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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시대와 그 시대의 말씀을 깨닫는 것.
이곳에서 인용된 성경은 GOOD TV 다번역 영어 킹 제임스(흠정) 역이며
메시지 책자에서 말씀하고자 하는 주제에서 최대한 벗어나지 않도록
편집하였음을 미리 알립니다.
친구들 안녕하십니까? 잠시서서 기도합시다.
하나님, 우리가 이 혼잡한 생활 속에서 당신이 우리에게 주실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당신을 찬양하고, 당신께 영광
돌리고, 당신의 말씀을 설교하고, 당신을 더 잘 알기 위하여 잠시 멈추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오늘 아침 함께 모인
이유입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이렇게 다시 당신의 말씀을 들을 준비가 된 사람들이 있는 것에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상황이나 시간에 관계없이 그들은 여전히 당신을 믿습니다. 그들로 인해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우리는 당신이 약속하신 말씀대로, 보여주신 위대한 병 고치는 능력에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이러한 간증들을
들을 때 우리의 가슴이 얼마나 불타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가진 온갖 종류의 병들이, 당신과 당신의 은혜와 권세와
당신의 약속으로 인해 고쳐졌습니다. 그들이 여기에서 간증을 하며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감사드립니다. 이제 당신께서 이 시간에 우리에게 베풀어 주실 말씀을 우리가 듣게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의 말씀을
읽을 때 우리가 읽는 그 말씀을 이해시켜 주시옵소서. 모든 일들에 있어서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앉으십시오.).
우리가 오늘 아침 여기 모인 것은 특권입니다. 여러분이 모두 여기 모이셔서 기쁩니다.
우드 형제, 로이 로버슨 형제, 다른 많은 형제들이 에어컨 시설을 하기 위해 지난 이틀 동안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그들이 지난 일요일 여러분이 얼마나 고통을 겪는지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교회기금에서 약간의 돈과 여러분이 헌금하신 돈으로 여러분을 편안하게 해 주기 위해서 일을 했습니다.
지난주보다 오늘은 훨씬 시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기회에 대해 하나님과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로이 보더스 형제님 반갑습니다. 그는 오늘 아침 뒤에 앉고 싶어 했습니다.
제가 그에게 의자를 가지고 여기 이 목사님들과 함께 앉으라고 했지만 그는 거절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알듯이 보더스 형제는 우리를 대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더스 형제와 이렇게 함께 있을 수 있어서 기쁩니다. 다른 많은 목사님들과 친구들도 반갑습니다.
주일 내내 저는 생각하면서 말하기를 "내가 주일날 저기에 가면 나는 모든 목사와 모든 사람들을 알아볼 거야."
그런데 이곳에 올라오면 거의 모든 것을 잊어버릴 정도로 말씀에 신경이 쏠립니다. 바로 그렇게 되어버립니다.
여러분은 모르실 것입니다. 세상은 제가 겪어야 하는 것을 결코 모를 것입니다. 그것은 극도의 긴장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걷고 계셨을 때 제자들에게 마가복음6장31절에서 "외딴 곳에 가서, 잠시 쉬어라." 라고
말씀하신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보십시오. 저는 그것을 매일매일 더욱 깨닫습니다.
특히 내 생이 이 세상에 더 머물수록, 여러분이 나이가 들면 그것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우리 목사가 그것에 대해 "아멘"이라고 말하는 것을 또한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50살이 넘고 나서야 우리는 소년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막 들은 간증들을 감사히 여깁니다.
어제 제 아내가 우드 부인의 집에 갔었는데, 그때 저 아래 알라바마로부터 온 사람들이 주님이 그곳의 모임에서 행하셨던 위대한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였습니다. 어린아이들의 병이 고쳐지고 여러 가지 다른 일들이, 너무 많은 일들이어서 그것을 다 이야기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것입니다.
누군가가 저에게 말하기를 라슨 자매님이 한 작은 애기와 함께 여기에 두 번째 참석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잘 모르지만 그들이 말하기를 그녀의 손주를 봉헌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저 아래 시카고로부터 아이를 여기까지 데리고 왔습니다.
그녀는 우리에게 매우 친절했으며 우리는 그녀에게 감사히 여기고 있습니다.
그녀가 그 아이를 봉헌하기 위해서 시카고로부터 데려왔습니다.
그녀는 시간이 없었지만 주님께 이 아이를 봉헌하는데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동안 라슨 자매님은 그 아이를 이 봉헌예배에 데리고 나오십시오.
그녀가 준비하는 동안, 제가 지금 전하려는 말씀은 제가 어젯밤까지 준비하려고 시도했었던 것 중 가장 어려운 것임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주일 내내 저는 방에 들어가서 모든 것을 밀쳐놓고 이 시간을 위해서 마음속에 뭔가를 얻으려고 애썼지만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어제는 지하실로 내려갔습니다. 너무나 더운 날씨여서 지하실로 내려가서
거기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읽으려고 애쓰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일어나서 물을 먹고 잠을 깨려고 애썼습니다. 그리고 바깥으로 나가서 주위를 걷다가 계단 위에 앉았습니다.
지난 밤 저는 차를 타고 찰스톤을 향해서 올라가면서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애쓰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저에게 무엇인가를 말씀하시고 싶어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사탄이 제가 그것을 못하도록 방해하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 그가 방해를 한다면 나는 그냥
계속해서 기다리고, 그가 문을 열어 줄 때까지 그냥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아침 7시쯤…저는 정말로 일찍 일어났습니다.
어제는 옥수수를 먹었는데 그것이 저에게 맞지 않은데다, 매우 더웠고, 그래서 좀 몸이 아팠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8시쯤, 나는 우연히 성경말씀을 읽고는 놀랐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성경말씀을 여러 번 반복해서 보았습니다. 그 말씀은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성경말씀을 계속해서 읽었습니다. 마침내 저는 몇 분 전에야 알았습니다.
주님께서 오늘 아침 우리를 위한 말씀을 가지고 계시며 사탄이 우리가 그 말씀을 듣지 못하도록 방해를 한 것입니다.
라슨 자매님 그 아이를 이곳으로 데리고 나와 주시겠습니까?
[브래넘 형제가 그 아이를 헌납한다.] 하나님이시여 그들과 함께 하시며 그들을 도와 주옵소서.
오늘 아침 제가 가진 이 말씀은 깁니다. 그러나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교회의 규칙을 만드는 것을 돕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여러분은 "제가 녹음하고 있지만 않다면" 하고
제가 말한 것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녹음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주님의 뜻이라면
그때 오늘 저녁과 다음 일요일의 시간 모두로 돌아가려고 할 것입니다.
자, 만일 여러분이 이번 주에 말씀을 듣지 못하면, 여러분은 다음 주일날 와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을 그처럼 두 번 씩 오게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저는 우리에게 단지 약간의 시간이 있음을 느낍니다.
그리고 기억하십시요. 만일 시간이 계속 흐르면 우리는 이 특권을 그리 오래 누리지는 못할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무엇인가 일어날 것입니다. 법이 우리를 멈추게 하거나 사탄이 여러분 사이에 끼어들어 여러분을 흩어놓을 것입니다.
항상 그런 식이었습니다. 주목하십시요. 무슨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함께 모이는 매순간을 감사합시다.
저는 어젠가 그젠가 메모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기억으로부터 적었던 것입니다.
"새는 물탱크"(A Leaking Cistern)나 "바람에 씨 뿌리는 것과 폭풍을 거두어들이는 것"(Sowing to the Winds and Reaping a Whirlwind)의 둘 중의 하나였습니다. 이것들은 단순히 복음의 말씀입니다.
오늘 아침은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녁에는 위의 두 가지 중 하나에 대하여 이야기하겠습니다.
자 성경을 읽읍시다. 여러분 평안하십니까? 그러면 "아멘"이라고 하십시오. [회중, "아멘"으로 대답한다.] 좋습니다.
이제, 선지 호세아6장에서 몇 구절을 읽어봅시다. 잠깐 일어서서 기도할까요.
하나님, 우리는 우리 손에 이 책을 들기에도 합당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늘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서나 이 책을 취하거나 보기에 합당한 이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성경에서 읽었기 때문입니다. 오, 그런데 한 사람, 일찍 죽임을 당한 양 같은 자가 나왔습니다.
그는 합당하였기에 이 책을 취하고 그 책의 인을 떼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아침 그가 이 책에 쓰여 있는 오늘의 말씀을 보여 줄 것을 간구하고 있나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구원의 책이기 때문입니다 ; 구속된 모든 이가 그 안에 쓰여 있습니다.
오늘 아침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서 우리의 위치를 찾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님 이름으로 구하옵니다. 아멘.
호세아6:1.오라,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자. 그분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낫게 하시리라.
