족과 친지를 모시고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저는 잠실교회에 등록해서 출석을 하고 아내는 성당에 계속 다녔는데 서로 신앙적인 문제로 갈등이 생겨 결국 서로의 교회에 번갈아 출석하며 서로를 이해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교사로서 교회 일을 하면서 여의도 순복음 교회 국민일보 문서선교사로 일을 하면서 매일 하루에 200여 가구를 방문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나면 장로교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에 들어가려고 성경정리와 성경공부를 부지런히 했습니다. 1995년 전북대 강준만 교수에게 보낸 전도편지를 시작으로 만나는 사람마다 복음을 전하며 편지도 보냈습니다.
신림동에서 만난 남해 할머니는 고혈압과 당뇨가 있는 분이셨는데 보름간 다니며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고쳐 주시었고 옆집에 사시는 어지럼증을 가지신 할머니도 이런 소식을 듣고 기도를 부탁하자 역시 하나님께서 고쳐 주셨습니다. 잠실교회에서 교사를 하시며 전도를 많이 하시던 꼬마 집사님께서 성전에서 허리가 아파서 몸을 잘 움직이지도 못하셨는데 하나님께서 순식간에 고치시어 어찌할 바를 몰라 하셨고 동상에 걸린 분을 발바닥에 손을 바치고 기도하니 수백 개의 바늘이 찌르듯 했는데 이분도 하나님께서 고치셨습니다. 국민일보 문서선교사로 복음을 전하던 중 90이 넘는 할아버지의 팔을 잡고 기도할 때 몸에 생기가 돌며 가픈 호흡이 편안해 지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화여대 영문학과에 다니다 재수를 해서 수능을 치기 전날 밤 불안하다며 기도해 주기를 부탁하는 전처 고모님 딸에게 고시공부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붙잡아 주심으로 평안이 임하는 것을 보았고 시험을 잘 쳐서 서울대 법대에 들어가 최근에 행정고시에 합격해서 국무총리 비서실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역시 국민일보 문서선교사로 2인 1조가 되어 복음을 전하던 중 어느 집에 들어갔다가 심히 혼이 나며 내쫒기는 과정에서 동료가 분을 삭이기 못하고 기도를 방언으로 하는데 저는 당시 상황으로 보아 그 내용이 좋지 않을 것이라 생각을 했는데 놀랍게도 갑자기 방언이 가느다란 이쑤시개로 귀를 후비듯 귀에 들어오면서 우리나라 말로 통변이 되었는데 우리를 모욕하고 폭언을 하신 분을 축복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결혼생활은 참으로 편안하고 아늑했습니다. 아내와 처가 식구들은 부농이라서 저희가 먹을 것을 다 보내주셨고 고시공부에 지치고 낙망한 저를 전처는 너무나 잘 품고 섬기어 낙방의 상처도 속히 치유 받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저는 가정과 신학을 위해 힘을 내서 열심히 살아야만 했었는데 오히려 이곳저곳 직장을 옮기며 신학 공부를 핑계로 가장에 충실히 하지 않고 벌이도 시원치가 않아서 결혼 후 5년이 지나면서 아내와 다투는 일이 많아지고 결국 아내는 제가 교회에서 돌아온 어느 주일날 집이 텅텅 비어있어 알아보니 짐을 싸서 떠나버린 것이었습니다. 아내가 떠난 자리가 너무 커서 다시 신림동으로 들어온 저는 이번엔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습니다. 아무리 기도로 마음을 잡으려 해도 되지 않고 이상행동을 하다 결국에는 녹번동에 있는 정신병원에 강제로 수용이 되어 부랑자, 알콜 중독자 등과 같이 치료를 받았습니다.
가족의 도움으로 겨우 병원에서 벗어나, 장로회신학대 아래에 있는 단칸방을 얻어서 다시 신학을 하며 하나님께 순종하리라 마음을 먹었습니다. 사실 이곳에 공부를 하려 왔다가 다시 신림동으로 옮겼기에 그 불순종으로 인하여 큰 벌을 받았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혼자서 밥과 빨래를 하면서 그리고 일이 없어 국가에서 시행하는 공공근로를 하면서, 겨우 연명해 가는데 이미 빚도 많이 있던 상태라, 제게는 아무런 소망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잠실교회 당시 담임이셨던 원광기 목사님께서 부르시고, 근황을 물으시고 잠실교회 관리집사를 하라고 하시어 교회사택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2001년 초부터 잠실교회 관리집사로 안정적으로 일을 하면서 빚도 갚았지만, 아내가 떠난 자리는 메우지 못해 우울과 불면증으로 시달리다 삶에 대한 체념과 아무런 소망 없이 하루하루를 사는데, 외로움이 얼마나 심한지 뼈가 시렸고, 이를 통해서 개인적으로 천주교, 개신교의 분리에서 오는 주님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정신을 차려서, 다시 열심히 교회 일을 하면서 전도편지를 가족과 이웃에게 보내며 열심히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제가 전도편지를 쓰고 있는데, 갑자기 “너는 저리가라, 내가 쓴다.” 하시며 주님이 오셨는데, 주님이 편지를 쓰시는지 내가 쓰는지 모르게 주와 하나가 되어 전도 편지를 썼습니다.
7. 공중에 오신 주님, 새로운 가정을 주심(2004). 그리하여, 복음이 넓고 크게 퍼지다
하루는 평소에 하는 대로 교회 마당을 쓸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공중에 나타나시어, 하늘에서 지구를 보시며 복을 줄 자를 찾고 계셨습니다. 저는 즉시 “예수님 한국에는 저와 결혼할 여자가 없으니 세상을 보시고 제 짝을 찾아주세요.” 라고 기도했습니다.
사실 이혼한지 4년이 지났고, 교회와 목사님께서 여러 여자를 소개시켜 주셨는데, 아무도 저하고 결혼을 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전처가 제 주변에 살았기에, 재결합하자고 아무리 애를 쓰고, 설득을 해도 전처가 재결합을 허락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결혼생활을 행복하게 하다가, 본의 아니게 홀로 몇 년을 살아보니, 홀로 사는 것이 너무나 힘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그렇게 공중에서 뵈 온 후, 채 1개월이 지나지 않았는데, 잠실교회에서 카자흐스탄에 파송하신 선교사님께서, 결혼대상 여자 4명을 찾아놓았으니, 제게 속히 와서 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 기도에 즉시 응답을 하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교회에 말씀을 드리고 카자흐스탄으로 제 짝을 찾기 위해서 날라 갔습니다.
그곳에 키도 크고 예쁜 아가씨가 있어 선교사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선교사님께서 설득을 하시어 결국 잠실교회에서 그녀와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고, 아내가 아들을 낳아 주어 아들이 이제 11세가 되었으니, 이혼의 아픔은 옛일이 되었고 우울증 불면증 약도 결혼과 동시에 끊고, 신학도 마치고 목사안수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새 아내와 함께 열심히 전도를 하여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등록하고,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대가족에서 홀로 예수님을 믿었는데, 어머니께서 75세에 믿으시고 권사님이 되셨고, 숙모와 삼촌, 동생들, 조카들도 교회에 출석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한 번은 제 아내와 같이 마천동의 돼지 족발집에서 족발을 주문해놓고, 종업원에게 전도를 하고자 하면서, 주님이 이곳에 계실까 생각하는 순간, 주님의 음성이 들리는데 “있다!” 하셨습니다.
어쩔 바를 몰라 마음이 베드로가 주님을 만난 것 같이 천리만리로 도망을 가는데, 또 음성이 들리는데 “담대 하라.” 하셨습니다. 주님이 계신다 생각하고 담대히 복음을 전하다 정신을 차려 종업원을 보니, 종업원이 두 손을 앞에 모으고 공손히 듣고 있었습니다.
늘 전도할 때마다 주님이 함께 하셨음을 믿으며, 언제나 마음속으로 들리는 음성이 “힘을 내라.”와 “사랑한다.”하셨습니다. 이런 주님의 음성은 전도를 하는데 늘 격려와 위로가 되고 있습니다.
8년간의 잠실교회 관리집사 일을 마치고, 제가 그동안 보낸 편지를 정리를 해보니 너무나 다양하개, 많은 사람들에게 보내져서 그 양이 책을 출판해도 될 정도이고 제가 한 일이 절대로 아님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2008년 일본최고 부자 사이토 히토리 전도와 그의 구원의 보임, 2011년 고교 동창 1200명에게 전도편지의 1년간 발송, 2014년 삼성 이건희 회장의 전도는 모두 성령의 인도로 된 것임을 믿습니다.
2011년 신학대학원원 졸업논문으로 “전도자의 입장에서 본 교회성장과 나눔에 대해” 라는 글을 쓰면서 사도행전 2장 38절의 베드로의 고백이, 저에게도 똑 같이 일어난 것을 보았습니다.
30년 전에 말씀으로 오신 하나님께서, 저를 회개시키셨습니다. 그로부터 5년 후 장유 반석교회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 받아, 1992년 겨울 신림동 선민교회에서 예수님으로부터 성령의 불세례를 받고, 사도행전 1장 8절 말씀과 같이 권능을 받아 복음을 전했으니 성경의 말씀대로 그대로 된 것입니다.
이 내용의 이해는 사건의 발생과 동시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복음을 전하며 많은 시간이 지나면서, 성경의 한 구절 한 구절이 순서에 따라 차근차근하게 이해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1997년 장로교신학교 신학대학원 준비를 하면서 시작된 성경 정리도, 쉬지 않고 세상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꾸준히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이 성경의 정리를 통해서 성경의 이해가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8. 로마서의 이해와 이신칭의의 이해
성경 66권을 테리 홀의 파노라마 성경에서 소개한 정리 방법대로, 20년 가까이 정리를 하고 있지만, 로마서의 이해는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전도를 통해서 전도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보게 되었고, 이를 신학대학원 졸업논문으로 썼고, 로마서의 이해도, 이런 과정을 통해서 최근에 조금씩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로마서에서 ‘믿는 이’라는 바울의 표현이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가 성령 받은 이들을 ‘믿는 이’로 표현한 것과 같습니다.
이는 바울이 로마서 8장에서 성령 받은 우리라는 표현을 통해서 알 수 있는데, 바울의 이신칭의(以信稱義, 믿음으로써 의인이라 불리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성령 받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이해가 되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을 받은 120 성도가 방언을 하자, 이를 보고서 이상하게 생각하는 동족, 즉 이스라엘 사람들이 수없이 모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담대하게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장면이 소개가 됩니다. 이에 이어서 2장 44절에서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믿는 사람들’의 표현은 사도행전 2장 38절의 베드로의 고백대로, 예수님을 만나 과거의 삶을 청산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회개와, 그리고 예수그리스도를 3년 따라 다니며 배움과 함께, 그 이름의 세례(예수그리스도의 피 흘리심과 십자가 대속을 보고 그 의미를 믿음을 통한)와, 이를 통한 죄 사함을 받고서 마침내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받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들과 함께, 베드로의 설교로 이번에 회개하고 세례 받은 신도 3,000명을 지칭하는 표현입니다.
이 믿는 사람과, 바울의 로마서 8장 23절에서 "성령 받은 우리가" 와, 로마서 3장 22절에서 “모든 믿는 사람에게 미치는 의니” 라는 표현에서 모든 믿는 이는 모두 같은 말입니다. 즉 로마서의 ‘모든 믿는 이’라는 의미에 대해서 분명히 정의하는 것이 꼭 필요 합니다.
즉 칭의의 대상은 반드시 사도행전 2장 38절의 베드로의 고백대로 회개하고 예수그리스도 이름의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은 후 사도행전 2장의 성령의 임함 같이, 성령이 임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또 바울과 같이 아나니아로부터 성령 받은 경우, 사도행전 여러 곳에서, 예수이름의 세례와, 요한의 세례를 받았지만, 아직 성령 세례를 알지 못하는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을 사도들이 만났을 때, 이들에게 사도들이 안수를 하거나 말씀을 전할 때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리고 고넬료와 같이 먼저 성령을 받고 세례를 받은 예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의롭게 된 사람의 육신이 여전히 죄를 향하는 모습을,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곤고한 자신으로 한탄하셨습니다. 하지만 8장에서 예수 안에 있는 자, 즉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 사랑에 거하는 자(사랑을 실천하는 자) 그리고 예수를 주로 시인하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성령의 인도를 받을 때 비로소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됨을 선포하였습니다(롬8장).
이 과정을 요약하면 우선 예수님을 만나 회개를 하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믿어, 정식교회에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의 세례를 받으면, 죄 사함이 있게 되고, 이런 사람에게 성령이 선물로 주어집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을 로마서에서 ‘신자’라 표현하였고, 이런 신자를 하나님께서 죄 사함 받아서 깨끗해졌기 때문에 비로소 ‘의롭다’ 선포하십니다. 이것을 이신칭의로 이해합니다.
제 개인적으로 로마서의 이해가, 예수를 믿고 30년이 지난 최근에 이루어졌습니다. 예수 믿고 성령 받은 것만으로도 너무나 영광되고 귀한 일이라 믿고 살았습니다. 여기에다가 또 의인으로 까지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한량없으신 은총을 입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영적인 원리를 모르고 죄의 유혹이 다가왔을 때 너무나 쉽게 무너져 버린 과거가 참으로 후회스럽습니다.
진실로 의롭다 인정받은 신자는, 다시는 불의에 물들어서는 아니 된다고 굳게 믿습니다. 그런데 육신의 유혹이 너무나 강하기 때문에 반드시 주님의 계명을 잘 숙지해 지키고, 하나님과 이웃과 믿음의 형제를 성경의 말씀대로 사랑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성령의 인도를 늘 받으며 살아야, 비로소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다고 믿습니다.
이신칭의에 대해 500년간 천주교와 개신교의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데 그 의미와 효력의 범위 등이 학파와 주장에 따라 복잡하게 설명이 되어있어, 참으로 이를 제대로 이해하기도 어려운 점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이신칭의가 되는 과정을 잘 이해하면, 이런 논의도 많이 정리가 되고, 칭의로 인해 신자가 얻는 유익에 대한 논쟁도 많은 부분 사실은 큰 논쟁거리가 아님을 믿습니다.
나아가 로마서를 잘 이해하게 된다면, 이 논쟁의 많은 부분의 답이 그 이해를 통해 나오리라 믿습니다. 저는 신학자도, 목회를 오래 동안 제대로 한 목사가 아닙니다. 그래서 이신칭의 이해나 로마서의 이해에 있어 그 깊이가 참으로 얕으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간증의 제목도 '전도자에게 보여주신 이신칭의'로 정했습니다.
그런데 전도를 통해서 이해된 부족하고 온전치 못한 저의 이해가 모두의 논쟁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주안에서 신자가, 모든 교파를 초월해서 하나가 되고, 올바른 이신칭의의 이해를 통해서, 모든 신자가 이 세상에서 생명을 걸고 정의롭게 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하나님의 의의 측면에서 절대로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그 분의 크신 사랑과 놀라우신 은총의 발로로 그의 아들 우리 주 예수께서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 매달리시고 죽으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신의 의를 나타내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한량없으신 은혜로, 값없이 죄 사함 받아 의롭게 되었음을 고백합니다. 놀라우신 하나님의 은총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성령님의 임하심을 온 몸과 마음으로 찬양합니다.
신자의 선한 삶과, 증인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만방에 나타내는 것이, 하나님의 신자에 대한 칭의의 본질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롬3;25-26)
9. 맺는 말
며칠 전, 들판에 나가 날씨가 너무 추워 불을 피우기 위해, 공사장의 나무를 주우러 갔다가, 나무에 박힌 못에 깊이 발바닥을 찔렸습니다. 얕은 신발장을 뚫고 못이 깊이 발바닥 속으로 들어오는데, 고통과 함께 너무나 놀라 얼른 못을 뽑고,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고, 발바닥을 치료를 받았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고통과, 우리에 대한 사랑을 묵상해 보았는데, 주님의 크신 사랑과, 우리와 늘 함께 하심을 다시 한 번 굳게 믿게 되었습니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구원하시기 위해, 그의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시고, 무지한 사람들이, 그의 아들을 십자가에서 매달아 죽이는 것을 용납 하셨습니다.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의 아들 우리 주 예수님께서 피 흘리시며 죽기까지 순종하시며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님께서 오셔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며, 재창조물임을 확인하시고 마지막 도장(성령의 인)을 찍으십니다.
이렇게 삼위 하나님께서 처음 아담을 창조하신 것과 같이, 우리를 예수 안에서 재창조하셔서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이 되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며,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실로 이 세상을 선하게 살며 증인의 의무를 다하며 또 의로우신 하나님을 이 세상에 나타내려 의롭게 살아야만 하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이를 로마서는 잘 표현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많은 사람이 다양한 견해를 가지고, 수백 년 동안 이신칭의를 논쟁해 오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짧은 글로, 전도의 경험과, 성경 정리를 통한 성경 이해와, 개인적인 신앙체험을 통해서, 적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두서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의롭게 되는 과정(회개,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세례, 죄 사함, 성령세례 그리고 칭의 됨. 행 2;28, 롬 3;24-25)은 반드시 모든 신자가 지키며 꼭 실천해야 하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꼭 이 말씀에 비추어 모든 신자가 자신의 상태를 잘 살펴보아, 고칠 것을 반드시 고쳐야 함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며, 저의 부족한 글을 맺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총이, 이 민족과, 교회와, 모든 신자들에게 충만히 임하셔서 이 혼탁한 세상에 질서가 확립되고, 하나님의 의가 하수같이 흘러넘치길 기도하며, 신앙계의 주안에서의 비약적인 성장을 기원합니다.
2015년 경의 이신칭의의 경험적인 이해 이를 아래 도표로 나타내었습니다. 당시 저는 이렇게 이신칭의를 이해하고 놀랍고 놀랐습니다. 그리고 온 세상에 전하기 바빴습니다. 그리고 미국과 영국의 대표적인 신학 대학에도 영어로 번역을 해서 보냈습니다. 온 세상이 속이 이렇게 이신칭의를 이해하고 바로 천주교 개신교가 하나가 될 줄 믿었습니다.
2015년경의 제 이해를 간증문으로 밝혔고 그림도 위와 같이 표시를 했습니다. 여기까지도 일반의 성경의 이해 즉 천주교의 이해와 개신교의 이해와도 다릅니다. 성령 받은 전도자의 이해를 경험을 통해서 설명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아래의 설명은 이로부터 더 나아간 이해로 성경 본문을 보면서 설명을 드립니다. 아래의 설명을 하기까지 약 10년의 세월이 더 걸립니다. 이도 한 번에 된 것이 아니라 정말로 조금씩 성령께서 알게 하시는 데로 받아서 적은 것입니다 그것들이 모인 것입니다.
※ 아브라함의 신앙의 성장
| 아브라함의 나이 | 일어난 일 | 비고 |
| 75세 |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남. 창 12:1-4 | 첫 믿음, 순종 |
| 15장 6절 | 믿음으로 의, 자손 약속, 이신 칭의 | 75-86세 사이 |
| 86세 | 이스마엘 출생. 창 16장 16절 | 사라의 권유 |
| 99세 | 할례 언약, 하나님 앞에 행하여 완전 명령 | 창 17장 |
| 100세 | 의인 10명 없어 소돔, 고모라 멸망, 이삭 출생 | 창 21장 |
| 118-125세 | 믿음의 시험 통과, 이삭 번제, 하나님 경외 | 끝 믿음 창 22장 |
이렇게 조금씩 이해를 넓히고 있었습니다. 성경을 보면서 위와 같이 정리를 했습니다. 틀림없이 하박국과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면서 로마서 1장 17절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위의 아브라함의 믿음의 여정으로 그린 것입니다. 오직 믿음이라고 하지만 위와 같이 아브라함의 믿음의 여정은 누구도 주목하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 제게 이렇게 이해하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저는 놀랍고 놀라서 쉬지 않고 이제는 전세계 가장 유명한 신학 대학을 고르고 700명의 신학자 주소를 확보하고 이들에게 이를 영어로 번역해서 전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갑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이해가 최근에 왔습니다. 몇 년이 되지 않습니다. 로마서 본문을 보게 된 것입니다. 로마서 본문 1장 16-17절을 영어로 보는 가운데 본문의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이라는 부분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를 영어로 또 보면서 본문에 완전히 답이 다 있음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전하고 깨닫고 하기를 최근 약 8년간 쉬지 않았고 모든 일에 하나님께서 격려와 지혜를 쉬지 않고 주셨습니다. 정말로 기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환상적이었습니다. 할렐루야!
이제 본문을 보면서 이해하는 과정을 조금 설명해 드립니다.
여러 버전의 성경을 보면 많은 이해가 저절로 일어납니다. 이렇게 평신도 모두가 성경을 올바로 이해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롬 1장 16-17절
롬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1:16. I am not ashamed of the gospel, because it is the power of God for the salvation of everyone who believes: first for the Jew, then for the Gentile.
17. For in the gospel a righteousness from God is revealed, a righteousness that is by faith from first to last, just as it is written: "The righteous will live by faith."
