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달맞이꽃」
1
달맞이꽃은 아내가 좋아하는 꽃이었다. 꽃이라면 다 좋아하는 그녀였지만 그 중 달맞이꽃을 유난히 좋아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이 꽃 역시 그녀를 통해 알았다. 그리고 군 시절, 이 꽃을 바라볼 때면 그녀를 만난 지 얼마 안된 어느 날이 생각나곤 하였다.
< 22일은 학교에서 교련검열이 있어 밤에는 수업이 없었다. 그녀를 만나 여의도광장으로 갔다. 광장 한편 화단에 노란꽃들이 피어 있었다. 그녀는 그 꽃이 지금도 고향의 강가에 수없이 피어 있던 달맞이꽃이라고 하면서 밤에 피었다가 아침에는 진다고 설명해주었다.
나는 꽃도 좋아하고 나무도 좋아하지만 내가 아는 꽃이나 나무들의 이름을 잘 몰랐다. 하지만 그녀는 꽃과 나무들을 많이 알았고 내가 물어 볼 때마다 알려주었다. 그러나 나는 그때 뿐이고 금세 잊어 버리곤 하였다. 그리고는 내 멋대로 이름을 갖다 붙이기를 좋아했다. 예를들면 수국으로 알려진 꽃이 크고 탐스러워서 나는 그 꽃에다가 ‘찐빵꽃’ 이라고 이름을 붙여 불렀다. 그러면 그녀는 엉터리라고 눈을 흘기면서도 웃었다.
그것이 그녀의 특징이었다. 아무렇지도 않고 별 것도 아닌 일에도 금방 웃는다는 것, 내가 어설픈 몸짓과 목소리로 누구를 흉내내거나 별로 우습지 않은 이야기를 하여도 그녀는 자지러질 듯이 웃어주곤 했다. 어쩌면 그렇게 나를 보고 웃는 모습이 보고 싶어서 나는 그녀 앞에서 더 광대짓을 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달맞이꽃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길쭉한 줄기의 아래에는 잎만 달려있고 윗부분에만 빙 둘러서 꽃들이 피어있었는데 노란 색깔이 소박하고 진하였다. 밤에만 피었다가 아침에 진다는 달맞이꽃. 달님이 둥그렇게 떠올라서 수정같은 얼굴에 잔잔한 미소를 담고 바라보아준다면 그것만이 행복이라서 아침에는 차라리 눈을 감는 것일까.
먼 곳에 있는 달님의 눈에 얼른 띄기 위하여, 그래서 저렇게 노란 빛깔을 하고서 꼭대기에 모여 우러르고 있는 것일까. 그날 밤도 우리는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서 버스정류장까지 와서도 서로 얼굴만 바라보다 밤 열두시가 다 되어서야 집으로 왔다. 행복한 밤이었다 (1976. 5. 24.).
사랑스러운 신,
벌써 황혼이야. 신이 좋아하고 내가 좋아하는 황혼. 낮에는 뜬구름이 지향없이 흘러가며 자꾸만 내마음을 빼앗아 달아나더니 지금은 서쪽 하늘이 화려하게 물들어 퍽도 아름답다. 이럴 때면 언제나 생각나는 네루다의 시(詩).
“황혼의 나의 하늘에서 너는 구름, 모양도 색깔도 꼭 그런”.
무척이나 부드럽고 아름답지 저 하늘은. 하지만 나는 저 하늘보다도 신이 좋다. 할 수 있다면 내가 좋아하는 빛과 색채로 황혼의 하늘에다 온통 커다랗게 신을 그려놓고 싶어.
오늘은 신의 휴가 사흘째,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재’라는 친구가 사는 마을에 간다고 했는데 그 친구집 언덕에 올라 훈풍에 흔들리는 달맞이꽃을 대하고 있지나 않을지... 참 그곳에는 우물이 시원하다고 했지. 꼭 동화속에 나오는 그런 마을 같겠다. 고목과 우물과 새까만 굴뚝과 시골 아이들의 천진한 웃음이 있는.
신, 지금 김병장은 고향의 아내가 적어준 편지를 읽으며 살구가 익어서 떨어지고 있다는 소식이라며 향수에 젖고 있는데 혹시 신이 찾아간 마을에도 살구나무가 있을까, 나도 전원(田園)에 가고 싶다. 신석정 시인이 늘 그 아름답고 독특한 시정으로 추구하고 노래하던 그런 전원으로 나도 가고 싶다.
사철 푸른 대나무숲에 산새소리가 구슬처럼 맑게 들려오고 갈대풀이 우거진 강변에는 아이들이 티없이 웃으며 놀고, 하얀 백사장과 나룻배와 황혼의 들녘에 소방울소리, 푸른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화사하고 눈부신 아이들의 웃음소리, 웃음소리. 창밖에서는 밤새도록 난초며 붉은 봉숭아꽃이 소리없이 피어나고 이슬내리는 새벽길에 실안개가 덮이는 전원의 숲과 뜰이 그립다.
