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강 7회차 강의의 문을 열겠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까지 구약 히브리어에 담긴 웅장한 신학적 뼈대들('바라', '헤세드', '카도쉬', '고엘' 등)을 해체해 왔다면, 이제 우리의 시선은 신약 성경의 무대인 ‘헬라어(Greek)’의 세계로 이동합니다.
그 첫 단추로 해체할 원어는 신약 성경의 가장 찬란한 보석이자 복음의 핵심인 ‘사랑’과 ‘은혜’입니다.
당시 음란하고 자기중심적이었던 로마 제국의 문화 속에서, 신약 성경의 저자들이 선택했던 ‘아가페($\text{ἀγάπη}$, Agape)’, ‘필리아($\text{φιλία}$, Philia)’, 그리고 ‘카리스($\text{χάρις}$, Charis)’라는 단어가 어떻게 제국의 가치관을 뒤엎었는지, 그 원어적 폭발력을 파헤쳐 보겠습니다. 자, 7회차 강의 시작합니다!
제4강 7회차: 헬라어 '아가페(Agape)', '필리아(Philia)'와 '카리스(Charis)'- 세상의 사랑을 초월하는 아가페의 신학, 요한복음 21장의 수사학, 그리고 파격적 은혜의 주해 -
고대 헬라 문명권에서 '사랑'을 표현하는 단어는 크게 네 가지가 있었습니다. 육체적·성적 끌림을 뜻하는 ‘에로스($\text{ἔρως}$)’, 혈연과 가족 간의 애정을 뜻하는 ‘스토르게($\text{στοργή}$)’, 친구 간의 깊은 우정과 친밀함을 뜻하는 ‘필리아($\text{φιλία}$)’, 그리고 상대방의 자격과 상관없이 자기 자신을 내어주는 거룩한 사랑인 ‘아가페($\text{ἀγάπη}$)’입니다.
신약 성경의 저자들은 음란함과 조건부 거래로 가득했던 세상의 '에로스'라는 단어를 성경 텍스트에서 완벽하게 배제했습니다. 그리고 '아가페'와 '필리아'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가진 전혀 다른 차원을 선포했습니다.
1. 요한복음 21장의 수사학: '아가페'와 '필리아'의 깊은 영적 심리
복음서에서 이 두 단어가 가장 드라마틱하게 교차하며 신학적 전율을 일으키는 대목이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이 디베랴 바닷가에서 베드로를 찾아오신 요한복음 21장입니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그물을 던지던 베드로에게 찾아오셔서 주님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질문을 이렇게 던지십니다.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사랑하느냐(아가파스, $\text{ἀγαπᾷς}$)?"
주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조건 없이 목숨 바쳐 사랑하는 그 완벽한 '아가페'의 사랑으로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나 수제자라 장담했다가 처참하게 무너졌던 베드로는 감히 "아가파오"라고 대답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너무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필로, $\text{φιλῶ}$)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베드로는 "주님, 저는 주님이 원하시는 완벽한 아가페의 사랑은 감히 장담할 수 없고, 그저 주님을 친구로서 진심으로 좋아하는 '필리아'의 친밀함밖에 드릴 수 없는 부끄러운 존재입니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주님이 두 번째로 "아가파스(아가페하느냐)"라고 물으셨을 때도 베드로는 여전히 "필로(필리아합니다)"라고 낮아진 고백을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님의 세 번째 질문에서 파격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필레이스, $\text{φιλεῖς}$)?"
예수님은 베드로의 낮은 수준으로 자신의 언어를 내려놓으셨습니다. "그래 베드로야, 네가 나를 완전하게 아가페 하지 못해도 괜찮다. 네가 나를 향해 가진 그 작은 필리아의 우정과 진심만으로도 충분하다"라며 베드로의 그 연약한 모습 그대로를 품어주신 것입니다. 이에 베드로가 근심하여 "주님, 내가 주를 필리아 하는 줄을 주님이 아십니다"라고 고백하자, 주님은 "내 양을 먹이라"며 사명을 복원시켜 주셨습니다.
아가페는 인간이 완성해서 하나님께 바치는 단어가 아닙니다. 인간의 바닥나버린 필리아의 자리에 친히 찾아오셔서, 그 연약함을 아가페의 사랑으로 덮어주시는 하나님의 성육신적 사랑인 것입니다.
2. 카리스(Charis): 제국의 상부상조 시스템을 깨부순 '파격적 은혜'
두 번째로 해체할 단어는 신약 신학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카리스($\text{χάρις}$, 은혜)’입니다.
3강 11회차에서 배웠듯이, 1세기 로마 사회를 지배하던 인간관계는 '후원자-고객(Patron-Client) 시스템'이었습니다. 귀족(후원자)이 평민(고객)에게 호의를 베풀면, 평민은 칭송과 정치적 충성이라는 '대가'를 반드시 지불해야 했습니다. 즉, 고대 세상에서 호의는 결코 공짜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선포한 하나님의 ‘카리스(은혜)’는 제국의 이 상부상조 거래 법칙을 뿌리째 뒤엎어 버린 다이너마이트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