그분께서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시리라.
2.이틀 후에 그분께서 우리를 되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분의 눈앞에서 살리로다.
3.우리가 계속해서 주를 알고자하면 그때에 우리가 알리라. 그분의 나오심은 아침같이 예비되어 있으며 그분께서는
비같이 곧 땅에 내리는 늦은 비와 이른 비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4.오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오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선함은 아침 구름 같고 사라지는 새벽이슬 같나니
5.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그들을 넘어뜨리고 내 입의 말들로 그들을 죽였노라.
너에 대한 심판은 앞으로 나아가는 빛 같으니라.
6.나는 긍휼을 원하고 희생물(제물)을 원치 아니하며 번제 헌물보다 하나님 아는 것을 더 원하였으나
7.그들은 사람들같이 언약을 어기며 거기서 나를 대적하고 배신하였도다.
8.길르앗은 불법을 행하는 자들의 도시로서 피로 더럽게 되었도다.
9.강도떼가 사람을 기다리는 것 같이 제사장들의 무리가 동의하여 길에서 살인을 행하나니 그들이 음탕한 짓을
행하는도다.
10.내가 이스라엘의 집에서 끔직한 일을 보았는데 거기에 에브라임의 행음이 있으며 이스라엘이 더럽혀졌느니라.
11.또한, 오 유다여, 내가 내 백성의 포로된 것을 돌이킬 때에 그가 너를 위해 수확할 것을 정하였느니라.
주 예수님, 우리가 당신을 더욱 기다리니 성령에 의하여 이 안에 감추어진 뜻을 밝혀 주십시오.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늘 아침 제가 다룰 주제는 "당신의 시대와 그 시대의 말씀을 깨닫는 것" 입니다.
우리는 지난번에 나팔 절에 대하여 배웠는데 하나님의 시계에 있어서의 이스라엘의 시간에 주목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대해서 깨닫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우리에게는 시간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것에 의하여 바로 그 시간과 때와 징조와 여러분이 이제 들을 말씀을 알아야만 합니다.
우리는 나팔 즉 성경책에 있는 마지막 일곱 나팔에 대하여 설교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 속으로 저는 나팔들은 인봉과 같이 터지리라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것들이 열릴 때마다 굉장한 일들이 벌어지곤 했었던 것을 주의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일곱 교회 시대를 설교했을 때, 그것들은 완벽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사이에 내려 오셔서 그것을 입증하셨고, 사진으로 찍혀서 신문에 실리고, 전국적으로 알리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그렇게 일어나기 몇 주일 몇 달 전에, 완벽하게 그런 방법으로 일어나리라고 증명해 주셨습니다.
이곳 예배당에서 성령이 그것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하늘에 있는 달과 해 위에서 성령이 그것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오늘날의 나라 상황에서 로마의 주교단이 팔레스타인으로 들어갔을 때 성령이 그것을 알게 했습니다.
그들의 주장대로 한다면 베드로가 교황인 이래, 팔레스타인을 방문하는 첫 번째 교황일 것입니다.
그것은 매우 끔찍한 일입니다.
그리고 모든 비밀을 감추고 있던 일곱인 이전에 우리는 교회시대를 위해 제가 칠판에 나도 모르는 것을 그리고 있었던
것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결코 몰랐으며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저는 환상에 의해서 그것을 그렸습니다.
[사진 4를 보시오-주.]
그리고 하나님께서 일 년 육 개월 뒤에 그것을 하늘의 달을 가지고 입증하시고 국가적인 신문들에 실으시려는 것도
몰랐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몰랐습니다.
저는 달에 이 라오디게아 시대를 신비스러운 흑암으로 나타내실 것도 몰랐었습니다.
신문에 여러분은 다만 6개의 시대만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라오디게아 교회가 완전히 흑암에 싸여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영적으로 적용되는 것을 알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 하늘에 그것을 말씀하시는 것처럼 말입니다.
[사진 1을 보시오-주.]
제가 여기 세상에서 라오디게아 시대에 대해 말할 때, 저는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아주 조그만 빛을 남겨 놓았는데,
그것은 택함을 받은 자들이 세상으로부터 휴거하기 직전이며, 저는 그것을 일곱 번째 시대에 남겨 놓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것을 하늘에 나타내실 때는 완전히 깜깜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마지막 사람이 그 라오디게아 시대로부터 불림을 받는 것을 의미할 것이지만 우리는 모릅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아마 그것에 관한 설교가 있을 것입니다.
자, 다시 한 번 주의해 보십시오. 제가 그런 식이 되리라고 전혀 몰랐던 일어날 모든 일에 대해서 여기 이 성전에서
여러분에게 말하고 나서 일곱 인에 앞서서, 하나님이 말씀해 주셨고 저를 아리조나 투산에 보내셨습니다.
제가 여기에서 일어나리라고 말한 그대로 일어나는지 보려고 투산에 갔었던 사람이 오늘 여기 참석해 있습니다.
일곱 천사가 방문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전국의 신문, 잡지들은 그것을 가득 실었습니다.
제가 그림으로 그려서 여러분에게 보여 드렸던 것과 똑같은 피라미드 형태의 신비한 둥그런 빛은 그 천사들이 섰던
곳에서 상공 30마일, 넓이 27마일 이었던가 상공 27마일, 넓이 30마일 이었던가 어떤 것인지 잊어버렸는데 어쨌든
그만큼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생겼던 바로 그 지점, 그 시간에 아리조나 투산 바로 상공에 나타나 전역에 걸쳐 보였습니다.
[사진 5를 보시오-주.]
성경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단지, 이것은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뭔가를 주입시키려고 애쓰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 시대에 대한 그 영적인 적용을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 말씀은 요한계시록10장에 말씀하신 일곱 인에 대한 계시가 성령에 의해서 열렸습니다.
일곱 인은 성경시대를 통해서 미해결된 하나님의 모든 비밀이나 가르침 기타 등등을 우리에게 드러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에 대해 오늘날 교회들과 사람들은 이러쿵저러쿵 틀렸다고 강하게 공격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아리조나 주에서, 사람들은 제가 말하지도 않은 것을 말하게 하려고 녹음테이프를 겹치게 하기도 했습니다.
아리조나의 입법에 대한 환상을 기억해 보십시오. 성경은 당신이 “목에 바위를 메는 편이 훨씬 낫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말씀은 "누구든지(목사이든 그 어느 누구이든지 간에) 그것에서 한 말씀을 제하거나 더하면," 내가 하지도 않은 말을 하게 하려고 내가 말한 것처럼 해서 말씀 위에 자신들의 생각을 집어넣으려는 사람들은 내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하는 것이 됩니다. "누구든지 더하거나 빼면,.."
그리고 나서 이상으로 우리는 몇 주 전에 제가 설명한 대로 이 선지자들이 선회하며 내려오는 것을 압니다.
모두 그렇게 될 것입니다. 저는 "그냥 그것을 기다리시오." 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싸우는 한, 하나님이 그것과 싸울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도록 맡깁시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돌보고 계십니다. 알겠습니까?
지난 일요일에 절기 일에 대해 설교를 했음을 다 알고 계실 것입니다. 오순절이 있었습니다.
오순절과 나팔절 사이에는 정확히 50일이라는 긴 시간이 있습니다.
오순은 50일을 말하는 것인데 곡식 단을 흔들고 거둬들이고, 수확의 첫 열매를 드리는 기간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것은 자연적인 첫 열매가 사람들에게 부어질 성령의 첫 열매를 대표하는 표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이 자기의 이름을 위해 이방인으로부터 사람들을 부르고 50일은 이방인들에 의해 받아들여진
오순절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토록 긴 오순절을 지나오고 있습니다.
실제로 50일 동안에는 정확히 7개의 안식일이 있습니다.
일곱 안식일은 일곱 교회 시대를 말하며 오순절 동안에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이방인들을 부르는 일곱 시대인 것입니다.
지금가지 계속되어 온 이 일곱 번째 안식일의 끝에 가서는 속죄일이 있을 것이며, 이것은 곧 일곱 나팔입니다.
이 일곱 나팔은 제물이나 속죄에 대해 슬퍼하는 날을 삼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일곱 나팔은 이스라엘에게만 해당되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제가 그들에게 일곱 나팔에 대해 설교하도록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것을 발표한 준비가 다 되어 있었고 일곱 나팔을 설교할 수 있도록 큰 강당도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나는 "뭔가가 저를 매우 괴롭힙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빌리와 우리는 일곱 나팔에 대해 다음 주에 설교하려고 만반의 준비가 되도록 하기 위해 계속 일을 했습니다.
학교 강당을 준비시켰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제가 그것을 못하게 했습니다.