[16: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복음은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이방인에게 입니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나 있습니다, 그 의는 처음부터 끝까지의 믿음에 의한 의입니다, 기록된: " 의인은 믿음을 갖고 삶을 살 것입니다." 와 같이 말입니다.]
맨 마지막에 제가 번역을 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의 믿음에 의한 의"와 "의인은 믿음을 갖고 삶을 살 것이다" 하는 부분이 우리가 보는 번역과 다릅니다. 중학교 영어로 보면 그 내용이 바로 보입니다. "The righteous /// will live /// by faith." 이 문장은 세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주어인 의인 그리고 동사인 살 것이다. 그리고 천치사구 믿음을 갖고로 되어 있습니다. 의인이 되기 위해선 믿음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반드시 하루하루 살아야 합니다.
여기까지 오는데 제가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고 전하면서 약 30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이렇게 본문을 직접 보면서 이해가 된 것은 최근입니다. 우리는 본문이 이렇게 된 것도 모르고 오직 믿음이라고 외칩니다. 본문이 이렇게 된 것을 확인만 해도 오직 믿음이 아니라 의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먼저 예수를 믿어야 하고 그 믿음을 가지고 그냥 그대로 소극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우리가 여전히 숨을 쉬고 생명이 있으니 믿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비로소 의인이 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너무나 쉬운 문제가 왜 500년을 갑니까? 모두가 남이 전해주는 내용을 확인도 없이 그대로 믿기에 그렇습니다. 제가 전하는 내용은 성경에 기반한 것입니다. 이 본문을 보고서 제가 모든 분께 묻습니다. 오직 믿음이 의롭게 됩니까? 천주교 주장대로 오직 믿음이 아니고 +행위입니까? 아니면 제가 본문대로 설명하는 의인은 믿음을 가지고 하루하루 삶을 사는 사람입니까? 누가 본문에 가장 적합니까? 지각이 있는 분은 바로 답이 나옵니다. 흔들릴 필요도 다르게 갈 필요도 이제부터 없습니다. 이렇게 이해를 하고 로마서를 보아야 로마서가 쉽습니다. 하루하루 사는데 어떻게 사냐 하는 답이 모든 로마서의 나머지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자! 오직 믿음으로 다 되니 행위나 율법은 아니다로 개신교는 주장합니다. 천주교는 아니다 행위가 있어야 된다고 합니다. 성경은 믿고 오늘 하루 믿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라 입니다. 자! 성경은 그냥 말이 아니라 행동의 기준이요 방향입니다. 내가 예수를 믿으니 오늘 오직 믿음하고 마음대로 갑니까? 무슨 행동입니까? 그냥 믿음의 합당한 삶을 삽니까? 성경대로 지금 내가 바로 죽지 않으면 어떻게든 살아가야 합니다. 성경은 믿음을 갖고 살아가라 합니다. 그러면 살아가면 됩니다. 즉 의인은 믿음을 가지고 오늘 살아가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인정한 사람입니다. 오직 믿음 하고 멈추지 마시고 믿음+행위에도 너무 신경 쓰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냥 오늘 내가 예수님을 믿으니 믿음대로 사는 것입니다. 주일이면 성수하고 누가 도움을 청하면 돕고 이웃이 어려우면 기도해 주고 상사를 주님과 같이 존중하고 동료를 이웃과 같이 사랑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여자가 생기면 저 젊을 때와 같이 하지 말고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 돈이 없으면 기도하고 아내가 있으며 불타도록 사랑하고 자녀를 아끼고 본을 보이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고 늘 성경을 묵상하면서 성경대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나라가 불의에 휩싸여도 아무 말도 못하는 대형교회 목사는 절대로 본받지 말면 되는 것입니다.
이제 너무나 정확하게 성경 말씀이 제가 위에서 설명한 데로 되어 있음을 보여 드립니다. 놀라지 마시기 바랍니다. 너무나 많은 읽은 본문이 이렇게 정확하게 보입니다. 먼저 본문을 보시면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이라고 하는데 무슨 의미인데 봅니다. 이를 뒤에서 다시 자세하게 살필 것인데 우선 간략히 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이란 부분은 로마서 4장과 야고보서 2장에 있으니 찾아서 보여 드립니다.
롬 4: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창 15: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이때의 아브라함의 나이는 75-85세 경입니다. 첫 번째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오심입니다.
롬 4: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이 때는 분명하게 아브라함이 100세 때 이야기입니다. 두 번째 하나님의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심입니다. 세 번째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뵈옵는 것은 어떤 사람은 자주이고 이제는 매일 주님을 뵈옵고 동행합니다.
약 2: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23.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이 때는 분명하게 아브라함이 110세 때 무렵입니다. 분명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입니다. 그리고 매일 매일 믿음을 갖고 사는 사람이 이런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을 받습니다. 어떤 사람이 오늘 잘 믿다가 어떨 때 하나님께서 오셨는데 그 사람이 믿음을 버리고 악을 범하고 있다면 그 사람을 절대로 하나님께 의롭다 하지 않습니다. 에스겔서를 보시면 의인이 악을 행할 때 이미 행한 의는 기억되지 않고 악인이 된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왜 성급하게 로마서 1장 17절만 보시고 또 이렇게 깊고 정확한 의미가 있는 로마서를 겉만 보시고 예수님의 마태복음 5장 17-20절의 말씀을 조금도 지키지 않으려고 하십니까? 로마서도 중요하지만 로마서를 쓴 바울 사도의 주인이 되시는 우리 모두의 최후의 심판자가 도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더욱 중요합니다.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절대로 로마서로 예수님의 어떤 말씀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진리입니다.
이제 로마서 1장 17절의 칭의의 의미를 살펴봅시다. 먼저 이렇게 되고자 하는 자는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 믿음이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을 갖고 매일 삶을 살아야 합니다. 믿음의 삶과 믿음의 질과 종류가 분명하게 성경에 언급이 되어 있습니다. 이를 로마서 4장이 증명하고 야고보서 2장이 증명합니다. 이 이해를 통해서 천주교와 개신교는 서로 논쟁을 접고 서로 부족한 이해를 겸손하게 인정하고 이렇게 믿고 서로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를 이를 위한 하나님의 도구로 믿습니다.
바울 사도는 2000년 전에 로마서를 기록할 때 이런 내용을 너무나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인도로 복음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의롭게 됨에 있어서 이렇게 기록을 한 것입니다. 저도 경험적으로 성령을 받고 전도하고 성경을 읽고 정리하는 가운데 약 17년 이상이 경과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저를 의롭다 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어서 처음 도표와 같이 이해하고 전한 것입니다. 그리고 로마서 1장 17절의 본문의 의미에 모든 답이 있는 것을 보고서 이렇게 전하게 된 것입니다. 시간이 적어도 20년 이상은 걸린 이해입니다. 제가 게으르고 목이 곧고 그리고 고집이 세어서 그렇게 걸린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제 글을 읽고 바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저를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늘 저를 격려하셨습니다. 쉬지 않고 반복하셨습니다. 그래도 제가 무지하고 게을러서 하나님의 뜻을 잘 받들지 못했습니다. 빨리 깨닫지도 못했습니다. 느리게 느리게 제가 너무나 무심해서 이렇게 시간이 걸렸지만 여러분이나 다른 성도는 오늘 바로 이해하고 믿고 행할 수가 있습니다.
이제 이신칭의에 대해서 모두가 올바로 이해를 했으리라 믿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어떻십니까? 이제 로마서 1장 17절의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데 그 믿음을 갖고 하루하루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조건을 보았습니다. 믿음을 갖고 아무것도 아니 하는 사람이 아니라 역동적으로 삶을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분명히 로마서는 그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믿음을 갖고 사는 사람의 삶에 대해서 정확하게 로마서는 7장 6절에서 설명합니다.
롬 7: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6. 우리는 율법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이제 우리는 죽어서 그 제약을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낡은 법조문을 따라서 섬기지 않고 성령께서 주시는 새 생명을 가지고 섬기게 되었습니다.
6. But now, by dying to what once bound us, we have been released from the law so that we serve in the new way of the Spirit, and not in the old way of the written code.(개역개정, 공동 번역, NIV)
영어로 보지 않으면 한국에 있는 성도는 절대로 이 본문의 본래 의미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절대로 그렇습니다. 제가 밑줄을 친 부분을 보시기 바랍니다. 절대로 이렇게 번역하면 불경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을 낡은 법조문,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번역하면 절대로 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로마서를 인도하는 등불인 우리 주 예수님의 말씀 마태복음 5장 17-20절의 내용을 절대로 지키는데 어렵게 하는 번역입니다. 제가 영어로 보면서 다시 번역을 했습니다. 여러분! 한국 사람이 성경의 진리로 가는 여정은 이렇게 번역의 문제를 뛰어 넘어야 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영어도 하시고 한글도 조금 아시니 별로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이제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 얼마나 성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며 앞서 갈 수가 있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영어는 이제 모두가 할 수가 있고 한 언어로 하나님께서 모든 성도를 하나 되게도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를 한 때 얽매였던 것에 대해서 죽었으므로 율법으로부터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새로운 방법으로 섬기는 것이지 즉 믿음 생활을 하는 것이지 옛날에 하던 낡은 방법 즉 율법을 가지고 섬기던 방법으로 믿음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옛 사람 바울이 섬기던 율법을 조문 조문 지키던 방법을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방법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섬긴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님을 믿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새 사람이 되어서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율법에 대해서 문제가 있다는 표현은 0.00001%도 없습니다. 옛 사람이 낡았고 과거의 바울 사도가 섬기던 방법이 낡았다는 말입니다. 이제는 새롭게 거듭난 새 사람 바울이 성령을 받았으니 성령의 인도를 받는 새로운 방법으로 섬긴다는 표현입니다. 율법에 대해선 그냥 두고 있으니 율법으로부터 자유 합니다. 율법의 문제가 0.00001% 도 없습니다. 옛 사람 바울이 문제이고 그 섬기던 방법이 문제입니다. 율법학자라 하면서 실제로 율법의 정신을 다 던져두고 형식적인 조문의 준수로 위선자가 된 과거 예수님을 모르던 바울이 문제이며 바울이 섬기던 방법이 문제입니다. 이를 어째 거룩하고 성스럽고 지구가 사라져도 없어지지 않고 온 인류가 다 사라져도 한 점도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낡았다고 하십니까? 얼마나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을 받은 성도가 그분의 말씀을 불경 되게 여기고 표현하십니까? 천주교 개신교는 모두가 회개하고 이 구절의 해석을 똑바로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제가 한국의 천주교 개신교 학자에게 하는 부탁입니다. 한국은 경제, 군사력이 온 세상에서 10 대국이 된 나라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우리에게 복을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귀하게 여기고 바로 이해하고자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온 세상에 전할 사명이 있는 국가가 한국인 줄로 저는 믿습니다. 그런데 성경의 연구엔 교회를 비롯해서 너무나 인색합니다. 대부분 백만 달러가 넘는 부자 크리스천이 수도 없이 있는 한국에서 저를 지원하고 응원하는 사람은 극 소수에 불과합니다. 이것이 성경을 연구하는 한국의 모습이며 교회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한 세력의 통치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먼저 정치를 바로 잡을 것이라 아니라 영적인 측면을 재건해야 합니다. 아니면 동시에 해야 합니다. 이것은 힘의 강제가 아니 개인의 각성에 의한 자발적인 헌신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저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신칭의에 대한 믿음은, 처음 우리가 배우는 ‘모든 믿는 사람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라고 교회에서 배운 배움으로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제가 예수님을 만나서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세례를 받고,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은 후에 성령을 선물을 받았음을 말씀 드렸습니다. 그리고 전도를 계속하면서 나중에 칭의에 대해서 이해하게 되었다고 '전도자에게 보여주신 이신칭의'란 간증문을 통해서 설명을 드렸습니다. 그 주된 내용을 아래의 그림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사는데 내 마음대로 사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바울과 같이 율법으로 사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성령을 받은 성도는 성령으로 즉 성령의 인도를 받는 방법으로 삽니다. 아래는 도표로 설명을 드리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의 이해를 중심으로 위와 같이 그렸습니다. 그리고 칭의 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성령을 선물을 받기에 합당한 죄의 용서가 있으면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로마서 공부의 워밍업 부분, 갈라디아서와 하박국서를 정리하면서 아래와 같이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최근의 이해입니다.(2021 6:25일 당시)
이런 이해에 도달하기까지는 저는 위의 과정과 같이 칭의를 이해를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이를 바탕으로 로마서의 이해의 선행단계인 하박국서의 이해를 통해서 성도에게 칭의가 일어나는 시기를 성령을 선물을 받고 믿음으로 사는 어느 때로 조정하게 되었습니다. 아래의 글은 그러한 내용을 설명한 것입니다. 즉 이전에는 성령을 받은 성도가 모든 믿는 자가 되고 이들이 의롭게 된 사람으로 이해를 했지만 이제는 이렇게 된 사람이 아브라함의 예와 하박국의 예를 보면서 하나님께서 그 사람이게 의롭다 할 어느 때로 보는 것입니다. 아래 그림입니다. 두 그림 중에서 영어로 된 아래 그림입니다. 저도 성령을 받고 전도하고 있을 때 약 17년 정도 지났을 때 하나님께서 저를 의롭다 하시는 것을 보고서 구원받은 것도 놀라운 은혜인데 의롭다 하시니 너무나 더욱 감격한 것입니다. 제 경험과 성경은 분명하게 일치하는데 저도 아브라함과 같이 일생을 잘 믿고 또 다음 어떤 시기에 하나님께서 오셨을 때 여전히 잘 믿고 살아야 할 것이고 죽을 때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즐겁게 주님을 뵈옵는 상태가 되어야 될 줄로 굳게 믿습니다. 어찌 세상의 물질과 유혹에 한 눈이 팔릴 사이가 절대로 없는 것입니다. 오직 전도 선교, 오직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모든 글이 오천만의 로마서 블로그와 다음 카페에 있으니 참고하시면 될 것이고 혹시 자료가 필요하신 분은 제가 책으로 정리한 자료를 보내 드릴 테니 받을 주소를 보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모든 자료는 다 네이버 블로그와 다음 카페에 있으니 참고를 하시기 바랍니다. 연락처와 주소는 “오천만의 로마서”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 나라 기초가 되는 칭의 되는 믿음에 대한 이해
제가 서론으로 이신칭의를 간증을 통해서 그리고 본문을 통해서 간략하게 설명을 드렸습니다. 여기서는 더욱 세밀하고 하박국서와 함께 설명을 드립니다. 반복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간증문, 서론, 그리고 칭의 되는 믿음에 대해서를 같이 보시면 잘 이해가 될 줄로 믿습니다. 조금 더 자세하게 살필 것입니다.
로마서 1장 17절의 믿음은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한 믿음입니다. 동시에 두 사람의 믿음과 관련된 설명입니다. 단순한 믿음에 대한 내용이 아닙니다.
첫째, 두 가지 의미는 먼저 시간적인 연속성을 지닌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 의롭다고 함을 얻는 믿음이 되기 위해서는 일시적이고, 순간적이고, 혹은 이제 갓 시작한 믿음이 아니라 시간적으로 지속해서 변치 않고 믿는 믿음이라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통해서 로마서 4장 1-16절, 4장17~22절 그리고 야고보서 2장으로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또 한 가지의 칭의가 되기 위한 믿음은 고난 중이라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정의롭게 사는 믿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박국서 2장 4절의 말씀을 통해서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칭의 되는 믿음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이렇게 시간이 가도 변치 않는 한결같은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과, 이와 아울러서 나라가 망하고, 모든 동족이 불의를 행하는 중이라도 언제나 의로우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고, 또 온 세상이 다 불의를 행한다고 할지라도 절대로 흔들리지 않고 정의롭게 사는 믿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칭의 되는 믿음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간이 가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변치 않을 뿐만 아니라, 고난이 있다고 해도 하나님을 믿으며, 반드시 정의롭게 하루하루 삶을 사는 믿음이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로마서에서 신자가 하나님께 의롭다 인정받는 믿음임을 성경은 분명하게 단호하게 그리고 타협 없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러한 논거에 대해 로마서에 인용이 된 믿음의 표본이 되는 두 인물의 삶에 대해서 성경을 통해서 살펴봄으로써 믿음의 참된 의미를 이해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창세기에 기록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창조주가 되시며, 전능하시고, 정의로우신 하나님과 그분의 약속의 말씀을 시간이 가도 변치 않고 굳게 믿었습니다. 인간으로서 실현도 생각도 불가능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실천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이 믿음은 나이가 들고 세월이 가도 흔들림이 없었으며, 결국 100세가 되어서 약속의 아들을 받았고 하늘의 별과 같이 수많은 믿는 이들의 조상이 됨은 물론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로마서 4장 17~22절의 말씀이 이를 증거합니다. 여기서 과연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어떻게 잉태를 합니까? 그냥 늙은 아브라함과 동침이 없이 동정녀와 같이 임신을 합니까? 아니면 아브라함의 성적 능력이 젊은이와 같이 회복이 됩니까? 경도가 끊어진 여인이 어찌 임신을 남편이 젊다 해도 합니까? 여러분 자녀를 준다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99세인 아브라함도 젊은 몸이 되고 90세가 다된 아내의 몸도 젊은 몸이 되는 기능적으로 두 사람이 동침을 통해서 충분히 자녀를 갖게 되고 이런 과정을 통해서 이삭이 잉태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분이시기 모든 문제, 질병을 다 고치십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이렇게 믿어야 합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믿음은 즉, 순간 혹은 일시적, 혹은 처음 시작하는 믿음이 아니라 시간이 가도 불가능한 약속을 그리고 그 약속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을 변치 않고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이 믿음으로 의롭다 인정을 받은 것이다. 반드시 믿음이라는 단어 이면에 있는 이런 의미와 배경을 절대로 우리는 망각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이를 증명하는 성경의 내용을 보겠습니다.
롬 4: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17. 성서에 "내가 너를 만민의 조상으로 삼았다." 하지 않았습니까? 그는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게 만드시는 하느님을 믿었던 것입니다.
18. 아브라함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믿어서 마침내 "네 자손은 저렇게 번성하리라." 하신 말씀대로 "만민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19. 그의 나이가 백 세에 가까워서 이미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이 되었고 또 그의 아내 사라의 몸에서도 이제는 아기를 바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는 믿음을 가지고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20. 그는 끝내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의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더욱 굳게 믿으며 하느님을 찬양하였습니다.
21. 그리고 그는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능히 이루어주시리라고 확신하였습니다.
22. 하느님께서는 이런 믿음을 보시고 아브라함을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하셨습니다.“
17. As it is written: "I have made you a father of many nations." He is our father in the sight of God, in whom he believed -- the God who gives life to the dead and calls things that are not as though they were.
18. Against all hope, Abraham in hope believed and so became the father of many nations, just as it had been said to him, "So shall your offspring be."
19. Without weakening in his faith, he faced the fact that his body was as good as dead -- since he was about a hundred years old -- and that Sarah's womb was also dead.
20. Yet he did not waver through unbelief regarding the promise of God, but was strengthened in his faith and gave glory to God,
21. being fully persuaded that God had power to do what he had promised.
22. This is why "it was credited to him as righteousness."(개역 개정, 공동 번역, NIV 순)
아브라함의 100세 때의 믿음을 분명하게 성경은 위와 같이 설명합니다.
이어서 아브라함의 110세 무렵의 믿음에 대해서 같이 또 알아보아야 합니다. 이는 야고보서 2장에 있고 천주교의 이신칭의의 기준이 됩니다. 천주교도 이렇게 버젓이 성경에 있으니 이렇게 주장합니다. 뭐라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야고보서 2장 20-26절
약 2: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23.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25.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얼마나 놀랍습니다. 개신교는 로마서 4장 1-6절을 보면서 창세기 15장을 보면서 믿으니 의롭게 된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이에 반해서 천주교는 야고보서를 보면서 역시 행위가 없으면 의롭게 되지 않는다고 개신교를 반박합니다. 둘 다 성경에 있으니 틀림없이 다 맞습니다. 그래서 500년을 서로 다투면서 양보가 없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로마서 4장 17-22절의 100세 때 믿음은 놓칩니다. 이제 서로 다 같이 연결합니다. 아브라함의 75-85세때 믿음은 틀림없이 로마서 4장 1-16절로 정확하게 설명이 되고 이를 보면 오직 믿음이 맞습니다. 그런데 4장 17-22절의 100세가 된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선 이젠 연결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야고보서 2장 20-26절을 보고서 연결을 합니다. 이렇게 3번의 의롭다 하심이 하나님으로부터 있습니다. 루터도 개신교도 천주교도 아마도 모두가 놓친 부분일 것이라 믿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한 번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고 의롭다 하시 것이 아니라 일생을 거쳐서 쉬지 않고 나타나시고 그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 하심을 확인합니다. 누가 이를 부인합니까? 분명하게 성경에 있습니다.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4장 1-16절의 아브라함의 75-85세 무렵, 하나님의 첫 의롭다 하심입니다. 그리고 100세가 되어 변치 않는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 또 하십니다. 이때는 100세인데 로마서 4장 17-22절로 분명하게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브라함이 110세 더 되었을 때 이때는 야고보서 2장에서 설명합니다. 이제 이를 연결합니다. 그러면 로마서 1장 17절의 처음부터 끝까지 믿는 믿음이 의롭다 인정을 받는 믿음이라는 말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을 봅니다. 그리고 믿고 하루하루 사는 사람이라는 말도 충족을 합니다. 오직 믿는다고 하면서 마음대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때 오시면 탈락입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왔다 갔다 해도 탈락입니다. 죽을 때 부인하면 여태까지 잘 믿던 믿음과 의로움이 어찌 됩니까? 하나님은 어제와 오늘이 동일하십니다. 우리 믿음도 처음부터 끝까지 가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믿다가 믿다가 돈이 많아지면 돈을 두 손에 가득 쥐고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데 이는 거짓입니다. 돈과 하나님을 겸해서 섬길 수가 없다고 하신 말씀을 그냥 말씀이 아니라 틀림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부자 청년에게 재물을 가난한 이에게 나누어 주고서 나를 따르라는 명령은 지금 부자에게 동시에 하는 말씀입니다. 지금의 한국의 10억은 백만 장자로 온 세상에서 부자입니다. 이 부자들이 그냥 나누지 않으면 그 믿음과 의는 어떤 결말을 맞을지 깊이 깊이 생각하시고 돈을 붙잡지 말고 성령을 붙잡기 바랍니다. 40년을 가난하게 살아도 절대로 죽지 않고 이렇게 복을 받고 사는 목사의 간절한 호소입니다. 돈이 없어서 죽고 지옥에 가는 성도는 없고 돈이 너무 많아서 두 손에 가득 쥐고 사랑도 인정도 없이 사는 자들이 지옥에 갑니다. 즉 돈이 많다 보니 욕심이 생기고 돈을 사랑하게 되고 사람을 멀리하고 하나님도 가식으로 섬기니 지옥입니다.
