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다 3 (삿 10:17-11:3)
17 그 때에 암몬 자손이 모여서 길르앗에 진을 쳤으므로 이스라엘 자손도 모여서 미스바에 진을 치고 18 길르앗 백성과 방백들이 서로 이르되 누가 먼저 나가서 암몬 자손과 싸움을 시작하랴 그가 길르앗 모든 주민의 머리가 되리라 하니라 11:1 길르앗 사람 입다는 큰 용사였으니 기생이 길르앗에게서 낳은 아들이었고 2 길르앗의 아내도 그의 아들들을 낳았더라 그 아내의 아들들이 자라매 입다를 쫓아내며 그에게 이르되 너는 다른 여인의 자식이니 우리 아버지의 집에서 기업을 잇지 못하리라 한지라 3 이에 입다가 그의 형제들을 피하여 돕 땅에 거주하매 잡류가 그에게로 모여 와서 그와 함께 출입하였더라
복음 실은 구약강해 오늘은 “입다를 통해서 본 사명자”에 관한 말씀입니다. 시대가 사람을 부를까요? 아니면 사람이 시대를 준비할까요? 본문의 입다를 보이는 대로 말한다면 이 두 가지 다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정답은 하나님께서 시대를 만드시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부르십니다.
입다가 기생에 아들로 태어나 배 다른 형제들에게 배척당해 돕 땅에서 유리방황했지만 그 고통 속에서도 내일을 바라보며 착실히 준비했더니 하나님께서 그를 귀하게 들어 쓰셨습니다. 나라를 구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입다”라는 뜻이 ‘그가 열 것이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길을 열어주시고 그를 통해 나라의 앞날을 열어주셨습니다.
입다를 통해서 본 사명자는 어떤 사람일까요?
1. 하나님이 불러 쓰시는 사람입니다.
17-18절 “그 때에 암몬 자손이 모여서 길르앗에 진을 쳤으므로 이스라엘 자손도 모여서 미스바에 진을 치고 길르앗 백성과 방백들이 서로 이르되 누가 먼저 나가서 암몬 자손과 싸움을 시작하랴 그가 길르앗 모든 주민의 머리가 되리라 하니라” 어려움을 당하자 길르앗 사람들이 영웅을 부릅니다. 신앙적으로 보면 하나님께서 부르셨습니다.
소년 다윗과 같은 상황입니다. 골리앗이 이스라엘을 위협하고 모욕할 때 사울이 이런 특전을 걸었습니다. 삼상17:25에 “그를 죽이는 사람은 왕이 많은 재물로 부하게 하고 그의 딸을 그에게 주고 그 아버지의 집을 이스라엘 중에서 세금을 면제하게 하시리라” 왕의 사위가 되는 것입니다. 해 볼만 하죠?
이처럼 앞날은 하나님께 맡기고 열심히 준비하면 하나님께서 불러 쓰실 날이 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당신이 적임자여. 당신밖에는 없어. 당신이 해야 해.' 배척하던 사람들이 도리어 엉덩이 미는 때가 오게 됩니다.
2. 사명자란 열심히 준비하는 자입니다.
무엇을 준비했습니까? 11:1에 “길르앗 사람 입다는 큰 용사였으니” 입다에 대해서 성경이 강조하는 바는 그는 큰 용사였다는 것입니다. “큰 용사”란 원문에 '깁보르 하일' 의미는 ‘전쟁의 명수’ 혹은 ‘싸움의 용사’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입다는 비록 기생의 아들이지만 틈틈이 병법을 공부하고 무술을 익혔습니다.
예수님도 준비하셨습니다. 눅3:23에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하실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 모세도 80년간 준비 되었고, 세례요한도 모태로부터 준비되었고, 제자들도 제자교육으로 준비되었습니다. 우리도 영적 병서인 성경을 배우고, 말씀에 입각한 신앙훈련 잘 받아야 합니다.
딤전4:7-8에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했습니다.
3. 사명자란 연단 중에 만들어지는 사람입니다.