저는 이유를 몰랐습니다. 제가 기도하러 들어갈 때 저는 아내에게 "나는 들어가오." 하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기 위해서 전심으로 저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하나님은 일곱 나팔은 일곱 인을 뗀 후에 소리가 난다는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저는 초자연적으로 일곱 인에 대해 설교를 마쳤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손이었고, 그게 전부입니다.
일곱 나팔은 이스라엘에 해당됩니다.
우리는 일곱 인 아래서 그것에 대해 알아보았고 유대인들이 받은 핍박이 얼마나 컸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이방인의 시간은 이 오순절 기간에 해당합니다. 그 나팔들은 모두 여섯 개의 인이 떼어진 후 소리가 났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게 해당되는 나팔 절에서 그 나팔은 무슨 역할을 하는 것이었습니까?
그것은 세계 도처에 있는 유대인들을 그들의 고국으로 다시 모아들이는 역할입니다.
그들은 반드시 그들의 고국에 있어야만 했습니다.
여섯 번째 인을 뗄 때 인이 열리는 것, 일곱 나팔은 여섯째 인을 뗄 때 소리를 내었습니다.
그리고 계시록10장7절에서 일곱째 사자의 메시지를 통해 일곱 인의 비밀을 열 것입니다.
제일시 일군이 받는 품삯과 똑같은 품삯을 받을 제십 일시 이방인 일꾼을 부를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예수님이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예수님은 몇 사람이 추수 때에 가겠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고용되었고 아침 일찍부터 일해서 하루 품삯으로 동전 한 닢을 받았습니다.
그리고나자 정오 때쯤 또 다른 사람이 들어와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열한시 경, 하루의 마지막 늦은 시각에 들어와 아침 일찍 들어온 사람과 똑같은 품삯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말씀이 완전합니까? 말씀을 가지고, 복음을 가지고, 진리를 가지고 온 제일시 사자들은 오순절 때에 왔습니다.
그리고나자 암흑시대가 있어 그들을 방해하였습니다. 한낮에 루터와 웨슬리, 그들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어두워질 때 말씀이 있어야 하며 처음에 그들이 했던 똑같은 것을 받아야 합니다.
어두워질 때의 말씀은 다시 회복시키고, 다시 그 똑같은 일을 가지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렸던 그리스도의 신부들에 대한 환상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환상 중에 아름답고 작은 신부가 나타났습니다. 저는 별생각 없이 그냥 거기 앉아서 바깥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신부가 나타났습니다. 내 옆에서 소리가 나더니 "여기서 미리 신부들을 보아라." 라고 말했습니다.
그녀가 지나갔습니다.
저는 아주 사랑스럽고 예쁘고 젊은 신부를 지켜보았습니다.
그녀는 여자들이 우아하고 숙녀답게 걷는 모양으로- 행진하는 걸음이 아닌-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그 여자는 걸어서 이 내 왼쪽으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 눈 앞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저를 오른 쪽으로 돌려 각 시대에서 나오는 각 교회를 보여주었습니다.
오, 얼마나 흉했는지 모릅니다. 마지막 교회는 이 마지막 날의 교회시대인데 마녀가 인솔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야한 옷차림을 하고 더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트위스트와 락큰롤이라는 음악의 박자에 맞춰 행진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여자들은 온 몸을 비비꼬고 있었으며, 그저 신문을 끌어안고 있었는데, 그 신문은 회색이었습니다.
위선적인 여자들이었습니다. 회색은 흰 색과 검은 색의 중간이며 속이는 색입니다.
회색은 흰 색도 아니고 검은 색도 아닙니다. 그것은 속이는 색입니다.
회색 신문을 그들 앞에 안고, 레이스같은 훌라 치마를 앞에 가리고 허리 우시부분은 완전히 벌거벗고 있었습니다.
그 음악박자에 맞춰 온 몸을 뒤틀며 그 음악을 계속 들으며 행진하며 걸어갔습니다.
그러자 "저것이 교회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지나갔을 때, 제 마음은 기절할 것 같았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저런 모습이 그리스도에게 신부라고 드리는 것이었던가. 사람이 그리스도를 위해 신부를 만들어 내려고 애쓰기
위해 낸 노력과 일들이란 말인가. 그토록 흉하고 더럽고 지저분한 음녀가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여자였던가."
그 모습은 내 마음 속에서 구역질이 나게 했습니다.
저는 이런 것들에 대한 책임은 없습니다. 단지 제가 본 것을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저를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그 여자는 미국의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가 지나갈 때 등에 아무 것도 입지 않고 드러내 놓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여자가 지나갈 때 저는 기절할 것 같았고 역겨움을 느꼈습니다.
그리고나서 그분은 "다시 한 번 신부를 미리 보여주마." 라고 말씀했습니다.
아까 지나간 여자 뒤에 처음에 지나갔던 신부와 똑같은 모습의 신부가 나왔습니다.
그때 내 가슴은 신부가 있을 거라는 것을 깨닫고 기쁨에 넘쳐 뛰었습니다.
그 신부는 처음에 있었던 신부처럼 될 것이며 똑같은 옷차림을 할 것입니다. 그녀는 신부로 불림을 받을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진리임을 압니다. 만일 그것이 거짓이라면, 제가 전에 가졌던 모든 환상들이 다 틀릴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나 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환상 중에서 하나라도 진리가 아닌 적이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이제 여러분은 교회라고 자칭하는 현대교회의 추잡함을 아시겠습니까?
며칠 전에 누군가, 지금 저기 벽에 기대 서있는 나의 소중한 러들형제가 현대교회가 빨아먹는 벌레처럼, 포도나무 위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며칠 전에 그것에 관해서 방에서 토론을 하고 있었습니다.
러들 형제는 시대상황과 막 기울어가기 시작하는 오늘날 교회에서의 영을 알아차리고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여러 곳에서 온 목사님들이 면담에 와서는 제게 물어보았습니다.
"브래넘 형제여,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까?" 라고 묻습니다.
러들 형제는 "그들은 사탄의 영을 의지해서 사는 사람들입니까? 아니면 무슨?" 라고 제게 질문을 했습니다.
저는 "아뇨, 그 빨아먹는 벌레는 그 포도나무의 힘을 빨아먹고 삽니다." 그것은 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밀감 나무는, 레몬 나무는, 오렌지 나무에서 자랄 것입니다.
그러나 오렌지 나무의 생명으로 산다 할지라도 오렌지를 맺지는 않을 것입니다.
소위 교회는 단지 원줄기의 힘을 빨아먹고 사는 것인데 카톨릭과 개신교라는 교회의 이름이나 종교의 이름하에
살아가는 접붙여진 빨아먹는 벌레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들은 원줄기에 붙어 있지만 탈바꿈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 자신의 열매를 맺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원래 예정 계획안에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아야 하며 다른 종류의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진짜 나무와 뿌리는 오렌지 나무 위에서 오렌지를 맺도록 예정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 나무가 다른 가지를 낸다면, 그것은 원래의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마지막 시대 포도나무 끝에서도 이 모든 것들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있어야만 합니다.
회복이- 비추어서 올바르게 만드는 저녁 빛-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저녁 빛은 포도나무에 접붙여진 교파에서가 아니라, 포도나무에서 나올 원가지에서 나올 것입니다.
그것은 말씀의 원래의 산물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저녁때를 위해서 나올 것입니다. 저녁때에 빛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열매를 익게 하기 위한 강력한 빛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 말씀이 얼마나 완벽한지 보십시오.
"낮이나 밤이라고 불리우지 않은 한날." 열매는 태양의 빛이 익게 하지 않으면 익을 수 없습니다.
사람이 얼마나 설교를 많이 해도, 무엇을 하든지 간에 "나는 세상의 빛, 말씀이다." 라고 말씀하는 하나님에 의하지
않고는 익을 수 없고 표명될 수도 없고 옹호 받을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권능, 성령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예고하신 것이 오늘날 일어난다는 것을 익게 하고 옹호하고 증명하고 표명하기 위해서는 말입니다.
저녁 빛은 그것을 산출할 것입니다. 얼마나 위대한 시대입니까!
그리스도의 신부는 처음에 있었던 신부와 꼭 같은 위치로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녀가 보조가 안 맞는 것을 보았고 그래서 그녀의 등을 당겨서 보조를 맞추게 하려고 했습니다.
이제 이 일이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대해서 많이 말할 수 있겠습니다.
호세아는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라고 호세아6장1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호세아는 그들이 흩어질 거라고 말했고 정말로 그들은 그렇게 되었습니다.
호세아는 그들이 흩어진 후에 여호와께로 돌아갈 거라고 말했고 여호와께서 그들은 싸매어 주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돌아가라...흩어져라...두 번째...그들은 찢겨지고 눈이 멀게 되었었습니다. 그 말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가 우리를 고치시고 싸매어 주실 것이다.”
