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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훈련
(신 32:9-12)
본문은 하나님께서 광야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훈련시키셨는지에 관한 문
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430년 동안 노예생활을 했습니
다. 따라서 이들은 조직사회를 이루며 공생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200만
이나 되는 애굽 탈출자들은 언제든지 폭도로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었습니
다. 그래서 신명기 1장 2절에 기록된대로 호렙산에서 세일산을 지나 가데스바네아까지
는 열 하루길이었지만, 그 길을 40년 동안이나 방황하게 된 것입니다.
40년 방황의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불신앙에 대한 형벌입니다. 그러나 더 큰
이유가 있습니다. 마치 노예나 폭도와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계시를 주시고, 그
계시대로 국가를 이루며 살기에 합당한 백성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특수 훈련
기간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자주 우상숭배에 빠졌습니다. 왜냐하면 애굽에서 우상숭
배를 보면서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으시지만, 구름기둥
과 불기둥을 통해 당신의 존재하심을 알려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침마다 이슬처
럼 만나를 내려주시고, 40년 동안 신발이 헤지지 않고 옷이 닳지 않도록 돌보아 주셨
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보여주시는 증거임에도 불구하고 430년
동안 우상을 보고 배우며 자라온 그들에게 아무 형상이나 상징도 만들지 말고 눈에 보
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라는 명령은 하루아침에 따를 수 있는 말씀이 아니
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길의 특수훈련을 시
키셨던 것입니다.
1. 하나님의 보호
군대에서 군인들을 훈련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하는 것은 모든 위험을 철저히 차단하고
훈련병들을 보호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훈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호와의 분깃
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 택하신 기업이로다”(9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서는 당신께서 택하신 백성들을 훈련대상으로 삼으셨습니다.
대한민국의 군대가 북한 군인들을 훈련시키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입니다. 대한민국
의 군인들을 잘 훈련시켜서 강한 군대로 만드는 것이 대한민국 군대의 의무이기 때문
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이요, 택하신 백
성이기 때문에 훈련을 시키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되
었다면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훈련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먼저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디를 훈련장소로 택하셨을까요? 본문 10절을 보면 “여호와
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
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훈련시킨 곳은 광야였습니다. 낮에는 햇빛을 가릴 것이
없고, 밤이 되면 짐승이 부르짖으며, 아침이 되어도 먹을 것이 없는 황무한 곳이 바
로 광야였습니다.
군대에 가서 훈련을 받아본 사람들은 훈련장이 얼마나 황무지 광야 같은지 잘 알 것입
니다. 사회에서는 오월의 봄바람이 따듯하다고 말하지만, 훈련받는 사람에게는 그 봄
바람이 매서운 추위로 다가옵니다. 얼마나 추운지 귀에 동상이 걸린 사람도 있을 정도
입니다. 그래서 저의 군대 시절 오월달 훈련기간 중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땅바닥
에 붙어 있을 때였습니다. 땅바닥에 누워서 총을 앞으로 잡고 데굴데굴 구르는 ‘굴
러 이동!’이라는 훈련을 조교들이 시켰는데, 다른 사람들은 모두 싫다는 굴러 이동
을 저는 가장 좋아했습니다. 왜냐하면 굴러 이동을 하는 동안에는 땅바닥에 누워있기
때문입니다. 땅이 그처럼 따듯하고 편안한 곳인지 그 때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
게 5개월 동안 혹독한 훈련을 받고 계급장을 달고 나면 훈련병들마다 공통적으로 하
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내가 훈련소 방향으로 소변이라도 본다면 사람이 아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황무지 광야는 떠올리기도 싫은 괴로운 장소였을 것입
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었더라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단 하루도 생존할 수 없을 만
큼 척박하고 괴로운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황무지 같은
광야에서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해 주셨습니다.
본문 10절에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관한 4가지 중요한 동사가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
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첫째로 광야에서 어떤 구렁텅이에 빠져있다고 할지라도 하나
님께서는 그를 먼저 만나주시고 찾아내십니다(find). 둘째로 찾아내신 후에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보호해 주십니다(shield). 셋째로 택한 백성들이 굶어 죽거나, 얼
어 죽거나, 짐승에 물려죽지 않도록 돌보아 주십니다(care for). 그리고 마지막으로
눈동자처럼 지켜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guard). 눈동자는 매우 예민한 기관입니다.
