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마땅히 분변(分辨)할 것
로마서 14:22, 고린도전서 2:10-16
정동교회, 체부동교회, 중앙교회
世事千差萬別, 路非一道, 事非一理, 當分別可也. 人無分別, 顚躓乃已. 故阮籍窮道而哭, 墨子染絲而悲, 皆以此故也. 傾一國之財, 敎育國民者, 欲分別也. 國民無分別, 邪神偶像彌滿國內, 體力及精神日日腐敗, 國遂以亡矣. 個人無分別, 風水卜筮之說盛行, 家家誦經, 括筐投機, 僥倖乃其事業, 正義日亡, 是可寒心也. 故人當分別, 白乎黑乎, 善乎惡乎, 東乎西乎, 賢乎愚乎, 神乎偶乎, 皆當分別. 昔善藏柑者, 冬日賣柑若新柑, 人買而割之, 其中敗絮而已也. 人問其故, 賣柑者曰 世人皆以柑而買, 我則非柑而賣. 雖非道, 世皆然, 何咎我也云, 故不恃賣買者. 當先分別者, 生柑乎敗柑乎, 生則當買, 敗則不買, 商而有分別常多獲利, 工而有分別常售技術, 將而有分別常勝敵, 士而有分別常進道. 今欲進步, 則當先分別, 人不能自別, 則當借人, 或借於友, 或借於師, 自古如此, 舜明四目, 達四聰者, 舜常樂取於人, 故四方之人, 爲舜之聰明, 況吾人乎? 如吾目力不能視微, 則借顯微鏡, 不能視遠, 則借望遠鏡也. 故借於人爲善, 爲美德, 借人穀借人金, 爲貪欲然, 借人分別, 無傷廉也. 自古自是者甚危, 無取人之心, 有自滿之心故常敗. 昔張良椎秦始皇而不中, 大索之下, 彷徨圮橋之上, 夜遇老人, 初欲毆之, 終乃謙而受之. 老人曰孺子可敎也云. 此借人分別. 有一敎人, 常有米豆, 余常勸止, 其人曰 君知傳道, 不知米豆, 余曰 不知其中, 但知米豆之敗, 故勸止云. 其人不悛而敗, 然則取人者不敗, 不取人者敗. 自在愚蒙而不知者, 終不能興. 有一敎人信主后, 不念先父母, 廢祭祀自以爲篤信, 後背主且失敗, 更生愚妄, 自己之敗, 知在不祭先, 而乃設酒果脯醯祭其祖, 且伏而哭之曰 孱孫不肖久不祭先, 其敗如此云. 此人甚愚失敗, 知在不祭其祖也. 不知在不檢其身也, 故當分別也. 今敎人最難分別者, 生與義之間也. 生雖爲重, 或時反不如義, 輕其生鴻毛也. 前賢皆如此, 故孟子曰 生亦我所欲也, 義亦我所欲也. 兩者不可得兼, 捨生而取義云. 此是生輕於義也. 主曰 人不可以飯而生, 只以神言而生也云. 飯重乎, 神言重乎? 吾生活甚困, 雖有神言, 不能活我, 乃以取飯爲急務, 不顧廉恥, 不辨黑白, 如有一分之利, 乃不顧而往, 種種陷于不測, 犯法殞身, 故當分辨. 吾敎人當先分別神意之所在, 神意果何欲乎, 何惡乎. 昔齊王好竽, 而有求齊者, 操瑟立其門, 乃不能得. 吾人雖欲渴求榮福, 而如不合神意, 則不能成, 如齊王好竽而求齊者操瑟則不可合也. 故當分別神意之所在, 三友悅(사무엘)往이새(다윗의 아버지)之家, 立甘泉以求膏者, 三友悅乃欲形秀者, 神不許, 乃至大圍(다잇), 而膏之, 宗敎視人其狹容, 善禮拜爲善人, 善讀經乃善人, 此可觀之, 然以事業, 善出者可也. 今日李商在氏以何而高人也, 此人文不過漢識也, 位不過長老, 而乃社會葬之, 此何故也? 李老乃社會人也. 非一家人也. 國人艶慕亦以此也. 故分別人先看其人之事業如何, 成功不可論也. 예수 當時不能成功, 而釘死之後, 其光彩赫赫于宇宙之間, 故當分別. 우커우와승론 貌雖黑, 其名不朽者何也? 其哲學及事業幷赫赫, 遺芳能使黑人, 有敎育及宗敎也, 故視黑人之外貌, 則不可稱人, 而視其事業, 則雖白人亦不能及也. 雖面如白玉, 才如李杜, 其事業劣下, 則眞黑人而已也. 故看人亦當分別也. 學問亦當分別, 今各主義如雨後竹筍發生, 而不知何主義爲善也. 若不分別, 則 只狂妄而已也, 僉位念之哉.
