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7. 깊은 곳이 어딘가 / 누가복음 4:1-11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는 곳은 바로 깊은 곳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가볍고 얕은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깊은 곳을 원하지 않습니다. 베드로 역시 어부로서의 경험에 비추어 깊은 곳에는 고기가 없다고 생각하여 주님의 말씀을 의심했습니다.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도 베드로와 같은 의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믿는다고 해도 진정 깊이 믿지 못한다면 실패하게 됩니다.
동양에서는 용이라는 신비한 동물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용은 조화와 변화가 무궁무진합니다. 용이 화내면 바다가 뒤집히고 폭풍우가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죽지만, 용이 기쁠 때는 바다가 고요해지고 풍년이 든다고 믿습니다. 용은 깊은 바다 속에 숨어서 여의주를 간직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 여의주에 용의 조화가 담겨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깊은 곳에 무궁한 복과 변화가 있다는 것을 아는 이는 없고, 믿지도 않습니다.
베드로 역시 이런 의심을 가지고 흔들리다가 결국 깊은 곳에서 큰 은혜를 깨닫고 주님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밭에 숨겨진 보화와 시장에 진주가 있듯이, 우리도 깊은 곳에서 참된 복을 발견해야 합니다.
우리 청년회관 건축 때 미국인 원아백커 씨가 5만 달러를 기부했습니다. 그는 캘리포니아에서 잡화상을 운영하며, 무디 목사를 초청해 부흥 집회를 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결심하고 인근 교회에 등록했으며, 그가 세운 상관의 이름을 "깊은 데"라고 지었습니다. 그 결과 그의 장사가 잘되어 주변 교회들을 돕게 되었습니다.
깊은 곳을 찾아가기만 하면 반드시 큰 복을 받게 됩니다. 과연 이 세상에서 누가 진정 깊은 것을 아는 자이며, 믿는 자일까요? 우리나라 교회에도 깊은 곳에 있는 이들이 있지만, 대부분 얕은 물가에서 허덕이고 있습니다. 진정 깊은 은혜에 들어간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조선 사람들은 오로지 깊은 곳을 찾아 허탕만 쳤습니다. 이는 정감록이 그렇게 만들어놓은 것입니다. 조선에 남쪽에 새로운 나라가 있다고 하여 이를 찾느라 헛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경주 사람 최제우가 동학을 창시하여 남조선이 있다고 외쳤습니다. 이에 경상남도와 전라남도 사람들이 모두 믿고 전주를 점령하기까지 했지만, 정부가 청나라에 도움을 요청하여 적국 장수들이 들어와 동학을 멸했습니다. 그래서 동학에도 남조선은 없었습니다.
이후 가톨릭교가 전도하면서 이곳에 남조선이 있다고 생각하여 유명인사들이 연구하다가 교옥 사건으로 수십만 명의 신도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어디에도 남조선은 없었습니다.
이렇게 허탕을 거듭하다가 마침내 깊은 교리의 기독교를 만나게 되었지만, 아직도 얕은 물가에 머물러 있고 깊은 곳에 들어가보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주님을 만나지 못하고, 생선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채 자신의 지식만 믿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주님, 속히 오셔서 우리를 가르치시고 큰 기적을 보여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