에스겔37장의 마른 뼈가 가득한 골짜기에서 마른 뼈들을 그렇게 하신 것처럼, 그것들이 소생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면 보십시오. 호세아는 말하기를, “이틀 후에...(이틀 후에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돌아 갈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받으시고 우리를 살리시리라.” 그런데, 살리신다는 말은 부활을 뜻하지 않습니다.
살리신다는 것은 회복시킨다는 의미입니다.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그것은 제 삼일에 있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를 흩어지게 하시고 눈멀게 하시고 찢어 놓으신 후에 다시 우리를 받으시리라."
유대인들이 눈멀게 된 것은 오로지 우리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하기 위한 목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구세주를 영접하고, 주의 이름을 따라 이방인으로부터 불림 받은 백성이 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 일의 결과로 유대인들은 찢기고 한 국가로서 흩어지고 그들의 구세주를 거절했던 것입니다.
여자가 결혼하면 남자의 성을 따르게 됩니다.
이것에 침례 안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을 알 수 없는 이방인들을 눈멀게 했습니다.
안된 일이지만, 항상 그런 식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것을 보아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은 볼 수 있도록 예정된 사람뿐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아무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학식이 있는 자요. 신학자요. 큰 명성을 가진 자요. 우리가 읽고 있는 똑같은 성경을 읽고 있던 유대인들은 그들의
구세주를 볼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이제는 알 수 있게 되었으므로 우리는 구세주를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눈이 멀도록 예언이 되어 있습니다.
이 시대의 교회는 저물녘의 말씀을 거절하도록, 눈이 멀도록 예언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3장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며칠 전날 밤의 신부의 상태 혹은 교회의 상태를 보십시오.
“벌거벗고, 눈멀고, 그것을 알지 못합이라.” 주 예수님! 우리에게 자비를 허락하소서!
성경은 교회가 벌거벗었다고 말합니다. 나는 지금 이 순간까지 그것을 결코 본 적이 없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벌거벗었습니다.
신부가 며칠 전날 밤에 나타났을 때 그녀는 벌거벗었으며 그것을 자신은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오, 얼마나 감사한지, 우리가 크게 감사함을 느끼는 것을 무리가 아닙니다.
나는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려 주시고 있는 것들을 다 감사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벌거벗고 있습니다! 이상은 그녀는 벌거벗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알지 못함을 말했고 보여주었습니다.
이방인들이 들어가기 위해서 유대인들이 눈이 멀었던 것처럼, 이제는 이방인들이 눈이 멀어서 그리스도가 신부를
데리고 갈 수 있고 이스라엘은 나팔 절을 맞이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얼마나 완벽합니까!
"이틀 후에 여호와께서 우리를 살리시며(또는 우리에게 소생을 주시며), 우리를 한데 모으시리라.
(유대인들은 지금 이 나팔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또는 영생을 가지리라. 아시겠습니까?) 우리가 그 앞에 있으리라." 호세아에서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즉, 그 앞에서 생명을 가지리라. (그 생명은 여호와의 생명, 영생을 말합니다).
“그 앞에서 생명을 가지리라.” 이스라엘은 살아 있으면서도 쾌락 속에 살므로 죽은 상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스라엘이 다시 여호와 앞에서 생명을 가지리라고 약속합니다.
이스라엘은 사실과 오순절에 대해서는 죽은 상태입니다.
자 주의 깊이 보십시오. 그리고 이틀 후에, 그것은 24시간의 날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저 수백 년 전에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그것은 여호와에게 이틀을 의미합니다.
이틀은 이천 년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그 시간이후에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아시겠지요?
호세아의 예언은 BC 780년에 있었으므로 그 이후로 2700년이 흘렀고- 지금은 1964년입니다.
그것은 2700여년전의 일입니다. 호세아는 말했습니다. "이틀 후, 제 삼일에, 여호와께서 다시 우리를 살리시고
그 앞에서 생명을 주시리라." 이제는 나팔이 들어옵니다.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이며 시대입니다.
이제, 유대인들은 흩어지고, 눈멀고 모이고, 제 삼일에 들어온 지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이해하십니까?
그들은 팔레스타인으로부터 세계 각 곳으로 흩어졌습니다. 그들은 눈이 멀어서 구세주를 거절했습니다.
이제 그들은 속죄를 깨닫게 하는 나팔에 준비가 되어 고국에 한데 모인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대로, 그들은 교회가 휴거를 받은 후 구세주를 받아드리고 못 자국이 있는 구세주를 발견하고 묻기를
"그 상처는 어디에서 얻었느뇨?" 그가 말하기를 "내 친구 집에서로라." 또 유대인들은 독자를 잃은 가족처럼 몇 날
동안 가족이 나누어서 통곡하리라서 하나님이 말씀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나팔 절은 죽임당한 제물, 즉 그들이 거절한 제물을 위해 울고 애통하는 날입니다.
유대인들은 이제 그들의 땅에 있습니다. 흩어지고 눈이 멀었었지만 이제는 한데 모였습니다.
그것은 그들을 한데 모으기 위해 소리 내는 여섯째인 아래서의 일곱 나팔이었던 것입니다.
여섯 나팔, 일곱 번째 나팔은 지난주에 알았듯이, 위대한 나팔입니다.
여섯 나팔은 여섯 번째 인이 열릴 때처럼 여섯 번째 인을 뗄 때에 소리가 났습니다.
모든 것이 정확한 시간에 일어납니다. 우리가 오순절의 2,000년을 살고 있는 시점에 모두가 동시에 소리를 냈습니다.
이제 2700년이 지난 지금, 호세아는 "제 삼일에 여호와가 우리를 한데 모으리라. 이틀 후 제 삼일에 우리를 모으시고
그의 앞에서 생명을 주시리라" 고 말했습니다. 그 약속을 보고 있습니까? 시간이 완벽하게 벽에 쓰였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어디에 살고 있는가를 압니다.
이제 고국에서 나팔 절, 속죄의 깨달음을 기다리면서, 그들이 거절했던 것을 애통하고, 구세주의 오심을 기다리면서,
그들은 모든 것이 제 위치에 자리 잡는 때를 기다리면서 고국 땅에 속죄를 위해서 지금 모여 있습니다.
그 복음을 전하는 목사로서 저는 신부의 휴거 외에 남은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유대인들이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를 깨달을 수 있기 전에 신부는 들림을 받아야 합니다.
그들은 모였고, 흩어졌고- 내 말은 그들은 흩어졌고 눈이 멀었었는데 이제는 다시 모였습니다. 무엇이 남았습니까?
휴거를 위해 말씀으로 준비하고 있는 신부들, 그 신부들이 가는 것을 기다리는 것만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시록11장의 그들의 선지자들이 그들이 한 일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나팔절로 그들을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요. 그 인들 사이에 여섯 번째 인이 나왔고 택함을 받고 부르심을 입은 십사만사천명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6번째와 7번째 나팔 사이에, 계시록11장이 바로 거기서 6번째 인과 정확하게 일치가 되어 나타납니다.
무엇을 할까요? 무엇을 하도록 되어있습니까?
그것은 유대인들이 그들의 선지자로 믿는 모세와 엘리야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선지자의 표적을 가지고 나올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임무는 선지자의 임무이며, 따라서 그들은 정확하게 한 가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사람은, 여러분이 죽었을 때 혹은 무엇이든지간에-여러분이 이 세상을 떠날 때 여러분의 본성은 변하지 않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지금 거짓말 장이라면, 여러분은 저 세상에서도 거짓말 장이가 될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성미가 급하다면, 여러분은 저 세상에서도 성미가 급할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의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저 세상에서도 여러분은 의심이 많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은 여러분 자신을 흔들어서 자신을 검토해 보고 우리가 어디에 있는가를 깨달아야 할 때입니다!
왜냐하면 죽음도 그것을 변화시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 선지자들은 2,000년 전에 죽었습니다.
모세는 약 2,500년 전, 그리고 엘리야가 거의 2,500년 전, 엘리야와 모세는 죽었습니다.
그리고 여기 그들이 똑같은 본성을 가지고 돌아와서 똑같은 일을 합니다.
죽음은 사람에게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다만 그의 거처하는 장소만을 바꿀 뿐입니다.
죽음은 여러분의 본성을 바꾸지 않고, 여러분의 믿음도 바꾸지 않고, 여러분에게 있는 어떤 것도 바꾸지 않습니다.
다만 여러분이 사는 장소만을 바꿀 뿐입니다.