그 다음에 하박국서의 하박국의 믿음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로마서 1장 17절에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로 개역 개정에 번역이 되어 있어 의인은 믿음이 있기에 생존한다, 혹은 산다로 되어 있는 것같이 보입니다. 이 로마서의 구절은 구약의 하박국서 2장 4절에서 인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박국서를 로마서 1장 17절을 이해하기 위해서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하박국 선지자의 말이 아니라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하신 하나님께서 하박국서 2장 4절에서 하박국 선지자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떤 상황에서 하박국에게 이 말씀을 하셨는지 우리가 2장의 앞과 뒤의 상황을 알아야만 이 말씀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로마서를 정확하게 그리고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독자는 반드시 하박국서를 펴놓고 찬찬히 본문을 전부 읽어보아야 합니다. 다행히 하박국서는 단지 3장으로 되어 있어 누구나 쉽게 읽을 수가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된 후 기원전 약 722년에 북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난 후 홀로 남은 남 유다 마저 많은 선지자의 경고를 외면하고 불의한 길로 행하여 곧 멸망이 임박한 가운데 남 유다의 멸망을 예언한 예언자입니다. 그는 기원전 약 609년부터 605년까지 예언했습니다. 남 유다는 기원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하지만 이미 605년과 598년에 바벨론의 1.2차 침입이 있었으니 그야말로 남 유다의 마지막 예언자라 할 수가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 당시 남 유다의 타락상(부패성)은 정의롭게 살고자 하는 사람이 더 이상 살 수가 없을 정도로 심각했습니다. 율법은 사라졌고, 제사장과 고관과 온 백성이 불의를 행하고 있었습니다. 이럴 때 이런 불의와 맞서서 정의롭게 살고자 하는 하박국과 같은 의인들은 더 이상 올바른 생활이 불가하여지자 이 불의의 사람들이 자신의 동족임에도 이 불의한 참상을 하나님께 고발하였습니다. 하박국은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타락한 백성을 심판하시지 않고 보고만 계십니까? 하고 하나님께 여쭙니다. 이는 마치 구한말 천주교의 탄압 시 황사영이 백서로 로마교황의 군대의 파견을 요청한 사정과 같습니다.
이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결코 보시고만 계시지 않겠다고 하시면서 당시에 온 세상을 정복하던 악한 나라 바벨론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셔서 남 유다를 심판하시겠다고 대답하십니다. 이에 하박국 선지자는 "비록 남 유다가 악하다 할지라도 바벨론 만큼은 악하지는 않은데 어떻게 더 흉악한 바벨론을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실 수가 있으십니까?" 하고 다시 하나님께 질문 드립니다.
이 하박국의 질문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대답이 우리가 아는 너무나 유명한 로마서 1장 17절에서 인용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으로 하박국서 2장 4절에 있습니다. 이런 전후의 상황을 보면서 이제 하박국서 2장 4절의 말씀을 살펴보면서 그 의미를 올바로 이해해 보도록 해 보겠습니다.
합 2: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4. 멋대로 설치지 마라. 나는 그런 사람을 옳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의로운 사람은 그의 신실함으로써 살리라.“
4. "See, he is puffed up; his desires are not upright -- but the righteous will live by his faith —(개역 개정, 공동 번역, NIV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렇게 교만한 바벨론을 절대로 좋게 보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벨론 역시 그 악행의 대가로 처참하게 멸망 당할 것을 하나님께서 하박국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역시 바벨론은 페르시아에 의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박국 선지자의 예언대로 멸망 당했습니다.
본 문장을 보면, 그러한 바벨론은 하나님의 인정도 사랑도 받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인정하시는 의인들은 믿음으로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의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시며 약속을 성취하시는 전능의 하나님이 아니시고, 불의한 동족 남 유다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고, 이 남 유다를 멸망시킨 바벨론을 또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박의 믿음은 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리고 정의롭게 살고자 하는 의인이 더 이상 살 수가 없는 불의한 세상을, 비록 그것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족속이라 해도 심판하시는 정의로우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입니다.
그럴 뿐만 아니라 정의롭게 사는 자를 언제나 어디서나 보호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입니다. 또한 이렇게 불의한 세상을 심판하시고, 종국에는 정의롭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정의로운 세상을 만드시는 하나님이심을 믿는 믿음입니다.
하박국 2장 4절과 로마서 1장 17절은 이 믿음으로 의인이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산다는 의미는 개역 개정에서 번역된 바와 같이 그런 믿음이 있으므로 말미암아 생존한다, 살아남는다고 하는 의미도 부분적으로 내포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더 정확한 의미는 영문의 기록 will live와 같이 그들이 믿음의 삶을 하루하루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불가능한 것을 믿고 사는 것도 전쟁이 나서 나라가 망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믿고 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의인이 되고자 하는 이는 이렇게 믿어야 하고 그 다음에 생명이 부지되어 있으니 그 믿음에 합당한 삶을 하루하루 산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아는 오직 믿음이나 혹은 믿음 + 행위와 심히 다른 내용이 성경의 내용입니다.
하박국 당시는 참으로 정직하고 정의로운 자가 자신의 순결을 유지하며 올바로 사는 것이 힘든 세상이 되었습니다. 동족의 불의는 만연하고, 나라는 멸망하게 되고, 강대국 바벨론의 침략과 수탈과 그리고 죽음과 포로가 되는 삶이 연속적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합 3:16.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합 3:16.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16. 그 소리를 듣고 나의 뱃속이 뒤틀립니다. 입술이 떨리고 뼛속이 녹아내리며 아랫도리가 후들거립니다. 우리를 덮쳐오던 백성에게 재앙이 떨어지는 날만 나는 기다리고 있습니다.(개역개정, 공동 번역)
하박국의 표현대로 정말로 정상적으로 평안하게 살 수가 없는 세상이 되었지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은 이런 환란, 고난 가운데서도 언제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뿐만 아니라, 언제나 눈동자같이 보호해 주시는 사랑과 능력의 하나님을 굳게 믿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
이와 함께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은 절대로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정의롭게, 순결하게 하루하루를 잘 견디며, 믿음의 삶을 반드시 살 것입니다. (믿음을 가진 자의 타당한 삶)
이런 믿음을 가지고 정의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의인으로 인정하신 다는 말씀이 바로 하박국서 2장 4절의 말씀입니다.
믿는 이, 믿지 않는 이 누구나 본문을 영문과 다른 한글로 된 여러 번역으로 보면 이렇게 쉽게 본래의 이 문장의 의미를 알 수가 있게 됩니다. 이제 변명의 여지도 또 얕은 믿음의 의미도, 온전치 못한 이해로 갈 여유도 모든 이에게 허용이 되지 않습니다.
오직 로마서 1장 17절의 칭의 되는 믿음의 의미는 시간의 연속성을 지닌 한결같은 변치 않는 믿음이라는 사실과, 또 어떤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만 바라보고 믿으며, 정의롭게 삶을 사는 행동하는 믿음이라는 사실만이 존재합니다. 이를 아브라함의 믿음과 하박국서의 내용이 증명하며 이런 믿음에 대한 의의 인정도 언제나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할렐루야!
이런 내용의 이해를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심은 누구를 비판하거나 정죄하고자 함이 아니라 이 부분의 이해에 어떤 분이 잘못이 있다면 누구든지 바로잡기 위함임을 꼭 밝힙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를 원하시지 정죄와 처벌을 원하시지 않음을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글을 읽다가 자신의 잘못이 보이면 바로 잡고 올바로 살면 될 일입니다. 과거의 일은 하나님께서 결정하실 것이고 돌이키는 자를 하나님께서 더 이상 책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위의 글은 제가 2021년 6 월경에 쓴 것입니다. 이후에 하나님께서 쉬지 않고 보완하고 새롭게 이해를 허락하심으로 쉬지 않고 전했습니다. 약 4년 이상 동안 집중적으로 조금씩 하나님께서 이 부분에 대해서 세밀하게 이해하게 하시고 쉬지 않고 전하게 하셨으니 제 오천만의 로마서 다음 카페와 네이버 블로그를 보시면 순서대로 하나님께서 이신칭의에 대해서 이해하게 하신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후에 로마서 1장 17절에 영문으로 보면 Faith from first to last라는 구절이 있으니 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이라고 볼 수가 있는데 아브라함의 믿음은 위의 도표와 같이 75-85세 때, 100세 때, 그리고 110세가 넘었을 때로 쉬지 않고 변치 않고 믿음을 볼 수가 있으니 이 일생을 통한 믿음 즉 처음부터 끝까지 믿는 믿음이 되어야 함을 볼 수가 있습니다. 특히 이삭을 바치는 믿음에 대한 설명은 야고보서 2장에 있으니 이렇게 전체적으로 성경을 보면서 이신칭의를 이해를 해야 되는데 루터는 어디까지 갔는지 궁금합니다. 오직 로마서 1장 17절을 보면서 속단을 했다면 모두가 이렇게 바로 잡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믿음의 삶은 구체적으로 로마서 7장 6절과 같이 성령으로 사는 삶으로 귀결이 됩니다. 결국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말은 우선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리고 절차를 지켜서 성령을 받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의롭게 됩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 위의 설명과 같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사는 람이 의롭게 되는데 그 삶의 모습이 위와 같이 율법을 따르는 것도 내 마음대로 하는 것도 아닌 오직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입니다. 그런데 성령의 인도를 받다 보면 율법을 완성하고 굳게 세우고 율법의 정의로운 의를 이루게 됩니다. 이렇게 성령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 생활은 율법으로 연결이 되어야 합니다. 결국은 믿음 생활은 율법을 굳게 세움으로 귀결이 되고 이는 성령의 도움으로 가능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의미는 믿고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는 것으로 정리가 되는 것입니다. 2025년 10월 말 경의 이해입니다.
제가 2025년 10월 추석이 끝난 후에 2021년도의 글을 보면서 이후에 하나님께서 알게 해 주신 내용을 첨부합니다. 원본은 오천만의 로마서에 있으니 참고를 하시기 바랍니다. 저도 이렇게 쉬지 않고 배워서 여기로 옵니다. 절대로 잊지 마실 것은 믿음의 삶은 바로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과 전적으로 같습니다. 그리고 믿음을 갖고 이렇게 바울 사도와 같이 성령으로 살아야만 아래 주제의 율법에 대해서 올바른 태도를 갖고 살 수가 있습니다. 믿음 생활이 바로 율법을 온전케 하는 믿음과 율법은 완전히 붙어서 다닙니다.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부활하신 제자들이 더 이상 의심이 없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하나님의 아들로 증거할 수가 있는데 왜 기다렸다고 성령을 받고 움직이라고 합니까? 이는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우리를 능력으로 채우시고 그래서 우리가 우리 스스로 할 수가 없는 율법을 완성하고 굳게 세우고 율법이 요구하는 정의로운 요구를 이루게 하니 성령을 받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직접 뵙고 3년을 배운 제자들도 이렇게 순종해서 자신이 아직 하나님께 받아야 할 선물이 있는 부족한 존재임을 믿고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성령을 받고 움직이는데 예수님도 직접 뵈지 않는 현대의 성도가 무슨 능력이 있고 무슨 배움이 있다고 성령도 없이 홀로 살고자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신학하고 성경을 공부한다고 나가서 전도를 합니까? 절대로 못합니다. 성령의 능력이 없기에 못합니다. 그런데 목사가 성령을 성도가 받는 일에 소극적이면 이는 절대로 아무리 대형교회라도 목사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단도 10만 명 20 만 명이 있으니 숫자로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 없이 공부로 하나님의 나라를 절대로 세우지 못합니다.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은 회개 하시고 성령을 받고 움직이기 바랍니다.
첨부합니다. 이는 2025년 12월 21일 주일입니다. 한 장로가 성경을 잘 가르치고 글도 쓰고 책도 발간했습니다. 제가 읽어 보았습니다. 다 좋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많이 밝히는 성령에 대한 부분은 거의 없었습니다. 경험이 없었기에 그렇게 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지금 하는 일이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성령이 없이 아볼로와 같이 잘 가르치고 신학자도 되고 목사도 장로로 될 수가 있으나 성령이 주는 분별력은 없고 세상의 풍조에 따라서 멸망의 길로 갈 수가 있으니 신학자 목사 장로 권사는 아무리 서울대를 나오고 명문대를 나오고 유학을 했다 해도 경거 망동을 마시기 바랍니다. 인간이 어찌 전능하신 성령을 이길 수가 있습니까? 겸손히 회개하고 성령을 받고 행하시기 바랍니다. 사는 날 동안에 기회가 있으니 하나님과 성령을 받은 사람을 속이려고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위의 장로가 문제가 있음을 바로 알았습니다. 그리고 성령에 대해서 체험적으로 베드로나 바울이나 초대 교회 신자와 같이 설명이 없는 분은 설명이 할 무엇이 없는 분은 다 성령을 받는 일이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니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장로 권사 목사 신학자 다 소용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3. 하나님 나라 뼈대가 되는 율법에 대한 이해
이제 우리는 칭의 되는 믿음보다 더욱 크고 비교도 할 수 없이 중요한 주제인 율법과 믿음과의 관계에 대해서 논의해 보겠습니다.! 성경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법이다 라고 누군가가 선포했습니다. 또 어떤 고려대 법대를 졸업한 성도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통치하시려 법을 주셨다 라고 했습니다. 정말로 놀라운 통찰력이 있는 말입니다.
법을 전공한 법대생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은 인간 세상 질서의 유지와 공동체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반드시 법이 존재해야만 됨을 믿습니다. 인간은 어떤 시대에도 어떤 인간의 조직도 공동체의 존립을 위해서 법과 규칙을 제정했습니다.
공동체를 규율하는 법과 규칙이 없다면, 각자는 자기 마음대로 소견대로 살게 되어 결국은 약육강식의 세상이 될 것이고 무질서와 혼돈과 그리고 파괴와 죽음만이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법을 만들어 질서를 유지하며, 공동체의 안정과 번영을 추구했으니 고대 함무라비법을 비롯해서 로마법, 고조선의 8조 법금, 그리고 현대의 각국의 헌법과 하위법인데 이 법들은 성문화되어 존재합니다.
인간의 법인 이들의 법과는 달리 율법은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법이 아닙니다. 천지의 창조주가 되시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모세를 통해서 주신 모든 세상에 존재하는 법 중에서 가장 완벽하고, 정의롭고, 모든 구성원을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하는 최고 최선의 유일한 법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 이 율법을 모세에게 주신 하나님께서 직접 이러한 사실을 말씀하셨습니다.
신명기 4:8 오늘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8. 내가 오늘 너희 앞에 선포하는 이 모든 법만큼 바른 규정과 법규를 가진 위대한 민족이 어디 또 있겠느냐?
8. And what other nation is so great as to have such righteous decrees and laws as this body of laws I am setting before you today? (개역 개정, 공동 번역, NIV)
느헤미야 9:13 또 시내 산에 강림하시고 하늘에서부터 그들과 말씀하사 정직한 규례와 진정한 율법과 선한 율례와 계명을 그들에게 주시고
13. "You came down on Mount Sinai; you spoke to them from heaven. You gave them regulations and laws that are just and right, and decrees and commands that are good. (개역 개정, NIV)
시편 19:8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시편 119:86 주의 모든 계명들은 신실하니이다 그들이 이유 없이 나를 핍박하오니 나를 도우소서
시편 119:142 주의 의는 영원한 의요 주의 율법은 진리로소이다
시편 119:151 여호와여 주께서 가까이 계시오니 주의 모든 계명들은 진리니이다.
시편 119:172 주의 모든 계명들이 의로우므로 내 혀가 주의 말씀을 노래하리이다.
마 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23.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아, 너희 같은 위선자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박하와 회향과 근채에 대해서는 십분의 일을 바치라는 율법을 지키면서 정의와 자비와 신의 같은 아주 중요한 율법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십분의 일세를 바치는 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지만 정의와 자비와 신의도 실천해야 하지 않겠느냐? (율법의 정신 혹은 성격에 대한 구절, 개역개정, 공동 번역)
왜 율법이 이렇게 인간이 서로 사랑하며 살게 하고, 질서를 유지해서 행복하게 살게 하는 지상 최고, 최선의 유일한 법입니까? 이는 율법 속에 하나님의 속성이 그대로 나타나 있기 때문입니다. 율법 속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와 믿음이 그대로 반영이 되어 있으니 누구나 법을 전공하신 분이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연구하면 이런 진리를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무궁무진한 율법의 세계로 전진하시어 유대인을 능가하는 율법학자가 되고 또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아서 바울과 같이 율법을 완성하고 굳게 세우고 율법의 요구를 완성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모든 성도도 역시 마찬가지로 조금만 율법의 조문을 주의해서 보면 하나님의 속성들이 율법 속에 나타나 있음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율법을 모세에게 주신 하나님께서 직접 이러한 사실을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이시고 정의로우시며,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이 세상에서 서로 사랑하며 신뢰를 유지하며 정의롭게 살기를 바라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리고 그런 목적을 위해서 주신 법이 그러한 하나님의 속성을 반영하지 않고, 이 땅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나라를 건설할 규정들로 되어 있지 않은 것이 도리어 이상한 일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근간은 율법이며, 율법이 하나님 나라의 기본법이 됨이 너무나 분명합니다. 율법을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에게 주시고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고 배우고 지킬 것을 명하신 하나님께서 때가 차매 이제는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전도와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위해 일하게 하셨습니다.
저는 행정고시를 공부했고 헌법과 행정법 등 법에 대해서도 조금 배웠고 행정고시를 공부해서 한국의 헌법을 중심으로 한 법질서 대로 고위 공무원이 되어서 헌신하고자 했습니다. 이렇게 꿈을 꾸던 저는 2차에서 1점차 낙방하고 조금 실망했습니다. 그리고 약 30년이 넘게 가난하게 가난하게 살았고 낮은 곳에서 살았고 그래서 너무나 불의를 몸소 체험했고 휘둘리며 소망도 없게 되었습니다. 국가에 법이 존재하나 약자에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디에서도 이제는 정의롭게 사는 일과 정의로운 세상에 대해서 소망을 갖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르게 하나님께서는 강하게 저를 몰아부쳤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성경을 정리하면서 배우게 되었을 때 비로소 안도하고 희망을 갖게 되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배우게 하시고 전하는 자로 삼으셨습니다. 얼마나 고난과 실패가 저를 멋지고 복된 길로 인도하셨는지요 할렐루야! 인간은 자기 꿈을 향해서 젊음을 바치려 하나 이는 작은 개인의 열망이요, 하나님의 뜻과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와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데 이를 함께 할 사역자를 온 세상을 두루 보시고 찾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그 대상이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에 순종해서 하늘나라 복음을 전하시고,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을 창조하시기 위해(구원하시기)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아울러 세상에 계실 때 율법에 대해 어떤 제자도 율법 학자도, 신학자도, 율법에 대해서 왜곡시키지 못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2:35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36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 5:17.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의 말씀을 없애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없애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18. 분명히 말해 두는데, 천지가 없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율법은 일 점 일 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19. 그러므로 가장 작은 계명 중에 하나라도 스스로 어기거나, 어기도록 남을 가르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사람 대접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계명을 지키고, 남에게도 지키도록 가르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늘 나라에서 큰 사람 대접을 받을 것이다.