작은 먼지 하나만 들어가도 고통스럽기 때문에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서 작은 먼지 하
나를 씻어내고 맙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택한 백성들을 예민하고 신속하게 보호해주십
니다.
성도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해있던 광야나 황무지와 다를 바
가 없습니다. 짐승이 위협하고, 적들이 공격해오기도 하며, 때로는 배고프고, 춥고,
질병에 시달릴 때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정신적인 고통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합니다. 이 모든 고통과 끊임없이 싸워야 하는 곳이 광야요, 황무지입니다. 그렇기 때
문에 우리는 어딘가에서 쓰러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디에
쓰러져 있든지 간에 찾아내시고, 방패막이가 되어 주시며, 돌보아 주시고, 눈동자처
럼 지키시는 줄로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눈동자입니다. 스가랴서에 “무릇 너희를 범하는 자는 그의 눈동자
를 범하는 것이라”(슥 2:8)고 기록되었습니다. 또 시편 기자는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 감추사”(시 17:8)라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광야 같
은 세상을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을 찾아내서 구원하십니다. 그리고 구
원하실 뿐만 아니라 훈련시키십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고 부르실 때에는 곧바로
“예!”라고 대답하며 하나님께 나와야 합니다. 그러나 마귀와 세상이 부르면 “나는
예수님과 함께 죽은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하고 나가지 말아야 합니다. 마귀가 부르는
데 “예”라고 대답하면 안 됩니다.
어떤 목사님의 재미있는 경험담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이 고속도로
를 주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볼일이 급해져서 휴게소를 찾아가 급하게 차
를 주차시킨 후에, 화장실에 들어가서 용변을 보았습니다. 용변을 보고 있는데 갑자
기 옆 칸에서 어떤 사람이 큰 소리로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 안녕하세
요.” 그래서 이 목사님이 엉겁결에 “예. 안녕하세요”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속으
로 ‘목사는 화장실에서 일을 보는 중에도 사람들이 알아보는구나’라고 생각하고 있
는데 옆 칸에 있는 사람이 또 질문을 하였습니다. “목사님. 점심식사 하셨어요?” 그
래서 이 목사님이 “아닙니다. 볼일 보고나서 식사할 예정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
다. 잠시 잠잠해지더니 조금 후에 옆 칸에 있던 사람이 조용한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 이제 그만 전화 끊어야겠습니다. 어떤 이상한 사
람이 자꾸 옆 칸에서 말대답을 하네요.”
자기를 부르는지, 남을 부르는지 알지 못하고 대답하다가는 이렇게 미친 사람 취급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에피소드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부르
실 때, “예”라고 대답하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
니다.
2. 하나님의 훈련
하나님은 택한 백성을 찾아내시고, 불러내셔서, 보호하는데 그치시는 것이 아니라, 또
한 강하게 훈련시키십니다. 모세는 그 훈련을 독수리 훈련이라고 말했습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이스라엘 백성의 인도자로서 40년, 도합 80년의 세월을 광야에
서 살았습니다. 그 긴 세월동안 광야에서 독수리를 수 없이 많이 보아왔을 것입니다.
모세는 독수리가 어디에 집을 짓는지, 어떻게 새끼를 기르고 훈련하는지를 너무 잘 알
았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 아버지를 아비 독수리에 비유합니다.
예레미야서 49장 16절의 말씀처럼 독수리들은 대체로 높은 산꼭대기에 집을 짓습니
다. 혹 바위가 있으면 그 바위 꼭대기에 집을 짓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땅에서
사는 뱀이나 짐승들이 습격할 수 없는 안전한 둥지가 됩니다. 아비 독수리는 이 높은
곳에 만들어진 안전한 보금자리에서 때가 되면 새끼들을 훈련시키기 시작합니다. 모세
는 이 독수리 훈련을 3단계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첫째 단계는 보금자리를 어지럽히는 것입니다.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
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
을 업는 것 같이”(11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30년 동안 애굽의 고센 땅에서 살았습니다. 어떤 곳이든지 사람
이 2,3년만 살게 되면 타향일지라도 마치 고향처럼 편안하게 살 수 있게 됩니다. 제
가 1986년에 미국 유학길에 올랐을 때, 큰 아이의 나이가 5살이었습니다. 저와 제
처, 그리고 큰 아이, 이렇게 세 식구가 함께 미국 유학길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런
데 미국에 도착한 첫날밤에 잠을 자는데 갑자기 큰 아이가 울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
다. 아이를 달래다가 그만 제 처도 울고, 저도 눈물이 나서 함께 울고 말았습니다. 왜
냐하면 너무 낯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낯선 미국 땅이었지만 차츰 시간이 지
나면서 적응을 하게 되었고, 삼 년 정도가 지났을 때에는 아주 편안하게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미국에서 5년을 공부한 후에 한국에 들어왔더니 한국이 더 낯설기
까지 했습니다. 한국에서 문화충격을 이기고 적응하는데도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
다.