그러니 오늘 아침 여러분의 본성은 어느 쪽입니까?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는 자라면, 여러분은 저 세상에서도 의심가일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얼마나 성스러우며, 어떻게 살고 있으며, 얼마나 좋은 삶을 여러분이 산다 해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죽음은 여러분을 조금도 변화시키지 않고 다만 여러분이 사는 장소만을 바꿀 뿐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쓰여 진 그대로 전부 받아들일 수 없다면, 여러분은 저 세상에서도 그럴 것입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그곳에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함과 그것의 입증의 권세와 그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계시를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그때서야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의 일부분이 될 수 있습니다.
그가 첫 번째 부활절 아침에 그의 말씀을 행하셨던 대로 그가 되살릴 것은 오직 그의 말씀이십니다.
그의 말씀만이 나왔으며 그의 말씀을 믿으면서 그의 말씀 안에서 죽고 그의 말씀을 입증한 자만이 살아나왔습니다.
주의해 보십시오. 그것은 2,700년 전이었습니다. 주목하십시오. 그들은 흩어졌습니다. 그들은 눈이 멀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모여 있습니다. 자 다음은 그들이 생명을 받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이 불러져서 나왔습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는 준비되어졌습니다. 휴거가 가까웠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우리가 실제로 그것을 믿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들어왔던 이야기입니까?
우리에게 그것은 신화입니까? 그것은 사실처럼 들리는 것입니까? 육신인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우리 안에 있어서 우리의 부분이며 우리에게 생명보다 더 귀중한 것입니까?
아니면 우리 안에 있어서 우리의 부분이며 우리에게 생명보다 더 귀중한 것입니까?
우리가 오늘 아침 어떤 태도를 갖고 앉아 있습니까? 적은 무리만이 휴거를 받을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요.
이스라엘은 이제 고향에서 나팔소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제 신부가 휴거되어 계시록11장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교회시대는 끝나고 있습니다.
인들이 열려져서 교회시대에 무엇이 남아 있는가를 증명합니다. 그리고 복음이 주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은 나팔 절에 준비가 된 상태입니다. (할렐루야!)
다른 나라에서 이 테이프를 들으실 여러 형제님들 정신을 바짝 차릴 수 없겠습니까?
아니면 그것이 당신을 눈멀게 합니까? 당신이 그것을 던져 버리고 그것이 세상과, 시대와 사람들과 그것을 쓰신 성령에 의해서 바로 당신 앞에서 입증이 되고 있는데도 그것을 거짓 예언이라고 부르시겠습니까?
그것은 자연적으로, 영적으로, 물질적으로 다 입증이 됩니다. 성령이 말씀하신 모든 것은 이루어지고 증명이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나라에 있습니다. 그들을 거기로 몰아서 양처럼 그들을 모았습니다.
늑대들이 그들을 공격하여, 안전한 그들의 땅으로 다시 몰아넣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이스라엘은 오직 그들의 땅에만 있는 한 축복을 받으리라고 약속받았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이스라엘을 그들이 나라 밖에 있을 때는 축복하시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땅을 떠나서, 정죄함을 받았습니다. 그 땅을 떠나는 사람들은 모두 정죄함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이스라엘이 그들의 조국에 머물 때에만 그들을 축복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스라엘은 한 나라가 되어 거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불림을 받습니다.
이스라엘은 단지 신부들의 휴거가 일어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인들이 열렸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알려졌습니다. 우리는 이제 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있습니다.
뱀의 씨와 올바른 물 침례 등등에 대하여 논쟁하고 떠들어대기 원하는 당신들은 눈이 멀었으며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이 세상의 신은 당신이 그것을 못 보게 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그 사실을 모릅니다.
(내가 오늘 아침 그런 압력과 싸우느라고 보냈던 많은 시간도 무리는 아니였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그들의 선지자들이 이 마지막 때에 드러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나팔축제가 오기까지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호세아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치고”(자 주목하십시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치고” 다른 말로 한다면, "내가 잘랐다.-선지자들을 통해 그들을 잘랐다."
그것이 하나님이 그의 백성에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나머지 나라들로부터 베어냈습니다. 무엇으로?
양쪽에 날이 선 검, 즉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다른 나라들로부터 베어냅니다.
하나님은 그의 나라를 선지자를 통해 다른 나라들로부터 베어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그의 신부를 이 마지막 때에 말라기 4장에 약속하신 말씀에 의해 교파로부터 베어내셨습니다.
그의 신부를 베어내고, 그녀를 나머지 교회로부터 쳐 내고, 그의 신부를 베어냅니다.
하나님은 그의 선지자들을 베어냈습니다. 그의 말씀을 가진 그의 선지자들로 이스라엘을 베어내고 있습니다.
"저들로부터 떨어져라." 보십시오. 그들이 다른 열방처럼 행동하기를 원했을 때 선지자 사무엘에게 왔습니다.
선지자는 "내가 너희의 돈을 받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주의 이름으로 말한 것 중에 성취되지 않은 것이 있었느냐?"
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아니요- 당신이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왕을 원합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들이 했던 방법입니다.
"오, 우리는 말씀을 믿습니다. 좋습니다. 그러나 아시는 바와 같이 사람들이 우리가 이것을 해야만 한다고 말합니다."
저는 사람들이 무엇을 말하든지 상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기다리면서,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 그들을 베어내고 있습니다.
몇 시입니까? 형제님. 지금이 몇 시입니까?
목사님들. 여러분은 우리가 어떤 시대에 살고 있으며,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징조를 보십니까?
그것을 이해하실 수 있습니까? 그것을 볼 수 있습니까?
이제 어느 곳에도 부흥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불평하고, 목사들은 외치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 교회로 오는 훌륭한 신문들 중 하나를 읽었습니다. 매우 좋은 신문이었습니다.
저는 그 편집자를 알고 있으며 편집하는 사람들도 알고 있습니다.
무어형제와 자매는 경건한 사람들이며 아주 좋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그 분야에서 제일 훌륭한 신문들의 하나인 "그리스도의 재림의 선구자" 라는 신문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금식, 기도, 금식, 기도 ! 나팔을 울려라.!…" 에 관한 것이 아니라면 거의 아무 것도 싣지 않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읽습니까?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여러분은 언제나 그것을 봅니다.
"금식, 기도, 금식, 기도!" 여러분이 듣는 것은 그것이 전부입니다.
"금식, 기도! 우리는 동트는 그 날을 곧 맞을 것입니다! 큰 일이 일어나려고 합니다!
여러분 모두 기도, 기도, 기도하십시요! 우리는 아직 너무 늦지 않았습니다!"
왜 그들이 그렇게 말합니까? 왜 그들이 그렇게 말합니까? 그들은 큰 각성을 필요로 합니다.
그들은 각성이 있을 것을 믿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들은 좋은 사람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이 무엇을 했습니까? 그들은 신부의 각성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보세요?
기독교도가 됨으로써 그들은 시간이 다 찼음을 느낍니다. 그러나 그들은 무엇이 이루어졌는지를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무엇인가가 일어날 예정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당신 옆에서 이미 일어났을 때에도 그들은 다가오는 먼 미래에서 그것을 찾고 있습니다.
그것은 옛날에 사람들이 행했던 똑같은 일입니다. 그들은 구세주가 올 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선구자가 올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선구자가 그들 바로 앞에 있었을 때 그들은 그것은 몰랐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구세주를 예비할 선구자가 올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 선구자의 목을 베고 그들의 구세주를 죽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눈이 멀도록 예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호세아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호세아에게 말씀하시고, 요한을 통해서 말씀하셨던 그 동일한 영이 마지막 때의 교회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벌거벗고 눈멀고 그리고 예수님을 교회 밖으로 몰아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러한 예언이 자신들에게 이루어지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무엇인가가 일어나야만 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지만, 그들은 다만 그것을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옛날 유태인들과 마찬가지로 라오디게아는 눈이 멀도록 예언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에 대해 세상 부와 신학은 적대적 관계입니다. 얼마나 저들 유태인들이 침례 요한에게 적대적이었는지 보십시오.
예수님은 그들이 기다리고 있었던 바로 그 구세주였는데, 그들이 얼마나 예수님에게 적대적이었는지 보십시오.
오늘날도 똑같이 교회들은 복음에 대해서는 적대적입니다.
주목하십시오. 적대적이고 옛날 유태인들과 같이 눈이 멀었습니다. 그들은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벌거벗고, 가련하고, 곤고하며, 그러면서도 그것도 모르는 상태로 이미 자정능력을 잃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부자들과 위대한 신학적 가르침들, 위대한 교육의 시대이며 이제 그들은 복음에 대하여 적대적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나사렛 예수가 지상에 있었던 2,000 년 전 저 옛날과 똑같이 복음에 관심도 기울이지 않습니다.