20. 잘 들어라. 너희가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파 사람들보다 더 옳게 살지 못한다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개역개정, 공동 번역 순)
마 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예수님 이후 즉 사복음서 이후의 예수님을 뜻을 받들어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위해 편지를 쓴 사도들의 모든 글은 이 예수님의 율법에 대한 말씀에 비추어 말씀의 범위 내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역시 그렇게 해석됨이 성경의 질서로서 너무나 타당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직접 오셔서 친히 하신 율법에 대한 말씀을 그분의 제자들 역시 성령의 감동으로 예수님께서 건설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 편지를 쓰면서 이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 실로 바울의 모든 삶이 예수님의 뜻을 받들어 이 하나님의 나를 세우는데 바쳐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의 모든 서신은 율법에 대해서 예수님의 말씀과 전적으로 부합하지 어떤 내용도 위의 말씀에 저촉이 되거나 혹은 위반됨이 진실로 한 점도 없다고 확신하며 모든 세상의 성도는 이런 믿음으로 로마서를 읽고 이해를 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후대의 신학자가 이를 잘못 이해하고 해석해서 예수님의 율법에 대한 말씀을 조금이라도 훼손시킨다거나 무시하게 하거나 혹은 어긋나게 한다면 이는 성령을 받은 사도들의 잘못이 절대로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후대의 신학자나 성경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사람들 혹은 설교자들이 서신서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속히 확인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미룰 시간적이 여유가 절대로 없습니다.
당연히 칭의에 대한 믿음의 부분도 하박국서를 먼저 읽고 잘 이해한 후에 로마서의 이해로 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갈라디아서를 로마서를 읽기 전에 먼저 보아야만 하는 이유는 6장으로 된 갈라디아서는 작은 로마서로 불리며 로마서의 내용과 같은 부분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로마서보다 먼저 갈라디아서가 기록되었기에 로마서를 읽기 전에 갈라디아서를 반드시 먼저 읽고 이해를 하는 것이 로마서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 필수적인 일입니다.
제가 위의 도표를 2021년에 작성한 것이고 이후에 더 하나님의 은혜로 율법에 대해서 이해하게 된 내용은 로마서 7장 6절의 성령으로 인도를 받는 삶과 이 삶이 전적으로 로마서 1장 17절의 내용과 일치를 하며 이렇게 살면서 로마서 3장 31절 대로 율법을 굳게 세우고 또 로마서 13장 7-8절과 같이 율법을 완성하고 로마서 8장 3-4절과 같이 율법의 요구를 완성하는 것을 놀라우신 하나님의 은혜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 본문을 봅니다.
로마서 3장 31, 롬 7장 6, 로마서 8장 3-4절, 로마서 13장 7-8절
사랑은 율법의 완성
롬 13: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롬 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롬 8:3-4
롬 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3 인간의 본성이 약하기 때문에 율법이 이룩할 수 없었던 것을 하느님께서 이룩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죄 많은 인간의 모습으로 보내어 그 육체를 죽이심으로써 이 세상의 죄를 없이 하셨습니다.
4 이렇게 해서 육체를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 속에서 율법의 요구가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3 For what the law was powerless to do because it was weakened by the flesh, God did by sending his own Son in the likeness of sinful flesh to be a sin offering. And so he condemned sin in the flesh,
4 in order that the righteous requirement of the law might be fully met in us, who do not live according to the flesh but according to the Spirit.(개역 개정, 공동 번역, NIV)
위의 구절 모두가 성도가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아서 성령의 인도를 받을 때 율법에 나타나는 결과입니다. 율법을 완성합니다. 사랑으로 합니다. 율법을 굳게 세웁니다. 믿음으로 합니다. 율법의 정의로운 요구를 이룹니다. 예수님을 믿고 성도가 성령을 받고 믿음으로 하루하루 살 때 일어나는 놀라운 결과입니다. 우리는 이 결과를 이루기 위해서 이렇게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이 위대한 사명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에 바로 연결이 됩니다. 그리고 로마서 7장 6절이 로마서 1장 17절과 완벽하게 같은 내용입니다. 이를 확인합니다.
롬 7: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6. 우리는 율법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이제 우리는 죽어서 그 제약을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낡은 법조문을 따라서 섬기지 않고 성령께서 주시는 새 생명을 가지고 섬기게 되었습니다.
6. But now, by dying to what once bound us, we have been released from the law so that we serve in the new way of the Spirit, and not in the old way of the written code.(개역개정, 공동 번역, NIV)
영어로 보지 않으면 한국에 있는 성도는 절대로 이 본문의 본래 의미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절대로 그렇습니다. 제가 밑줄을 친 부분을 보시기 바랍니다. 절대로 이렇게 번역하면 불경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을 낡은 법조문,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번역하면 절대로 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로마서를 인도하는 등불인 우리 주 예수님의 말씀 마태복음 5장 17-20절의 내용을 절대로 지키는데 어렵게 하는 번역입니다. 제가 영어로 보면서 다시 번역을 했습니다. 교수님! 한국 사람이 성경의 진리로 가는 여정은 이렇게 번역의 문제를 뛰어 넘어야 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영어도 하시고 한글도 조금 아시니 별로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이제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 얼마나 성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며 앞서 갈 수가 있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영어는 이제 모두가 할 수가 있고 한 언어로 하나님께서 모든 성도를 하나 되게도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를 한 때 얽매였던 것에 대해서 죽었으므로 율법으로부터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새로운 방법으로 섬기는 것이지 즉 믿음 생활을 하는 것이지 옛날에 하던 낡은 방법 즉 율법을 가지고 섬기던 방법으로 믿음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옛 사람 바울이 섬기던 율법을 조문 조문 지키던 방법을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방법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섬긴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님을 믿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새 사람이 되어서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율법에 대해서 문제가 있다는 표현은 0.00001%도 없습니다. 옛 사람이 낡았고 과거의 바울 사도가 섬기던 방법이 낡았다는 말입니다. 이제는 새롭게 거듭난 새 사람 바울이 성령을 받았으니 성령의 인도를 받는 새로운 방법으로 섬긴다는 표현입니다. 율법에 대해선 그냥 두고 있으니 율법으로부터 자유 합니다. 율법의 문제가 0.00001% 도 없습니다. 옛 사람 바울이 문제이고 그 섬기던 방법이 문제입니다. 율법학자라 하면서 실제로 율법의 정신을 다 던져두고 형식적인 조문의 준수로 위선자가 된 과거 예수님을 모르던 바울이 문제이며 바울이 섬기던 방법이 문제입니다. 이를 어째 거룩하고 성스럽고 지구가 사라져도 없어지지 않고 온 인류가 다 사라져도 한 점도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낡았다고 하십니까? 얼마나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을 받은 성도가 그분의 말씀을 불경 되게 여기고 표현하십니까? 천주교 개신교는 모두가 회개하고 이 구절의 해석을 똑바로 하시기 바랍니다. 교수님 제가 한국의 천주교 개신교 학자에게 하는 부탁입니다. 한국은 경제, 군사력이 온 세상에서 10 대국이 된 나라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우리에게 복을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귀하게 여기고 바로 이해하고자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온 세상에 전할 사명이 있는 국가가 한국인 줄로 저는 믿습니다. 그런데 성경의 연구엔 교회를 비롯해서 너무나 인색합니다. 대부분 백만 달러가 넘는 부자 크리스천이 수도 없이 있는 한국에서 저를 지원하고 응원하는 사람은 극 소수에 불과합니다. 이것이 성경을 연구하는 한국의 모습이며 교회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한 세력의 통치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먼저 정치를 바로 잡을 것이라 아니라 영적인 측면을 재건해야 합니다. 아니면 동시에 해야 합니다. 이것은 힘의 강제가 아니 개인의 각성에 의한 자발적인 헌신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저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오천만의 로마서 네이버 블로그와 다음 카페의 로마서 공부의 워밍업란에 있으니 모든 분이 참고를 바라며, 새로 정리한 오천만의 성경 정리 제1탄 하박국서 정리, 제2단계 갈라디아서 정리를 참고하기를 바랍니다. 제가 지금 즉 2025년 10월에 이 글을 보면서 모든 일에 성령께서 함께 하시고 인도하셨음을 믿습니다.
여기서는 중요 쟁점이 되는 내용만 간략히 살펴보도록 할 것입니다. 이제 이런 율법의 이해를 바탕으로 모든 로마서를 이해하고자 하는 성도는 먼저 갈라디아서를 보고 그 다음에 로마서를 읽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성경을 읽고 정리를 25년 이상 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가져왔습니다. 역시 오천만의 로마서 성경 정리에 있고 로마서의 공부 워밍업란에 있습니다.
갈라디아서(믿음, 율법, 성령)
| 1부 서두 | 2부 바울의 복음과 성령 | 2-4 믿음, 율법 5 성령 | 3부 맺는말 |
| 부 | 장 | 키워드 | 주요 내용 | 부 | 장 | 키워드 | 주요 내용 | ||
| 1부 | 1 | 서두 | 인사. 복음의 기원 사도권 | | 4 | 복음과 성령 | 육과영 | 하나님 자녀 약속과 성령 | |
| 2부 | 2 | 바울의 | 믿음 율법 | 바울과 다른 사도 안디옥사건 믿음으로 얻는 구원 | 5 | 성령 | 성령의 인도 성령의 열매 | ||
| 3 | 율법이냐 믿음이냐 성령을 받음 | 3부 | 6 | 맺는 말 | 할례와 십자가 인사 | ||||
1장 복음의 기원과 사도 된 내력
1-5 인사;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의 뜻으로 사도 된 바울
6-10 다른 복음은 없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자녀 된 너희가 다른 복음을 따른다.
11-17 바울의 사도 된 내력; 내가 전한 복음은 예수그리스도의 계시로 된 것임
18-24 3 년 후 예루살렘으로 가서 베드로(15일)와 야고보를 만남
2장 안디옥 사건과 믿음으로 얻는 의
1-10 할례자의 사도와 이방인의 사도; 사도 베드로와 같이 바울을 이방인 사도 인정
11-14 베드로를 책망; 안디옥에 야고보의 사람들이 오자 이방인과 음식을 먹던 베드로가 피하자 바울이 이를 책망함 바나바도 베드로와 같이 행동함
15-21 믿음으로 얻는 구원과 베드로의 범죄, 죄와 율법에 대해 죽은 바울
3장 성령 받음과 율법과 복음
1-14 성령 받음에 대해, 믿음에서 나는 의, 율법과 저주, 저주의 해방과 성령 받음
1-5 성령을 받은 것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이루어졌다.
6-9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얻는 의에 대한 설명
10-14 율법으로 인한 저주와 그리스도의 나무에 달림으로 저주에서 속량된
우리와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침과 믿음으로 성령을 받음에 대해 설명
15-20 율법과 약속; 하나님과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430년 후에 생긴 율법이 폐할 수가 없고 율법은 세상을 죄 아래 가두어 놓고 있으며 그리스도를 통한 믿음으로 약속된 선물을 받을 수 있다.
21-29 율법과 믿음; 믿음의 시대가 오기 전까지 율법이 초등교사가 되어 역할을 하고 예수 이름의 세례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그리스도로 옷 입게 되었으니 그리스도의 것이면 약속의 자녀이고 아브라함의 상속자가 된다.
4장 하나님의 자녀(자유와 성령) vs 육의 자녀(종, 하갈의 자녀)
1-7 하나님의 자녀; 초등 학문에 있다 때가 차매 아들을 율법 아래 나게 하시고 율법의 지배를 받는 우리를 구원하시어 자녀로 삼으시고 성령을 받게 하심
8-20 갈라디아 사람에 대한 걱정; 여러분은 예전에 우상을 숭배하다가 다시 우상을 섬깁니까? 가짜들의 열심에 속지 말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 위해 분발하자
21-31 하갈과 사라 약속의 자녀와 성령의 자녀; 하갈은 육의 자녀로서 약속의 자녀는
이삭이듯이 여러분은 성령의 자녀로서 자유인이며 하늘의 유업을 받을 자이다.
5장 성령의 인도를 받아 육체의 일에서 자유하자
1 그리스도의 해방으로 우리는 자유롭게 되었으니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2-12 할례를 주장하는 이를 베어버리라, 성령을 통한 의의 소망을 기다림
13-15 그리스도인의 자유; 자유를 위해 부르심을 받은 우리 서로 사랑으로 종노릇
16-24 육체의 행실과 성령의 열매;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절제 (love, joy, peace, patience, kindness, goodness, faithfulness, 절제
gentleness, self-control.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함, 선함, 신실함, 신사다움)
25-26 우리가 성령으로 살아야 하니 성령의 인도를 받읍시다.
6장 할례와 그리스도의 십자가
1 성령의 지도를 받아 사니 사람의 잘못을 온유함으로 바로잡고 유혹에 주의
2-5 서로의 짐을 지고 겸손하고 각자 자기 일을 살펴야 하며 자기 짐을 진다
6-10 가르치는 자와 좋은 것으로 함께하고 성령을 따라 낙심치 말고 선을 행함
11-18 겉치레 하는 자들이 박해를 면하려 할례를 주장한다. 나는 십자가 외에
자랑할 것이 없다. 할례를 받고 안 받고가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사람 되는 것이
중요, 나는 예수의 낙인이 찍혔다. 축도
분명하게 갈라디아서는 성령을 3장 걸쳐서 설명하십니다. 갈라디아서를 작은 로마서로 이해하고 오직 믿음에 대한 글로 보고자 선입견을 가지고 대하면 절대로 성령에 대한 글임을 보기 어렵습니다. 갈라디아서가 성령에 대한 글임을 보아야 큰 갈라디아서인 로마서도 올바로 이해가 됩니다. 성령의 이해가 없이 로마서를 이해하면 모든 로마서를 그 본래 의미대로 절대로 이해가 어렵습니다. 성령을 알지도 못하고 성령의 인도도 없던 사람이 성령을 받고 거듭나게 되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서 복음 전하고 기적을 행하고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고 놀랍게도 성령이 없을 때 죽어도 하지 못했던 율법의 완성과 율법의 굳게 세움과 율법의 정의로운 요구를 이루고 죄와 사망의 법을 이기는 것을 볼 때 무엇을 강조합니까? 과거 거듭나지 못했고 율법을 지킴에도 합격하지 못했고 하나님께 늘 책망만 받던 자신을 자랑합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오직 성령입니다. 오직 십자가와 예수님이시고 믿음입니다. 그래서 성령에 대해서 막연하게 알면 체험이 없으면 로마서나 모든 성경이 다 어렵습니다. 신학으로 풀리지 않고 내 머리로 풀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500년 서로 다투고 풀지 못했습니다. 전들 별수가 있습니까? 행시에 고배를 마셔서 행시 합격자들에 떨어집니다. 신학자가 아니니 신학자에 떨어집니다 목사로 목회도 못하고 공부도 이들보다 못하니 이들보다 또 부족합니다. 이런 사람이 어찌 홀로 700명의 신학자에게 덤빕니까? 그 능력이 제가 성령을 받았기에 그렇습니다. 예수님께 받은 불이 저를 이렇게 인도하시니 제가 이렇게 쓰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저나 바울이나 다 오직 성령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16절에 ”그러나 사람이 율법을 지키는 행위를 통해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말씀 그대로 이제는, 과거의 율법의 시대 즉 이스라엘 홀로 율법을 가지고 율법을 지키며 살던 시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구원의 사역을 완성하신 믿음의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음을 자각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율법을 통해서 구원받고 의롭게 되는 과거 이스라엘 방법을 접어두고 온 세상의 유일한 구원의 길이요, 의롭게 되는 길인 예수님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모든 인류의 구원 사역을 완성하셨습니다. 우선 죄인인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려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셔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지니시고 다스리십니다.
이제 모든 유대인과 이방인의 할 일은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도 받고 의롭게 되니 예수님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더도 덜도 없이 딱 이 말씀입니다. 지금의 유대인에게도 역시 같이 적용이 됩니다. 2000년이 흘러도 조금도 변함이 없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할렐루야!!
다시 반복해서 말씀 드리면 이제는 인간이 죄에서 구원받고 의롭게 되는 방법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인류에게 공통적으로 제시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렇게 되기 위해서 믿어야 하는 그 분이 바로 온 세상의 구주 예수님이시니 이제는 먼저 예수님을 이방인 유대인 불문하고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이 예수를 믿으라는 작은 소리가 그냥 소리가 아닙니다. 우주를 흔들고 지구를 흔듭니다. 이 음성으로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30억에 육박하는 사람이 예수를 믿고 거듭나서 놀랍고 놀라운 존재가 되었으니 하나님의 작품인 것입니다. 성령의 도장이 꽉 찍힌 하나님의 작품인 것입니다. 성령을 받고 복음을 전하는 자의 소리는 우주를 흔들고 보좌를 흔들고 천국에 있는 의인의 박수를 부릅니다. 만물이 피곤해서 구원을 기다리는데 이 소리는 단비입니다. 죽은 영혼을 살리는 소리입니다. 소망 없는 사람 이리 저리 실패한 사람을 완전히 새롭게 하고 놀라운 영생의 자리로 초청하는 실로 천둥소리보다 더 큰 소리입니다. 우리 영혼을 흔들고 창조주 예수님의 관심을 바로 집중시키는 소리입니다. 어느 나라 어느 장소에서 한 전도자가 전하는 예수 믿으세요는 그 시간 온 우주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가장 집중하고 관심을 가지는 사람과 공간이 되게 하는 놀랍고 위대한 외침입니다. 성령을 받은 전도자는 한 명 한 명이 이렇게 소중하고 귀하고 신학자 목사가 어쩌면 쳐다 보지도 못할 영원히 빛나는 별이 될 사람입니다. 이 땅에서 명문대가 뭐이며 이 땅에서 좋은 집이 무엇이며 이 땅에서 대기업이 무엇이며 이 땅에서 많은 땅과 소유가 무엇입니까? 실로 아무것도 아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모든 전도자여! 그대들은 초대 교회로 보면 교회의 기둥이다 힘을 내고 모든 면에서 전진하라!!!
이런 예수님을 여전히 믿지 않으려고 하고, 또 구약의 방법대로 율법을 통해서 의롭게 되고 구원을 얻고자 하며, 그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당시 갈라디아 교회와 로마 교회 등에 존재했기에, 바울 사도께서 이렇게 성령의 감동으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당시 갈라디아 교회들에 문제를 일으켰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지도 않았습니다. 심지어 율법을 행하지도 않았는데, 과거 바울 사도가 예수님을 모르고 믿지도 않고 율법을 믿으며 율법의 의를 이루고자 하는 것과 같이 그들은 율법을 신자들에게 강요하고 예수님을 믿는 일을 방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를 막고자 하나님께서 바울 사도를 통해서 편지(로마서)에서 위와 같이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세운 교회와 로마교회의 성도는 처음에는 다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은 사람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들이 성령으로 시작해서 잘 믿고 있었는데 유대인 거짓 교사가 가만히 들어와서 율법을 지켜야 의롭게 되고 율법을 우선시 해야 된다고 하니 이들의 유혹에 빠져서 첫 믿음과 성령의 인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이를 바울 사도가 바로잡고자 또한 행위가 아니라 믿음이다 라고 바로 잡아 주는 것입니다. 다시 올바른 길로 가던 자신의 성도가 속아가고 있기에 이를 바로 잡아 주어야만 했습니다.
따라서 당장 율법도 없이 그냥 예수님을 믿고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자 하는 우리(예를 들면 한국인과 같은 율법이 없는 이방인)에게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날 때부터 율법도 모르고 배우지도 않고 신자가 되어서도 율법에 관심도 없다면 이런 이방인 성도에게 율법을 논함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물론 종국에는 우리에게도 해당이 되는 말씀임을 믿습니다. 분명히 그렇고 우리도 율법을 잘 배워야 예수님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되고 말씀도 올바로 이해하게 된다고 이미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현실적이며 시급한 문제로서 우리와 같이 율법이 없이 예수님을 믿고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 신자와 당시 이방인 신자들에게 과연 세상에서 살면서 해야 되는 행동의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 문제가 여전히 존재합니다.
물론 예수님을 믿은 유대인 신자 즉 바울 사도와 당시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신자들의 행동의 기준에 대해서도 같이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이미 믿고 구원을 받고 의롭게 된 성도의 삶은 기준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 문제가 여전히 지금이나 그때나 남아 있습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까지 오직 믿음이다라고 주장할 사람은 지구상에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을 믿고 살아라 하는 것이 정답이기는 합니다. 로마서 1장 17절도 분명하게 이렇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믿고 살아라 하면 성도 개개인은 매일 매일 순간순간의 삶에서 어떤 결정을 내려서 행동하고 살아가야 하는데 오직 믿음이라는 가르침은 너무나 막연하고 답답하고 개개인의 판단이 요구가 됩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이렇게 성도가 기준도 없이 세상에 내 팽개쳐지고 개개인의 자의대로 살도록 하지 않으셨습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면 질서 속의 그리고 성령 안의 의와 평강과 희락의 하나님의 나라는 절대로 이 땅에 세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정의와 질서의 하나님께서 절대로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믿음을 넘어서 이 믿음으로 삶을 사는 부분에 와야 합니다. 로마서 1장 17절은 분명하게 믿음을 갖고 하루하루 삶을 믿음대로 사는 사람을 의롭다 하신다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때 예수님의 사복음서의 율법에 대한 말씀은 가장 먼저 우리의 행위(성령의 인도를 받는)의 기준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마태복음 5장 17-20 절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율법에 대한 말씀은 율법의 조문조문을 잘 지켜야 하고, 더 나아가서 사랑과 정의와 신의에 대한 조항의 이행이 더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율법의 조문조문의 이행을 하려고 사랑과 정의와 신의의 조항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율법을 조문조문 잘 지키고 그렇게 지키도록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큰 자가 되고 작은 조문이라도 어기거나 어기도록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가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분명하게 천국에서 상이 주어집니다. 이 말씀을 잘 지키지 않고 살면 천국에 가도 지극히 작은 자로 영원토록 살아야 하고 혹 천국에 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서의 지위나 역할이 천국에서 완전히 반전이 있고 그 반전은 영원을 결정하고 바꿀 수도 없으니 이 말씀을 반드시 존중하고 암송하고 잘 지켜야 합니다.