신, 전원에의 향수가 부질없는 환상일까, 물질과 사회적 능력만이 인간의 행복을 지배하고, 인간성은 상실된 이기주의적 현실에서 내 젊은 영혼은 갈 곳을 잃어버린 것 같아. 무엇을 추구하며 살 것인가 하고 물었을 때 나는 목마른 자처럼 답답하다. 학문과 예술에 미치게 해달라. 끊임없이 부르짖고 싶어.
내가 휴가 때 이야기한 김일병은 며칠 전에 휴가를 떠났어. 보다 나은 당신의 옥이가 되마고 날마다 사연을 적어 보내던 그의 애인은 우리 신처럼 기독교신자라고 해. 녀석은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취할 때까지 맥주를 마시겠노라고 했는데 지금쯤엔 정말 그렇게 취했을지도 몰라. 제대를 조금 앞둔 나의 선임분대장은 내가 추억록을 사다주지 못한 대신 몇 장의 그림과 시를 적어 주었더니 마냥 기뻐하겠지. 그 밖의 병사들은 내 노트를 훔쳐다가 보고는 ‘신’이라는 분이 누구냐고 법석을 떨더니 사진을 돌려보고 예쁘다고 마구 놀리고 난리야.
참 재미있는 병사들도 많고, 내가 복이 많아서인지 그들과 매우 친근한 사이가 될 수 있었어. 그 중 조상병은 우리분대장님이 가난해서 신에게 선물도 못하면 안된다고 하면서 분대원들이 봉급을 모아줄 테니 다음 휴가 때는 신에게 커다란 왕사탕이라도 사다 선물하래나 뭐래나...
다시 귀뚜라미가 운다.
밤새워 부르는 너의 노래는
별빛으로
별빛으로 흘러 내리는
작은 폭포수
슬픈 노래는 사랑을 위하여
기쁜 노래는 이별을 위하여
죽음의 날이 와도 노래 노래 부르며
아,
밤마다 찬란하게 쏟아져 내리는
너의 목소리...
이것은 내가 ‘귀뚜라미’라고 이름붙인 시(詩)야.
어젯밤 반딧불이 날던 풀섶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던 귀뚜라미 우는 소리를 들으며 단숨에(?) 쓴거야. 어쩌면 저 귀뚜라미는 모든 것을 자연의 뜻대로 받아들이며 언제까지나 노래 노래 부르며 사는 사랑의 구도자(求道者) 같기도 해. 작년 겨울밤 신의 밤을 같이 해주던 그 도심 속의 귀뚜라미도 아름다운 사랑과 행복을 추구하며 찬란한 목소리를 작은 폭포수처럼 쏟아내리던 생(生)이 있었을거야.
신,
하늘에 반짝이는 크고 환한 별들이 마치 황홀한 등불을 단 마차의 무리같다. 언젠가 을왕리 해변가 바위 위에서 보던 것처럼... 분명 그들은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그 황홀한 빛을 자랑하면서. 이런 밤에는 끝도 없이 가곡이 듣고 싶어.
그러면 오늘은 이만 안녕. 나의 사랑스러운 신에게(1978.7.18. 밤)
정다운 신,
달빛으로 환한 하늘에서 유성이 진다.
골짜기에는 하얗게 안개가 걸려있고 활짝 피어 달을 반기는 달맞이꽃의 모습이 무척 사랑스럽다. 음력으로 유월 보름이 지났나 보다. 조금 작아진 저 달 아래서 지금쯤 나의 신은 무얼하고 있을까,
달빛이 너무도 밝다. 이런 밤에는 아름답고 고귀한 사랑과 생을 테마로 엮은, 우수와 낭만이 넘치는 문학작품을 읽고 싶은 끝없는 욕심이 생긴다. 내가 휴가 후 첫 번째 신에게 보낸 편지에 ‘가난한 연인들’이라는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 했었지.
그 작품은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프랑스의 어느 작가가 쓴 단편으로 명문귀족의 딸로서 선망과 애모의 대상이던 처녀가 그 많은 귀족 청년들을 물리치고 야망과 학식은 있으나 말할 수 없이 빈곤하고 불우한 법학도를 사랑하는 이야기였는데...
그들의 눈물겨운 순애적 사랑은 가난과 역경 속에서도 마치 겨울에 핀 에델바이스처럼 맑고 순결하였어. 아직 열일곱살의 소년이던 나는 아무도 없는 새벽녘 한림학원의 추운 교실에서 뒷장은 다 떨어져나가서 볼 수 없던 낡은 책을 가지고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난다.
가난해도 보석처럼 소중한 것은 우리들의 사랑이라고 말하던 그들의 모습을 그려보며 얼마나 눈물겨운 비련에 감동했었는지 몰라.