하물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430년 동안을 고센 땅에서 살았으니 그 곳이 얼마나 편안
한 곳이 되었겠습니까? 눈을 감아도 길거리가 훤히 보이고, 낯익은 부추와 양파와 마
늘 냄새가 정겹게 풍기는 고향과도 같은 곳이 고센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편안하
던 보금자리를 하나님께서 어지럽히기 시작했습니다. 요셉을 모르는 애굽 왕이 등극하
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노예가 되어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짓기 위해 동원되
기 시작했습니다. 흙을 이기는 일, 벽돌을 굽는 일, 농사일 등 시키는 일마다 가혹하
고 엄한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후손을 잘 낳았기 때문에 인구가 번
성하는 것을 두려워한 바로는 히브리인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나일강 하수에 던져 죽이
고, 여자아이들만 살려둘 것을 명령했습니다. 보금자리로 여기고 살던 고센 땅이 심하
게 어지럽혀졌습니다.
독수리의 습관을 잘 아는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아비 독수리는 새끼가 어느 정도 크
면 밖에서 가시나무를 물어 와서 둥지 안에 넣어둔다고 합니다. 그래서 새끼들이 점
점 커 가면 자꾸 가시에 찔리게 됩니다. 거기 계속 있다가는 피를 흘리고 죽게 되니
보금자리에서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훈련시
키기 위해서 때로는 보금자리를 어지럽혀 놓으십니다. 건강하던 몸에 원치 않는 질병
이 생기기도 하고, 잘 되던 사업이 갑자기 꼬여 어렵게 되기도 합니다. 잘 되라고 양
육하던 자식들이 갑자기 삐뚤어지기도 하고,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배반당하기도 하
며, 평안하던 직장 생활이 고통이 되기도 합니다. 저지른 죄로 인해서 마음의 평안이
없을 때도 있고, 기쁨을 상실할 때도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보금자리를 흔들어
놓으시는 방법입니다.
다윗은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내가 형통할 때에 말하기를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
리라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주의 은혜로 내 산을 굳게 세우셨더니 주의 얼굴을 가리우
시매 내가 근심하였나이다”(시 30:6-7). 어떤 사람들은 재물이 요동하지 않는 산이라
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녀가, 어떤 사람들은 직장이 요동하지 않는 산이라
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한 번 어지럽히기 시작하시면 이 세상에서 요동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진동하고 요동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
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독
수리 훈련 제 1단계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수리 훈련을 통해
서 우리를 망하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은 영적차원으로 우리를 이끌어 가시고
자 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보금자리가 어지럽혀진다고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독수리 훈련의 둘째 단계는 새끼들이 가시에 찔려 피를 흘릴 때에 아비, 혹은 어미 독
수리가 그 새끼 독수리 위에서 너풀거리는 것입니다. 고통 받는 새끼들 위에서 날개
를 퍼덕이면서 새끼들이 보금자리에서 나오기를 기다립니다. 커다란 날갯짓으로 새끼
들이 날아오를 수 있도록 모범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
내주셔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모범을 다 보여주셨습니다. 밤이 맞도록 기도하시는
기도의 모범,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용서하시는 용서의 모범, 믿음의 모범, 사랑
의 모범, 사역의 모범과 헌신의 모범까지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모
범을 보여주시면서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읽고,
기도해야 합니다. 또 사랑해야 하고 용서해야 합니다. 단순히 성경의 지식을 늘리기
위해, 자신의 관용을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그 모범을 배우
기 위해서입니다. 아비 독수리가 둥지 위에서 너풀거리면 새끼 독수리들도 비로소 보
금자리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아비 독수리를 따라 날개를 펄럭거리며 날아봅니다. 그
러나 날개에 힘이 없기 때문에 여지없이 높은 곳에서 아래로 떨어집니다. 바람이 부는
대로 휩쓸려가며 계속 떨어집니다. 그러나 결코 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비 독수리
가 날카로운 눈으로 새끼를 지켜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부터 훈련은 3단계로 넘
어갑니다.