세상의 누가 이 예수님의 엄격하신 말씀에 도전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도전하고 율법을 무시하고 지키지 않거나, 혹은 다른 사람이 율법을 지키지 못하게 하는 자(모든 부분에 있어 율법은 폐지되었다. 혹은 모든 부분에 믿음이면 되니 행위는 필요 없다고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 가더라도 지극히 작은 자로 영원히 살아야 할 것입니다. 차라리 가르치는 분이 되지 않으셨다면 이렇게 가르치지 않아서 더 다행일 수도 있는데 교사가 되고 목사가 되고 신학자가 되어서 이런 실수는 절대로 용납이 되지 않습니다.
여전히 율법은 살아있고, 행위의 근거가 되며,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신약의 성도는 성령을 약속대로 받고 성령의 인도로 혹은 주님과 동행하면서 율법을 완성할 의무가 있을 뿐입니다. 아울러서 굳게 세워야 하고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야 하며 율법을 완성해야 합니다.
이런 의미를 잘못 이해해서 성도가 성령도 없고(성령 세례를 받지 않고), 율법도 없이(율법을 배우지도 실천도 안 하고) 세상 법에 완전히 몰입된 삶을 사라는 말씀이 절대로 아닙니다.
믿음이냐 혹은 율법의 행위냐를 설명하시는 말씀은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가 있다는 주장을 하는 잘못된 유대인들에게 맞서서 바울 사도가 동족 유대인들에게 먼저 예수님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통해서 의롭게 된다라는 당시 거짓 교사의 가르침을 따르지 말고 모든 것에 우선해서 먼저 다른 생각을 말고 예수님을 절대로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불신 이방인과 유대인이 무엇을 통해서 구원받느냐, 혹은 의롭게 되는가를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결코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이후의 성도, 그리고 의롭다 인정을 받은 성도의 삶에 대해서, 행동의 기준에 대해서 오직 믿음을 갖고 소극적으로 마음대로 사라는 말씀은 절대로 아닌 줄로 믿습니다. 이때는 믿음을 갖고 적극적으로 하루하루 살아야 하는데 그 사는 방법이 또 로마서 7장 6절의 성령의 인도를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하루하루 산다는 의미와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는 의미가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로마서 1장 17절은 이렇게 로마서 7장 6절로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어 성도들이 어떻게 믿음 생활을 해야 하는지 방향을 정확하게 제시합니다. 그리고 그 삶의 결과가 로마서 3장 31절의 율법의 굳게 세움, 로마서 13장 7-8절의 율법의 완성, 그리고 로마서 8장 3-4절의 율법의 요구하는 바를 이룸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로마서 1장 17절은 향후 로마서 전체를 살피면서 이해를 해야 됩니다.
그래서 결코 구원받은 신자가 혹은 의롭게 된 신자가 이방인 신자, 유대인 신자 불문하고 세상에서 살면서 모든 올바른 삶의 결정의 근거가 되는 율법을 멀리하고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말씀이 1%도 아님을 또한 우리는 굳게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그 믿음이 늘 변치 않고 지속은 되어야 하겠지만 즉 믿음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해야 되겠지만 믿음의 적용을 신자의 행동의 기준이 되고 예수님께서 반드시 지키라고 명하신 율법에까지 확대 적용해서 성도들이 율법에 대해서 오해하도록 해서는 절대로 아니 될 것입니다. 즉 오직 믿음이고 율법이나 행위가 아니다고 해서 이를 믿음의 시작 단계에서 확대 적용해서 온 믿음을 갖고 살아야 하는 영역까지 확대함에 있어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인도는 위와 같이 분명하게 율법을 완성하고 굳게 세우고 율법의 정의로운 요구를 이루는 방향으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중요한 포인트를 놓치게 되면 율법의 반드시 시행이 되어야 이루어지는 질서와 평화와 기쁨의 하나님의 나라는 절대로 쉽게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이 없는 하나님의 나라는 목사 마음대로 하고 신학자 마음대로 하는 절대로 이상한 나라가 될 것입니다. 이런 나라를 하나님께서 절대로 세우지 않고 그 나라의 운영을 일개 목사의 믿음이나 행위에 절대로 두지 않습니다. 한 위대한 목사도 겨우 100년이면 끝이 나고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모든 대형교회 목사는 이에 대해서 아시고 겸손 또 겸손해야 하고 그냥 율법을 잘 배우고 율법대로 성령의 인도로 사는 것이 가장 현명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과 같이 살도록 해야 천국에서 큰 자가 되고 자기 마음대로 살면서 자기와 같이 사라고 하면 지옥이 분명합니다.
모든 일에 믿음으로 행하는 것 또한 필요함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렇지만 믿음으로 행한다고 법도 질서도 없이 막무가내로 성도 마음대로 하라는 것도 절대로 아니지 않겠습니까? 이 기준을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장에서 세워주셨고 그 기준을 어떤 세상의 성도가 허물어서는 절대로 아니 될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불복이며 도전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마태복음 5장 17-20 절의 말씀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기초입니다. 누구도 무슨 성경 이해와 해석과 설교로 절대로 이 말씀을 흔들어서 아니 되고 흔들리지도 않고 도리어 이 말씀에 도전하는 자는 그 최후가 분명하게 비참할 것입니다.
모든 목자는 이런 말씀에 대한 분별력을 가지고 자신의 성도를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의 율법의 준수의 문제에서 모든 율법을 문자적으로 다 지키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조항 중에서 예수님께서 오셔서 친히 성취하신 제사나 제물, 제사장에 관한 규정, 성막에 관한 규정 등은 지키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이에 대한 기준이 연구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율법의 더 중요한 바 의와 자비와 신의를 실천하기 위해서 어떤 조항을 행할 때 각각의 상황에서 문자적 이행이 아니라 문자를 넘어서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예수님 말씀 마태 23:23).
마 23: 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23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아, 너희 같은 위선자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박하와 회향과 근채에 대해서는 십분의 일을 바치라는 율법을 지키면서 정의와 자비와 신의 같은 아주 중요한 율법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십분의 일세를 바치는 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지만 정의와 자비와 신의도 실천해야 하지 않겠느냐?
23 “Woe to you, teachers of the law and Pharisees, you hypocrites! You give a tenth of your spices—mint, dill and cumin. But you have neglected the more important matters of the law—justice, mercy and faithfulness. You should have practiced the latter, without neglecting the former.
그리고 신약의 모든 성도는 반드시 율법을 하나님 나라의 기본법으로 이스라엘 백성과 같이 어려서부터 배워야 하고 부모는 자기 자녀를 가르쳐야 하고 지키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이 성도의 모든 신앙생활과 행위의 기준이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하나 됨이 이렇게 하나님께 모세를 통해서 모든 인류에게 주신 율법을 통해서 율법대로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또 주님과 동행하면 성령께서 그리고 주께서 우리의 모든 행동을 율법의 요구를 수행하고 완성시키는 방향으로 인도하실 것이 분명합니다. 이를 로마서 위의 구절들에서 정확하게 확인을 했습니다.
절대로 성령께서 혹은 예수님께서 믿는 이들이 율법을 어기면서 이 세상에서 살도록 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즉 그분들께서 율법의 내용과 위반되는 방향으로 성도를 인도하시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마태복음 5장 17-20 절의 말씀을 하신 예수님께서 어찌 성도를 율법의 내용과 다른 방향으로 인도하시겠습니까? 상상도 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다만 성도가 율법과 다르게 불의를 행하며 사는 것은 성령도 무시하고 주님의 뜻도 저버리고 오직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 사사로이 행하며 사는 것이 될 것입니다.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천국에 결코 들어가지 못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절대로 입니다. 1000명의 대형교회 목사는 율법을 버리고 자기 마음대로 하면 결코 천국에 가지 못하고 성도도 그렇게 가르치면 그 가르침을 성도가 받아서 믿고 옳다고 받아서 오직 믿음이면 다 된다고 믿고 자기 원하는 데로 막 살면 지옥에 가니 이 죄를 어찌 감당하시렵니까? 절대로 하나님께서는 이 지구상의 어떤 사람에게도 성도의 행동의 기준을 정하도록 맡기지 않았고 오직 그분의 법으로 즉 율법으로 정했으니 모든 지구상의 성도 목사 혹 신부는 경거 망동을 삼가야 할 것입니다. 즉 자신을 따르라고 하지 말고 오직 율법을 잘 배우고 성령의 인도로 율법을 완성하세요 라고 가르치고 격려하고 인도해야 할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로마서 전체를 통해서 쉬지 않고 이를 강조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일생을 가난하게 핍박을 받고 돌에 맞고 파선하고 강도를 맞고 결국은 순교까지 한 자신의 삶을 본 받으라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물질이 우상인 시대에 물질을 두 손 가득 쥐고 대형교회 목사라고 자신을 따르라는 말과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습니다.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한 사람은 천국에서 큰 자가 되게 인도하고 어떤 목자는 자신도 지옥이고 성도도 지옥에 가게 인도합니다. 모든 이단은 다 그렇습니다.
성경 말씀, 성령님, 예수님은 모두 일치되어 있고 율법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과 성경 말씀은 어긋남이 없고, 모세 오경의 율법도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니 성령님의 감동이나 인도와 틀림없이 일치함이 분명합니다.
일천만의 성도가 있기에 모든 한국의 문제를 성경적으로 바로 잡아서 정의롭고 공평하며 살기에 행복한 세상을 틀림없이 만들 수 있는 여건이 된 한국에서 너무나 많은 백성이 참고 더 이상 살기에 힘든 불의와 불평등이 존재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율법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이를 누구나 반박할 수 없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증거를 성경적으로 제시합니다.
한국의 모든 심각한 문제는 집 문제 땅 문제에서 비롯됩니다. 나라를 망치는 빈부의 격차도 여기에서 비롯 돱니다. 좁은 땅에서 집도 부족한 상태에서 집과 땅을 인간의 죄성을 조금도 인정하지 아니한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서 마음대로 가지도록 한 지금의 헌법하에, 사람이 더 이상 살 수가 없는 불평등과 불의가 발생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국부론의 저자 아담 스미스는 배려하는 인간을 가정했지만 인간은 죄로 인해서 타인을 밟고 속이고 빼앗고 죽이는 존재이기도 하고 국가간에서 더욱 심하니 루터 신학으로 모든 국민이 성도인 독일의 제국주의와 모든 사람이 믿는 사람인 유럽의 제국주의 그리고 일본의 만행을 안다면 절대로 아담 스미스는 그렇게 가정을 세우지 않았고 국부론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안 사람은 별로 없었고, 모두가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에 취해 있습니다. 그리고 율법의 중요성과 필수성과 정의로움에 대해서 가르치는 이는 별로 없습니다. 이로 인해서 이 율법(모세 오경의 율법)이 모든 일천만 성도가 국법에 앞서서 배우고 지켜야 할 천국 백성의 유일한 법 임도 알지 못하고, 오늘도 수많은 신자가 세상의 법을 따라서 죄악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2025년 참혹한 한국의 현실입니다.
물론 많은 세상의 법이 건전하고 질서를 세우며 사람들이 평안하게 사는데 큰 도움이 되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이는 인간이 만든 법으로 하나님의 법과 달리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거나 정의롭지는 절대로 아니합니다. 그리고 이를 집행하고 판단하는 그리고 만드는 기관이 독재를 행하면 법도 소용이 없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서 집값과 땅값이 더욱더 상승해서 많은 문제가 야기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근로자 중에서 하루에 일당이 15만 원인 집이 없는 근로자가 자신의 집을 가진 근로자와 같이 일을 하고 있다고 가정합니다. 자신의 소유의 집과 땅이 없는 근로자는 하루에 15만 원 버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서울과 경기에 집과 땅을 가진 근로자의 경우 그 수입이 집이 없는 근로자와 완전히 다릅니다.
지방에 집과 땅을 가진 사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문재인 정부와 그 이전의 정부도 역시 집값이 오른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함에도 최근의 예를 보면 서울의 아파트 가격이 5년 동안에 8억이 올랐다고 하면 일 년에 약 1억 6천만 원이 오른 것이다. 그리고 이를 매일 매일로 계산하면 하루에 약 45만 원씩 올라서 그 아파트를 가진 사람의 수입이 매일 그렇게 느는 것이 됩니다.
그는 일당도 15만 원씩 매일 벌고 또 이와는 별도로 집을 통해서 매일 그렇게 버는 셈이 됩니다. 국민의 48%는 집이 없으니 일하는 날 일당 15만 원이 전부이나 서울 경기에 아파트나 집이 있는 사람들은 일하지 않는 날을 포함해서 매일 집값 상승분 45만 원에 플러스 일을 하는 날 15만 원의 수입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국토의 가용국토 100% 중에서 국민의 약 30%만 그 모든 토지를 소유하고 국민의 약 70%는 자신 소유의 땅이 한 평도 없는 것이 한국의 실정입니다. 그래서 땅이 있는 30%의 사람들은 또 집값 상승과 별도로 땅값이 오름에 따라 땅이 없는 백성 70%와 달리 땅값 상승으로 인한 수입이 매일 매일 발생합니다.
이런 틀림없는 한국의 현실은 한국 헌법에 보장된 모든 국민의 권리 즉 자유권, 행복 추구권, 평등권, 재산권 보장, 교육에 대한 권리, 참정권, 생명의 존엄 등의 모든 권리를 모든 국민이 누리게 하는 것을 어렵게 합니다. 헌법을 유명무실(이름은 있으나 실익이 없는 상태를 설명함)하게 하는 망국적인 현실입니다. 모두가 이렇게 일을 하지 않고 돈을 버는 원리를 알기에 집도 투자하고 땅도 투기를 합니다. 돈이 없는 개인은 자신의 노동으로 살아야 합니다. 절대로 이들을 경제적으로 이길 수도 앞설 수도 없습니다.
아무런 노동도, 노력도 없이 자고 나면 수입이 느는 정의와 공평의 관점에서 너무나 불의하며 불공평한 일이 발생한 것으로서 나라의 붕괴가 일어날 수도 있는 타락(죄로 인한 낭패)이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국민이 다 기회가 있고 돈이 있으면 더 돈을 버는 일에 투기를 하니 이 나라가 결국은 빈부의 격차가 겉잡을 수 없이 크게 되고 멸망하게 됩니다. 지금은 그런 중에 와서 무너지는 이 나라를 정치적으로 걱정하고 해결하고자 하난 실상은 영적으로 이렇게 무지하고 썩었기에 그렇습니다.
누가 자본주의 제도하에서 이런 불의와 불공정을 지적하고 바로 잡겠습니까? 집을 가졌거나 땅을 가진 사람은 절대로 누구도 이를 지적하지 않으려고 할 것입니다. 집이 있고 땅이 있는 국민의 52%는 매일 매일 이를 계산하며 춤을 출 것이 분명합니다.
그들은 오른 집값과 땅값으로 무엇을 하지 어떻게 돈을 쓸까에 골몰할 것입니다. 그러나 집이 없는 국민의 48%는 그리고 땅이 한 평도 없는 국민의 70%는 한숨과 탄식과 그리고 삶에 대한 체념과 포기가 그들의 일상이 될 것입니다. 이런 원리도 모르고 또 공부도 열심히 하고 일도 열심히 하면 잘 살 수 있다고 믿는 국민이 또 많습니다. 혹 어떤 사람은 성공하고 자랑도 합니다. 그런데 자유 경쟁의 큰 틀은 그대로 있고 이미 이 구조가 완성되고 굳어져서 바로 잡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서로 죽자 사자 더 땅과 집에 집착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모두가 죽습니다. 멸망입니다. 이 멸망을 빛이 되고 소금이 되는 우리가 성령의 인도로 율법을 세워서 바로 잡자는 것입니다.
이들 중에서 너무나 살기가 힘이 들고 주변의 사람이 보기가 싫어서 매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한국에만 하루에 40명이 넘습니다. 그 나라가 우리가 사는 한국입니다. 제가 군산에 직장이 있어 3년째 사는데 이렇게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 그리고 섬에 가니 그 섬을 누군가가 조각 조각 내어서 다 샀습니다. 한 평에 수백만 원 하는 곳도 있고 관광지는 천만 원이 넘습니다.
한 국가가 망하는 것은 국민의 통합이 와해 되고 적국이 쳐들어 와도 그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열의가 사라질 때 혹은 적군의 침략을 방조할 때 이루어집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잘 살 수가 없다고 체념한 사람들이 늘 때 나라는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라가 무너질 때 가장 큰 피해는 잘 사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지금 2025년의 한국은 그런 모습이 보입니다. 망하고 있습니다. 속히 누가 바로 잡아야 하는데 저는 1000명의 대형교회 목사가 나서야 한다고 외치는 것입니다.
이 일을 바로잡는 일을 모든 믿는 이들이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고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모든 예수님을 믿는 이들의 사명입니다. 믿지 않는 이들에게 먼저 본을 보이고 이들도 그렇게 살도록 해야 되는 의무가 모든 크리스천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불의한 세상 가운데서도 우리는 절대로 희망을 끈을 놓지 않고 있으니, 그것은 바로 율법의 건재함에서 비롯됩니다.
우리는 세상의 밑바닥에서 살면서 많은 불의를 경험하고 때론 실망하고 때론 격분하였다. 어디에다 호소도 못하고 권력과 강자에게 당하면서 기댈 곳 없는 소망 없는 존재와 같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모세 오경의 율법에 주목하게 되고 큰 빛과 소망을 보게 되었습니다. 모세 오경의 율법 속에 진정한 정의와 평등이 있고 이 법이 세상에서 지켜지게 되면 모든 인간이 평안하고 행복하게 됨을 보았다.
그리고 비로소 안도하였고, 이 땅을 천국으로 만드는데 소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실로 40년의 고통스러운 삶이 주님으로 인해서 보람되고 축복이며, 반드시 견디어 내어야 하는 삶임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런 한국의 망국적인 문제를 고칠 유일하며, 정의롭고 공평한 지상 최고 최선의 법이 율법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전능하시고 정의로우시며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의 법이며, 특별히 믿는 사람의 국법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예수님께서 다시 이 땅에 오셔서 온 세상을 심판하실 때 심판의 기준이 되는 준엄한 법이 바로 모세 오경의 율법입니다.
그리고 인간 누구도 일점 일획도 침범할 수 없고, 하늘과 땅과 모든 만물이 사라진다 해도 온전히 그대로 존재하는 엄위한 법입니다. 우리도 가고 우리 자손도 이 땅을 떠나가도 율법은 모세부터 3500년을 일점 일획이 변함없이 온 지구상에 사는 모든 사람을 심판할 법으로 존재했고 또 존재할 것입니다. 인생의 100년 좁은 식견으로 살지 마시고 영원한 정의 공평의 법 율법으로 사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1000년 역사를 통해서 사람이 어려우니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아서 완성하셔야 합니다. 저도 여러분도 모두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목자는 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하고 이 말씀을 잘 배우고 지키고 성도도 잘 배우고 지키게 해야 천국에도 가고 큰 자가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대형교회 목사라 해도 인간이고 겨우 100년의 삶인데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가 온 우주에 걸쳐 있고 온 지구상에 다 포함이 되는데 작은 한국의 교회의 목사로 온 우주와 지구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말씀 율법을 멀리 두고 자신의 믿음과 본을 받으라고 하면 얼마나 어리석고 못난 일이 아닙니까? 정신을 속히 차리시고 율법 앞에 공경하고 통회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위대한 율법이 있으므로 우리는 희망을 가지고 늘 율법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 율법에서 어떻게 집 문제와 땅 문제를 말씀하시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이 율법과 관련된 성경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땅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창조물이고 그 소유자가 하나님이시라고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 1절에서 분명하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창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늘들과 지구)
1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s and the earth.
그리고 레위기 25장 23절에서 토지가 하나님의 소유이며 사고파는 것이 제한되어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레 25:23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2)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23 No land may be permanently bought or sold. It all belongs to me--it isn't your land, and you only live there for a little while.
진실로 하늘과 지구는 하나님께서 무에서 창조하셨기에 존재한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부동산 즉 토지는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이며 사고파는 것이 제한이 됨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 땅에 사는 모든 인간이 잠시 이 땅에 살다가 가는 나그네 임을 성경은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럴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각 나라의 경계를 분명하게 정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예를 보고 다른 민족의 예도 보겠습니다.
