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수녀님을 눈앞에서 가까이 만나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워낙 유명하신 시인, 수녀님이기에 그동안 매스컴을 통해서 많이 보아왔고, 또 시를 통해서 수녀님이 어떤 분일지 삶을 엿볼 수 있을 것만 같았던 터라 이번 수원 포럼은 설레기만 한 자리였다.
그동안 전화 문자메시지를 통해서 몇 차례나 안내를 해주신 시청 담당자님께서도 준비에 얼마나 수고가 많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행사가 시작되기 한 시간 전부터 입장할 수 있다는 연락을 받고 시청 강당에 도착한 것은 오후 3시40분, 아래층 자리에는 벌써부터 많은 분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다.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단상에서는 통기타를 멘 가수가 노래를 부르며 기다리는 시간을 채워주었다. 시간이 흐르자 빈자리는 금방 찾아볼 수가 없이 양쪽 통로와 2층까지 들어차고 말았다.
수원포럼 시, 노래, 이야기가 있는1월, 시청강당 대만원 이뤄_1
마침내 이해인 수녀님이 관중들의 뜨거운 박수 속에 입장하여 단상에 올랐다.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 근처 수녀원에서 올라온 이해인 수녀입니다'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그리고 1978년 대학가요제에서 '약속'으로 은상을 수상한 가수 김정식, 세레명은 로제리오라며 함께 진행할 파트너를 소개했다.
올해 일흔한 살, 해방둥이 수녀님이라고는 정말 믿기지 않을 만큼 젊고 고운 목소리다. 마치 우리 곁의 친한 단발머리 소녀 같은 어법의 이야기와 웃음으로 인상적인 모습이 지금까지 생각했던 이해인 수녀님과는 맞지 않았다. 본인은 그동안 2년의 암 투병을 하고 보니 한물 간 것 같다며 웃기기도 했고, 휴가를 내어 왔다며 마음 따뜻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하자 관중들의 뜨거운 박수가 또 다시 터져 나왔다. 이는 이해인 수녀님을 우리가 얼마나 많이 좋아하고 사랑하는지를 알게 해주는 자리 같았다.
수녀님은 '행복의 얼굴'이라는 시낭송으로 서막 인사를 했다. '사는 게 힘들다고 말한다고 해서 내가 행복하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내가 지금 행복하다고 말한다고 해서 나에게 고통이 없다는 뜻은 정말 아닙니다. 마음의 문 활짝 열면 행복은 천개의 얼굴로......행복과 숨바꼭질하는 설렘의 기쁨으로 사는 것이 오늘도 행복합니다.'
객석은 빨려 들어간 듯 조용했고, 그 어떤 말이나 힘으로 이렇듯 모두가 하나 되게 끌어 모을 수가 있었을까싶었다. 시는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킨다고 하지만 정말로 행복의 얼굴이 떠올려지는 그런 자리일 것 같았다.
수원포럼 시, 노래, 이야기가 있는1월, 시청강당 대만원 이뤄_2 또, 날마다 새롭게 노력할 실천 덕목들을 보면 이러했다. '날마다 새롭게 선한 마음, 겸손한 마음을 갈고 닦고 키웁시다. 날마다 새롭게 당연한 것을 놀라워하는 경탄의 감각을 키웁시다. 날마다 새롭게 평범한 것에서도 기쁨과 감사를 발견하는 지혜를 키웁시다. 날마다 새롭게 나만 생각하는 이기심을 줄이고 다른 이를 배려하는 넓은 사랑을 키웁시다.'
그리고 수녀님의 고운 말 차림표를 보면 '아무리 화가 나도 막말은 하지 말자. 비교하는 말을 할 땐 신중하게 하자. 나에게도 남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은 푸념, 한탄, 불평은 자제하자. 예덕을 가지고 상대방의 말에 맞장구치자. 사람이든 사물이든 함부로 비하하는 말을 삼가자.'
이는 그동안 암 투병과 함께 소중한 삶 속에서 얻어진 것들이라고 했다. 우리일상 속의 아름다운 말을 찾기 위해 얼마나 갈고 닦아야만 저런 새싹 같은 싱그러운 시들이 뽑아져 나올 수 있을까싶었다. '먼 산'이라는 김용택 시인의 시를 김정식씨가 노래로 부르는 것도 환상적이었다.
이해인 수녀님은 불자들을 위한 노래라고 소개했고, 혹시 불자님들 계시면 손 들어보시라고 했지만 그리 많지는 않았다. 쑥스러웠을 것이다. 또 권영상 시인의 '밥풀'이라는 시도 낭송하며 이해인 수녀님은 밥알의 모습에서 성자를 본다고 했다.
우리가 마음 속 깊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치유의 특강이라면 아마 이런 자리가 아니었을까. 무엇보다 이날 기억에 남는 말들은 수녀님의 입에서 이슬방울 같이 쏟아낸 것이기에 더욱 웃겼던 것 같았다. '박살내버려! 아, 짜증나 죽겠네,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겨, 쭉 뻗어 늘어졌어,' 한 마디 한 마디가 개그이고 코미디처럼 웃기는 말 같았지만, 그래서 장내는 떠나갈 듯 웃음바다가 되었지만 그 흐름은 명사의 '시' 그것이었다.
수원포럼 시, 노래, 이야기가 있는1월, 시청강당 대만원 이뤄_3
김정식 통기타 가수의 감미로운 목소리 또한 얼마나 환상적인지, 객석의 오빠부대들은 그야말로 숨 막히는 감동의 무대가 아닐 수 없었다. 그는 노래가 끝나자 목소리의 나이는 아직도 대학생인데 육신의 나이는 환갑이라고 하여 또 한 번 관중석을 웃겼다. 이렇게 시와 노래와 이야기로 두 시간이 끝나갈 무렵, 객석의 희망자들이 올라가 꽃 같은 시 낭독을 하였다. 저마다 좋아하는 수녀님의 시를 낭독하다보니 벅찬 감동과 감격의 무대였고, 수녀님은 그때 마다 준비한 선물과 포옹으로 따뜻하게 맞으며 답해주었다.
특히 오산에서 왔다는 한 여인은 '우리 집' 시를 낭독하였고, 자신도 시를 쓰며 암 투병을 하였다고 말했다. 이해인 수녀님을 뵈려고 이렇게 꿋꿋이 살아온 것 같다고 말하며 울먹이기도 하여 보는 이들의 가슴을 찡하게 했다.
수원포럼 시, 노래, 이야기가 있는1월, 시청강당 대만원 이뤄_4
부산에서 대학생들에게 '가족'을 어떻게 보는가라고 묻자 그 대답의 일위가 전화번호 일 순위 입력이라 대답했다고 한다. 가족이 우리에게 그만큼 소중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얽매이지 말고 더 나아가 세계를 보듬어 안을 수 있는 넉넉한 수원시민의 가슴이 되기를 바란다는 작별인사가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이해인 수녀님과 함께 맑고 고운 시인이 된 것만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