그런데 신,
나는 요즘 우연한 기회에 그와 비슷한 제목을 가진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데뷔작을 읽게 되었어.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읽었지만 너무도 아름다운 인간에게 끌려서 며칠동안 틈나는 대로 읽었는데, 엊그제 밤엔 오늘 밤보다도 더 달이 밝아서 몇 페이지쯤은 달빛을 받으며 읽기도 하였어.
인간의 사랑이 어쩌면 그토록 강렬하고 헌신적이며 눈부시리만치 진실될 수 있을까.
주인공 마까르 알렉세이비치는 다 낡아빠진 의복과 형편없는 구두를 신었으며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하급관리인데다 나이마저 많은 가난한 외톨이였지만, 역시 고아인데다 나이어린 불쌍한 처녀 바르바라에게 바치는 사랑과 정은 자기를 잊은 고결한 것이었어. 그들의 생활은 정말 눈물겹도록 비참하였어. 공산주의의 현실은 비정했고 지극히 선량하나 학식과 권력이 없는 이들은 너무도 가난했던거야.
신,
마까르는 그가 사랑하는 처녀 바르바라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 유일한 행복이었어. 그가 쓴 편지에서 그는 고리대금업자에게 가서 연신 고개를 굽실거리고 두 손을 비비며 돈을 빌 때, 또 고르호바야거리에서 온갖 값비싼 물건들과 호화찬란한 마차 속의 귀부인들을 보았을 때, 그리고 교회에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할 때에 이렇게 적고 있었어.
바렌까, 이 순간 당신을 생각했습니다. 당신의 불행과 궁핍을 생각했고, 또 그렇게 곤란을 당하면서도 내게 보내 준 반 루블짜리 은전을 생각했습니다. 귀족 부인들을 보면서는 어째서 우리 바렌카는 그렇게 불행해야 합니까 하며 안타까워 했고 기도를 하면서는 오직 당신만이 내게 위안을 주었습니다.
신,
마까르의 마지막 편지가 생각난다. 이별을 하면서 그가 받은 것이라고는 바르바라가 준 한권의 책과 그녀가 쓰던 재봉대와 탁자 위에 그녀가 쓰다만 편지 한 장뿐, 정말이지 내게서 당신을 빼앗아 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내 가슴 속에서 염통을 빼내어 가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라는 절규의 음성.
글쎄 어쩌자고 당신은 그런 결심을 했느냐고 하던 탄식이며, 나는 당신이 타고 가는 마차바퀴 밑에 몸을 던져 당신이 떠나지 못하도록 하겠노라고 부르짖는 애절한 호소. 그러다가는 “나는 이제 누구한테 편지를 써야 하느냐”고 묻는 대목에서는 슬픔이 한계를 넘어서고 있었지. 또 "나는 누구를 귀엽고 사랑스러운 보배라고 불러야 합니까? 앞으로 나는 어디서 당신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러다가는 “나는 당신의 전부를 사랑해 왔습니다. " 라는 고백. 아, 이것이 부질없는 나의 넋두리입니까, 이것이 마지막 편지가 되다니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신,
내게는 비가 내리는 빼쩨르부르그의 춥고 음산한 회색빛 하늘과 그 황량한 벌판을 달려가는 바렌카의 마차와 창문 밖을 내다보며 온 몸이 으스러지는 듯한 쓸쓸함 속에서 울고 있을 마까르의 모습이 보이는 듯 하다. 인간의 이별은 언제나 이렇게 한량없는 슬픔을 안겨주는 것일진대 진정 인간은 떨어지거나 헤어지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것일까.
가난은 죄가 아니라는 말로 위안의 편지를 주던 바렌까가 그는 얼마나 그리웠을까. 이 작품이 구현한 것은 보다 더 숭고하고 차원높은 인간애라고 느껴져. 작가의 인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연민이, 저 밑바닥 깊은 곳에서부터 아무런 위선과 불의를 용납하지 않으면서, 저 ‘가장 빈곤하고 가엾은 사람들’을 위해서 풍부하게 넘쳐흐르는 것을 보며 감동과 기쁨을 느꼈어.
신,
진정한 의미에서의 인간이고 싶다. 그리고 그런 인간의 가장 뜨거운 애정과 연민으로 신을 사랑하고 싶다.
수많은 책을 읽고 싶은 욕심이 자꾸만 더해진다. 하지만 문학작품을 읽고 있을 처지가 아니기에 신에게 또한 부끄럽다. 이제 여름이 갈 무렵이면 작업도 적을 테니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할게.
마까르의 진실로 내 사랑을 보내며 안녕(1978. 7. 22.)
첫댓글
달맞이꽃의 한 장을 그리셨는데
그러시군요
아내분의 좋아하는 꽃으로 그리신 작품이 얼마나 보람되시며
값진 오늘시겠습니까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