시편 74:17 주께서 땅의 경계를 정하시며 주께서 여름과 겨울을 만드셨나이다
104:9 주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여 넘치지 못하게 하시며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출 19:12 너는 백성을 위하여 주위에 경계를 정하고 이르기를 너희는 삼가 산에 오르거나 그 경계를 침범하지 말지니 산을 침범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할 것이라
민 34:3-11 너희 남쪽은 에돔 곁에 접근한 신 광야니 너희의 남쪽 경계는 동쪽으로 염해 끝에서 시작하여 서쪽 경계는 대해가 경계가 되나니 이는 너희의 서쪽 경계니라
북쪽 경계는 이러하니 대해에서부터 호르 산까지 그어라 그 경계가 또 시브론을 지나 하살에난에 이르나니 이는 너희의 북쪽 경계니라 너희의 동쪽 경계는 하살에난에서 그어 스밤에 이르고 그 경계가 또 스밤에서 리블라로 내려가서 아인 동쪽에 이르고 또 내려가서 긴네렛 동쪽 해변에 이르고
행 17: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27 이는 사람으로 혹 1)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26 From one person God made all nations who live on earth, and he decided when and where every nation would be.
27 God has done all this, so that we will look for him and reach out and find him. He isn't far from any of us,
신 32:8 지극히 높으신 자가 민족들에게 기업을 주실 때에, 인종을 나누실 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대로 백성들의 경계를 정하셨도다
8 that God Most High gave land to every nation. He assigned a guardian angel to each of them,
이렇게 하나님께서 민족과 나라의 경계를 정했다고 함은 어떤 국가 강해지더라고 함부로 국경을 넓히기 위해서, 혹은 주변의 약한 나라를 침범하고 수탈하기 위해서 다른 나라의 국경을 범하지 말아야 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영웅은 어떤 국가의 영웅은 타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해서 그 나라를 강하게 하는 사람이라고 배웠습니다. 칭기즈칸, 진시황, 광개토 대왕, 그리고 알렉산더, 시저 등을 영웅으로 생각하며 자랐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보면 이들이 절대로 영웅이 될 사람들이 아님을 보게 됩니다. 성경에서 타국을 함부로 범하고 사람을 죽이고 포로로 잡아간 나라를 하나님께서 반드시 벌하심을 보았습니다. 반드시 그런 나라들은 망하거나 쇠약해진다는 것인데 이런 사실이 역사적으로 정확하게 맞음을 우리는 봅니다.
만약에 이 시대에 중국이 강해져서 주변국을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괴롭히면 틀림없이 중국도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받을 것을 믿습니다. 이 복음을 중국에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해 준 경계를 함부로 옮기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신 19:14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땅 곧 네 소유가 된 기업의 땅에서 조상이 정한 네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지 말지니라
29:17 그의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당연히 이스라엘을 비롯한 이스라엘에 사는 개인은 국가의 국경이나 개인의 경계를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대로 반드시 지키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각 민족이나 국가의 경계를 정하신 데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사장 지금의 목사는 땅을 소유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18:1 레위 사람 제사장과 레위의 온 지파는 이스라엘 중에 분깃도 없고 기업도 없을지니 그들은 여호와의 화목제물과 그 기업을 먹을 것이라
1 The people of the Levi tribe, including the priests, will not receive any land. Instead, they will receive part of the sacrifices that are offered to the LORD,
한글 번역은 분깃이라고 해서 애매하나 영어는 land 즉 땅으로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땅을 가진 목사는 이 말씀을 어떻게 생각하시고, 또 땅을 가지고 계시는지 스스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온 백성이 12지파로 이루어져 있다. 12지파가 다 모이면 이스라엘 민족의 구성원 전부가 모이는 것이다. 이들에게 당시에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점령하고 이 땅을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대로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들도 역시 이 경계를 반드시 지키면서 살아야 했습니다.
이스라엘엔 국가의 경계가 있고, 그리고 모든 사는 부족의 경계가 또 정해졌습니다. 힘이 강성해져도 다른 나라를 침범해서 국토를 넓혀도 아니 되고, 그리고 국민도 자신의 영역을 마음대로 조정하지 못하고 정해진 지역에서 오직 (죽으나 사나) 살아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판 토지는 언제든지 되물을 수가 있고, 50년 즉 희년이 되면 토지를 본래 소유자에게 돌려주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심으로 집과 땅을 함부로 사고 팔지 못했고 백성 중에 집이 없고 땅이 없는 사람이 한 명도 없게 하신 것입니다. 부동산을 통해서 즉 동족이 가질 집과 땅을 홀로 마음대로 소유할 근거를 아예 처음부터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이 율법을 지켰더라면 집과 땅이 없는 사람이 없어서 누구도 삶의 기본은 갖추고 살았을 것이었습니다. 인간이 발을 딛고 사는 근거가 되는 땅과 그리고 사는데 가장 필수적인 집을 가지고 절대로 장난을 치지 말며, 집과 땅이 없는 백성이 절대로 한 명도 없게 하신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배려입니까?
그리고 이제 우리나라와 같이 땅과 집을 주변의 이웃을 무시하고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사야서에 있는데 우리에게도 틀림없이 적용되는 온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 말씀은 아무리 인간이 무시하고자 해도 절대로 무시할 수가 없는 틀림없이 모든 인류에게 적용이 되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이런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즉 이웃을 사랑하기 포기한, 동족을 사랑하기 포기한 무정한 사람들에 대한 징계에 대한 말씀입니다.
사 5:8. 가옥에 가옥을 이으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 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에서 홀로 거주하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9. 만군의 여호와께서 내 귀에 말씀하시되 정녕히 허다한 가옥이 황폐하리니 크고 아름다울지라도 거주할 자가 없을 것이며
10. 열흘 갈이 포도원에 겨우 포도주 한 바트가 나겠고 한 호멜의 종자를 뿌려도 간신히 한 에바가 나리라 하시도다(개역 개정)
8. 아, 너희가 비참하게 되리라. 집을 연달아 차지하고 땅을 차례로 사들이는 자들아! 빈터 하나 남기지 않고 온 세상을 혼자 살듯이 차지하는 자들아!
9. 만군의 야훼께서 내 귀에 대고 맹세하신다. "많은 집들이 흉가가 되어 제아무리 크고 좋아도 인기척이 없게 되리라.
10. 포도밭 열흘갈이에서 술 한 항아리밖에 나지 아니하고 종자 한 섬에서 곡식 한 독이 가까스로 나리라." (공동번역)
진실로 이 경고의 말씀이 멸망한 이스라엘에 그대로 실현이 되었습니다. 불의한 이스라엘(남 유다가 망함)이 망하고 당시의 고관대작과 제사장과 왕족들은(당시의 왕은 시드기야) 죽거나 포로로 잡혀갔고, 그리고 그들이 소유했던 집과 땅은 땅이 없던 빈민들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렘 39:6. 바벨론의 왕이 립나에서 시드기야의 눈 앞에서 그의 아들들을 죽였고 왕이 또 유다의 모든 귀족을 죽였으며
7. 왕이 또 시드기야의 눈을 빼게 하고 바벨론으로 옮기려고 사슬로 결박하였더라
8. 갈대아인들이 왕궁과 백성의 집을 불사르며 예루살렘 성벽을 헐었고
9.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성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자기에게 항복한 자와 그 외의 남은 백성을 잡아 바벨론으로 옮겼으며
10.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아무 소유가 없는 빈민을 유다 땅에 남겨 두고 그 날에 포도원과 밭을 그들에게 주었더라
그런데 이 사건이 남의 일이 아닌 것이 정말로 이와 비슷한 일이 우리에게도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일본이 조선을 강점하고 토지 조사사업을 시행했습니다. 민비를 시해하고 왕을 폐하고 왕자들을 일본으로 잡아갔습니다.
이전의 국토의 왕토 사상으로 글도 모르는 백성이 자신의 토지를 소유하는 것이 너무나 어려웠는데 이 사업으로 개인의 토지 소유에 대해서 새로운 일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600년 한반도를 지배한 이씨 왕조가 해체가 되고 일본이 한반도를 지배했고, 그리고 한국의 토지는 토지조사사업으로 농부들에게 나누어 주어 개인이 소유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조선 시대는 왕족과 양반, 그리고 중인과 백성, 그리고 천민과 노비의 신분제도가 너무나 엄격했고, 조선 시대의 노비는 우리가 아는 흑인 노예 못지않게 인권의 침해를 당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인이 동족의 노비 제도에 대해서 비판하고 잘못이 된 제도라고 말하는 이는 드물고 흑인 노예 제도만 잘못된 제도라고 하니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이 수백 수천 년의 못된 폐습에 도전을 한 천주교의 하나님 앞에 모든 사람이 죄인이며 평등하다는 가르침과 양반과 종이 형제로 되는 사상은 왕과 왕족 그리고 양반에겐 비수와 같고 독과 같았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도가 자신들이 누리는 특권에 도전하자 100년 동안 천주교를 믿는 성도 약 1만 명 이상을 목을 치고, 너무나 다양하고 잔인한 방법으로 고문하고 죽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을 자행한 왕과 왕족 그리고 양반이 있는 조선이 일본의 침략으로 망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역사의 가르침도 배워야 하지만 하나님의 역사하심도 역시 관심을 가지고 보아야 합니다. 역사의 주관자 이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성경을 중심으로 이해하는 능력이 생겨야 비로소 역사의 주관자인 예수님을 만날 수가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세상에 모두가 부동산 광풍에 싸여있다 해도, 일천만 성도는 절대로 이에 기웃거리지도, 보지도, 따르지도 말고 율법의 규정을 지키며, 세상이 이렇게 망하는 쪽으로 가는 길에서 멀어져야만 할 것입니다.
모든 한국의 성도와 세상의 성도는 먼저 한국의 땅이 그리고 온 지구가 하나님의 소유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즉 율법의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즉 이웃에게 해가 되는 집과 땅의 소유를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린아이도 좁은 한국에서 오천만이 살고 있는데 내가 땅을 많이 가지고 집을 여러 채 가지면 땅과 집을 갖지 못하는 이웃이 발생함을 알 수가 있습니다.
집과 땅이 없는 국민은 절대로 어떤 경우에도 이 땅에서 행복하게 살기가 어렵습니다. 결혼도 어렵습니다. 그리고 평안한 삶을 절대로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헌법에서 보장하는 모든 권리를 절대로 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이런 사정을 잘 알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법에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진실로 성도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려면 반드시 모세 오경의 율법을 잘 배우고 지키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한국의 문제가 해결되고 한국이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율법이 해이 해지고, 불의가 만연하면 반드시 정의롭게 사는 자의 탄식이 있고 이런 불의한 세상에서 더 이상 소망을 품지 못한 자들의 이상 행동이 있게 되고 하나님께서 그러한 민족이나 국가 혹은 집단을 망하게 하시는 것이 진리입니다.
이것이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법입니다. 우리가 이런 문제를 고치지 않고 방관하면 반드시 북의 핵에 의해, 혹은 동쪽과 남쪽의 지진에 의해, 혹은 강대국 중국이나 러시아, 일본에 의해 나라가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가장 큰 피해는 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세상에서 불의한 이익을 누리는 자들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이렇게 율법을 배우고 지키는 일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조문조문 잘 지키고 또 정의와 자비(사랑 혹은 긍휼), 신(믿음)에 관련된 더 중요한 내용도 잘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율법을 등한시하는 자는 이 땅에서 비록 어떤 삶을 살았던지(큰 교회 목사, 큰 부자, 혹은 큰 장로, 큰 신자 등등) 천국에서는 결코 큰 자가 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니 그대로 될 것입니다.
한국의 교회를 세우고, 나라를 지키며 국민의 행복과 평안을 얻는 길이 모든 성도가 율법을 잘 배우고 지키는 일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국가나 집단이나 민족이 복을 받고 잘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렇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일에 있어서 모든 나라의 성도보다 한국의 성도가 앞서고 한국의 교회가 앞장을 서서, 세상에서 가장 정의로운 나라, 그리고 사랑이 넘치는 나라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믿고 살만한 세상을 이 땅에 만들어 주님의 인정을 받고, 또 보호를 받는 나라가 되길 소망합니다.
이에 대해 더욱 자세한 내용을 원하는 분은 오천만의 로마서에 있는 로마서 공부 워밍업 부분의 하박국서 정리와 갈라디아서 정리를 참고하길 바랍니다.
4. 논의의 요약
마지막으로 이때까지의 논의를 요약합니다.
믿음의 문제는 아브라함과 하박국의 예를 보면서 이해합니다. 아브라함은 시간적으로 변치 않는 믿음을 가지고 의롭다 인정받았고, 하박국은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믿고(하나님께서 불의한 동족 이스라엘을 바벨론을 사용해서 멸망시킨다는 믿음, 바벨론도 역시 심판을 받는 믿음, 정의롭게 사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보호한다는 믿음) 정의롭게 삶을 사는 믿음의 소유자를 하나님께서 의인으로 설명함을 보았습니다. 이 둘 모두(하나님을 믿고, 정의롭게 행동하는 믿음과 시간이 가도 변치 않는 믿음)를 지닌 사람의 믿음이 의롭다 인정받는 믿음입니다. 구약의 예
신약에 와서 우리는 먼저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세례를 받고 죄를 용서받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되고 이제는 성령께서 우리에게 성령의 충만도 주시고 발걸음도 인도를 하십니다. 주와 동행이라는 표현도 맞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믿음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위의 구약 시대의 믿음을 여기에 그대로 대입하면 신약의 성도는 아브라함과 같이 믿음 생활을 언제나 변치 않고 해야 할 것이고, 또 하박국서와 같이 고난이 온다 해도 변치 말고 하나님(하나님께서 불의를 척결하시는 정의로우신 분)을 믿고 정의롭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평화로운 70년을 살았습니다. 대부분 한국 성도는 예수님을 믿고 상대방보다 더 잘 살고 더 복 받고 더 물질적으로 풍성해지는 삶을 추구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살아야 하는 현실은 항상 이렇지 않습니다. 전쟁이 있을 수도 있고 핍박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북한에서의 신앙생활은 생명을 걸어야 하고 이슬람에서의 예수를 믿는 일도 역시 그렇습니다. 그리고 자본주의 세상에서도 역시 자본주의 자유주의를 극복하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서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와 죽으심을 믿는 사람이며 죄인임을 고백한 사람입니다. 어떤 상황 어떤 현실에서도 우리는 믿음을 굳게 지켜야 합니다. 인생의 길다면 긴 여정에서도 여전히 다양한 시련이 있는데 이럴 때 우리는 아무리 어려운 현실이 와도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이는 홀로 하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언제나 함께 하시며 견딜 힘을 주십니다. 그리고 교회는 늘 든든한 기댈 언덕이고 같은 믿음의 교우는 어려울 때에 더욱 빛이 납니다. 나의 고난을 함께 나눌 교회와 성도가 힘이 됩니다. 우리 역시 모든 어려운 믿음의 형제에게 힘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절대로 어려운 믿음의 형제를 외면하면 바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를 한국에서 사는 모든 성도는 그렇게 어려운 일을 겪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에 없는 평안과 축복을 동시에 주셨습니다. 이를 잊지 말고 반드시 내가 다른 사람보다 물질이나 건강이나 혹 재능이나 조금 이라도 나은 부분이 있으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와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즐겁게 나누어야 합니다. 이 아무런 믿음 생활에 장애가 없는 평화의 시기엔 성경을 깊이 읽어서 많이 깨닫고 그 유산을 우리의 후손에게 남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도 물질이 풍성한 시대에 멋지게 지어서 후손에 남겨야 합니다. 스페인이니 영국이나 미국 프랑스 등 유럽에 너무나 멋진 성당과 교회가 있어서 수백 년을 갑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집으로 다윗 왕이 준비한 예물은 400조가 넘고 스페인은 성당을 수백 년을 걸쳐서 짓고 한국에 성당도 백 년 성당을 짓습니다. 이렇게 물질이 넘치는 시대에 모든 현 시대를 산 성도는 자랑할 성전을 남기지 않으면 후대에 모두가 욕을 먹습니다. 1조원대 이상의 멋진 성전을 짓기를 바랍니다. 성령은 이렇게 우리가 살기를 바라십니다.
이는 다른 말로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을 말합니다. 로마서 7장 6절의 삶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에 대한 인도도 틀림없이 이렇게 인도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우리가 하루하루 믿음 생활을 하는 중에 율법을 무시하고 율법을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완성을 위해서 늘 사랑을 실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도 성령께서 그렇게 인도하실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가 성령의 충만을 받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늘 주와 동행하게 되고 또 율법을 완성하는 방향으로 살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율법을 굳게 세우고 율법의 정의로운 요구를 이루는 방향으로 인도 하실 것이 분명합니다. 언제나 우리의 선택이나 행위가 올바른 것인지 우리가 행동하기 전에 율법과 성경 말씀에 비추어 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는 반드시 율법의 규정을 보면서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음에 있어서도 우리에게 온 감동이 율법(모세 오경)적으로 올바른지 역시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율법을 잘 배우고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사는 성도를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어느 때 적절한 시간에 의롭다 인정을 하실 것입니다. 내가 나를 혹은 목자가 성도를 마음대로 너는 의롭게 되었다, 혹은 나는 의롭게 되었다고 마음대로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 주의가 필요하다고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약의 로마서의 이신 칭의입니다.
칭의는 구원보다 후에 혹은 죄 사함, 성령 선물, 혹은 성령의 인치심, 혹은 새로운 피조물이 된 이후에 하나님께서 합당한 분(변치 않는 믿음 생활과 하나님을 믿고 정의롭게 행동하는 사람)께 적절한 때에 의롭다 인정을 하시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아울러 하박국의 예를 보면서 세상은 갈수록 불의해지고 사랑은 식고 믿음은 찾기가 힘들어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주님의 오심을 고대하고 또 속히 오시길 기도합니다. 주께서 오시면 모든 불의는 제거되고 심판이 진행될 것입니다. 그리고 정의롭게 사는 사람들은 상과 위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말세에 하박국이 가졌던 그 믿음을 가지고 이 말세를 정의롭게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자본주의에 취하지도, 세상의 급변에 취하지도 말고 오직 말씀을 붙잡고, 성령의 충만을 받아 성령의 인도하심대로 복음을 전하며 선한 삶과 정의로운 삶을 살아야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이런 자리에서 모든 이렇게 살고자 하는 성도를 하나님께서 늘 위로하고 격려하실 것입니다. 정의롭게 사는 기준은 언제나 구약의 율법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정의롭게 사는 모든 성도여! 힘을 냅시다!!!
율법의 문제는 반드시 율법을 모든 성도가 잘 배우고 지키는 쪽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신자의 본분입니다. 어떤 신학적인 주장이 있다고 해도 성도들은 절대로 흔들리지 말고 율법을 멀리하거나 혹은 등한시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나라를 살리고 교회를 세우고 나와 내 자녀가 이 땅에서 정의롭게 평안하게 행복하게 사는 길은 오직 율법을 잘 배우고 지키는 일에 달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죄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고, 그리고 성령을 받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서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사랑을 실천하며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랑의 실천과 함께 율법의 일점 일획도 잘 지키게 하셨습니다. 사랑의 구제적인 실천이 율법에 있고 정의의 구체적인 실천도 역시 율법에 잘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성도가 세상에서 이렇게 살게 되면 이런 성도가 사는 곳은 어디나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예수님의 말씀대로 율법이 완성될 것입니다.
정의와 공평이 있고 질서가 유지되며 모든 구성원이 서로 믿고 행복하게 사는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우리는 이를 위해서 부름을 받고 구원받고, 그리고 사역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2021년에 알게 하시고 2025년에 다시 이 글을 보면서 새로 수정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놀랍게도 로마서 14장 17절을 이 글을 쓴 후에 보게 하셨습니다. 같이 봅니다.
