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지: 저의 역할을 마치고, 2026년도에 봉사해 주실 고미현 차기 회장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내년 봄에 피는 세상 모든 꽃들을 우리 고미현 회장님께 바칩니다~^^
올해의 재정 보고는 다음 주에 하겠으며, 통장 등 전달할 것은 차기 회장님을 만나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 일시: 2025년 12월 23일(화), 19:00~21:20 T그룹 전화 토론
* 참석: 이진흥 선생님, 강명자, 고미현, 곽미숙, 김용순, 박수하, 박유경, 배정향, 이규석, 이자, 전영숙, 정정지, 박경화
* 토론 작품: (작품 평은 ‘작품 토론방’ 참고)
1. 마지막 풍경: 이규석
2. 엘림 가는 길: 배정향
3. 싸움닭: 곽미숙
4. 작은 생명을 위해: 전영숙
5. 그녀 · 강명자
6. 꽃, 지는 동안 · 박경화
(차를 타고 가며 창문을 열고 폰으로 찍은 것인데 의외로 초승달이 아주 사랑스럽게 찍혀서 놀랐다. 원래 사랑스럽지만.)
* 나뭇가지 위 초승달/ 서산으로 지고 (이규석, 「마지막 여행」 중에서)
초승달이 지는 것을 생각만 해도 애틋하고, 특별한 사연 없이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 저밀 때도 있다.
촌집에서 잠시 생활했을 때 달님을 찾아 자주 먼 산을 바라보곤 했었는데 초승달, 그믐달은 언제나 가슴을 도려내는 은장도 같았다. 때로는 그 작디작은, 깎여져 나간 손톱 같은 달이 내 가슴에 뭔가를 조각하는 느낌도 들었다. 조각도 같은 초승달이 혹은 그믐달이 무엇을 조각했을까? 꽃? 글자?
* 마디마디 생강뿌리처럼 휘어진/ 어머니 손가락을 눈물 속에서 바라보면 (배정향, 「엘림 가는 길」 중에서)
(어제 토론 후 집에 와서 주무시는 어머님의 손을 찍었다. '생강 뿌리'라는 시어를 쓴 배정향 선생님의 어머님 손도 이러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101세 어머님의 손. 지금도 나를 쓰다듬어 주시는.)
‘생강뿌리처럼 휘어진’, 얼마나 절묘한 표현인가! 이 시를 읽고 언젠가 찍어둔 시어머님의 사진 속 손가락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정말 생강 뿌리 같았다. 그것만으로도 어머님의 인생을 환하게 볼 수 있다. 휘어진 손가락마다 맵싸한 세월이, 일이, 고생이 배어있다.
나의 시어머님은 일을 겁내지 않으셨고 일이 많을 때도 언제나, ‘내가 하꾸마. 니는 들어가 쉬어라.’라고 하셨다. 눈치 없고 철없던 나는 시키는 대로 들어가 쉬기도 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참 한심하고 죄송스럽기 짝이 없다. 음식을 하시면 간이 딱 맞았고 무엇 하나 허실이 없었다. 무채를 썰어도 하나같이 길이와 두께가 같아서 마치 기계로 정교하게 썰어놓은 것 같았다.
전화 토론 중에 배정향 시인께서 시를 읽다가 감정이 격해지셨는지, 울음을 참으시는지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았는데 나는 전화가 끊긴 줄 알고 당황했었다. 뒤늦게 눈치를 채고 마음이 몹시 아팠다.
지금은 101세인 시어머님이 97세이실 때 노환이 깊어져 ‘엄마’를 찾으며 아기처럼 우시는데 어찌나 슬픈지 나도 눈물이 흘렀었다. 그 연세에도 엄마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며 영원한 힘이며 내편인 것이다. 친정어머님은 92세이신데 지금도 나를 어린애처럼 생각하신다. 걸을 때는 뒤꿈치부터 땅에 대며 허리를 펴고 걸어라, 누구를 만나기 전에는 손을 주머니에 넣어 따뜻하게 하고 있다가 반갑게 악수해라, 혼자 있을 때는 문을 꼭 잠그고 있어라, 급하게 먹지 말고 꼭꼭 오래 씹어라, 아무도 없을 때는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외쳐라 등등의 말씀이 늘 주렁주렁 엮인 보따리다.
생강 뿌리 같은 어머님들의 손, 생강 향기가 날 것 같은 그 손과도 언젠가는 작별할 것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목메고 눈물이 흐른다.
* 내가 못 보고 놓친 게/ 이것 뿐일까 (곽미숙, 「싸움닭」 중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고 사는지···, 놓친 것도 모른 채 살고 있기도 하겠지.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스스로 자신을 들여다보며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싸움닭’이란 시를 읽으니 아는 분이 집에서 길렀던 닭이 생각났다. 벼슬과 꼬리가 아주 멋지고 총명해 보였다. 콩나물을 다듬으면 옆에서 돕듯이 콕 콕 쪼아 콩나물 껍질을 벗겨낸다고 했지만 내가 보는 앞에서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어서 그야말로 믿거나 말거나였다. 어느 날 보이지 않아 어디 갔냐고 물으니 잡아먹었다기에 너무 황당하고 속상해서 그 집에는 다시 놀러 가지 않았다. 그렇게 귀여워하며 가족이라고 하더니, 가족을 잡아먹다니!
