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곰.. 그러면 큰 동물이 생각납니다.
덩치가 산만하고 둔한듯 하면서 얼음덩어리 위에서
어슬렁거리며 먹이를 찾는 한마리 동물이.
실제로 백곰은 그 동물하고 많이 닮아 보입니다.
덩치나 모양이, 어떤 때는 얼굴 생김새도 그렇습니다.
하도 우리가 백곰, 백곰 불러대니 더 그렇게 보이나 봅니다.
조금 쌔카만 얼굴이라 가끔은 흑곰으로 부르고 싶기도 한 백곰입니다.
우리 큰나무에 온지 이년하고 반이 됩니다.
우리가 오기 전부터 옥길동 원주민이었고, 무슨 인연인지 예슬이네 주인집 1층에
살고 있다가는 학교가 이사하자마자 덜컥 보조교사로 특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한번 해보자, 노는 거보다는 낫지 않냐, 하면서 어영구영 시작된 일이
글쎄 이제는 없어서는 안되는, 학교에서는 가장 많이 부르는 이름, 백곰이 되어 버렸습니다.
각종 잡무에, 그의 주특기인 '수리하기'가 이곳 신축건물의 각종 수리와 결합이 되면서는
이보다 더 잘 맞을 수 없게 된 겁니다.
형광등갈기, 열쇠고치기, 청소, 하수구, 쓰레기, 공구사용, 이것저것 만들어 놓기..
그가 하는 일들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보조교사의 역할까지 맡고 있으니 이제는 이곳에서
약방의 감초같은 자리에 들어섰습니다.
한데,, 아이고, 백곰때문에 죽을 맛일 때도 많습니다.
그 고집때문에.. 그렇게 말을 해도 도무지 고쳐지지 않는 습성이 있어
복창을 터뜨리는 겁니다. 이건 차마 다 말할 수 없는 백곰과 교사들간의 비밀이기도 한데
알 분은 다 알고 있는거라 그냥 여기다 말해버릴까 합니다^^
밑도 끝도 없는 고집..을 생각하면 이 글을 쓰다가도 뚜껑이 열립니다.
예를들면 이런 겁니다. 며칠전 목공수업을 하는데, 저는 수업을 진행하다가 죽는줄 알았습니다.
보조로 들어온 백곰은 수업의 진행에 도움이 되는데 관심을 두기 보다는 공구, 공정에 온통 빠져있습니다.
좌탁을 일차로 다 만들고 본드에 목심을 박는 중이었는데
백곰은 3cm정도 되는 목심중에서 쓰고난 짜투리를, 그것도 본드가 굳어서 잘 들어가지지 않는쪽으로 자꾸 골라줍니다.
잘 안들어가니깐 우선 둥글게 깍인쪽으로 긴걸 달라고 해도 막무가냅니다.
자기가 생각하는 것, 쓰다만것으로, 작은 것으로 박아야 하고, 그래야 튼튼하다고 여기면서
절 안넣어지는 영주에게 계속 뭉뚝한 쪽으로.
그날 백곰은 목공수업중에 밖으로 보내졌습니다. 수업을 하다가 학생이 쫓겨난 적은 있어도
이렇게 교사가 나가는 일은 처음입니다.
아하.. 이 건을 읽고서는 그래도 백곰이 생각이 깊다, 라고 생각할 분이 있을 겁니다.
백곰은 기본적으로 생각이 무지 깊습니다.
우리가 범접하지 못할 정도로 깊어서는 도저히 헤아리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백곰의 한손에는 열쇠뭉치가, 아니 다른 날에는 바이올린이, 또 어떤 날에는 몽둥이 같은 긴 막대기가 들려있기도 합니다.
생각이 깊어서 왜 그걸 들고 다니는지 알수가 없습니다.
어떤 날은 한가롭게 강당 툇마루에 앉아서 멍하니 앉아 있다가도
어느 날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드릴에 전선에 푹 빠져있기도 합니다.
이것을 해달라, 하면 쓰윽 일을 해치워버리는데 일단은 자기의 깊은 생각을 통해
스스로에게 합당한 쪽으로 해버립니다.
"백곰, 이것좀 한번 해보자" 라고 하면 그는 한참을 머뭇거리면서
무엇을 생각하는지 눈을 둥그렇게 뜨고서 쳐다봅니다. 아마 자기 생각속으로 깊이 들어가 있을 겁니다.
"이렇게 하자"라고 하면 "네' 했다가는 금새 자기 방식으로 돌아갑니다. 그는 손으로 하는 일에 대해서는
특히 만들고 수리하는 쪽에서는 일가견이 있어, 그게 수업이든지 무엇이든지 상관없이
자기 생각대로 하고 싶어합니다. 전선줄은 쫄대를 대어서, 나사는 한봉지를 통째로 사서,
자전거는 수리점으로, 나무로 만드는 것은 무결점으로 완벽하게, 여기에 공구가 없으면 아버지가 하고 있는
바이올린 제작 공장에 가서라도..
어느날, 저는 퍼뜩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백곰은 천재다, 라고.
그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고
도무지 따라 갈수 없는 여러방식의 길을 알고 있어서, 아무리 내가 이렇게 하자, 이게 좋겠다, 해도
그보다 훨씬 좋은 방법들을 많이 알고, 나름의 생각이 있어서
내말을 들을래야 들을 수가 없는 겁니다.
나 뿐만 아니라 누가 이야기를 해도 성에 차지를 않는 상태에 있는 거지요.
특히 일에 관한 한, 그중에 수리에 관한 한 그 깊은 세계를 따라 갈 수가 없는 거다, 라고.
그래서 자주 우리는 이렇게 부릅니다.
"백곰가트니라고".
하.. 이 말은 비하성 멘트가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그의 고집을 가르키기도 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상식을 뛰어넘는 생각과 행동을 말합니다.
가끔은 "으이그 백곰가트니라고"도 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독창적인 자기 세계에 대한 칭찬을 포함합니다.
우리는 백곰이 이 학교에 있으면서 보여준 여러 행동에 대해서, 그리고 그 이면에 대해서
헷갈리기도 하고 속수무책이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그의 착함, 힘, 수리능력, 적재적소의 쓰임에 대해서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또 얼마나 자주 잊는지, 자주 잊게 만드는지.
날도 더운데, 하라는 것은 안하고, 금방 잊어먹고 오늘도 바이올린을 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은 아닐지..
여기저기 공구를 쳐박아놓고, 핸드폰에 조카사진을 보여주면서 자랑을 늘어놓지는 않을런지,
해야할 일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누군가에게 엉뚱깽뚱한 말로 시간을 축내는건 아닐지..
에휴.. 날도 더운데.
첫댓글 어려워요...ㅡ.ㅡ.. 있는 그대로를 본다는 게...
엉뚱깽뚱은 어디서 나온 말인가요?^^
리얼 100 ! 그때 장면이 떠올라 배꼽잡네요.... 화나다가 , 웃다가, 답답하다가, 든든하다가, 정들다가.....^^
멀쩡해 보이는 백곰은 전화를 안받데요? 그것도 몇번씩이나...내가 잘못봤나요?