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규모와 방식: 1932년 봄부터 여름(약 4개월 동안) 미 연준은 당시 기준으로 10억 달러(당시 미국 GNP의 약 2%, 현재 가치로 치면 수십조 원 이상에 달하는 막대한 금액)에 달하는 중·장기 국채를 대거 매입했습니다.
정책적 목적: 은행들이 대출을 닫고 현금만 움켜쥐어 시중에 돈이 마르는 '신용 경색'을 타개하고, 폭락하던 장기 금리를 끌어내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결과: 이 조치는 놀라운 효과를 보여 장기 국채 금리를 급격히 떨어뜨렸고, 실물 경제와 생산 지표가 일시적으로 반등하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경제사학자들은 이 1932년의 정책을 '현대 양적완화(QE)의 가장 성공적인 역사적 선례(Precedent)'로 평가합니다.
한국경제+ 2
2. 루스벨트 정부의 금본위제 포기와 통화 발행 (1933년)
비상 조치: 1933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미국 정부는 달러를 금으로 바꿔주던 금본위제를 전격 폐지했습니다.
한국경제
실체: 미국 정부가 보유한 금의 양에 매여 있던 통화 발행의 족쇄를 스스로 풀어버린 것입니다. 이를 통해 달러 가치를 의도적으로 평가절하하고, 연준이 통화량을 대폭 늘릴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열어주었습니다.
Hoover Institution
3. 전쟁 전 정책의 한계와 아쉬운 점
1932년의 대규모 국채 매입이나 금본위제 포기 등은 분명 현대 양적완화의 모태가 될 만한 파격적인 유동성 공급 정책이었습니다.
Federal Reserve Bank of San Francisco
다만 당시 연준은 이 정책의 지속 중요성을 완전히 깨닫지 못했습니다. 프로그램이 단기간에 급작스럽게 종료되었고, 나중에(1937년) 재정 긴축을 조기에 서두르다가 경기가 다시 대공황 수준으로 고꾸라지는 '재침체(Double Dip)'를 겪기도 했습니다.
Federal Reserve Bank of San Francisco+ 1
즉, 미국 정부와 연준은 이미 1930년대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한참 전에도 금리가 바닥을 치고 경제가 망가졌을 때 국채를 무더기로 사들이며 시중에 돈을 푸는 '양적완화의 원형'을 실제로 동원한 적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