세상사는 천차만별이고, 길도 한 길이 아니며, 일도 한 가지 이치가 아니니 마땅히 분별해서 행해야 합니다. 만일 사람이 분별 하지 아니하면 실패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완적(頑敵)은 가던 길이 끝나자 울었고, 묵자는 흰 실이 물감에 따라 변하는 것을 보고 슬퍼했는데, 모두들 분별의 중요성을 인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라가 재정을 털어서 국민을 교육하는 것은 분별을 잘 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국민이 올바른 분별을 못하면 사신(邪神)과 우상이 온 나라에 가득하고 체력과 국력이 날로 부패해져서 나라는 마침내 망하게 됩니다. 개인이 분별이 없으면 풍수나 점쟁이들이 성행하여 집집마다 주문을 외고 재산을 통째로 넣고 투기하여 요행으로 사업을 하게 될 것이며 정의는 날마다 사라질 것이니 이게 한심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마땅히 분별하기를 흰 것과 검은 것, 좋은 것과 나쁜 것, 동쪽과 서쪽, 현명한 것과 어리석은 것을 분명히 구별해야 합니다.
옛날에 밀감을 잘 저장하는 사람이 있어서 겨울에도 새로 나온 밀감 같아서 사람들이 그 밀감을 사 가지고 쪼개 보았더니, 그 가운데는 썩어서 곰팡이가 풀썩풀썩 날렸습니다. 그래서 밀감장수를 찾아가 따지니까, 밀감장수가 대답하기를 ‘세상 사람들은 밀감으로 알고 사지만 나는 밀감이 아닌 것으로 팔았소이다. 그것이 비록 옳은 일은 아니나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게 팔고 있으니 나만 탓할 것이 못 됩니다’라고 했답니다. 그러므로 물건을 사고파는 자를 믿지 말고 먼저 그것이 싱싱한 밀감인가 썩은 밀감인가를 분별해서 싱싱하면 사고, 썩었으면 사지 말아야 했습니다.
장사꾼은 분별을 잘 해야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고, 기술자는 분별을 잘 해야 그 기술을 잘 이용하며, 장수는 분별을 잘 하여야 적을 이길 수 있고, 선비는 분별을 잘 하여야 도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지금 앞으로 발전해 나가려면 마땅히 먼저 분별해야 하는데 사람들이 혹 자신이 분별하지 못 하겠거든 남이나 친구나 스승의 힘을 빌어야 합니다.
예로부터 이와 같으니, 순 임금은 사방을 볼 수 있는 밝은 눈을 가졌고, 사방의 소식을 듣는 밝은 귀를 가졌습니다. 순 임금은 늘 남에게서 배우기를 좋아하였기 때문에 사방에서 사람들이 순 임금의 눈과 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람이야 더 말할 나위가 있습니까?
만일 나의 눈이 작은 것을 못 보거든 현미경의 힘을 빌어서 보고, 먼 것을 못 보거든 망원경의 힘을 빌어 보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의 힘을 빌려서 착한 일을 하면 미덕이 되지만 남의 곡식을 빌리고, 남의 돈을 빌리면 탐욕같이 됩니다. 그렇지만 남의 힘을 빌려 분별하는 것은 염치를 상하는 일이 되지는 않습니다.
예로부터 자기가 옳다고 하는 자는 매우 위험합니다. 그것은 남에게서 가져 올 것은 없고 스스로 만족하는 마음만 가지기 때문에 항상 실패합니다. 옛날에 장량(張良)이 진시황을 저격하다가 실패하자 나라에서 범인을 대대적으로 수색할 때에 장량은 무너진 다리 위를 방황하다가 밤에 어떤 노인을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거만한 노인을 두들겨 주려고 하다가 끝내 겸손한 자세로 신발을 주어다 주니 노인이 이르기를 ‘어린놈이, 가르침을 줄 만하다’라고 하고 책을 주었습니다.
남의 힘을 빌려서라도 분별을 알게 되어야 합니다. 어떤 교인 한 사람이 늘 투기사업을 했습니다. 나는 늘 그것을 그만 두라고 권유하였는데, 그 사람은 항의하기를 ‘당신은 전도를 할 줄 알지만 투기하는 일은 모르지’ 하기에, 나는 ‘그 내용은 모르지만 다만 투기하다가 실패하는 것은 알기 때문에 권하는 것일세’ 하였습니다. 그 뒤에 그는 그 일을 그치지 않고 하다가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남의 의견을 잘 듣는 자는 분별을 알게 되어 실패하지 않고 그것을 무시하는 자는 실패합니다.