노아의 시대에 사람들이 방주 안으로 들어가지 않은 이유는- 그들은 결코 복음과 그 사자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그들이 물로 멸망했던 유일한 이유입니다. 그들은 그들이 살고 있던 시대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말씀에서 하시리라 약속하신 그대로 하나님께서 죄를 심판하리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지구 표면으로부터 인간을 멸하시려 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예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심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오늘날도 그가 그때 하셨던 것과 똑같이 하려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노아에게 호의적인 대신에 그는 미치광이로 취급당했습니다. 그들은 그를 선지자로 믿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예수님도 그들이 얼마나 노아를 놀리고 조롱하고, 미친 사람 같이 조롱했는지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들의 시대를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시대 말해진 복음을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그 사자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들 사이에서 그를 배척하고 조롱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분이 재림하실 오늘날에 대해서도 말씀하시기를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같으리라.
이스라엘은 그들의 나라에 있고 모든 것이 이제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복음은 정말 완벽하게 들어오고 있습니다.
어느 날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까? 형제여? 우리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들은 그 날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몰랐습니다. 그것이 그들이 그것을 놓친 이유입니다.
그들은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가진 과학은 하늘에 그렇게 많은 비가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습니다.
과학적 증거, 교육제도, 신학적 신학교들과 세상 재물에 의해 눈이 먼 오늘날 사람들처럼 그들은 눈이 멀었습니다.
노아의 시대 그 날에 그들을 눈멀게 했던 것들이 오늘날 똑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다시 그들을 눈멀게 했습니다. 그리고 또한 단순성- 그 시대의 복음과 사자의 단순성입니다.
노아는 과학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교육받은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가난한 농부로 단순한 복음을 가진 겸손한 농부였습니다. 그들의 높은 학식에 비하여 너무 단순하였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를 믿고 의지할 사람들을 얻기 위해서 복음을 단순하게 만드십니다.
노아의 시대나 우리 시대는 다른 선지자이고 다른 복음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말씀하신 분은 똑같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저는 여러분이 그 복음을 믿고 하나님께서 그것을 말씀하셨다는 것을 이해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그의 선지자 노아를 비웃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그 당시에 비웃었던 것처럼 예수님께서 오실 때에도 그들은 다시금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들은 똑같은 일을 할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가 바다에 빠진 것입니다. 그는 그가 사는 시대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를 결코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는 노예 노동으로 성을 짓는 과학적인 시대의 업적에 너무 몰두해 있었습니다.
그는 너무 바빠서 그가 가진 기회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선지자이자 사자를 광야로 쫓아냈습니다.
그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일들이 그들이 한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는 결코 그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만약 그가 그 사람들에게 온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깨닫기만 했었다면.
만약 오늘날의 교회들이 약속을 주신 이 시대의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기만 한다면, 그들은 멸망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미국이 자신이 만든 헌법을 깨달을 수만 있었다면, 미국은 스스럼없이 학교에서 성경책을 몰아내지 않았을
것이며, 동전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없애지 않았을 것이며, 하나님 아래서의 충성 서약을 없애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은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미국은 눈멀고 벌거벗었습니다.
미국은 이런 특권들을 위해 전장에서 죽어간 귀중한 젊은이들의 피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 젊은이들은 잊혀 졌으며 그들은 흙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들이 흘린 피와, 오늘날 우리에게 이 복음을 가지고 오기 위해서 치려진 값들을 기억하는 사람이 한 분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수천의 사람들이 사자에게 먹히고 동물 우리 속에 던져지고, 몸이 잘려지고, 불에 타 죽고,
십자가에서 처형당했습니까? 하나님은 그것을 알고 계십니다. 교회는 그들의 선지자들을 잊고 있습니다.
교회는 선지자들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주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은 선지자들이 필요함을 알고 계씹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으로 그의 백성을 잘라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 시대에 있는 교회들에게는 너무 구식입니다. 교회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현재의 상태로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벌거벗고, 가련하고, 눈멀고, 곤고함을 알지 못하며,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모르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보지 못합니다.
모세는 그 당시에 옹호된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을 보고 그의 시대와 그의 사명(부르심)을 깨달았습니다.
그때 그는 현재의 자기 위치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으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깨달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누가 뭐라고 말하든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의 전하는 말씀에 대해서, 모든 제사장과 모든 애굽왕 바로나 모든 것, 모든 권세가 그에게 반대하더라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모세가 덤불 속에 매달려 있는 빛, 불기둥을 보고, 그 불기둥이 그 시대에 약속된
말씀을 말하며 "나는 네가 가서 그것을 하게 하려고 너를 불렀노라" 라고 말했을 때 그는 깨달았습니다.
모세는 애굽왕의 무서운 위협과 협박에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이 약속하신 것처럼 그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내려갔습니다.
모세가 살고 있는 시대 그 약속이 표명되는 것을 보자, 모세는 사람들에게 출애굽을 위한 준비를 시켰습니다.
언제 모세가 하나님의 약속이 표명된 것을 보았습니까? 기억하십시요. 그는 애굽에서 배운 신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애굽의 유명한 랍비들로부터 모든 지식을 배우고 훈련받은 것들을 가지고 자신의 능력으로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실패하고 애굽의 왕을 피해서 미디안 광야로 도망가서 40 년 동안을 숨어 살았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불타는 가시떨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표명되는 것을 보았을 때, 모세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고
말씀이 그 시대에 입증되는 것을 보고 나서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바로가 그에게 어떠한 행동을 취할지 겁내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나머지 사람들이 어떻게 나올지도 전혀 겁내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오로지 하나님만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오해하지 않을까? 하나님을 어떤 식으로 오해하지 않을까? 를 두려워했습니다.
모세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그들이 무슨 말을 하든지, 어떤 행동을 하든지도 겁내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은 후 하나님만을 두려워했습니다.
모세는 처음에는 어떻게 자기와 같은 사람이 저 아래로 보내어지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말씀이 입증됨에 따라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보게 되었을 때, 그때 그는 왕의 명령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우리가 오늘날 깨달을 수만 있다면! 모세는 그가 그 말씀이 입증되는 것을 볼 때, 옹호가 그것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는 백성들을 애굽에서 탈출시키도록 준비했습니다.
욥이 사탄으로부터 시험을 받았을 때, 그 시험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욥은 알았습니다.
마귀가 여러분이 가끔 겪어야 하는 시험들을 하나님이 여러분을 벌하는 것이라고 믿도록 만들려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부인하고 믿지 않는 한, 그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더 좋은 것들을 보이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욥도 모세와 같은 이상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을 알아보았습니다.
모세가 이상을 보았을 때, 그 가시덤불에서 불기둥을 보았을 때, 그것이 입증되었습니다.
그리고 욥의 질문 중에 "만일 사람이 죽으면, 그가 다시 살 수 있습니까? 나는 나무가 죽고, 그리고 그 나무가 다시
사는 것을 압니다. 나는 꽃이 죽고 다시 사는 것을 봅니다. (그것이 그의 질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눕고,
그가 죽으면, 그는 없어집니다. 그의 아들들이 통곡하게 되고 그렇지만 죽은 이는 인식할 수 없습니다.
오, 당신의 진노가 사라질 때까지 나를 음부에 감추소서." 그는 왜 꽃이 죽고 다시 사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잎사귀가 나무로부터 떨어져 나와 땅위에 누워 있다가, 봄에 다시 되돌아오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인간은 누워 있다 어디로 갑니까?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번개가 번쩍이기 시작하고, 천둥이 치기 시작하던 어느 날, 영이 이 선지자에게 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한 사람이 다가오는 것을 보았는데, 그는 죄 많은 사람과 거룩한 하나님 위에 그의 권능의 손을 놓고
그 사이를 중재하는 분이었습니다.
그때 그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내가 알기에는 구속자가 살아계신다! 비록 이 피부벌레가 이 몸을 파괴한다 하더라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그는 부활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던 것입니다.
발람은 노새가 방언으로 얘기할 때까지 천사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발람은 천사가 그의 길 앞에 서 있는 것을 깨달을 수 없었습니다.
눈이 먼 설교자는 그가 돈을 위해 그의 은사를 팔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훼방하고 계신 것을 깨달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노새가 인간의 목소리로 말했을 때,
그때서야 발람은 그가 하고 있었던 것을 못하도록 그를 방해하고 있었던 것이 천사임을 깨달았습니다.
오, 눈먼 교파 여러분, 하나님께서 말 못하는 노새를 사용하여 그가 알지 못하는 언어로써 사역자에게 그가 정도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알릴 수 있다면, 똑같은 일을 하기 위해 사람을 사용하실 수 없을까요? 눈 먼 사람들이여.