1-3절 “길르앗 사람 입다는 큰 용사였으니 기생이 길르앗에게서 낳은 아들이었고 길르앗의 아내도 그의 아들들을 낳았더라 그 아내의 아들들이 자라매 입다를 쫓아내며 그에게 이르되 너는 다른 여인의 자식이니 우리 아버지의 집에서 기업을 잇지 못하리라 한지라 이에 입다가 그의 형제들을 피하여 돕 땅에 거주하매 잡류가 그에게로 모여 와서 그와 함께 출입하였더라”
입다는 불행하게도 기생의 소생이었습니다. 기생 라합처럼 회개한 믿음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이 자식이 생기니까 무책임하게 내던지고 사라진 여자였습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의 모습입니다. 시51:5에 다윗은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했습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하고 독생자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줄 거머잡고 더 열심히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명자가 열심히 해야 할 훈련은 먼저 예수를 믿고 사랑함으로 온전히 예수를 모시는 것입니다. 바른 진리에 서야 예수를 모십니다. 그러므로 잘 배워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나의 유일하신 생명의 구주이심을 믿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 뿐 아니라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고후13:5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모시는 것인데 뒷방 노인 대하듯 하지 말고 영화롭게 모셔야 합니다. 높이고 순종하고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이걸 못하니까 영적으로 공허하고 넘어지고 쓰러집니다. 그러므로 시행착오로 넘어지고 쓰러지면서라도 온전히 모시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다음에 하늘의 신령한 것을 누리는 거룩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2절에 “그 아내의 아들들이 자라매 입다를 쫓아내며 그에게 이르되 너는 다른 여인의 자식이니 우리 아버지의 집에서 기업을 잇지 못하리라” 당시 관습은 본처의 자식이 아니면 기업을 상속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입다는 상당히 애매합니다. 입다가 비록 기생의 아들이지만 순서적으로는 본처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나가고 후처의 자녀들이 자라서 기생의 아들이라는 약점을 잡아 입다를 쫓아냅니다. 기업을 차지하기 위해서입니다.
7절의 입다가 길르앗 장로들에게 불만을 품은 걸 보면 이 문제로 법적문제로까지 비화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길르앗 재판장의 판결로 이복동생들에게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자녀지만 하늘의 은혜를 누리기에 애매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직도 세상을 버리지 못한 육신적인 마음입니다. 고린도 교회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고전3:1에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 땅에서 신령한 은혜를 누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고전6:9에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늘기업과 세상 사이에서 갈등하지 말고 속히 졸업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하늘의 복을 누리게 하시고 귀한 사명자로 쓰십니다.
그래서 딤후2:21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했습니다.
그리고 전투적 믿음을 훈련하시기 바랍니다. 1절에 “입다는 큰 용사”였습니다. 이처럼 예수 믿되 전투적인 강한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불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입다는 구박하는 새 어머니와 자라나는 동생들의 온갖 멸시와 천대를 받아가면서도 자기 연마에 최선을 다했듯 이처럼 쓰러지고 넘어지면서도 오직 예수, 오직 믿음, 오직 사랑, 오직 말씀, 오직 성령 이런 불굴의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4. 사명자란 능력과 권세를 받은 사람입니다.
3절에 “이에 입다가 그의 형제들을 피하여 돕 땅에 거주하매 잡류가 그에게로 모여 와서 그와 함께 출입하였더라” 잡류는 ‘무익한,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뜻이지만 정확한 뜻은 군사 되기 적합한 싸움의 기질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기질이 있는데 국가가 써주지 않으니까 인간인지라 자꾸 말썽을 부리기도 합니다. 에너지가 넘치기 때문입니다.
애완견도 에너지가 넘치는 종들은 집에만 두면 온갖 말썽을 부립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현명한 자는 그걸 알고 훈련시켜 적제적소에 배치합니다. 여기 잡류는 아둘람굴에 모여 다윗을 따르던 군사들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다윗을 위해 목숨을 바친 충성과 에너지가 넘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처럼 에너지가 넘쳐야 합니다. 그 에너지는 성령의 권능입니다. 행1:8에 “권능을 받고” 했는데 여기 “권능”은 헬라어로 ‘뒤나미스’, 영어로는 다이나마이트(dynamite) 폭탄입니다. 성령의 폭탄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사명자가 됩니다. 그래서 마10:1에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귀히 쓸 사람일수록 더 많은 고난 속에서 연단하고 또 연단하십니다. 이 시간에도 하나님은 사명자를 부르고 계십니다. 신앙이 무엇인지 보여줄 참 믿음의 사람, 신랑 예수를 사랑하는 사랑이 무엇인지 보여줄 그리스도의 신부,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구원의 예수를 전해 줄 복음의 일군을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한 큰 용사로 준비되어 귀히 쓰심을 받는 일군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한국강해설교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