스스로 어리석어서 아무것도 모르는 자는 끝내 일어날 수 없습니다. 어떤 교인이 주님을 믿은 뒤에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지 않고 제사는 폐지한 뒤에 스스로 독신자가 되었는데, 뒤에 주님을 배신하고 또한 사업에 실패한 뒤에 다시 어리석은 생각이 들어, 자기의 실패가 조상에게 제사를 드리지 않은 데 있다 하고, 주과포혜(酒果脯醯)를 장만하여 조상에게 제사지낼 때 엎드려 울며 호소하기를 ‘못난 자손이 불초하여 오래도록 올리지 않다가 이와 같이 실패하였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사람은 너무 어리석어서 실패한 것을 가지고, 그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지 않았기 때문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실패가 자기 자신을 단속하지 못하여 그런 것임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마땅히 분별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지금 교인들이 가장 분별하기 어려운 것은 삶[生]과 의[義]의 차이입니다. 삶이 비록 중하긴 하지만, 때로는 의를 지키는 것만 같지 못하여 목숨을 기러기의 털과 같이 가볍게 여기기도 합니다. 선현들이 모두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맹자가 말하기를 ‘생명도 내가 가지고 싶고, 의도 또한 지키고 싶은데, 두 가지를 다 함께 가질 수 없다면 생(生)을 버리고 의를 가지고 싶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생(生)을 의보다 가볍게 여기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기를 ‘사람이 밥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이니라’ 하였습니다. 그러니 밥이 중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중합니까?
내 생활이 매우 곤궁하여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고 하더라도, 나를 살릴 수 없고 밥을 구하는 것이 급선무가 되었다고 합시다. 그러면 염치를 생각지 않고 흑백도 분별하지 못한 채, 조그만 이익을 위하여 앞뒤를 돌아보지 않고 쫓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다가는 여러 가지 예측할 수 없는 지경에 빠지게 되고, 법을 어겨 몸도 잃게 됩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분별하여야 합니다.
우리 교인들은 하나님 뜻의 소재를 마땅히 먼저 분별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한 바가 과연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무엇을 미워하는지를 말입니다. 옛날에 제왕(齊王)이 피리를 좋아했는데, 제나라에 가서 벼슬을 하고 싶어 하는 자가 거문고를 가지고 제나라 궁문에 서 있었으나 결국 벼슬을 얻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우리 인간이 아무리 영화와 복을 목마르게 바라더라도,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마치 거문고를 가진 자가 피리를 좋아하는 제왕의 뜻에 맞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뜻의 소재를 분별하여야 합니다.
사무엘은 이새의 집이 있는 감천[甘泉]에 가서 기름 부을 자를 구할 새, 사무엘은 외모를 보고 구하려 했으나 하나님은 그런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다윗이 오자 기름을 부어 새 왕으로 선출하였습니다. 종교에서는 그를 보잘 것 없는 용모로 보았으나, 예배를 잘 하는 이가 선인(善人)이 되고, 독경(讀經)을 잘 하는 이가 선인이 됨을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사업을 해서 훌륭하게 출세한 자가 있었습니다. 오늘날 이상재(李商在) 씨가 어찌하여 존경받는 사람이 되었습니까? 이 사람의 문장은 한문 학식을 가진 것뿐이고, 지위는 장로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죽자 사회장(社會葬)으로 장례를 치렀습니다. 이는 무엇 때문입니까? 이상재 씨 그가 바로 사회인[社會人]이었고, 한 집안의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나라 사람들이 흠모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을 분별하는데 먼저 그 사람의 사업이 어떠한가를 보아야 합니다. 그 성공여부는 논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께서도 그 당시에는 성공할 수 없었습니다. 십자가 못박혀 죽으신 후, 그 광채가 천지에 빛났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분별을 해야 합니다. 부커 와싱톤은 얼굴이 비록 검지마는 그 이름이 없어지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그의 철학과 사업이 아울러 빛이 나서 그가 남긴 영향으로 흑인들에게 교육과 종교를 가지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흑인들을 외모로 볼 것 같으면 사람이라고 일컬을 수 없지마는 그가 남긴 사업을 보면 아무리 백인이라도 능히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얼굴은 백옥 같고, 재주는 이백과 두보 같더라도 그 사업이 보잘 것 없으면 참으로 흑인일 뿐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보는 데도 마땅히 분별을 하여야 하고, 학문을 하는 데도 분별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 여러 가지 주의(主義)들이 우후죽순처럼 발생하지만, 어떤 주의가 옳은지 모릅니다. 이것들을 만일 잘 분별하지 못하면 미치고 망령된 사람이 될 뿐입니다. 여러분께서는 그것을 잘 생각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