로마서 14장 17절
롬 4: 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17. 하느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서 누리는 정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
너무나 놀랍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놀랍게도 바울 사도는 성령의 감동으로 제가 결론이 난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이 냈습니다. 저는 나중에 로마서 14장 17절 즉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의 나라니라 하는 구절을 보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로마서 7장 6절도 2021년 후에 하나님의 은혜로 로마서 1장 17절과 연결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8장 3-4절은 최근에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내용을 다 모르고 제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와 같이 설명을 드렸는데 정확하게 일치를 합니다. 성령을 통한 제 목상과 이해가 정확하게 로마서의 바울의 이해와 일치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기에 이런 일이 있습니다. 이런 저의 로마서의 이해의 순서는 정확하게 연도별로 다 기록이 되어 있으니 모두가 확인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제 새로운 이해를 도표로 보여 드립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개인의 나라가 아닙니다. 공동체의 나라입니다. 율법도 그 특징이 공동체적인 성격이 강합니다. 공동체 중에서 우리가 경험한 약 60년쯤 이전의 한국의 가정과 마을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현 시대와 너무나 다른 공동체 입니다. 가족이 형제도 많고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 심지어 삼촌과 고모도 한 집에 사는 공동체였습니다. 함께 먹고 함께 일하고 함께 나누던 공동체였습니다. 인정이 있고 서로 희생하고 내 것과 네 것이 없던 사랑의 공동체였습니다. 초대교회도 이와 같았습니다. 피를 나눈 사람이 아닌 완전히 다른 사람이 친 형제 이상으로 서로 사랑했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형제가 된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를 이룬 것입니다. 이 공동체가 교회이고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틀림없이 천국에 가면 환경도 바뀌지만 사람간에 그렇게 살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런 삶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 추구도 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천국에 갑니까? 상대방이 약하고 어리고 아프고 가난하고 어려운데 외면한 부자가 어찌 이런 천국에 갑니까? 저를 절대로 가지 못한다고 믿습니다. 저와 같이 성경을 이야기 하는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저는 성령 받은 전도자로 목사로 진리를 전하고 싶습니다. 사랑은 주변이 어려우면 같이 희생하는 것입니다. 집 없는 사람이 50% 땅 없는 사람이 70%의 한국에서 자살자 하루에 40명이 나오는 헬 조선에서 홀로 수십억 이상 가지고 나누지 않는 모든 부자는 예수님을 믿든 믿지 않든 다 지옥에 갑니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절대로 사랑하지 않고 살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의 구절을 지키지 못하면 613조문 전체를 지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들의 의는 결단코 613계명을 예수님도 모르면서 지금 유대인들이 어떻게든 지키려 하니 이들이 사랑이 없어서 모든 계명을 지키지 못하는 한국의 신자보다 더 정의롭습니다. 그래서 너희의 의가 바리새인(지금의 유대인이 이 역할을 함)보다 못하면 죽어도 절대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되는 것입니다. 이 판단 앞에서 어설픈 믿음 이야기는 절대로 통하지 않습니다. 깊이 생각해 보시고 생명의 길로 가시기 바랍니다. 저는 마지막 사람입니다.
자! 자 이제 마지막으로 위의 내용과 함께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루신 율법 완성의 내용을 무엇인지 모두가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동물과 식물의 피 흘리는 제사 없이 바로 하나님께 기도 드리고 하나님을 만나고 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께 바로 기도 드릴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 드리고 예배를 드릴 때 늘 주님과 보혈과 대속의 은총을 먼저 찬양하고 감사함으로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선 과거에 이스라엘 민족이 행하던 하나님을 뵈옵기 위한 율법과 절차를 깊이 이해하지 않으면 아니됩니다. 구약의 제사 제도는 레위기를 통해서 볼 수가 있는데 여러 가지가 있고 대표적인 것이 자신이 키우던 흠 없는 짐승을 성전에 가져가서 죽여서 피를 흘리게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역할을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하셨습니다. 이에 대한 이해가 없이 어떻게 우리는 예수님에 대한 감사와 찬양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율법이 폐기되었다고 하고 예수님께서 이루셨다 하고 이제는 관심도 공부도 지킴도 없이 어떻게 예수를 믿는다 할 수가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이 율법을 완성하려고 오셨으며 친히 피를 흘리시고 제물이 되셔서 이룬 부분에 대한 율법의 완성에 대해서 우선 깊이 이해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모든 율법을 지킬 필요를 너무나 큰 희생으로 줄여주신 은혜를 생각하며 더욱더 힘을 내어서 헌신해야 합니다.
이와 함께 율법으로 제사를 통해서도 용서가 없던 죄가 있었습니다. 사형에 해당하는 죄로서 살인의 죄, 간음의 죄,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어떤 죄는 사형이나 돌에 맞아서 죽어야만 했습니다. 율법에 의해서 절대로 용서가 없는 죄가 존재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이제는 간음한 여인도 돌에 맞아 죽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지었다 하더라고 용서받을 길이 열렸습니다. 이 부분은 율법으로 살 수 없던 사람이 이제는 용서를 받게 됨으로써 율법의 구원하지 못한 사람도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 죄를 용서받고 구원의 길이 열렸습니다. 물론 각국의 법에 따른 처벌은 피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사형에 해당하는 죄에 있어서 율법으로 불완전하던 부분이 예수님을 통해서 더욱 완전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제사장이 되시고 제물이 되시고 제사 방법대로 피를 흘리고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희생을 당하셨으니 율법을 완전케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거룩하신 피와 희생으로 우리가 예수님과 그분의 사역을 믿으면 죄에 대해서 용서를 받게 되고 이런 제사를 드리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이스라엘이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하던 일을 하지 않아도 됩니까?
이제 우리는 남은 모든 율법이 지켜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사랑을 실천하고, 성령의 충만을 받아서 복음을 전하고 선하게 살아야만 되는 의무가 모든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지도자들이 모든 하나님의 백성에게 율법이 아니고 행위도 아니고 오지 믿음이라고 가르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율법은 폐지가 되었다고 가르쳐서 이 세상에 살면서 율법을 지킬 마음조차 갖지 못하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또 사랑도 실천하지 못하게 그 삶에서 구체적인 율법의 조건(조항)들을 가르치지 않고 있지는 않는 것이 아닙니까?
만약에 현실이 이렇다면 성도가 세상에서 어찌 법(이 세상을 천국으로 만드는 모세 오경의 법)대로 사랑하며 정의롭게 살 수가 있겠습니까?
또한 성령에 대한 왜곡으로 성령을 받지도 못하게 하면서, 오직 믿음만 외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리고 믿음 하나로 모든 신앙적인 문제를 다 해결하려고 하면서 모든 성도를 세상의 법만 죽도록 배우고 또 추종하도록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게 함으로써 결국은 모든 율법을 지키게도, 완성하게도 하지 못하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로 인해서 법도 사랑도 없이 자신의 소견대로 마음대로 세상에서 사는 크리스천이 가득하지는 않습니까?
만약에 진실로 교회가 이렇게 성도를 가르친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런 현실의 상황이 과연 누구의 잘못인지 때가 되면 틀림없이 밝혀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의미가 말씀을 사랑한다는 의미이고 이는 율법을 사랑하고 배우고 지키는 것입니다. 이 모든 율법을 지킬 의무를 예수님께서 친히 어떤 부분에 대해선 율법을 완성하셨기에 이를 지킬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구약의 제사 제도) 이제 짐이 너무나도 가벼워진 성도는 예수님의 대속으로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서 성령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으로 복음을 전하며, 또 선을 행함으로 남은 모든 율법을 완성시켜야 할 것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통치는 법의 통치였습니다. 신약에 와서 예수님께서 건설하시고자 하는 하나님 나라 통치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사랑하면 된다! 성령의 인도만 받으면 된다! 틀림없이 정확하게 맞는 말입니다. 또 혹자는 주님과 동행하면 된다고 할 것입니다. 이도 틀림없이 맞는 말입니다. 성도가 이렇게 살면 모든 율법이 자동으로 완성되기에 이렇게 사는 것이 틀림없는 답입니다.
이제 사랑하기 위해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혹은 성령의 인도가 맞는가? 혹은 주님의 동행이 확실한가를 살피려면, 우리는 먼저 나의 어두운 세상 길에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 되시는 말씀 즉 율법의 규정을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율법의 규정대로 한 걸음 한 걸음 올바른 길로 가야 할 것입니다.
가족 중에 누군가 암을 진단받아 수술을 해야 한다고 가정합시다. 의대에서 잘 배우고 의사로서 암 환자 수술의 경험이 있는 의사에게 수술 받게 하는 것과 아무런 지식도 없는 일반인에게 암을 수술 받게 하는 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너무나 큰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과 자기 가족이 암에 걸렸습니다. 이제 수술만이 사는 길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수술 절차에 대해서 잘 아는 경험이 있는 의사에게 당신과 가족을 맡길 것입니까? 아니면 수술만 하면 되니 수술의 경험도 없고 지식도 없는 일반인에게 수술을 맡길 것입니까?
100% 모든 사람은 수술 경험과 지식이 있는 의사에게 자신과 가족을 맡길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고 명하면서 우리의 성도를 세상에 내어 보내는 우리 목사들은 어떻습니까?
그들이 사랑할 대상을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너무나 분명하게 그리고 자세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설명하는 율법을 우리 교회는 가르치고는 있습니까?
심지어 우리는 그들이 율법을 지키지도 못하도록 ‘믿기만 하면 돼, 율법은 폐지가 된 것이야’ 라고 그들에게 가르치고 설교하고 있는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자신의 성도들이 온 세상에서 사랑의 대상인 세상 사람들을 자기 마음대로 대하게 가르치는 것이 정신이 올바른 목사들이 할 일인지 반드시 우리는 잘 생각을 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는 마치 생명을 다루는 의사에게 수술(자세한 절차, 방법, 교육과 실습)에 대해서 가르치지 않고 가서 수술만 잘하면 된다 하고서 세상에 의대생을 내보내서 환자를 수술하게 하는 것과 똑같은 일을 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율법을 모르면 사랑도 마음대로 하고 믿음도 마음대로 하고 성령도 마음대로 해석합니다. 그래서 성도는 사랑도 못하고 믿음 생활도 세상에 못하다 죽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은 의사가 수술을 할 때 지켜야 할 절차이고 방법이고 기술입니다. 사랑도 이렇게 법대로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세상이 이렇게 좋은 공평하고 정의로운 법이 있어서 만국이 통일이 되고 모든 행위에 있어서도 온 세상의 사람이 지킬 같은 규율이 있다는 사실이 축복입니까? 이 귀하고 귀한 축복을 하나님께서 율법으로 온 세상이 주신 것입니다. 진실로 하나님의 사랑의 절반은 먼저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셔서 온 인류가 정의롭게 살게 하신 것이고 또 하나의 사랑이 예수님을 우리 죄인을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시고 사역을 감당하십니다. 그리고 뭐라 하십니까? 율법을 조문조문 잘 지켜라 율법의 정신도 잘 지켜라 입니다. 성령을 받으라고 명하시고 성령께서 오십니다. 무슨 일을 하십니까? 성도가 율법을 완성하고 굳게 세우고 율법이 요구하는 정의로운 의를 이루게 하십니다. 이것이 성경의 핵심입니다. 율법이 빠진 성경은 가짜 그 자체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틀림없이 이들이 누구간에 하나님을 버립니다. 어떻게 버립니까? 자기 마음대로 하면서 버립니다. 제가 한국의 1000명의 대형교회 목사 대부분이 이렇게 자기 마음대로 하는 사람으로 구성이 되어 지옥이 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원리를 아주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이를 알면서도 그렇게 하는 사람은 마귀 그 자체인 사람입니다.
인간의 육체의 생명은 겨우 100년만 살지만, 영혼의 문제는 영원한 시간의 삶의 문제와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목사와 교사는 성도가 세상에서 정말로 법(모세 율법)대로 사랑하고 법대로 믿고 법대로 행하게 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영원을 다루는 영성을 가르치는 사람은 100년의 육체를 다루는 의사와 비교가 불가합니다. 그래서 모든 의사가 주일날 조용히 성당에 가서 교회에 가서 목사의 설교를 듣는 것입니다. 이들이 진실로 의사보다 검사나 변호사보다 더욱 더 성경을 깊이 잘 이해하고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이들의 권세는 하나님께서 세우심도 있지만 영원한 생명을 터치하는 일반인이 갖지 못한 전문성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얼마나 율법이 귀하고 찬양의 대상이며 경외의 대상입니까?
이 법이 바로 모세의 율법이며 예수님께서 반드시 모든 성도가 지켜야 한다고 하신 법입니다.
우리는 모든 성도를 가르치는 분들이 이런 원리를 이해하고 반드시 성도들에게 세상에서 어떻게 사랑하고 어떻게 정의를 행해야 되는지 구체적으로 세세하게 가르쳐 줄 것을 간절히 바랍니다.
성도가 이럴 때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하고 우리에게 물을 때 우리가 그들에게 ‘기도하고 하세요’라고 하면 부족합니다. 그렇게만 하고서 성도를 세상에 내 보내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가 먼저 모세의 율법을 잘 배우고 실천하면서 이들을 잘 가르쳐야 할 줄로 굳게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성도가 세상에서 하루하루 순간순간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는 쪽으로 행하도록 반드시 지도해야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목사나 지도자에 대한 너무나 간절하신 바램입니다. 너무나 간절 간절하신 바램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근간은 율법(모세의 법)이며 하나님의 나라는 법치입니다. 이 나라는 모든 성도가 율법을 잘 배우고 반드시 모든 행위에 있어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되는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목사나 신학자나 혹은 교수를 세워 두고 그들이 마음대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끄라고 절대로 절대로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렇게 하면 욕심이 많은 인간은 독재도 하고 마음대로 할 것이 너무나 분명하고 전지하시고 역사의 주관지이신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이미 1000년 동안 기회를 주시면서 너무나 속이 썩고 또 썩었기에 절대로 이전 이스라엘과 같이 그냥 인간에게 맡기지 않습니다. 이제는 성령님 하나님을 보내서 아예 인간의 마음에 계시게 하시면서 그 마음을 주관하시고 인도하셔서 율법을 지키게 하십니다. 얼마나 예수님의 율법에 대한 열의가 강하고 집착이 강하고 아마도 온 세상이 끝이 나도 절대로 누구에게도 0.000%도 양보하지 않을 율법의 준수에 대한 변함없고 흔들리지 않는 결의입니다. 이 예수님의 강렬한 뜻을 절대로 어긋나게 마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지옥입니다. 예수님께서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신 말씀은 죽어도 불가능하다는 단호한 말씀입니다. 절대로 이 말씀에 불을 보고 뛰어드는 불나방과 같이 하루살이와 같이 도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음대로 하는 자가 그런 불나방이나 하루살이에 불과하니 대형교회가 목사로 신학자로 성경 연구가로 있어도 소용이 절대로 없고 이들이 권세를 악용해서 더 율법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살 유혹이 크고 가능성이 너무나 큰 사람입니다. 사람이 물질에 미치고 권세에 미치고 여자에 돈에 미치면 천국도 지옥도 눈에 보이지 않게 되고 지옥으로 반드시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인도가 온전한지 반드시 성도가 율법에 비추어 보고 행동해야 되는 나라입니다. 그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요 한 마디로 율법대로 되는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요 하나님께서는 자기 마음대로도 통치하지 않으시고 성도가 누구라도 마음대로 통치하지 않게 하시고 오직 율법에 의한 통치인데 이것이 어려우니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아서 성령의 인도로 율법을 지키면 되는 통치로 모든 성도는 이 부분에 즉 예수님과 성령님 앞에서 겸손 또 겸손해야 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는 사람은 소망이 없습니다.
율법(모세의 법)이 온 세상에 잘 알려지고 모두가 율법을 잘 지켜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의 나라 즉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오기를 예수님께서 가장 간절히 원하시고 예수를 믿는 우리는 또한 간절히 소망합니다.
끝으로 제 글을 항상 읽어주신 온 세계에 있는 모든 분께 큰 감사를 드립니다. 약 35만 명의 분들이 약 5년 동안 쉬지 않고 글을 쓸 수 있게 쉬지 않고 힘을 주셨습니다. 모든 분이 영적으로 대가가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지금은 120개국 50만 명이 되었습니다.)
5 하나님의 나라의 건설
2021년 당시 이렇게 글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위의 내용 중에 제가 약 4년 동안 하나님께서 새롭게 주신 내용을 추가했습니다. 이제 50 만 명이 120개국에서 읽고 있고 약 오천만의 로마서로 복음을 전한 지가 8년쯤 되었습니다. 2025년 10월의 현재입니다.
추석이 끝이 나고서 700 명의 신학자 VS 한 명의 성령을 받은 전도자란 글을 올리면서 2021년 6월에 쓴 글을 그대로 가져왔고 새롭게 이해가 된 부분은 추가로 설명을 드렸습니다. 제가 8년 전에 전할 때와 너무나 많은 부분이 보완이 되고 새롭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서로 어긋나지 않고 오직 이전에는 덜 이해한 것이고 시간이 가면서 온전해 지고 있으니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음이 온 천하에 조금도 숨김없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제 8년의 글을 분석하면 정확한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제 4년이 지난 한국의 현실을 봅시다. 중국과 미국의 새로운 냉전이 격화가 되고 새롭게 당선이 된 윤 대통령은 다수당 이재명의 민주당이 탄핵을 줄줄히 하니 견디다 못해서 대통령의 권한인 계엄을 선포했는데 2024년 12월에 했습니다. 즉각 민주당이 반발하고 온갖 세력이 정부에 덤볐는데 방송, 공수처, 군대, 경찰, 공무원, 법원, 헌법재판소, 일부 국민이 다 합세를 해서 대통령을 내란범으로 몰고 감옥에 넣었습니다. 내란은 권력을 지닌 정부에 권력을 찬탈할 목적으로 덤비는 권력이 없는 자들의 행위인데 이미 정권을 잡은 윤대통령이 내란을 했다고 온 국민을 지금까지 속이며 대통령을 겁박하고 이제는 이를 반대하는 목사와 교회를 압수 수색하고 미군부대도 압수 수색하고 미국 대통령과 이재명 대통령이 만났는데 이도 온 국가가 세계적으로 보는데 거짓말을 하고 이제는 무역도 경제도 모두가 어떻게 될지 모르고 환율은 크게 오르고 나라의 전산망이 불에 탔는데도 냉장고를 부탁해 오락에 나가서 대통령과 부인이 웃고 김현지라는 국적과 출신이 불분명한 여인이 고위 공직자로 국정을 농단하고 목사가 감옥에 갔습니다. 정부 요직에 있는 사람은 북한을 노골적으로 옹호하고 중국에서 무비자로 500만명이 들어옵니다. 이 나라는 불의의 극치를 달리면서 급하게 무너지고 있습니다. 누구도 이를 막을 사람이 없고 유튜브 방송에서 우파가 소리를 높이나 군대와 경찰과 공무원을 대통령이 지휘를 하고 검사들이 날뛰고 있으니 사람이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앞에서 경고한 대로 소망이 없는 사람들은 이재명이 집과 땅을 준다면 무슨 짓을 해도 용납할 지 모릅니다. 중국이 이 한국의 세계 7위 경제 대국의 부를 먹고 있고 북한이 날뛰고 있는데 국민은 일부가 크게 소리를 치나 1000명의 대형교회 목사는 입을 닫고 아무 말도 아니 하고 침묵합니다. 국민의 약 50-60 %에 해당하는 집도 땅도 없는 사람의 방관이 시작이 된 것입니다. 이대로 이 정권을 통제하지 못하면 중국이 북한이 이 나라를 점령하게 되고 이 나라에 교회와 성도는 예수님을 믿는 일을 포기해야 하고 미국과 관계가 악화가 되면 미국은 일본을 무장시켜 중국과 북한과 한국과 러시아를 통제하려고 할 것이고 이 나라는 북한의 체제가 되거나 중국의 체제가 되어 자유도 없고 가난하게 되고 부가 이동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고 올바른 말을 하는 모든 사람을 감옥에 가두고 순교를 시킬 것입니다. 이렇게 4년 만에 나라가 급변했습니다. 윤 대통령께서 어떻게든 이 나라를 바로 세우려고 했지만 정권을 잡고 분투를 했지만 내부 배신으로 군대의 일탈로 경찰과 사법의 불의로 감옥에 갔습니다. 정말로 안타깝고 눈물이 나는 현실입니다. 저는 이도 슬프지만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이런 현실을 초래한 대형교회 목사 1000명에게 더 분노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를 8년 전부터 쉬지 않고 경고를 했습니다. 모든 경고의 자료가 다 오천만의 로마서에 있습니다.
윤 대통령의 옥중 생활로 야윈 모습을 보니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미국이 도우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돕지 않으면 이대로 한국은 쉬지 않고 몰락합니다. 누가 나라에 대한 관심도 사랑도 없이 이 나라의 부를 중국이 탐내고 북한이 탐내고 이재명 정권이 탐내고 있으니 소망이 없는 부자들이 줄줄이 탈출할 것입니다. 어디로 갈지 모릅니다. 경제 군사 사법 모든 것이 무너지니 하박국 시대가 시작이 되었고 이는 하나님의 분노에서 비롯이 되는 것입니다. 70년 평안과 밤과 낮을 쉬지 않는 축복을 오직 한국에만 부은 축복을 부자들이 독점하고 재벌이 독점하고 일부 국가 세력과 사람들이 독점하고 나누지 않으니 살 수가 없는 국민이 하루에 40명이 자살을 해도 이를 고칠 대형교회 목사가 잠잠하고 이런 현실을 촉진하고 부추기며 자신도 한국의 부를 손에 넣으려고 광분해서 집과 땅과 사례비와 온갖 물질의 혜택을 누리면서 자신을 따르라고 했으니 이들이 주범이고 이들에게 분노한 하나님의 징계가 우리가 사는 세상의 고통인 것입니다. 한국이 사는 유일한 길은 이들 목사들이 회개하고 재물을 속히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고 장로 권사에게 나누라고 하고 율법을 지켜서 집과 땅을 모든 국민이 갖고 살게 해야 고칠 수가 있는데 저는 이를 8년전부터 외친 사람입니다. 이런 일이 있을지 몰랐고 세상이 하도 악해서 윤 대통령의 계엄을 처음부터 찬성했습니다. 그리고 늘 윤대통령을 지지하고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고 감옥에 가니 같이 고난을 나누는 심정으로 살고 있습니다. 저는 정치인이 아니고 목사로서 이렇게 삽니다. 불의를 싫어하시는 예수님과 불의에 대항해서 순교하신 믿음의 선진을 따라서 불의가 너무나 싫으니 이렇게 삽니다.