또 내가 아는 꽃집에서 닭을 키웠는데 여러 마리의 새끼들이 앉아있는 어미 품속에 들어가 숨거나 등에 줄줄이 올라앉아있는 것이 보기 좋아 자주 놀러 갔었다. 그 집에서도 어느 날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아 다 잡아먹었나 보다 생각했는데 물론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었다.
(얼룩얼룩한 바위를 기어오르느라 빨개진 나뭇잎들)
* 이제 세상은/ 가장 나약한 신생의 법에/ 맞춰 돌아갔어요 (전영숙, 「작은 생명을 위해」 중에서)
작고 나약한 것에 맞춰 세상이 돌아간다면 틀림없이 눈물은 줄어들고 웃음은 늘어날 것이다. 그늘지고 소외된 문화 외곽지에서 더 큰 노랫소리와 손뼉 소리가 들린다면 다른 곳은 가보지 않아도 이미 다 알 수 있을 것이며, 울고 웃는 것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세상이라면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손잡고 눈빛을 나누며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일이 사람 사는 일인데 갈수록 사람보다 기계에 의존하는 일이 더 많아지고 있다. ‘신생의 법’처럼 사람도 사람답게 사는 법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든다.
(하얀 꽃향기 맡으며 하얀 항아리 속에 예쁜 색으로 자신을 담아가기를~)
* 겹겹이 벗겨도 드러나지 않는 얼굴 (강명자, 「그녀」 중에서)
가면을 쓰지 않고도 수많은 얼굴을 지니고 살아가는 시대다. 변검술사가 순간적으로 얼굴을 바꾸는 것처럼 상황에 따라 표정을 바꾸어야 할 때도 있다.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함이거나 배려하기 위하여 하얀 거짓의 얼굴이 되는 경우가 있다.
세상에 단 하나의 가면도 쓰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누군가의 가면을 벗기기보다 자신의 가면을 하나씩 벗겨간다면 결국 모두 가면 없는 얼굴이 될 것이다.
나는 올해 물빛 회장이라는 가면을 하나 더 쓰고 있다가 이제 벗을 때가 되었다. 나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함께해 주는 마음들이 있어 그 가면의 역할을 해낼 수 있었다. 물빛에 봉사하는 회장의 가면을 벗게 되니 날아갈 듯 마음이 가볍다. 그 가면을 쓰게 될 또 다른 회장을 위해 나는 가면을 벗고도 봉사하게 될 것이다.
(가면 없이 살아가는 꽃, 잎, 돌)
* 어둠을 걸러낸 향기로/ 네게 닿으려 안간힘 쓰던 (박경화, 「꽃, 지는 동안」중에서)
어제 토론한 나의 시는 그저께 밤에 쓴 것이다. 마치 내 속에 숨겨져 있던 것이 저절로 흘러나오는 것처럼 느껴졌고, 작품 토론방에 올리기 전까지 최선을 다해 퇴고했다. 토론할 작품은 벌써 써둔 것이 있었지만 왠지 이 작품을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그렇게 갑자기 마음이(작품이) 바뀔 때가 있기도 하다.
시를 토론작으로 올리기 전까지 행과 연, 맞춤법, 단어의 뜻, 제목과 내용의 어울림,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정확히 전달하고 있는지를 짚고 짚어본다. 시에서의 쉼표나 마침표, 행과 연을 바꾸는 것 등은 그것만으로도 하나의 시적 표현이며 하고자 하는 말이라 여기기 때문에 나로서는 상당히 신중하게 한다. 익히 알고 있는 단어도 시에 쓸 때는 사전을 찾아 다시 확인하며 내 시에 적절하게 사용되었는지를 살핀다. 오랫동안 토론을 해왔지만, 항상 처음의 마음으로 긴장을 늦추지 않고자 한다. 내 시는 곧 나이기 때문이다. 나를 드러내는 일, 나를 보여주는 일이기 때문에 함부로 할 수 없다.
이 시는 꽃의 입장에서 써본 것이다. 어쩌면 꽃은 언제나, 자신이 시들어 떨어진(죽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해마다 해마다 똑같이 피어나며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꽃은 땅속 깊은 어둠을 길어 올려 그 어둡고 습하며 캄캄한 것들은 다 걸러내고 오직 향기로 우리에게 혹은 그 누구에게 닿고자 하는 것이다. 향기가 없다고 해도 꽃은 이미 그 모습만으로 맑은 향기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꽃을 꽃답게 보아주는 이를 위해 해마다 그 모습, 그 향기 그대로 그의 앞에 서 있고 싶음을 표현한 것이다.
담담히 꽃의 입장을 썼다고 생각했는데 연시로 보는 분들이 계셔서 나도 내 시를 연시로 보기로 한다. 전생과 이생, 내생까지도 오직 사랑으로 피고 또 피는 그런 꽃, 한 연인만을 바라보며 결코 지지 않는 그런 연시쯤으로 읽기로 한다.
올해의 물빛 토론회를 마치는 시들에게 사진을 바친다.
마치는 것은 또 다른 시작이기도 하다. 물빛에게는 새로운 詩作이 되기를 바라며!
(시드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하는 너를 나는 오래오래 지켜보았다. 시들어도 너는 영원히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