독수리 훈련의 셋째 단계는 아비 독수리가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아 그 날개 위에 얹
는 것입니다. 날개에 힘이 없는 새끼 독수리는 한없이 추락합니다. ‘아, 이제는 죽었
구나. 내 날개의 힘으로 안되는구나. 내가 저 바위에 부딪히면 산산이 부서져서 죽겠
구나.’ 아마도 새끼 독수리는 추락하는 순간에 이와 같이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추락하던 새끼 독수리는 거대한 아빠 독수리의 날개 위에 업혀 다시 하늘
로 비상하는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보금자리를 흔들어 놓으실
때, 계속 날개짓을 해도 힘이 없어 자꾸만 떨어진다고 할지라도, 여러분들은 결코 절
망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한없이 추락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어느 순간
이 되면 전능하신 하나님의 날개 위에 업혀서 다시 하늘을 나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새끼 독수리는 이와 같은 3단계 훈련을 통해서 스스로 날 수 있는 장성한 독수리가 되
어 자생력을 갖게 됩니다. 자생력을 가질 뿐만 아니라, 다른 독수리와 함께 지낼 수
있는 공생력도 갖게 됩니다.
결 론
옛날에 어느 산꼭대기에 독수리 둥지가 있었습니다. 어미 독수리가 그 곳에 알을 4개
낳았는데, 그만 산에 지진이 나는 바람에 알 하나가 굴러서 닭 농장으로 들어가고 말
았습니다. 독수리 알을 달걀로 착각한 늙은 암탉 하나가 그 알을 품게 되었고, 몇 일
후에 독수리 새끼가 태어났습니다. 늙은 암탉은 독수리 새끼도 자기 새끼인줄 알고 기
르기 시작했고, 이 독수리도 자기가 닭인 줄 알고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새끼 독수리가 문득 하늘을 쳐다보자 높은 곳을 날고 있는 독수리
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하늘을 나는 독수리를 보자 부러운 생각이 들어 “나도 저렇
게 날 수 있을까?”라며 탄식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닭들이 새끼 독수리를 보고 다음
과 같이 말했습니다. “저기 하늘을 나는 멋진 새는 독수리고 너는 닭이야. 닭 중에서
도 덩치가 크고 못생긴 닭이지. 그렇기 때문에 너는 결코 하늘을 날 수 없어.” 다른
닭들의 핀잔을 들은 새끼 독수리는 결국 자기가 평생 닭인 줄 알고 살다가 달걀도 하
나 못 낳아보고 죽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성도들은 닭이 아닙니다. 아무리 새끼라고 할지라도, 어제 예수님을 믿고 갓 구원 받
은 성도라고 할지라도 우리는 독수리입니다. 그러므로 때론 우리의 보금자리가 어지럽
혀지더라도 날개짓을 해야 합니다. 믿음의 날개, 기도의 날개, 용기의 날개를 펼쳐야
합니다. 날개를 펴도 힘이 없어 떨어진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망하거나 죽지 않습니
다. 어느 순간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날개 위에 업혀서 다시 하늘을 나는 기적을 체험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의 이주선 집사님은 예전에 간암을 앓았던 분입니다. 간암 3기가 되어서 암
이 여러 군데로 전이되는 바람에 의사들도 수술을 포기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 분
은 생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맨발로 청계산을 등산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청계산 정상
에 도착하면 힘들어도 크게 웃었습니다. 꾸준히 맨발로 청계산을 등산하시고, 기도회
가 있으면 나와서 부르짖고 기도하시다가 암이 전부 치료되는 기적을 체험하셨습니
다. 작은 날개라도, 힘이 없는 날개라도 믿음의 날갯짓을 해야 합니다. 인간은 안 된
다고 할지라도 전능하신 하나님은 하실 수 있을 줄 믿고 기도의 날개를 펴야 합니다.
좌절해도 용기의 날개를 펴고 일어나야 합니다. 날다가 떨어질지라도 하나님은 우리
를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아비 독수리가 날카로운 눈동자로 지키다가 어느 순간 새끼
를 등으로 받아 업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큰 날개로 우리를 업으시고 다시 하늘로 날
게 하실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모두 날개 치며 올라가는 독수리와 같
은 삶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
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사 40:31).
[피영민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