북한의 핵은 하루에 날라갑니다. 이란의 예를 보면 미국 스텔스기가 한 번 움직이면 북한의 핵은 하루 아침에 무용지물이 됩니다. 이런 소망이 없는 북한에 왜 경제 대국 군사 대국 한국이 의지합니까? 그런데 정치인이 그렇게 하고 일부 국민도 그렇게 합니다. 다 속아서 혹은 협박으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이를 냉정히 보고 분석해서 성도에게 생명의 진리의 말씀을 전하므로 성도들이 정의롭게 살고 나라를 살리는 빛이 되게 해야 하는 대형교회 목사는 모두가 어둠에 스스로 싸였고 침묵하고 돈만 오늘도 탐은 내는 데 역사가 엄중하게 이를 심판하고 이 시대에 가장 악하고 추한 사람이라고 할 것이 분명한데 그 대를 이은 수치를 스스로 감내하며 무엇을 위해서 붙은 숨을 쉬고 있는지 정말로 모르겠습니다. 침묵과 관망은 동조에 해당합니다. 이런 세력에 동조하는 1000명의 대형교회 목사는 역사적인 악인으로 대를 이어서 수치와 멸시를 당할 것입니다. 진실로 이와 같은 신앙인은 한국에서 다시는 한 명도 나오지 않게 이들의 만행을 고발하고 이들의 매국을 고발하고 이들의 방관과 침묵과 결과적인 동조를 본 받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중국인 500만 명이 무엇 때문에 무비자로 옵니까? 왜 이들을 방조합니까? 왜 한 방에 하루 아침에 망할 북한을 동조하고 옹호하고 피를 토하면서 한국의 고위 관리가 굴종합니까? 믿을 수가 없는 일이 한국에서 2025년 10월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분명하게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지 않는 국적 불명의 여인 김현지가 중요 요직에서 대통령과 미국에 대적하고 교회를 핍박하고 목사를 감옥에 보내고 중국을 옹호하고 북한에 굴종하고 있는데 왜 나라가 이 지경이 되었습니까? 다 대표적인 1000명의 대형교회 목사가 제가 8년전부터 아무리 경고를 해도 듣지 않고 물질의 종이 되어서 예수님을 대적하고 무시하고 불순종했고 이를 성도가 따라서 가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이 나라를 이렇게 만든 원흉이 이재명도 아니고 민주당도 아닌 1000명의 대형교회 목사인 것입니다. 저는 이들을 고발합니다. 부디 성도는 이들의 본을 절대로 받지 말고 예수님을 따라서 성령을 따라서 나누게 베푸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시면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이 나라를 바로 세워주실 것입니다. 힘을 내시고 충성합시다.
딤 후 6:17.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18.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19.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17. 이 세상에서 부자로 사는 사람들에게 명령하시오. 교만해지지 말며 믿을 수 없는 부귀에 희망을 두지 말고 오히려 하느님께 희망을 두라고 이르시오. 하느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풍성히 주셔서 즐기게 해주시는 분이십니다.
18. 또 착한 일을 하며 선행을 풍부히 쌓고, 있는 것을 남에게 아낌없이 베풀고 기꺼이 나누어주라고 하시오.
19. 그렇게 해서 자신들의 미래를 위하여 든든한 기초를 쌓아 참된 생명을 얻을 수 있게 하라고 이르시오.
17. Command those who are rich in this present world not to be arrogant nor to put their hope in wealth, which is so uncertain, but to put their hope in God, who richly provides us with everything for our enjoyment.
18. Command them to do good, to be rich in good deeds, and to be generous and willing to share.
19. In this way they will lay up treasure for themselves as a firm foundation for the coming age, so that they may take hold of the life that is truly life.
700 VS 1 즉 700명의 신학자와 성령 받은 한 명의 전도자의 대결은 결국은 이신칭의를 넘어서 율법 즉 모세 오경을 포함하며 성령을 통한 율법의 완성과 굳게 세움, 그리고 율법의 정의로운 요구를 이루는 단계로 왔고 이는 결국은 로마서 14장 17절의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는 일로 귀결이 됩니다. 예수님을 믿고 40년의 세월을 걸쳐서 여기로 왔는데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먼 것은 이를 온 세상에 가르쳐야 하고 실제로 이렇게 믿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누가 합니까? 결코 율법을 지킨다고 되지 않고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마음대로 살아도 되지 않고 오직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고 율법을 잘 배우고 성령의 인도로 율법을 완성하고 굳게 세우고 율법의 정의로운 요구를 우리가 믿음 생활을 통해서 매일 매일 잘 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서는 것을 봅니다. 우리는 길고 멀지만 이렇게 잘 배우고 믿고 살아야 합니다. 저도 1000명의 대형교회 목사들에게 노해서 강하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저도 역시 과거에 흉악한 죄인에 불과했고 저질에 불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워서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바닷물이 염도가 3%로 짜게 느껴지고 썩지 않고 생물이 살고 강물이 흘러 들어와서 깨끗하게 됩니다. 저는 남해 바닷가에서 베드로와 같은 어부의 아들로 자랐습니다. 어릴 때 몸에 상처도 많고 종기도 많았습니다. 지금과 같이 병원도 약국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종기가 난 상태로 바닷물에 들어가서 여름에 하루 종일 있다가 보면 왠 만한 상처는 다 낫습니다 소금기 3%로가 97%의 물을 썩지 않게 보존합니다. 그리고 강물이 흘러 들어도 정화를 합니다. 그래서 생물이 사는데 깨끗한 물이 됩니다. 바다의 생물이 강물보다 훨씬 더 풍성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도 오직 3%의 진정한 크리스천이 성령을 따라서 살면 모든 사람이 이들을 보면서 조심하고 상대를 배려하면서 정의가 흐르게 됩니다. 그 3%의 크리스천은 총 인구로 보면 약 150만 명에 불과합니다. 우리나라엔 천주교 개신교 다 합쳐서 약 1500만 명의 신자가 있으니 약 12명 13명 중에서 한 명만 제가 위에서 설명한 데로 살아도 모든 한국이 다 깨끗하게 되고 모두가 집과 땅을 가지고 모두가 결혼하고 모두가 자녀를 낳고 모두가 부모님을 모시고 모두가 스트레스가 없이 살 수가 있으니 하루에 40명의 자살자는 현저히 줄고 정이 넘치고 양보가 넘치고 여유가 넘치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진실로 예수님께서 꿈을 꾸시는 세상입니다. 이런 원리대로 하면 이스라엘은 성공했어야만 합니다. 약 3500년 전 즉 지구상에 인구가 노아 홍수로 다 죽고 기원전 약 1500 년경에는 오직 5천 만 명도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한국에 있는 인구보다 훨씬 적은 사람이 온 지구상에 흩어져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약 200-300 백만 명 이나 되었습니다. 이들이 율법을 받아서 율법대로 살면 온 지구가 다 정의롭고 평안할 수가 있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인구는 전 세계 인구의 약 10%는 되었습니다. 그런데 약 1000년 동안 이스라엘은 불순종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새로운 구원의 길을 여셨음을 말씀을 이미 드렸습니다.
그리고 2000년의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복음이 온 세상에 다 퍼졌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천주교는 약 400년 전에 개신교는 약 150년 전에 전파가 되어 1500만 정도 성도가 있는 기독교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천주교 홀로 약 1000년 동안 존재하다가 다시 정교회로 분리가 되고 다시 500년 후 즉 1500 년경에 종교개혁으로 개신교가 태동하여 500년 동안에 온 세상에 퍼졌습니다. 그래서 지구에 있는 약 80억의 인구 중에서 25억명 이상이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건설은 여러 가지 측면이 있을 수가 있으나 먼저 확장과 하나됨으로 크게 볼 수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확장은 선교와 전도로 성령을 받은 전도자의 활동으로 이루어집니다. 물론 모든 교회의 구성원이 다 교회를 확장하고 세우는 일에 같이 협력을 합니다. 그렇지만 일선에서 복음을 전해서 불신자가 교회로 들어오게 하는 역할을 수많은 성령 받은 전도자들이 주로 합니다. 그리고 선교입니다. 선교는 멀리 가서 특히 외국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복음은 예수님께서 오신 후 약 2000년 동안 이스라엘 땅에서 아시아로 유럽으로 아프리카로 퍼져갔습니다. 그리고 지구상에 이제 예수님의 이름을 듣지 못한 지역도 사람도 별로 없게 되었습니다. 바야흐로 복음이 온 지구상에 다 퍼지고 있고 이스라엘의 구원에 대한 메시지가 온전하게 밝혀졌습니다. 이제 하나 됨의 시대가 왔습니다. 하나 됨은 모든 교회와 성도가 국적과 인종과 교파를 초월해서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세상의 모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하나가 되자면 먼저 교리적인 부분에 있어서 통일이 되어야 합니다. 이 부분은 제가 칭의되는 믿음과 율법으로 로마서의 새로운 이해로 잘 전했습니다. 그리고 언어의 통일입니다. 바벨탑 사건 전에는 한 언어로 소통을 했는데 하나님께서 언어를 혼잡케 하시고 민족을 온 지구상으로 흩으심으로 모두가 다른 언어를 사용하기에 소통의 어려움이 있고 이는 온 성도가 하나가 되게 하는데 장애가 됩니다. 그런데 이제 AI의 등장으로 영어를 온 세상의 사람이 1-2년 내에 자유롭게 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교리가 하나가 통일이 되고 즉 서로 교파 별로 나누어지게 된 교리가 하나로 이해가 되어 통일이 되고 언어로도 장벽이 제거가 되면 온 세상의 교회와 교인이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저는 이 하나 됨 즉 교리와 언어를 통한 하나 됨이 2000년대 하나님의 온 세상의 성도를 향한 뜻이라 봅니다.
한국은 땅의 끝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보면 그렇습니다. 일본은 섬입니다. 기원전 약 1000 년경에 전라도와 섬으로 이 땅에 처음 상륙한 우리 한민족의 조상은 3000년 동안 평화를 추구했습니다. 그냥 평화가 아니라 약 1000번의 외침을 극복한 평화입니다. 수도 없이 주변국에 맞으면서도 보복하지 않은 평화의 마음, 인내의 마음, 순박하고 용서하고 상처를 잊는 마음은 하나님의 이스라엘 1000년의 사랑과 많이 닮았습니다. 그리고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기원전 약 2500 년경 노아 홍수 후에 하나님의 명령과 흩어심으로 이에 가장 잘 순종해서 가장 진취적이며 개방적이며 개척적인 정신으로 배를 타고 멀리 멀리 왔으니 우리의 땅 한국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같이 양보도 잘 해서 새로운 땅을 찾았으니 땅의 끝에 있는 낙원 한국입니다. 우리는 이 천혜의 아름답고 풍요한 땅에서 3000년을 살았으니 벼 농사와 초가집 그리고 온돌이 3000년을 지탱하게 했습니다. 온 세상에 평화의 복음을 전해서 이 땅에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 크신 하나님의 뜻이 잉태되고 실현이 될 마지막 때 온 세상을 비출 동방의 등불의 나라 한국에 우리는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이를 자각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찾아서 온 세상을 하나님의 통치로 정의가 넘치고 평안이 깃들며 늘 기쁨이 충만한 나라로 만들어야 합니다. 저는 이를 위한 도구로 선택이 되었습니다.
1950년대 말 남해 노량의 바닷가 마을은 그림과 같은 섬들과 바다와 산들과 그리고 계절별로 찾아오는 수도 없는 물고기로 그리고 집집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삼촌과 사촌들 그리고 집집마다 5명이 이상의 형제들로 북적 그렸습니다. 공기는 청량했고 모든 들판의 물은 마실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밤에는 별들이 수도 없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모두가 형제요 자매인 고향의 주민들은 네 것과 내 것이 별로 없이 대문도 없이 서로 어울려서 천국의 삶을 즐겼습니다. 서로 나누고 베풀고 쉬지 않는 잔치가 늘 가무와 음주로 흥겨운 분위기를 연출했고 장례로 온 동네 사람이 모여서 함께 치뤘는 데 동네 청년은 다 나와서 상여를 메고 고인을 산길을 헤치며 가서 묻었습니다. 제 선친은 타고난 어부였습니다. 노 젓는 배로 때론 바람이 불면 돛을 달고 달의 움직임을 따라서 들고 나는 바닷물의 흐름을 따라서 이동하는 고기를 정확하게 포착하고 그물로 잡으니 늘 만선이었습니다. 생선이 너무나 많아서 잡는 기술도 사람도 별로 없기에 바다에 나가면 한 배 가득 잡아오시면 돈을 주고 사는 사람은 사고 그냥 기다렸다가 얻어 가는 사람은 얻어 갔으니 약 1000명이 되는 동네 사람 모두가 우리 집에서 고기를 얻어 먹었습니다. 그리고 선친께서는 바닷가에 가지 않으시는 날에는 지게를 지고 논일을 하시고 밭일을 하셨습니다. 이런 어린 시절의 추억은 베드로와 제자들을 부르신 갈리리 바닷가의 일들을 자세하게 이해하게 했고 감추인 보화나 씨 뿌리는 자의 비유 혹은 한 알의 밀알이 떨어져서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 땅의 진리를 쉽게 깨닫게 했습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천국의과 같은 생활과 환경과 주변 이웃과의 삶은 예수님께서 세우고자하는 이 땅의 천국의 모습에 대해서 너무나 잘 파악하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책을 사랑하게 하시니 어려서부터 눈에 보이는 모든 책은 너무나 즐겁게 읽었고 읽을 책이 없어서 야단이었습니다. 그리고 카투사로 가서 영어를 배우고 미국에 대해서 조금 이해하게 하시고 은행원으로 깔끔한 직장을 경험했고 늦게 대학에 들어가서 대학원까지 사회과학을 잘 배웠습니다. 그리고 인생에서 큰 좌절은 성경의 이해에 큰 꿈과 에너지를 공급했습니다. 7년의 천주교를 믿는 전처와 사랑은 그리고 헤어짐은 너무나 큰 고통을 수반했고 마음이 찢어져서 가장 자리만 남은 환상을 보았을 때 하나님의 교회가 분리 시의 고통과 같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천주교와 개신교의 분리가 하나님께는 마음이 찢어지는 고통이었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정말로 4년의 우울과 불면은 저를 많이 낮아지게 했습니다. 그리고 정교회 지역 러시아 국적의 고려인 지금의 아내와 재혼을 해서 아들을 낳고 20년을 살면서 정교회와 지구의 반을 차지하던 러시아 연합에 대해서 조금 이해하는 사고의 폭이 넓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경 정리와 전도는 늘 즐거웠고 특히 하나님께서 시도 때도 없이 주시는 성경에 대한 이해는 늘 큰 기쁨과 함께 왔으며 저는 이를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잘 받아서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로마서의 새로운 이해를 조금씩 허락하시고 저는 즐거운 마음으로 아는 만큼 속히 속히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기간이 약 8년에 이르고 120개국 50만 명이 보았습니다. 약 1100편의 글을 8년에 쓰게 하셨는데 어떤 글은 대부분이 A4 용지로 40-50페이지가 되는 긴 글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은 너무나 즐거운 일이었고 쉬운 일이었습니다. 읽는 사람이 느는 것을 보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론이 하나님의 나라로 귀결이 됨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의 전도 경험, 성경 정리 경험, 8년의 대학 대학원 고시 공부 경험, 영어 배운 경험, 어릴 때 추억, 그리고 이혼의 아픔과 재혼의 기쁨 등 모든 지식과 경험을 다 사용하시고 제게 불로 임하신 성령의 감동으로 모든 글을 쓰게 하셨습니다. 그냥 제게 감동이 오고 책상에 앉아서 노트북이나 컴퓨터로 글을 쓰기 시작하면 아무리 긴 글이라도 2-4시간에 다 쓰고 혹 하루나 이틀이면 어떤 제목의 글도 다 쓰게 하셨습니다. 제가 8년 동안 날짜 별로 다 올렸으니 확인이 가능합니다.
이런 가운데 개신교 목사로 신학을 한 사람으로 개신교에도 천주교에도 흔들리지 않게 저를 하나님께서 쉬지 않고 붙잡고 쉬지 않고 격려를 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강력한 붙드심과 눈동자 같이 보호하심으로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모든 분께 전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가운데 제가 이렇게 모든 일을 하도록 도운 공신이 가난입니다. 저는 은행에서 1983년 나온 후에 한국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으로 약 42년을 살았습니다. 20년간 국세청 자료로 한 달에 40만원 정도로 20년을 버틴 것도 확인이 되었습니다. 이 가난이 모든 것을 할 수가 없게 막았고 오직 이렇게 전도하고 성경을 정리하고 복음을 전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일에 몰두하게 한 것입니다. 즉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것입니다. 가난이 제게는 이런 일을 하는데 있어서 극도로 유익이었습니다. 달리 돈이 없으니 할 일이 없습니다. 차도 중고로 늘 고장이 나는 차를 탔고 옷도 대부분 남이 버린 옷을 입었고 음식도 역시 다른 사람이 먹다 남은 음식을 먹었습니다. 무슨 여가나 혹은 사치를 할 돈이 없으니 늘 서민 이하의 삶에 할 수가 있는 일이 없도록 가난했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제가 예수님께 불로 성령을 받은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고 빨간색 칼라의 불을 제 가슴에 뿜어 주시자 제 가슴에 작은 촛불과 같은 불꽃이 2-3개가 이는 것이 보였고 수 년이 지난 후 어느 순간에 제 가슴의 불은 조금 더 많아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인내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해서 지속이 되었습니다. 저는 미숙한 성도였고 저는 제 길로 늘 가고자 했지만 때론 채찍으로 때론 기다림으로 때론 격려로 저를 올바로 서게 하셨습니다. 그 놀랍고 위대한 사랑과 은총이 저를 여기로 인도했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의 피 흘리심과 대속의 죽음은 저의 과거에 흉악한 모든 죄를 씻어 주셨는데 그분의 이름의 물세례와 저의 회개는 믿음과 함께 작용을 했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오심으로 이 모든 일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성령의 쉬지 않는 인도는 저를 하나님의 나라의 이해로 인도하셨습니다. 늘 고집을 부리고 늘 본능대로 하고자 하는 자를 인내와 인내로 함께 하시며 성경 말씀을 깨닫게 하셨으니 모든 영광이 삼위 하나님께 있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 나라의 이해는 특별한 사람의 전유물이 절대로 아닙니다. 모든 성도가 필수적으로 알아야만 됩니다. 그리고 그 나라를 위해서 일생을 헌신 해야 합니다. 모든 성도의 의무입니다. 이 의무를 이해하고 수행하는데 제 글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간략히 줄이면 성경은 법입니다. 그 법이 모세 오경의 율법입니다 그리고 그 법은 공평하고 정의롭습니다. 그 법대로 온 세상이 살면 이 땅에 천국이 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 선택이 되어서 1000년을 율법대로 살도록 기회가 주어집니다. 그러나 불순종으로 멸망하고 이제는 하나님께서 새로운 계획을 세우시니 예수님을 보내시고 예수님께서는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십니다. 그리고 부할 하셔서 천국에 올라가십니다. 우리의 죄를 다 용서하시기 위함입니다. 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회개하면 죄를 용서받습니다. 성령께서 틀림없이 오시고 우리를 거듭나게 즉 새롭게 창조하십니다. 이 새 피조물이 성령의 인도로 율법을 완성합니다. 굳게 세웁니다. 율법의 정의로운 요구를 다 이룹니다. 이렇게 되면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의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이 됩니다. 바다를 먹물 삼고 하늘을 두루마리 삼아도 하나님의 은혜를 다 기록할 수가 없고 그 사랑을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오직 가장 작은 회개가 필요합니다. 오직 인간이 할 일은 이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비하면 너무나 작은 부분입니다. 이 일을 못하면 아니 됩니다. 용기를 내시고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회개는 합당한 열매가 열리는 데 없으면 열매도 성령도 없습니다.]
얼마나 쉽고 간단한 성경의 내용입니까?
긴 글을 읽어 주신 모든 분께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선물과 충만을 위해서 또 기도합니다. 그리고 문제가 있습니까? 아프신 분이 낫고 문제가 해결이 되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형통하고 늘 즐거움이 가득하시길 기도합니다.
무질서한 세상에서 늘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랑의 하나님! 저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전하게 하시니 감사와 영광과 찬양을 드립니다. 교파 별로 분열이 되어서 서로 교회와 성도가 다투지 말게 하시고 모든 지구상의 성도가 국적과 인종과 언어를 초월해서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되기를 간구합니다.마지막 때에 이스라엘이 돌아오게 하시고 온 세상의 성도가 하나가 되어서 오실 예수님을 잘 영접하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