만일 아합이 그의 시대를 알아만 보았다면,
그는 결코 그에게 약속되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갖고 있는 선지자 미가야를 정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합이 그날 여호사밧과 함께 거기에 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거기에 400명의 선지자들이 있어 예언하며 말하기를, "올라가소서, 모든 일이 다 잘 진행 중입니다. 아합,
당신은 죄 속에 살고 있습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위대한 교단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우리는 위대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위대한 성직자들입니다. 우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400명의 훈련받은 제사장들입니다.
혹은 선지자들입니다. 우리는 말씀과 신학으로 훈련된 400명입니다. 우리는 그것에 대한 모든 것을 압니다."
이제 그들이 그것에 대하여 전부를 알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 증명됩니다.
그들 앞에서 그 세대에서 그들이 미친 사람이라고 불렀던 그 사람, 하나님의 진실한 선지자 엘리야가 예언을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개들이 당신의 피를 핥을 것입니다, 아합!" 보십시오.?
그러나 그러한 인간이 만든 선지자들, 그 제사장들은 그들이 모든 일을 바르게 결정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아버지 아합이시여, 올라가소서 주님이 당신과 함께 하십니다. 당신은 성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셨으니까요.? 그것은 이스라엘의 것입니다. 전진하십시오,
주님이 당신과 함께 계십니다." 오 이런 !
그러나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여호사밧은 아합과는 달리 죄 가운데 섞여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태를 약간 다르게 보았습니다. 그는 "다른 선지자는 없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여기 한 사람이 있는데, 그러나 저는 그를 미워합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보십시요?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고 계셨습니까? 선지자로 그의 백성들을 다시 베어내고 있습니다.
"나는 그를 싫어합니다. 그는 언제나 나를 책망하기만 합니다. 그리고 당신도 아시다시피 나는 위대한 사람입니다.
만일 내가 위대한 신자가 아니었다면 이곳 여기에 이 신학교를 세우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곳에 나는 잘 훈련된
사람들을 데리고 있습니다. 나는 책들로 가득 채웠고, 성경책 그밖에 이것을 가르칠 모든 것들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이 위인들임을 압니다."
그러나 아합이 미가야가 누구였는지를 깨달을 수만 있었다면 거기에 서서 그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기를,"
전했던 이 가련하고 초라하게 보이는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가 누구인가를 알아만 보았더라도, 말입니다.
그는 그가 저질렀던 그 치명적인 실수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미가야를 비난하였습니다.
오! 사람들이여, 당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알아보십시오. 무엇이 일어나는 지를 보십시오.
무엇이 약속되었는지를 보십시오. 당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깨달으십시오.
만일 오늘날의 교파 교단들이 왜 그들이 비난받고 있으며 왜 그들의 구성원들이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탈출한 것처럼
그들로부터 달아나려 하는지를 깨달을 수만 있다면, 만일 교단들이 테이프를 비난하는 것을 그만두고 그 테이프들을
듣기만 한다면, 그리고 이 테이프를 듣고 있는 목사님 여러분, 들으십시오.
만일 여러분들이 여러분이 살고 있는 시대를 깨달을 수만 있다면, 만일 여러분이 그 시대의 징조를 깨닫기만 한다면,
여러분은 왜 그 사람들이 그들 교단으로부터 달아나고 있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부르기를 "내 아버지가 부르지 않고는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느니라.
그리고 아버지께서 과거에 나에게 주셨던 모든 이들은, 올 것이다." 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물가의 작은 여인과 그 제사장은 얼마나 다릅니까? 오늘날 다시 글씨가 벽 위에 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보지만 그들은 그것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만일 유태인들이 그들의 마지막 선지자의 말대로 그들의 메시아에 대한 약속된 징조를 알아만 보았다면 말입니다.
말라기3장에서,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그리고 그들은 그를 찾고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이 얼마나 유사합니까?
그들은 자기들이 무엇인가가 일어날 것을 찾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 교회들은 모두 기도하고, 금식하며 말하기를 "이제 기도합시다, 우리 함께 모입시다.
우리는 일어날 큰일을 맞이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커다란 어떤 일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교회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합니다." 그것에 대해서 그들이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들이 기도하고 있는 목적입니다. 그리고 침례요한이 왔습니다.
침례요한이 그들의 신학교를 거부했기 때문에 그들이 아버지가 가르쳐 왔던 것과는 달리 행동했기 때문에,...
침례 요한은 교육을 받지 않고 광야에서 나왔습니다. 오늘날로 얘기한다면 그는 좋은 옷도 입지 않고 왔습니다.
그는 위대한 신학도 없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서 그가 구세주를 공표하리라는 것을 알고서 왔습니다.
침례 요한은, "그는 지금 너희들 한 가운데 서 계시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가 그들의 학교 출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손으로 쓴 글이 벽에 있었지만 그들은 그것을 몰랐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그와 같은 사람이 올 것을 기다리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바로 그들 사이에 있었습니다.
비록 그들이 그를 찾고 있었다고 말하더라도, 그들은 그것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지상의 이방인과 함께 먹고 있었던 유태인과 마찬가지로. 왜냐하면 똑같은 일이 예언되었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일이.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찾고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방인의 라오디게아 시대에서의 교파들은 유태인들만큼 눈이 멀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이 눈이 멀리라고 예언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반드시 일어나야만 합니다.
만일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의 징조를 알아볼 수만 있었다면,
그들은 메시아가 나타날 시간이 가까 왔음을 알았을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깨달았다면 예수님을 영접했을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을 아십니까? "왜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만 한다고 말합니까?"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엘리야가 이미 왔으나, 그들이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는 이미 여기에 있었으며, 그들이
이미 그를 죽였느니라. 그들은 그들이 하리라고 성경에서 말한 것을 그대로 행하였다. 만일 그들이 그 광신자를
알아만 보았다면, 그들이 행하였던 모든 이중적인 일을 비난하고, 그들이 행하던 모든 것을 비난했던 그 광신자를
알아만 보았더라면.”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너희 외식하는 자여(위선자여), 시작하지 말라…… 풀밭의 뱀들, 독사의 자녀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우리는 이것을 저것을 혹은 다른 것을
가졌노라고 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당신들이 세계교회협의회를 당신들 손 안에 가졌다고 생각지 마십시오,
당신들은 말쑥하게 차려입은 구성원들을 가졌다고 생각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능히 여기 이 뒷골목의 창녀, 매춘부, 술주정뱅이, 도박꾼들- 로도 그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자녀로
세우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는 여전히 하나님이십니다.
눈먼 이스라엘인들과 마찬가지로 눈먼 교파들이여, 둘 다 그렇게 되도록 예언되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여기까지 이해할 수 있도록 유사점을 보여드리고 있습니다.)
눈먼, 오늘날 라오디게아 시대의 이방인들의 교파들은 그때 유태인들이 눈먼 것처럼 눈이 멀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들에게도 복음이 전해질 것입니다. 말라기4장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무엇을 찾고 있습니까? "우리의 교파가 그것을 낳을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그것이 우리 침례교도,
장로교도, 성회, 일신교를 통해서 나오지 않는다면- 만일 우리가 그것을 생산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그 시대에 있었던 똑같은 일을 그들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미 왔다 갔는데도 그들은 그것을 몰랐습니다.
그들은 비록 그것이 모든 말씀을 다 이루었는데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은 그들이 하리라고 적혀진 대로 하였노라. 또한 그들은 인자에게도 그러하리라.
인자는 거절당할 것이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주의하십시오. 말라기4장의 성경말씀에서 약속하신 대로 이제 이방인의 시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성서는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 졌으며, 그것의 부분까지도 모두 이루어지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절대로 성서가 성취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모든 것들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것이 일어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에서 그것이 일어난 것을 봅니다. 우리는 그것을 보고 있습니다.
무엇을 회복합니까? 이 마지막 때에, 교파의 형제님들, 들으십시오.
처음 오순절 날 성령의 강림을, 그것을 처음과 같이 회복시킬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나팔 절이 시작되기 전에 그것은 회복되어질 것입니다. 반드시 회복되어져야만 합니다.
그것을 하는 무엇인가가 있어야만 합니다. 말라기4장에서는 자녀들의 믿음을 다시 아버지들에게 돌이킨다고 합니다.
이방인 신부(자녀)들의 믿음을 그들의 아버지(사도들)들이 가졌던 믿음으로 회복시킬 것입니다.
만일 이스라엘이 그들의 구세주, 약속된 징조를 알아보았다면, 그들은 오늘날 그들이 있는 곳에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들이 그것을 알아볼 수 없었습니까? 가엾습니다. 왜 그들이 그것을 깨달을 수 없었을까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은 그것을 모르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믿으시면 "아멘"이라고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들은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동일한 하나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시대에서도 이것이 일어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여기 그것이 그들 앞에 있습니다. 그들이 믿지 않는 것 외에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만일 그들이 구세주의 약속되어진 징조를, 인자의 징조를 알아만 보았다면, 좋았을 것입니다.
그분은 세 아들의 이름으로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분은 인자(선지자)의 이름으로 왔습니다.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세상 죄를 도말하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분은 오순절 시대를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인 성령의 이름으로 왔습니다.
이방인들의 일곱 교회를 통해 성령으로 교회를 휴거로 인도하시기 위해 성령으로 오셨습니다.
다음은 다윗의 아들로 오실 것이며 오셔서 다윗의 왕좌에 앉아서 왕으로 천년왕국을 다스릴 것입니다.
그것은 동일하신 한분의 하나님에- 세 아들입니다. 같은 아버지, 아들, 성령, 모두가 동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의 아들, 하나님의 아들, 인자, 단지 세 가지 다른 직분의 역할 속에 계신 언제나 동일하신 한분 하나님이십니다.
마찬가지로, 성부, 성자, 성령은 세 분의 하나님들이 아니라, 세 가지 직분으로 자신을 표명하시는 한분 하나님입니다.
즉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세 가지 직분을 수행하시는 동일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그 당시 유대인들이 가진 전통과 인간의 가르침들로 인해 유대인들은 눈이 멀었습니다.
교회들의 전통들과 사람들의 지적인 가르침으로 인해 눈이 먼 사람들은 오늘날 그것을 보지 못합니다.
왜 그들이 그것을 볼 수 없을까요? 그들은 결코 그것을 못 볼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이 눈이 멀어서 그것을 볼 수가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 그러면 당신은 그것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까?" 라고 물을 수도 있겠죠. 바로 요한이 했던 것과 똑같습니다.
그들 중 나머지가 했던 것과 똑같은 이유입니다. 여기저기에 데리고 나와야만 하는 잃어버린 양들이 있습니다.
오, 하나님의 양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듣고 나를 따르느니라."
우물가의 여인은 구세주의 징조에 의해서 그녀가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가를 인지했습니다.
그녀는 형편없는 여자였습니다. 그녀는 그들 옛 교회들이 하고 있었던 방법으로 그들에게 속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원하는 생활을 모두 했습니다. 그 여인은 그 같은 것들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은 어느 날인가 한 분이 오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물가로 가고 있는 초라하고 작은 사람이, 그 여인은 그분이 자신의 마음속의 비밀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죄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그녀에게 말했을 때, 그 여인은 자신이 찾고 있었던 것을 찾았습니다.
그 여인은 "선생이시여 내가 당신이 선지자임을 알겠나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400년 동안 선지자가 없었습니다.) "당신이 선지자임을 내가 알겠나이다.
그리고 구세주가 오시면, 구분이 이러한 일들을 하시리라는 것을 내가 아나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그로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녀는 알았습니다. 더 이상 의문이 없었습니다. 어떻게 여러분이 그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이미 증명되었습니다. "구세주가 올 때 이것이 그분이 하실 일이다."
만일 그 여인이 성서에 의해서 그것을 깨닫을 수 있었다면, 저물녘의 빛과 오늘의 징조를 우리가 알 수 없을까요?
"우리는 구세주가 올 때 그분이 우리에게 이 모든 일들을 보여 주시리라는 것을 압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이것을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그는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라고 말했습니다.
더 이상의 의문은 없습니다. 그녀는 달려가서,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와서 보라, 그분이 여기 계시니라!"
그 여인이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인지했기 때문에 그녀에게는 아무 의심도 없으며 그것은 뚜렷해졌습니다.
그 여인은 그것을 인지했습니다.
위대한 히브리인, 나다나엘도 마찬가지로 인지했습니다.
그가 거기에서 약속된 메시아의 징조를 보았을 때, 아무리 많은 제사장들이, 그 밖의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그것이 무엇을 했습니까? 그것은 제사장들로 하여금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가는 것을 보고 당황하게 했습니다.
그는, "만일 너희 중 누구라도 그의 모임에 참가하면, 너희는 파문당할 것이다. 우리는 너희를 교단 밖으로 쫓아낼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네가 그가 여는 모임에 참가한다면, 우리는 너를 너의 조직 바깥으로 몰아낼 것이다."
그 소경을 기억하십니까? 그 아버지와 어머니조차도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두려웠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예수를 보러 갔다거나, 예수님이 여는 모임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제명될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장님은 스스로 말할 수 있었습니다. 한때 눈이 멀었던 그가 그때는 볼 수 있었습니다.
전에 눈이 멀었던 내가 이제는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일들을 몰랐던 내가, 성령에 의해 나에게 알려졌습니다.
교단은 흐트러집니다. 왜냐하면 어쨌든 그들은 그 “음성을 듣고”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가 지상으로부터 들림을 받으면, 나는 모든 이들을 내게로 끌리라." 나다나엘은 그것을 인지했습니다.
그는 그것을 알았습니다.
마치 모세는 그 표명을 눈앞에서 보았을 때, 그것이 성서적이었기 때문에 그것이 그 시대의 약속임을 알아보았습니다.
아무리 이상할지라도, 그는, "제가 그들에게 누구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제가 이곳 광야 구석에서 빛을 보았다고 말합니까? 어떻게 제가 여기 이곳에 빛이 있었고,
그 빛이 나더러 저 아래로 내려가라고 했다고 그들에게 말할 수 있습니까?"
그분은, "틀림없이, 모세야,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분께서 기사와 기적으로 애굽에서 자신을 보이셨을 뿐만 아니라, 그분이 모든 이들을 함께 모이도록
하셨을 때는, 다시 그들 앞에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리고 선택받은 이들과 불림을 받은 이들 앞에서 모세의 사역을 옹호했습니다.
그 선지자가 그들을 그 나라로부터 풀어내어 잘라내고 그들을 어떤 장소로 데리고 왔을 때,
그때 불기둥이 다시 나타났고 시내산 꼭대기에 강림하셨습니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비슷합니다. 아멘!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나에게는 생명보다 더 귀중합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저는 야비하고 부도덕한 시대가 땅들과 사물들에 덮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리곤 뒤를 돌아보고 무슨 일이 생겼는지를 봅니다. 얼마 안 있어 이 지상의 예배당이 용해되어질 것이지만,
저는 저기 저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새 예루살렘성이 있음을 알기에 제 가슴은 기쁨으로 뜁니다.
저는 모세가 보았던 불기둥을 보았고 사진으로 수십만의 사람들이 보았고, 심지어는 카메라 앞에 찍혀서 시간이
갈수록 그것을 증명하는 불기둥의 옹호와 함께 하나님께서 거기 서 계시다는 것을 성서에 의해서 그들에게 보여줌
으로써, 그들을 당겨서 이러이러한 일들로부터 그들을 잘라내고 그들을 끌어내 오려고 애쓰고 있는 것입니다.
[사진 2를 보십시요- 주]
모방자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틀림없이 이것이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모세의 시대에도 모방자들이 일어나서 똑같은 일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야 그들 주위에서 떨어져라.
내가 저들을 삼키리라." 그리고 세상이 그런 사람들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속- 돈을 벌 계획, 그리고 그 밖의 다른 모든 것들로 바로 돌아갑니다. 보십시오.?
모세의 성서적 징조…… 그는- 그는 그들을 인도하기 위해 거기로 내려갔던 하나님의 위대한 선지자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인지했습니다. 그들은 그 증거를 인지했습니다. 그는 바로 성서적 약속이 입증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서의 약속이었으며 그 여인에게 입증이 되었습니다. 또는 예수는 그 설명 그 자체였습니다.
예수는 성서의 설명이었습니다. 예수의 생은 성서를 설명했습니다.
여러분 이 시대의 말씀을 보지 않습니까?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깨달을 수 있습니까?
성서로부터의 말씀 그 자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여러분에게 해석해 줍니다. 말씀은 그 해석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만일 너희가 너희 시대를 알기만 했더라면"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번은 감람산 위에 앉으셔서, 내려다보시면서, "예루살렘아 오, 예루살렘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우셨습니다. 그분은 내려다 보셨습니다. 그분은 보셨습니다. 어떤 비교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전날 아침 10시경 제가 그 창녀 같은 교회들을 보았을 때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여러분은 성령이 눈물을 흘리고
있음을 느낄 것입니다. "예루살렘, 오, 예루살렘, 내가 얼마나 자주 너 위에 머물렀느냐. 그러나 너는 무엇을 하였느냐?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보낸 선지자를 죽였느니라. 너희는 그들을 살해하였노라!"
그리고 말씀이 오늘날의 교회로 보내어졌지만 그들의 교파적 교리에 의해서 살해되어졌습니다.
그들의 교파적 교리가 성서를 살해했습니다.
예수님은, "만일 너희가 너희 시대를 알았더라면, 그러나 지금은 너무 멀리 있다. 지금은 너무 늦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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